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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밀리터리 마니아입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개발한 공대함 미사일 하푼 미시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하푼 대함 미사일 개요

미국의 맥도널드 더글라스에서 개발하고 보잉 IDS에서 생신하고 있는 대함 미사일이며 미국의 무기체계를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대함 미사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푼의 뜻- 고래잡이용 작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해군의 P-3C 해상초계기에 장착되고 있는 AGM-84 하푼 대함유도탄. 국방일보DB.

 

미국 개발 운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함 유도무기인 하푼(Harpoon) 가운데 공중 발사형으로 발사형으로 운용되는 것이 AGM-84G, 즉 AGM-84블록-IG와 AGM-84블록-II입니다. 

 

하푼은 최초 공대함용으로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대함 유도탄에 의한 해상 위협 증가로 인해 함정발사용(RGM-84)이 머전 개발돼 고이 후 다양한 버전이 개발되었습니다. 

 

공중 발사형인 AGM-84는 1979년에서야 미 해군 P-3C해상 초계기에 1983년에는 미공군의 B-52H 폭격기 탑재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에서는 P-3C해상초계기와 F-15K 전투기 등에 탑재돼 운용되고 있습니다. 

공중발사형 유도무기는 함정 및 지상 발사형과 달리 탑재 항곡 게 의해 발사 전에 운동에너지 또는 위치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쵝 가속을 위한 보조 추진장치인 부스터(BOOSTER)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항공기가 표적의 특징에 따라 노출 위험이 있다거나 유도탄을 투하하기 위한 고도가 매우 높은 경우, 고고도에서 투하시킨 유도탄이 저고도에 빨리 도달, 순항 비행을 할 수 하도록 부스터를 사용하는 예가 없지는 않습니다. 

 

AGM84-G (BLOCK -IG)의 경우, 종전의 버전에 비해 제공 격 기능이 추가되고 ECCM(Eletronic Counter-Counter Measures) 능력이 향상된 것이 특징입니다. 

 

발사 전 항공기의 레이더 데이터를 입력받아 관성 항법(INS)에 의해 공격 표적까지 중간 유도되며, 펴 적에 근접하는 종말 단계에서는 유도탄 자체의 레이더가 작동하는 능동 레이더 호밍(ARH)에 의해 표적으로 유도되어 함정을 효과적으로 공격합니다. 

 

AGM-84블록-II는 블록-IG의 개량형으로 지체와 터보제트 엔진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임무 컴퓨터, GPS 수신기, 안테나 등을 추가해 성능을 향상했습니다. 

 

발사 후 중간 유도 단계에서 기존 INS에 GPS 유도 기능을 추가해 표적까지 보다 정확하게 유도되며 종말 단계에서도 유도탄 자체 레이더 잡음을 제거하는 능역을 부여했습니다. 

 

특히 해상 표적뿐만 아니라 지상의 경성 표적도 타격할 수 있는 대지 공격 능력을 갖췄는데 약 500파운드 탄두로 해안 방어기지, 지대공 유도탄 기지, 정방 함정 등 지상의 다양한 표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2. 비행방식 알아보기. 

발사 시 높은 고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행이 안정화되면 낮은 순항고도로 하강합니다. 

발사 전 표적의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를 임력 하는 RBL 모드와 표적의 방향만 입력하는 BOL모드가 있습니다. D형부턴 발사 전 WAY-POINT를 입력할 수 있습니다. 

   하푼미사일 비행 이미지 설명: B/C형(영국 해군 잠수함용/블록1B)은 엑조세처럼 표적에 수평으로 돌입하는 시 스키밍 방식만을 사용한다. 84D형(블록1C)부터는 발사 전에 팝업/시스키밍 공격방식 중 하나를 입력해야 한다.

 

참고로 웨이포인트 입력 기능이 없는 버전의 함대함 하푼도 사전 설정돼 방위를 향해 선회하는데 좌우로 최대 90도까지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하푼  결사 발사대는 좌우현을 향해 반반씩 배치되니 함수, 함미 방향으로는 모든 하푼의 발사기 가능한 샘입니다. 

 

2-1. Range and Bearing Lanch(RBL) mode

- 순항고도로 날아가다가 지정돼 거리에서 액티브 레이더 시커가 활성화되어 목표물을 찾아서 공격합니다. 

레이더 시커가 켜지는 거리는 small, mediun, large 셋이며 발사 전에 입력해야 합니다. 

 

2-2. Bearing Only Launch (BOL) mode

-발사 시 순항고도에서 날아갈 방향만 입력합니다. 

순항고도에서 지정된 방향으로 비행을 시작하면 레이더 시커가 켜지며 목표물을 찾으면 바로 공격합니다. 

 

2-3. Strike Common Weapon Data Link (SCWDL) mode

-블록+부터 가능한 기능으로 지령 유도 방식을 사용하여 사용자가 미사일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최근 등장하는 fire & Forget 미사일들이 추가가 되는 기능으로서 점점 정밀해지는 기만 기기 때문에 사용됩니다. 

 

컴퓨터보다는 사람이 덜 속기 때문입니다. 

 

또한 훈련이나 신절에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비행 결로상 중립국이나 민간 함선을 적군으로 착각해 돌입해서 격침시키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타깃이 이미 무력화되었다면, 발사한 미사일을 버릴 필요 없이 다음 고위험 목표물로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 미사일 대사수는 목표가 이미 격파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3. 하푼 미사일 개발 배경

2연장 발사대에 장착된 함대잠 하푼 

초기엔 수상 항주 중인 잠수함 사냥용 미사일로 개발됐습니다. 

그래서 명칭이 고래를 잡는 작살이고 담 잠 초계기인 p-3 오라이언에 최초롤 통합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개발이 시작됐던 1965년만 해도 구 소련의 잠수함들이 다부분 재래식 잠수함이었으니 유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1967년, 이스라엘의 구축함 에일라트가 이집트 해군 고속정이 발사한 스틱스 대함 미사일에 격침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에일라트 쇼크라 불리며 각 해군의 장비 개발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푼도 1970년에 엘모 중 와튼 해군 참모총장의 지사로 대함 미사일로 급거 변경, 개발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1년에 1~2회 할까 말까 하는 사격 시업을 수십 번씩 온갖 종류의 표적을 대상으로 다 야한 상황에서 테스트하였으며, 신천 경험도 가장 많아 파푼 미사일은 높은 신뢰성을 확보했습니다. 

 

실전 이것이 하푼을 포함한 미국제 병기의 진정한 이점입니다. 전자전 대책 또한 충분히 대비되었으리라 예상되기에 하푼은 기본기가 확실한 대함 미사일입니다. 

 

4. 바리에이션 

공대함 미사일로 처음 사요 외었으며 개량을 거쳐서 군함과 잠수함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함에 초기 가속을 위한 부서터가 장착되며, 함수함에서 발사되는 하푼은 캡슐에 담겨서 발사된 다음에 본체가 튀어나가므로, 서브하푼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공다 햄 버전은 AGM-84, 함대함 버전은 RGM-84, 잠대함 버전은 UGM-84입니다. 각각 발사 방식이 다르다 보니 따로 개조를 가하지 않는 이상 호환은 안됩니다. 

 

이를테면 RGM-84는 발사대 규격이 달라 항공기에 탑재가 안됩니다. 

AGM-84는 날개가 접히지 않으므로 함선용 발사관에 넣을 수 없습니다. 

 

크게 블록  I/II/III형, 형식명으로 A(블록 1) B(영국 해군 잠수함용, C(블록 1B), D(블록 1C), F(블록 1D). L(블록 II) 형으로 발전해왔습니다. 

 

D형은 미래 웨이포인트를 프로그램해서 입력하면 발사된 뒤에 회피 기만 기동을 하다가 목표물을 공격하는 결로 지정 기근을 가진 것입니다. 

이웨이 포인트 기능을 이용하면 포병의 TOT사격 마냥 360도 전방위에 대해서 동시에 대함 미사일이 도착하도록 조정할 수 있습니다. 

수면 위를 기어 다니듯 날아갈 수 있는 시 스키밍 능력도 갖추었습니다. 

F형은 여기 더해 명중하지 않으면 클로버 모양의 비해 패턴을 기리며 목표 지점에 다시 돌입하는 제공 격 능력과 증가된 연료 및 비 생시 간을 갖추게 됩니다. 

 

대한민국 해군, 덴마크 해군 노르웨이 해군에서는 지대함 하푼을 운용했습니다. 

 

덴마크 해군은 2003년에 퇴역했습니다.. 한국 해군의 지대함 하푼(도서지역 등에 3개 포대 배치 중)은 신품 도입이 아니라, 백 구급 등 구형 함선에서 철거한 하푼을 군용 10톤 카고트럭에 올려 재활용했다고 보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그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15년에도 운용 중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도에는 이미 운용 연한이 상당히 지난 시점입니다. 

 

5. 러시아 미시 일과 비교

하푼 스펙은 러시아 제 대함 미사일들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불공평한 비교입니다. 하푼이 나올 시기는 러시아가 아니라 소련 시절로서 그 당시 소련의 아음속 미사일은 스틱스 대함 미사일처럼 하푼보다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초음속 대함 미사일이 소련 시절에도 개발 및 배치가 되어 있었지만 체급이 차원이 다르게 크니 그냥 스펙 표만 놓고 보면 더 좋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로 치자면 F-16TU-160을 비교하면서 왜 미국 비행기는 폭탄을 조금밖에 못 장착하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그 이후 끊임없이 대함 미사일을 발달시켜온 소련에 비해 왜 미국은 그 이후 하푼 하나만 개량 새서 버텨온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소련과 미국 해군의 목표 성능 차이라고 봐야 올다고 보고 있습니다. 

유명한 P-500 바잘트나 P-700 그라니트는 미사일 무게만 5톤~7톤에서 돌아다니고, 그나마 가볍다는 P-270 모스 킷도 자중이 무려 4톤입니다. 이미 RIM-8 탈로스 같은 괴물 대공미사일들 때문에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던 미국 해군이 이런 걸 운영했어도 바담이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해군에게는 사거리가 짧고 느리지만 크기와 무게가 부담되지 않은 하푼이 매우 적절했습니다. 

 

물론 냉전 마기로 가면서 더 가볍고 작은 초음속 대함 미사일도 속속 등장하기는 했으나, 미국이 참고해도 될 정도로 소형화가 진전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습니다. 

KH-31 공대함 미사일은 하푼과 비슷한 600KG 정도 무개로 초음속 순항을 실현하긴 했으나, 그대가로 사거리는 후기형 하푼의 절반 정도인 110KM 정도고 탄두 무게도 90KG대로 줄어들여 치명성에서 크게 희생해야 했습니다. 

 

P-800 오닉스/야혼트는 하푼과 비슷한 탄두 무게를 유지하면서 길리 9M에 무게 3톤으로 상당한 무게와 부피 절감을 이뤄냈습니다. 

MK41 VLS를 주력으로 운용하던 미 해군 입장에선 이 정도 미사일을 개발했어도 성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 정도 규격으로 소형화에 성공한 초음속 대함 미사일은 겨우 몇 년 전에 공개돼 브리 모스-M이나 2021년에야 개발 완료가 발표된 한국형 초음속 대함 미사일이 처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냉전 시대 미군이 초음속 대함 순항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은 건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미군이 만족할 수준의 규격에서 초음속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다만 미국 역시 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목표는 있었습니다. 

미 해군이 생 행한 레제트 비행체 프로젝트만 24개 정도 됩니다. 결과적으로 대공미사일인 RIM-8 탈로스 와이를 전용한 대공표적인 반달만 실용화되었습니다. 

표준 내에서 음속에 도달할 수 있는 로켓 부스터와 충분한 연소 공간, 탄두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다만 실용화에 양산화는 러시아 성공한 만큼 기술력에서 더 앞선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국방기술평가원에 의하면 초음속 미사일 기술은 미국이 러시아에 비해서 뒤떨진 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하푼 같은 아음속 시 스키명 대함 미사일이 당시에 꽤 유효한 타격수단인 점도 한 몫했습니다. 

AGM/RGM-84A기준 순항고도 15M, 종말 단계 시 스키밍 비행 고도 2~5M는 당대 소련은 물론이고 웬만한 서방국가의 해상방공체계가 대응하기 어려운 초저고도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대함 미사일들이 대부분 하이다이빙 방식을 사용해서 높은 고도로 접근했고 대공방어 시스템도 여기에 맞춰 대응되도록 구성됐기 때문입니다. 

이방식은 파괴력이 크고 종말단계에선 막기 힘드나 순항 단계에서 발견되기 쉽고 격추가 쉽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포틀랜드 전쟁에서 영국 42현 구축함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액 조세에 얻어맞아 격침되기도 했고 소련의 장가리 방공체계인 S-300F계열의 최저 요격고도는 25M SA-N-12 계열은 15M 수준으로 하푼을 탐지하더라도 요격이 불가능했습니다. 

 

단거리 방공체계인 SA-N-9의 9M 330조차도 종말단계의 하푼은 요격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AGM/RGM-84D형부 터는 탐색 단계에서 돌입해서 시 스키밍 비행을 하는 패턴이 추가되어 더욱 위협적입니다. 

지금야 S-300/400의 9M 100안 쉬틸-1, 바락 8 대공미사일 등 함정 중장거리 미사일들이 대다수 시 스키밍 대응 능력이 들어가 있지만 냉전기 소련 함선은 함재기의 지원을 제외하면 일부 신형 미사일과 CIWS위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키로프급, 슬라비급, 소브레멘니급, 우다로 이 급 등의 구 소련 해군 함정들에 유독 많은 수의 CIWS가 탑재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함 미사일 방어에서 CIWS는 최후에 개입하므로 다수 대함 미사일로 동시에 공격하면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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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반자동 저격소총으로 60년간 현역으로 활동 중인 명품 저격 소총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SVD 드라구노프 저격총 <출처: Public Domain>

1. 개발 역사

2차 대전 이전부터 소련군은 모신나강 볼트 액션 소총을 저격소총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란 반자동 저격 소총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독일군의 G-43 반자동 소총을 저격총으로 활용한 것을 보고 소련군은 SVT(토카레프 자동소총)을 저격총으로 운용해왔습니다. 

 

SVT는 거친 환경에서도 신뢰성을 자랑하던 다른 러시아제 총기들과는 달리 신뢰성이 떨어졌고, 모신나강 소총에 비하여 정확성도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SVT는 전장에서 통용될 수 있을 정도의 정확성을 가졌으며 반자동으로 계속적인 사격이 가능했습니다. 

따라서 기술이나 체력이 부족한 여성 저격수들이 애용하며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후 소련은 SKS 반자동 소총이나 AK-47 자동소총을 선보이면서 화기를 확보했지만, 이들 제식 소총이 사용하던 7.62 ×39mm 탄환은 저격용으로는 사거리와 저지력이 모두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전후에도 여전히 m1891/30 모신나강 소총이 소련군이 저격총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련군이 기동화하고 저격의 교리도 다수의 표적에 대한 교전이 강조되면서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저격소총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8년 소련 육군의 미사일 포병 관리국(GRAU)은 7.62mm 반자동 저격소총을 개발하기에 결정하였습니다. 

콘스탄 티 노프, 시모노프, 카라시니코프 등 기라성 같은 총기 개발자들이 개발에 창 여했습니다. 

 

새로운 저격 총기의 개발에는 예브케니 드라구노프(1920~1991) 영어명도 참여했습니다. 

드라고 높은 이젭스크 공대를 종합한 이후 모신나강 소총의 총검 개량에 참여하면서 총기 개발자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라나 1939년 2차 대전과 함께 징집된 드라구노프는 창비 창에서 총기 정비 임무로 군생활을 시작했지만 결국 전쟁 중에 홍기 개 바자로 다시 자리를 굳혔습니다. 

 

특히 그는 정 빌 소총의 개발에 매진하여 대전 이후에는 S-49 타깃 소총을 개발하는 활약을 통하여 소련 최고의 저격총 개발자로 명성을 굳혔습니다. 

 

드라구노프가 1959년 제출한 SSV-58 1958년 자동장전 저격총이란 뜻은 제출된 총기 가운데 유일하게 정 혹성 기준을 충족하면서 차기 저격총 산정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습니다. 

이후 드라구노프는 개량형인 SSV-61을 제출하여 경쟁을 이어갔으며, 콘스탄티노플 소총과 최종 경쟁후보로 남아 절저 한 시험평가 끈 체 1961년 드디어 차기 저격소총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추가적인 개량을 거치면서 드라구노프 저격소총은 1963년 드라구노프 자동 장전 신 저격소총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추가적인 개량을 거치면서 드라구노프 저 경소 총은 1963년 드라그 노푸 자동장전 시 저격소총으로 소련 육군에 제식 채용되었습니다. 

드라그노프를 들고있는 군인 모습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소련은 저격용 정밀 탄환을 별도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라나 1947년 이후 정밀 탄환의 개발이 시작되어 1950년대 이르면 소련도 스포츠용 정밀 탄환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드라그노프 저격총의 전용 탄환은 N11-61 연구소 개발을 담당했습니다. 

당 연구소 소속의 사벨니코프와 사조 높이 등을 7.62 × 54 mmR 탄을 개발하였는데, 이 탄환은 1967년에서야 GRAU 분류명 7N1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조준경으로 오프 친니 코프와 글리조프에 의해 PSO-1 광학 조준경이 개발되어 제식 채용 되었습니다. 

한편 정밀 총열의 양산을 위해서 사모 일 로프와 니키틴은 새로운 총영 가공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드라구노프 저격 총은 800M까지 정확하게 표졍을 맞출 수 있는 반자동 저격소총이 되었습니다. 

 

SVD는 1974년 320mm당 1회전이던 총역을 240mm당 1회전으로 변경하는데, 이는 운용상 드러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320 mm 총열은 7.62 × 54mm 스포츠 탄환이나 드라구노프 전용 7n1탄환을 발사하느데 최적이었으나, 문제는 그 이외의 탄환이었습니다.

 

소련의 저격수는 저격용 탄환 이외에도 적의 위치를 다른 부대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예광탄을 사격하거나 강화된 엄페물을 공격하기 위해 철갑탄을 사귀어해야만 했습니다. 

 

1:320mm 총열로는 정확성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SVD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총열 교체 이후에는 별다른 개량이 없었지만 1991년부터 공수부대용 SVDS가 개발되어 1995년부터 채용되었습니다. 

 

SVDS는 1979년부터 10여 넌 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향이었는데, 장갑 차령에 탐승하고 전투해야만 하던 대원들에게 기다란 SVD는 사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접철식 개머리판을 채용한  SVDS가 채용된 것입니다. 

 

이 회에도 SVD는 꾸준히 새로운 모델이 모색되어 불펌형인 SVU가 개발되기도 했으며, 9.3 × 64mm탄을 채용한 SVDK가 개발되었습니다. 

 

다양한 최신형 저격소총들이 개발되고 채용되고 있음에도 SVD는 당분간 소련군의 일선을 지키는 저격총으로 위상을 유지한 전망입니다. 

3개 후보기종이 차기저격소총으로 출품되었는데, 위로부터 드라구노프, 콘스탄티노프, 시모노프 저격총이다. <출처: Public Domain>

2. 드라그노프 특징

SVD드라구노프 저격총은 기본적으로 반자동 방식의 저격소총으로, 그 개념은 지정사 수소 총에 가까웠습니다. 

SKS소총이나 AK-47과 유사한 외양으로 작동방식도 돌일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념과는 달리, 드라구노프 저격총은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노리쇠는 절사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회전식 노리쇠를 채용하여 3개의 로킹 러그가 회전하여 약실을 잡스는 방식입니다. 

SVDS 저격소총의 야전분해 모습 <출처: Public Domain>

또한 가스압 조적기가 장착되어 2단으로 가스압을 조적 할 수 있습니다. 

통상 가스압 조절기는 1단으로 놓아 발사로 발생하는 가스를 일부 내보냄으로써 적절한 반동을 유지하면서 발사 순화 주기를 완성시킵니다. 그라나 만약 약실 내에 탄매등이 쌓여 발사 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가스압 조절기를 2단으로 조절합니다. 

2단의 경우 가스 배출구가 잠기어 가스압이 전부 피스톤으로 전달됨으로써 탄피 배출이 잘 이우어집니다. 또한 그 한 지나고 지대에서 저 압력탄으로 사용할 경우에도 2단으로 조정하여 발사하게 됩니다. 

 

드라구노프 설명 동영상

2단의 경우 가스 배출구가 장 기어 가스압이 전부 피스톤으로 전달됨으로써 탄피 배출이 잘 이우어지고 또한 극한 지나 고지대에서 저 압력탄을 사용할 경우에도 2단으로 조절하여 발사하게 됩니다. 

 

탄환으로 전용 저격탄인 7N1이 사용되었습니다. 

7N1탄환은 탄자 무게가 151 그레인의 탄환으로 강청 탄심이 구리로 둘러싸였으며, 탄심과 구리 표피 사이에 빈 공간을 두어 파쇄 효고를 높였습니다. 

한편 1999년 러시아 7N1 탄환을 신형 7N14의 탄자 무게는 151 그레인으로 동일하지만 탄자를 강철의 관통 탄심으로 교체하여 방탄조끼에 대한 관통 능력을 향상한 것이 특징입니다. 

 

7N14탄은 5mm 2P 강철 방탄판을 300m에서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합니다. 

SVD는 PSO-1 조준경을 채용하여 정확한 원거리 사격을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PSO-1의 4 × 24 광학조준경으로 고잔 4 배율에 시야각 6도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조준경은 1.7m 표적을 기준으로 200~1,000m까지 거리측정용 레티클을 제공하며, 쉐브론 레티클을 사용하면 

1,100, 1,200, 1300m 까지도 조준이 가능합니다. 

조준경은 소련군 표준의 측면 장착용 레일을 레버 시그 올 손쉽게 탈착이 가능합니다. 

 

PSO-1 조준경은 추후 PSO-1M 2로 개량되었습니다. 한편 야간 교전을 위해서는 1 PN58 NSPUM 영상 증폭현 야간 조준경이 사용됩니다. 

 

3. 운용현황

SVD는 1 MOA를 넘는 소총으로 저격소총으로서 정확한 편은 아니지만, 징집병을 위한 정밀소총으로 소대급 화기로 전쟁에서 좋은 성과를 기록해왔다. <출처: 카라시니코프 콘체른>

SVD드라구노프 저격소총은 1963년 7월 3일 M1891/30 모신나강을 대체하여 소련군의 제식 저격총으로 채용 되었습니다.

 

SVD는 보병 지원화기로 분료 되며, 소대급에서 운용되었습니다. 

정예 저격수가 아니라 18세의 징집병도 운용할 수 있는 것을 운용개념으로 하였으며, 이에 따라 초탄 명중이 아니라도 신속히 제사 격을 통해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반자동 방식을 채용하였습니다. 

 

또한 저격총으로서는 가벼운 무게에 준수한 명중률로 일선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드라그노프에 정확성은 통상 1.24 MOA로 평가됩니다. 

구형 1:320 MM 총열에서 7N1탄을 사용하는 경우 1.04 MOA까지도 기록할 수 있으나, 저격용이 아닌 표준 탄환을 사용할 경우 정확성은 2.21 MOA를 기록하며, 특히 상하 편차가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군의 최신 반자동 저격소총인 M110 0.75 MOA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정확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SVD는 톤상 머리 크기의 표적에는 350m, 몸통은 430m, 전신을 640m에서 정밀한 사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며, 툰상 600~800m의 표적이 저격 대상입니다. 

 

소련/러시아군은 SVD 다양한 실전 경함을 거쳤습니다. 

특히 1979~199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SVD는 산악지형에 산개하여 은폐한 적에 대하여 상당한 저격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제1,2차 체첸 전쟁에서는 까다로운 시가전과 대 분란전 임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SVD는 장거리 저격총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강력한 7.62 × 54mm R 탄환 덕분에 나름의 저격 기록이 존재합니다. 

드라그노프의 최장거리 저격 기록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 육군의 블라디미르 일리인 병장이 1985년에 세운 기록으로 , 무려 1,350m에서 무자해 딘 지휘관을 사살하였다고 합니다. 

 

드라그노프는 1970년대부터 해외로 수출되었으며, 폴란드, 중국, 이란 등에서는 면허 생산이 되기도 했습니다. 

워낙 다양한 국가에서 사용되다 보니 색다른 기록들도 있습니다. 

 

1989년 엘살바도르 내전에서 FMLN 소고의 게릴라가 정부군의 A-37B 공격기를 드라그노프 저격하여 조정사를 명중시킴으로써 항공기 격추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OIF에서는 이라크 반군들이 드라그노프 RQ-11 레이븐 무인 정차 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4. 드라그노프 제원

구경 7.62 x 54 mm R
중량 4.30 kg (탄환 제외)
전체길이 1,220 mm
총열길이 620 mm 
총구초속 830 m/s 
강선 4조 우선, 320 mm 또는 240 mm 당 1회전
적정발사율 분당 30발
조준거리 1,300 m
장탄수 10발들이 탄창

참고 문헌:,한국 국방안보포럼(KODEF),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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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중 미국과 일본의 전쟁 태평양 전쟁 당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해전입니다. 

미드웨이 관련 내용이 많아서 시리즈로 3편으로 작성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미드웨이 해전 을 다룬 영화 포스터 이미지 

1. 미드웨이 해전의 배경

19424월 18일 일본 해군은 미 항공모함에서 출격하여 일본을 공습하고 중국으로 탈출했었던 두리틀 폭격에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항속거리가 긴 쌍발 유상 폭격기를 항공모함에 적재하고 출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던 두리틀의 폭격에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항속거리가 긴 쌍발 육상 폭격기를 항공 모함에 적제 하고 출결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던 일본 군부는 공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었고 충격을 받은 일본 국민들의 군부 비난은 크게 일었습니다. 

 

일와 히로 히토가 거주하는 도쿄에 적의 폭격이 가해지는 것은 당시 군민 모두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해군 야마모토 연합 함대 사령관은 대담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야마모토는 전쟁 전부터 염두해 있던 미드웨이 알류산 열도 작전을 실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개전후의 2단 게 공세에서 중부 태평양을 주요한 목표로 보고 이를 상부에 웃겨서 관철시키고 행동을 구상 중이었습니다. 

즉 미드웨이섬을 점령하여 초계선을 멀리 하와이 근처까지 동진시켜 두리틀의 폭격대와 같은 기습의 기능성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쯤 예정돼 하와이 점령 작전의 교두보로 삼 겼다는 의지도 있었습니다. 

 

그의 목포는 또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이 하와이에 가까운 미드웨이 같은 전략적 가치가 큰 섬을 일본이 점령하고 있으면 호주와 남태평양 사이에서 활동하는 미 해군의 기동부대가 급히 달려올 것이고 이를 격멸하여 전쟁의 종말을 니 어보ㅗ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일본 육군은 야마모토의 작전 안에 공감하여 미드웨이와 알류샨 작전에 필요한 병력을 협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또 있었습니다. 

미국이 하와이에 가까운 미드웨이 같은 전략적 가치가 큰 섬을 일본이 점령하고 있으면 호주와 남태평양 사이에서 활동하는 미 해군의 기동부대가 급히 달려올 것이고 이를 격멸하여 전쟁의 종말을 지어보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일본 육군은 야마모토의 작전 안에 공감하여 미드웨이와 알류샨 작전이 필요한 병력을 협조하기로 하였습니다. 

 

2. 일본의 미드웨이 작전 연기 주장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반론은 해군 내부에서 나왔는데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 작적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제1 기동함대(마구모 기도 부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은 진주만 공격 후 계속해서 남태평양과 인도양의 여러 작전에 동원되었던 함정과 항공기, 군인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일전 기간 정비와 휴식이 필요하다고 주장 아며 작전의 연기를 강하게 건의하였습니다. 

 

그의 건의는 휘하 항공전의 중요한 전문가 들인 항공 참모 간다 미노루 대좌나 제2 항공 전대 사령관 야마구치 다몬 소잔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산호해 해전에서 크 타격을 입고 수리 중인 즈이카쿠의 수리가 끝나고 그의 자매함 쇼카쿠가 인원 충원과 훈련이 완료된 후에 합류하기를 기다려서 작전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의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란 야마코토는 이를 모두 거부하였습니다. 

그의 생각은 미드웨이 해전은 시간을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3. 야마모토의 고집

두리틀 공습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4월 28일 연합함대 기함 야마토에서 연합함대 제1단계 작전 전훈 연구회가 열렸고 이어서 미드웨이 공략 작전의 도상 연습이 있었습니다. 도상 연습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였습니다. 

미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고 일본군도 보급 등의 여러 문제들이 노출되었습니다. 

항모 즈이카쿠 – 쇼카쿠는 비슷한 크기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출처 : wikipedia

특히 야마모토가 야심 차게 기대하고 있는 미 항모 부대의 포착과 격퇴의 가능성 보장할 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구모 기동부대 구사카 참모장은 그이 자서전에서 미드웨이 점령과 미 기동부대 격멸,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것과 같다고 회고하였습니다. 

 

만약에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했더라면 그 전세의 방향을 돌려놓았을지도 모그는 두 척의 항모들, 쇼카쿠는 산호 해전에서 입은 손상 수리에 무려 3개월이나 걸리는 데다가 산호해 해전에서 조종사 손실이 절반에 달했던 자매함 즈이카쿠는 트럭 섬에 적 박시 키고 정비하기로 한 상황으로 이 주력 항모 두척의 작전 참가 배제는 불안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미국 기록은 즈이카쿠가 일본 구레 군항에 입항해 있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 해군의 총동원 가능한 항공기는 319기로 예상되었지만 미군은 하와이에서 출격하는 육상기까지 포함하면 348기로서 비슷한 규모가 되었습니다. 

 

미국보다 압도적인 전투력을 집중해서 작전에 돌임 하기 못하는 상황을 걱정하는 간부들이 많았습니다. 

후에 평가되었지만 미드웨이 전장에서 먼 북쪽 알류샨 열도에 경항모 류조와 효를 분산 투입하여 전투력을 분산한 것은 전투력 집중의 원칙에서 볼 때 야마모토의 또 다른 큰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작전에 집착한 야마모토는 본 작전에 이견을 가진 함장들은 조속히 퇴함이라고 워협의 훈시를 함으로써 반대나 연기 의견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4. 사전 탐지한 미국의 정보력

1942년 5월 5일 해군 니노 군령부장은 아먀모토에서 대해령 제18호를 발려하여 작전 개시를 알렸습니다. 

이무렵부터 일본군보다 항상 한 수 위였던 미군의 정보 능력이 빛을 바흐기 시작했습니다. 1942년 3원 4일 장거리 비행 능력이 뛰어난 일본군의 대형 2식 비행정 두기가 하와이 오하우 섬을 폭격하고 같으 달 11일 비행정 1기가 미드웨이섬에 접근했다가 격추돼 일이 있었습니다.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이는 일본이 이 해역에 공세를 취할 징후라고 판단하고 휘하 부대에 엄중한 경계를 지시하였습니다. 

 

일본군은 진주만 공격 작전 변경한 암호 체계를 절략 암호 'D'라고 불렀는데 이 암호는 미 해군에게 JIN-25 암호라고 알려져 있었고 일부 암호 해독에 성고하고 있었습니다. 

 

미 해군은 1942년 4월 말부터 암호의 부분 해독에 힘입어 일본군이 태평야 해역에서 대규모의 공세 작전을 전개할 농후한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그러나 그 작전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게 될 것인가는 불명이었습니다. 일본군의 암호에 자주 등장하는 AF라는 암호는 공격 목표로 판단되었는데 이것이 어느 곳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위신 턴의 미 합참본부는 이 미지의 암호가 하와이를 지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미 육군 항공대는 이것을 알래스카나 미국 서해 안으리고 추측했었습니다. 5월 중순까지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이 시간이 흘러갔지만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은 정보를 종함 분석해 보고 이곳이 하와이 인근 미드웨이 섬일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릅니다. 

 

 

하와이 소재 해군 첩보부도 그 AF가 미드웨이라는 가정으로 정보 수집에 집중하였습니다. 

블래 챔버라 불리는 이 암호 부대는 워싱턴에서 하와이로 급파된 죠셉 존 로체 포트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 해군 암호 첨보 분야에서 전설적인 전공을 남긴 사람으로서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암호 분석으로 사전 예견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5월 11일 첨보대의 장교 야스퍼 홈스의 제안으로 기가 막힌 작전이 만들어졌습니다. 

미드웨이와 오하우 섬의 중간에 깔린 해저케이블로 미드웨이섬 기지 사령관과 사전에 모의한 후 무선으로는 거꾸로 하와이에 미드웨섬의 해수 정화장치가 고장 나서 식수가 다 떨어져 간다는 긴급 위장 보고를 평문으로 하게 하였습니다. 

 

미드웨이섬의 사령관은 그대로 하였습니다. 이 평문 전문이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웨이크 섬의 일본군 통신 부대에게 감청되어 암호문으로 본국에 보고 되었습니다. 

 

미드웨이에 식수가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인데 역서 미드워를 지칭하는 암호인 AF라는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미드웨이섬 – 두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wikipedia>

 

이 무선은 다시 미 해군 통신 정보대에게 감청되었습니다. 

감청된 전문은 미 해군 통신 감청 본부에게 보고되어 비로소 AF가 미드웨이임이 밝혀졌고 이어서 이곳에 대규모의 일본군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 판단이 확전 되었습니다. 추가로 암호가 더 해독되어 미드웨이 공격 부대의 병력과 지휘관 예정 항로 등과 시기가 더 밝혀졌습니다. 

 

 

5. 미 함대 출동하다. 

미드웨이 침공을 격 최하기 위한 미군의 작전 계회는 5월 28일 태평양 함대 사령관 제29~42로 발령되었습니다. 

 

주요 내용들

1. 원거리에서 적을 발결, 포착하여 기습을 방지할 것

2. 적의 항모들을 결하여 공습을 지지할 것

3. 잠수함을 초개와 공격용으로 적극 활용할 것

4. 미드웨이섬 수비대는 저력을 다해 섬을 사수할 것

 

미군은 작은 미드웨이섬에 해병 수비대 3,000명을 금파 하고 항공기만 150기를 파견하였습니다. 

조밀한 대공포 대망이 급속하게 구성됐습니다. 

니미츠 대장은 이미 남태평양에서 산호해 해전을 겪은 플레처 제독의 17 기동부대(항모 요크타운과 호의 함들)를 하와이로 이동하게 하였습니다. 니미츠 제독은 가용 항모에서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5월에 있었던 산호해 해전에서 항모 렉싱턴이 격침되었고 요크타운은 큰 수리를 요구하는 손상을 입어 진주만의 독에서 수리 중이었습니다. 항모 사라토가도 일본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서 수리 중에 있었습니다. 

요크타운 -미드웨이 출동 전 수리 독크에 있는 모습 <출처 : wikipedia>

니미츠 사령관은 자치하면 플렛처 제독의 16 기동부대의 단두 척의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으로 힘겨운 작전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가지 가능성은 5월 27일 하와이에 도착하여 수리 독에 들어가 있는 요크타운의 수리가 어는 정도인지에 따라 요크타운을 미드웨이 해전에 투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였습니다. 

 

요크타운의 최대 파괴 부분은 연료 탱크로서 이를 제대로 수리하려 하와이 수리 조선소에서는 불가능하고 미 서해안의 큰 수리 조선소에 가서 장기적으로 수리해야 하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와이 수리 도트의 인원들은 72시간의 불면불휴의 돌관 작업으로 요크타운을 일단 출항을 할 수 있게 하는 응급조치를 완료하였습니다. 

 

요크타운은 5월 30일, 수리 독에서 빠져나와 전장으로 달리는 동안 공작함 (수리선)이 옆에 붙어 계속 긴급 수리를 하였습니다. 

일본 측은 요크타운이 산호해 해전의 피해가 너무 커서 출동이 불가능하리라고 보았습니다. 

만 양 미 기동부대의 반격이 있다면 미군이 미드웨이 작전에 할지 제독의 16기 동부 대인 엔터프라 니즈와 호넷, 2척 외에 경항모 와스프가 출동하리라고 판단했었습니다. 

 

1942년 5월 28일.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으로 편성된 제16 기동부대 (TF-17)가 주력으로 출동하였습니다. 

이 부대는 지난 4월에 두리틀의 폭격대를 발진시킨 부대입니다. 이어서 5월 30일 17 기동부대의 요크타운이 뒤를 이어 출동하였습니다. 

17 기동 부대는 플레처 제독이 계속 지휘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16 기동부대의 사령관인 맹장 할지 제독은 피부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서 스풀러언스 제독이 부이하였습니다. 

 

항모 작전에 별다른 경험이 없던 그는 참모장 엘리엇 브라우닝 대령의 조언을 대폭 받아들여 작전을 수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콤비의 협동 작전은 커다란 성과를 만들게 됩니다. 연합한 두 기동함대의 통합 지위는 플레처 소장이 맡았습니다. 

 

6. 야마모토 사령관과 전함 야마토의 출동

한편 일본은 5월 27일 나구모 주이치 해군 중장이 지휘하는 

제1항공 전대 엄중한 무선 봉쇄를 실시하며 출결 하였습니다. 주력 항모들은 제1항공 전대의 아카키, 카가, 제2항고 전대의 히류, 소류의 네 척이었습니다. 

 

6개월 전 하와이를 공격했던 기동부대에서 제5 항공 전대의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빠진 것이었습니다. 

참가했더라면 미드웨이 해전의 운명을 바꿔 놓았을지도 몰랐던 항모 쇼카쿠는 산호해 해전에서 입은 손상 수리에 무려 3개월이나 걸리는 데다 산호해 해전에서 조정사 손실이 절반에 달했던 자매함 즈이카쿠는 트럭 섭에서 조종사 충원과 재정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함 기리시마와 하루나 두척의 전함이 호위함대의 주축으로 동반하였습니다. 

그 뒤를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를 포함해서 5척의 전함을 중심으로 대함대가 거리를 두고 출동하였습니다. 

사상 최대의 함대가 출동한 것이었습니다. 6월 3일 오후, 나구모 기동부대를 후속하던 주력 부대 기함 야마토에 승함 했던 연합함대 사려관 통신 감청반은 미드웨이섬 부근에서 미군이 발신하는 항모 호출의 신호를 잡았습니다. 

항모가 미드웨이 근해에 나타났다는 징조였습니다. 보그를 받은 야마모토 사령관은 즉시 앞서 가는 나구모 기동부대에 전달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선 봉쇄 상태에서 이렇게 할 수 없어서 앞서가는 나구모 부대에서도 이를 접수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전달을 포기하였습니다. 

 

항모의 통신안테나는 전함의 통신 안테나 수니 능역보다 낮아서 기동부대엣느 이를 감청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나구모 부대가 이 정보를 점수하고 경계를 했더라면 미드 에이에서 전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미군은 5월 30일 이후 미드에 기지 항공대 소속 32기의 PBY카타리나 비새 정들을 초계 임무에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6월 2일 플랫처 소장의 제17 기동부대와 스풀루언스 소장의 제16 기동부대가 미드웨이섬 북동 해역에서 합류하였습니다. 

 

7. 발견된 일본 함대

6월 3일 오후 9시 PBY 카타리나 비행정 1기가 미드웨이에서 930KM 떨어진 곳에서 일본 수송선단을 호의 하고 있던 제2 수뢰 전대를 발견하였습니다. 

일본의 미국 함대를 발견한 것보다 하루가 빠른 것이 이었습니다. 급보를 받은 미드웨이 제7 육군 항공부대 분견대 소속 B-17 9기 발진하였습니다. 

 

오후 4시경. 선단을 발견한 b-17부대는 폭격을 개시하였습니다. 

폭격 대장 월터스 위니 중령은 사령부에 자기 폭격 대가 일본 전함, 공모, 수송 선등을 공격하였고 다수 적함을 격함 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실제로는 두척의 일보 수송선이 함체 가까운 해면에 지근탄 공격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6월 3일 21:30분 하와이 섬에서 미드웨이로 파견 도니 PBY 카카 리나 비행정 4기가 어뢰로 무장하고 뇌격 출격을 하였습니다. 

카타리나 뇌 격대는 일본 선단의 선두 선박을 발견하고 뇌격을 가했습니다. 

야간인 데다가 대공 엄호를 맡아줄 호의 함대와 잠시 격리되었던 순간이어서 야간 뇌격을 완전한 작전 성공을 하였습니다. 

두척의 수송선단 선박이 어뢰와 기총 소소의 공격을 받고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미드웨이에서 보내온 적 함대 발견의 보고를 받은 태평양 함대 사려 버리는 뒤따른 B-17 공격 보고에 폭격을 가한 함대는 적 주력인 기동 부대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긴급 전문이 미 기동부대에 터전 되었습니다. 

기동함대 사령관 플레처 소장은 하와이 함대 사령부의 정보 판단과 의견을 같이 하였습니다. 

 

PBY 카타리나 –걸작 비행정으로 정찰 폭격 수송등의 다목적기였다. <출처 : wikipedia>

 

8. 미 기동부대의 접근하다. 

6월 3일 저녁 미 기동함대는 일본 기동함대를 영격 할 예상 지점을 향하여 남서로 진로를 변경하였습니다. 

6월 4일 01:30 미 항모 부대의 항공대원들은 이른 아침을 먹고 후 출격 대기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 후 대원들은 정렬하여 함장과 비행대장으로부터 앞으로 있을 출력에 대해 주의와 훈시를 받았습니다. 

 

04시 15분 미드웨이 기지에서 PBY 비행정이 출결 하였고 15분 후 제17 기동 함대의 항모 요크타운에서 SBD 돈트 레스 금강 하 폭격기가 정찰 임무를 받고 출결 하였습니다. 

 

정찰을 나간 SBD 폭격 대가 일본군의 수상 정찰기 1기와 교전을 했다고 보고한 시점에 나무고 기동부대는 요크타운의 서방 370KM를 향해하고 있었습니다. 

 

9. 일본 항공대의 미드 웽 공습 발진 

04시 30분에 나구모 기동부대는 미드웨이 공습대를 발진시켰습니다. 

곡 격대장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사하게 될 도모나가 조이치 대위였습니다. 공격대의 규모는 상당히 컸습니다. 

99식 함상 폭격기 (급강하 폭격기) 36기, 97식 함상 공격기 (수평 폭격기) 36기, 영식 함상전투기(제로 전투기) 36기 합계 108기였습니다. 

 

원래는 지주만 공격대와 인도향 실론 섬 공격대를 지위했던 후치다 미쓰오 중좌가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맹장염이 도져 수술을 받았기에 대신 도모나가가 지휘했던 것입니다. 

일본군의 공략 부대 (곤도오 부대)가 살육 작전을 실시할 날짜를 6월 7일로 잡았기 때문에 그전에 미드웨이섬의 전투력을 섬멸할 목적으로 항고대의 공습이 행해졌던 것입니다. 

 

출격한 함재기들 외에 있을 수송 있는 미 항모 출현에 대비하여 각 항모 격 남고에는 어뢰로 무장한 함상 공격기들과 대함이나 대지 공격의 무장을 하지 않고 불시에 사황에 융통 서있게 대비하기 위한 예비기들이 있었습니다. 

 

일출 전에 공격대의 출력에 앞서 정찰기 여섯 기의 출결이 있었습니다. 제8 전대 사령관 아배 소장은 중순양함 도네의 정찰 해역을 중시하고 제일 머저 도네의 정찰기부터 발진시켰습니다. 

 

정찰기들은 모두 중순양함에서 발진한 95식 수상 정찰기나 영식 수상 정찰기들이었습니다. 

공격대를 발진시킨 나구모 기동부대는 침로를 바꾸어 함재기 수용을 위해서 미드웨이 방향으로 근접 항해를 했습니다. 

 

5시 15분 아제이 대위가 조정하는 미 해군 pby카타니라 비행정은 중 순양함 도네에서 발진한 영식 수상 정찰기를 발견하였습니다. 

 

부근 해역에 일본 함대가 있으리라고 판단한 그는 근처 해역을 수색한 결과 대어를 낚았습니다. 

니구모 기동부대를 발 결한 것입니다. 그는 즉시 분부의 터전 했습니다. 

일 항모 1, 미드웨이 320도, 150해리 

 

일본 함대도 pby 비행정을 발견하였습니다. 

선두에 경순 양함 니가리와 뒤따르던 전함 기리시마는 비행정 발견과 동시에 연막을 살포했습니다. 

 

니구모 기동부대의 제로 전투기들이 급히 발진하여 요격했지만 pby비행정은 구름 속으로 도주해서 제로 전투기들을 따돌렸습니다. 

 

pby는 구름을 이용하여 숨바꼭질을 계속하면서 일본 함대를 미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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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중 일본과 미국과 벌어진 전쟁. 태평양 전쟁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알찬 내용으로 준비하였으니 많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태평양전쟁 썸네일 이미지

목차 

  1. 태평양전쟁 주개념
  2. 2차 세계대전 확장 개념
  3. 대동아공영권
  4. 노구교 사건
  5. 미드웨이 해전

1. 태평양전쟁 주개념

태평양전쟁

태평양전쟁당시 정글속 군인들의 모습

일본은 2931년 만주사변으로 만주국을 만든 이후 중국에 항일 여론이 거세지자 1937년 노구교 사건(루거우차오 사건)을 통해서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제2차 국공합작을 통해 중국군의 유격 전술로 전쟁은 점차 장기화되어갔습니다. 

 

일본은 군수물자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 인도차이나의 천연자원을 원했기 때문에 , 독일, 이탈리아와 더불어 3국 동맹을 맺고, 인도네시아 남부에 병력을 배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미국은 인도차이나와 중국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면 석유 금수조치를 취했고, 미국 내 일본 자신의 동력과 함께 모든 교역의 금지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미 미국이 장개석 정부에 계속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의 관계는 이미 전쟁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나빠진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천연자원이 나지 않는 일본은 미국이 자원 수출을 중지한다면 진행하던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물러나든지 동남아시아의 천연자원을 얻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미국의 태평양 함대가 주준해 있는 진주만을 기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진주만 기습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미국의 함정 16척과 항공기 177대를 파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피해는 다만 항공기 29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공격은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실패했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다신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3척은 바다에 나가 있어서 피해를 면하였습니다. 이항 공모함 들은 그 후 미국 해군의 초기 태평양 방위체제에서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진주만 해안에 있던 구사시설과 유류 저장설비도 피해를 면하여,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입은 타격을 신속히 복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진주만 공습으로 제1차 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피하고자 했던 미국 내의 여론은 180도 바뀌어, 미국이 직접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일본은 순식간에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전역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을 점령했고, 동남아시아와 미얀마의 대부분 지역,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태평양의 많은 섬들을 점령했습니다. 이에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남태평양을 잇는 긴 병참선을 확립하여 일본을 압박하려 하였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일본군은 싸움에 결말을 내기 위해 해군력과 공군력을 미드웨이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벌어진 전투에서 미군은 일본의 대형 항공모함 4척을 모두 격침하고, 대형 순양함도 1척 침목 시켰습니다. 

일본이 목표로 한 미국의 항공모함 요크타운 호는 격침되었지만 미드웨이 섬은 안전했습니다. 

 

일본은 미드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항공모함과 가장 우수한 해군 조종사를 거의 다 잃어버렸고, 그 후 일본과 연합군의 해군력을 사실상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연합군은 일본이 점령한 지역들을 하나하나 탈환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과 보는 이 섬이 연합국의 손에 들어가자 일본은 더 이상 석유를 수송할 수 없게 되었고,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지경에 처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에 투하되자 일본은 1945년 8월 14일 패전을 선언하였습니다. 

 

2. 제2차 세계대전 확장 개념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패전 국민이라는 굴욕감과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 마이 마르 공화국 아래서의 사회 혼란 및 정치 불안 때문에 몹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돌프 히틀러는 극력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지향하면서 독일 국민의 위대함을 강조함으로써 독일 민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1933년 독재 권력을 장악한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은밀히 독일을 재무자 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1936년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라인란트를 점령하였고 이미 에티오피아에서 침략행위를 하고 있었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와 손을 잡고, 로마와 베를린을 잇는 추축을 선언했습니다. 

 

1938년 히틀러는 독일군을 보내 오스트리아를 점령했고, 오스트리아는 당잔 독일에 병합되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폴란트를 차지하기 위해서 소련과 비밀협상을 벌야, 독, 소 불가침 조약을 맺고 1939년 마침내 히틀러는 폴란드에 침공했고,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 초반에는 독일인 확실한 위였습니다. 객과적 군사력은 연합국에 비해서 열세였던 독일이지만 기갑사단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뛰어난 공군력을 이용하여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접수하고 네덜란드, 심지어는 연합국의 하나였던 프랑스까지 점령하기 이르게 됩니다. 

 

이에 반해 연함군은 병력의 우위를 믿고 수비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로 전쟁에 임했기 때문에 독일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점에서 독일에 비해 앞서고 있었는데 그것은 막강한 해군력이었습니다. 

 

프랑스까지 집어삼킨 독일은 모든 공격을 영국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란 영국해협은 막강한 독일 육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천혜의 장벽이었으며 영국과의 공중전에서 사실상 독일이 패전함으로써 히틀러의 영국 침공은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독일은 동부전선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를 추축국으로 끌어들인 독일은 그릿 와 유고 슬라미 아를 쉽게 점령하였고 이에 미국은 무기대여정 잭을 펼쳐 1차 세계대전 이후 잉여 전쟁물자를 연합국에 공국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사실상 공사주의를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싫어했습니다. 

따라서 1939년에 맺은 독, 소 불가침 조약도 그에게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전 유럽을 점령하게 되자 시선을 소련에 두었습니다. 소련군은 핀란드를 점령하는데도 20만 이상의 사상자를 낸 약한 군대로 보였고, 정치적으로도 공산주의에서 해방돼 민중들이 독일군을 반길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소련에 대대적인 침공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합군을 돕는 결전이었습니다. 역국은 섬에 고립되어 있었고 사실상 미국과 소련은 참전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독일의 이러한 소련 침공은 연합군의 숨통을 튀어주는 결 저이 었습니다. 소련은 독일 군을 영토 깊숙이까지 끌어들여 모스크바의 겨울을 이요하여 독일의 우수한 야포와 기갑사단, 항공기를 무력화시켜 승리를 이끌어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한 미국의 참전은 독일에게 매우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직접적인 참전으로 대대적으로 충원된 병력은 아프리카 전선에서 추축국을 밀어내었으며, 이탈리아 상륙작적으로 무솔리니 정부가 실각하고 이탈리아가 연합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스탈린의 군대가 전격적으로 진격하였으나 이미 독일은 이들을 막을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독일의 점령지 정책이 너무도 가혹했기 때문에 각지에서 저항 세력들이 암약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후방에 있는 부대들이 점령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움직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노르망디 상류 작전으로 연합군이 유럽에 상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독일군은 히틀러의 독단적인 작전으로 계속되는 실패를 맛보았고, 고의 사령부가 몇 번 씨이나 교체되는 상황 속에서 연합군에 계속 뒤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1945년 5월 8일 기점으로 유럽의 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3. 대동아공영권

대동아공영권 지도 이미지[출처]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 69년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과 1941년에는 각각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으로 확전을 개시하기 전까지, 일본 사회를 지배했던 시대적 정신음 반외세, 반 서구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친 서구 주의였습니다. 

이는 일본이 기존의 봉건적 막부 체제를 타도하고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 시대부터 추구하여 온 가치였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화 이론 가이자 교육가, 학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에서 주장되었던 타아 입구론은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차원에서 봉건적 잔재를 털어나 개 근대 문물, 제도의 수입에 매진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더 바 있습니다. 개항 이래 끊임없이 근대화를 추가해온 일본은 1930년대 중반까지도 서구를 근대화의 모델로 삼아왔습니다. 

 

그러나 군국주의적 야욕이 빚어낸 침략 전쟁이었던 마주 사변-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에게는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 있던 미국이 일본에게 중국, 만주, 한국 , 대만 등지에 주둔 중인 일본군의 즉각 철수를 요청합니다. 대륙 진출을 오랫동안 꿈꿔완던 일본으로서는 이와 같은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일본이 이를 거부하자 미국은 미일 통상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대한 석유, 철강, 지하자원 등 산업에 필요한 핵심 원료 수출을 전면 중단하게 됩니다. 

 

 

새로운 원료 생산지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은 프랑스 식민통치하에 있던 인도차이나를 침략하여 점령하고 1941년 12월에는 강경파의 주장에 따라 진주만 폭격을 감행함에 따라 4년간에 걸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기에 이릅니다. 이와 같은 군구의 가치를 파기하고 이전과는 180도로 방향을 바꾼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동아공영권 논리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이념 논리에 불과한 것일 뿐, 그 내면은 동아시 여러 국가와 민족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침략과 수탈, 폭력적 지배의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또한 근대화의 길을 완전히 버리고 과거의 동아시아 질서로 회귀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근대적 선짓국 대열에 동참하는 기존의 입장 자체는 크게 변한 바 없이 다만 그 모델을 미국이나 유럽의 강대국들로 삼지 않고 일본 스스로 선짓국의 모델이 되고자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대동아 공영권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은 1941년 인도차이나를 무력으로 점거하고 이에 대해 미국과 열국 등이 일본을 상대로 한 자금 이동과 석유 등의 자원 수출을 금지함에 따라 기존의 산업 시설과 국내외적 생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급자족적 블록경제를 구축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군부를 비롯한 정치권은 일본·만주·중국을 잇는 지역권을 중심으로 주요 산업시 서울 세우고 여기에 인도차이나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을 원료 공급지와 상품 판매 시장으로 삼는 광역 블록 경제권을 구상하였던 것입니다. 

 

'대동아공영권'은 이와 같은 침약적 영토확장을 이념적인 수준 엣 미화한 슬로건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은 대 도아 공영권을 주창하며 태평양 전쟁을 서양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동아시아 민족을 해방시키는 해방전쟁'이라는 선전 하였지만 자신들이 계획한 동아시아 경제블록 구상과 그 실제 진행 과정 자체가 제국주의적 확장 전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4. 노구교 사건

중일전쟁이 발단이된,노구교(루거차오/마르코폴로가 극찬한 다리로 유명합니다.)

중일 전재의 발단이 된 사건으로 노구교 근체어서 야간 훈련 중이던 일본군 중대에서 몇 발의 실탄 사격 소리가 들리고 일본군 병사 1명이 행방불명이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일본군은 이를 구실로 즉각 전투태세에 들어가 이튿날 8일 새벽 중국군 진지를 공격해 루거우차오를 점령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중국 측의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단정하면서 파병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중일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중국 측에서는 제2차 국 공합장이 울어졌습니다. 

 

 

5. 미드웨이 해전

 

태평양전쟁 당시SBD(Daurtless)급강하푝격이과 TBD데버스테터 뇌격기 이미지

일본은 태평양의 패권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서 4척의 중항 공모함과 3척의 경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여 미드웨이 섬과 알류샨 열도의 기지를 점령하려는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의 암호를 해독한 뒤 일본의 이고를 예측한 미국 정보국은 미리 대비해 태평양 함대의 중항 공모함 3척을 집결시켰습니다. 

 

이전 투는 주로 공준전 위주로 벌어졌는데 일본군은 여기서 미국의 함공모함 요크타운호를 결심시키기는 했지만 모든 함공모함을 잃었고 우수한 전투기 조정사들이 거의 잔사 하게 되어 전면 철수를 하게 됩니다. 

 

이미드 훼이 해전은 로 미국은 태평야에서 일본과 비슷한 해군 전력을 가질 수 있게 되어 두 나라의 전쟁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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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수상정이란?

-군산 항만, 해상 등의 감시 및 정찰, 해상 플랫폼 보호 따위를 위해 개발된 무인 함정을 말합니다. 

1. 한화시스템 M-서치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시스템이 함께 개발한 복합임무 무인수상정 출처: 국방일보

무인항공기나 지상 무인 차량처럼 자주 볼 수 있지만 않지만 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할 무인 수상정(USV)과 무인 잠수정(UUV)도 2021년 서울 ADEX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무인수상정 (USA)는 연안 해역에서 감시정찰, 기뢰탐색, 재난 재해 초동 조치 등 복합임무를 수행하는 해양 무기체계이며 해군은 2025년 무인 수상정 획득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M-서치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 시스템이 함께 개발한 복합 임무 무인수상정입니다. 

앞서 국방과학 연구소와 무인 수상정 자율주행 연구 때 무인 수사정'트레이셔(U-Tracer)를 운용한 후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15~1019년 300억 원을 투자해 민, 군이 함께 쓸 수 있는 무인 수사정 기술 개발에 나섰습니다. 

 

 

M-서치 제원

-전장: 8.41m

-전폭:2.74m

-전고: 3.98m

-중량:3.1톤

-엔진: 디젤엔진 워터제트 추진기 사용

-통신거리와 통제 거리: 12km

-감시정찰 장비와 함께 무인 잠수정도 탑재 운용 가능하고 12.7mm 원격사격통제체계로 무장한다고 합니다. 

 

 

2. 해검-바다의 칼 (LIG넥스원)

 방위사업청·해군·LIG넥스원이 국방로봇 민·군 시범 운용사업 일환으로 개발에 나선 ‘바다의 칼’ 해검(海劍·Sea Sword)  출처: 국방일보

무인수 성정으로 사실상 첫선을 보인 것은 방위 사어청, 해군, LIG넥스원이 국방로봇 민, 군, 시범운영사업 일환으로 개발에 나선 바다의 칼 해검입니다. 

해검의 제원

-무게: 3톤

-속도: 30노트 

-길이: 12M

-폭: 3.5M

-무게: 9.2톤입니다. 

-통제 거리: 15KM(단독)~20KM(중계)이며 탑재 가능

-무장: 12.7MM 중기관총 원격사격통제체계와 2.75인치 유도로켓

 

 

3. 무인잠수정

무인잠수정으로 대(對)잠수함 정찰용(ASW Underwater Unmanned Vehicle) 장비 모형   출처: 국방일보

무인 잠수정으로 대잠수함 정찰용(ASW) 장비 모형입니다. 

내부에 수소탱크, 산소 실린더, 연료전지 등 주요 구성품이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수정의 제원

-길이: 6.5m

-폭: 1.2m

-무게: 9톤

-속도: 시속 5~18km

-최대 잠수 수심: 최대 300m

-운용기간: 최대 30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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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 AH-1Z 바이퍼는 현제 미 해병대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공격 헬리콥터로, 현제까지 나온 AH-1 휴이 코브라 공결 헬기 계열 가운데 최신형, 최후 기형입니다. 

AH-1Z바이퍼- 해병대 공격헬기 이미지 출처 :미해병대

목차 

1. 개요

2. AH-1Z바이퍼 개발

3.  AH-1Z특징

4.  AH-1Z제원

5.  AH-1Z운용현황(5-1. 미 해병대 퇴역 예정 5-2. 대한민국 해병대 도입 시도)

 


1. 개요 

Bell AH-1Z 바이퍼는 현제 미 해병대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공격 헬리콥터로, 현제까지 나온 AH-1 휴이 코브라 공결 헬기 계열 가운데 최신형, 최후 기형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공결 헬기인 AH-1G 휴이 코브라는 1967년 등장해, 베트남전에선 그 진가를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휴이 코브라 공격헬기는 미 육군과 해병대의 주력 공격 헬기로 자리 잡으면서 , 각군의 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발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 해병대의 코브라 공격헬기는 상류 전을 담당하는 해병대의 특성에 맞게 해상에서의 안전성을 고려해 쌍발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또한 헬기 동체에 해수에 견딜 수 있는 피막처리 릉 했습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미 해병대의 코브라는 미 육군의 코브라와는 다른 독자적인 모델로 분류 되게 됩니다. 

 

오늘날 미 육군의 코브라 공결 헬기는 모두 퇴역했으며 그 자리는 아파치 공격헬기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 해병대는 운용 중인 AH-1W 슈퍼코브라 공격헬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켜, 미 육군의 아파치와 대등한 성능을 가진 AH-1Z바이퍼 공격헬기를 운용할 예정입니다. 

 

 

미해병대 바이퍼 영상 출처 미해병대

 

2. AH-1Z바이퍼 개발

1996년 미 해병대는 노후된 UH-1N과 AH-1W를 개량하는 H-1 업그레이드 계획을 추진하였고 BELL 사에 기존 AH-1W의 작전행동반경이 증대와 기동성 및 생존성, 화력, 함상 운용성 등을 요구하였으며, 그 요구에 맞춰 완전히 새롭게 개량한 것이 AH-1Z바이퍼입니다. 이후 200년 12월 9일 초도 비행을 실시하였고, 2003년 10월부터 초도 저율 생산에 돌입했습니다. 

2005년 해상 비행 시험을 완료하고 2005년 1015일 미 해병대는 해군 항골 시스템 사령부를 통해 AH-1Z의 납품 승인을 하였고 2006년 개발 시험 평가를 종료하고 2010년 9월부터 본격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3.AH-1Z바이퍼 특징

주요 개량 사항으로 AH-64D에 장작 되는 General Elecitric T700GE-7001C엔진을 장착하였으며 메인 테일 로터를 탄소 -에폭시 복합 섬유를 기반으로 한 4 엽 블레드로 교체하였으며, 로터 허브는 단 2개의 계철로만 제작되어 비행 안정성을 크게 높였고 에비오닉스의 경우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는데, 노스롭 그루먼사의 통함 항공전자 시스템을 탑재하였고 이시스 템에는 임무용 컴퓨터 2대와 자동 비행 제어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형 자동비행 시스템을 도입하여 항공 제어 능력을 향상했고 조적 성에 8 × 6인치 MFD LCD한쌍과 4.2 ×4.2인치 RFD LCD 1기가 탐재되므로 조종석이 글라스 칵핀화 되어있다고 합니다. 

 

록히드 마틴사의 AN/AAQ-30 EO/IR표전 조준 체계에 포함된 2세대 FLIR센서가 탑재되어 AH-64D롱보우 아파치의 TADS/PADS1세대 광학 장비보다 우월한 광학 장비로 2배 높은 해상도와 배율을 가지고 최신형 AH-64E아파치 가디언의 M-TADS/PNVS보다 뛰어난 탐지 능력으로 목표 획득 능력이 크게 좋아졌습니다. 

 

총 200대가 미 해병대의 의 발두 된 상태이고 엔진과 로터 블레이드가 개량된 만큼 상승력을 포함한 기체 성능도 월등히 올라갔고, 특히 하드포인트가 AGM-114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 16발이나,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2발과 ECM, AN.APG-78 밀리미터파 사격통제 레이더 등을 장착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기술로는 HUMS기체 모니터링 시스템과 HOCAS가 탑재되어 있습니다. 

 

탈레스사의 탑 아울 HMS/D도 한몫하는데, 주/야간 기능과 40 º시야의 양안식 디스플레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장비 덕에 생존성 및 목표 조준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헬멧의 중량은 2.6KG인데 AH-1Z바이퍼의 최대 중력 한계인 2.8G의 상황에서도 조종서가 무리 없이 버틸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장비는 타이거 같은 공격 헬리콥터는 물로 다목적 UH-1Y나 NH-90 헬리콥터에도 채택되었습니다. 

 

탈레스사의 탐 아울 HMS/D 헬멧  이미지 출처: 미해병대

다만 장비가 많아지고 대형화하면서 기존 AH-1W 슈퍼 코브라들보다는 정비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AH-64 계열보다는 자 고장이 적고 장비가 편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인가 AH-64D아파치 1개를 점검, 정비할 시간에 AH-1Z바이퍼 2개를 정비하는 수준입니다. 

기존 AH-1W 슈퍼코브라와 많은 부분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기존 AH-1W 개조로도 조달 가능한 기종인 만큼 부품 공유도 되고 UH-1Y와도 부품이 공유가 됩니다. 그 동항 수십 년을 운용해온 노하우를 통해 개선된 부분, 그리고 거친 환경의 해병 대 운영 저건으로 인해 신뢰성과 정비성을 개발단계부터 신경 썼다도 합니다. 

 

4.AH-1Z바이퍼 제원

Bell AH-1Z Viper
개발사 Bell Helicopter
제조사 Bell Helicopter
초도비행 2000년 12월 8일
생산기간 2000년 ~ 현재
생산대수 61대 이상
총 200대 생산 예정 (미 해병대 기준)
배치기간 2010년 9월 30일 ~ 현재
전장 동체 : 13.87 m
날개 포함 : 17.63 m
전폭 동체 : 0.99 m
스텁윙 포함 : 3.28 m
날개 포함 : 14.63 m
전고 4.37 m
공허중량 5,579 kg
탑재중량 2,615 kg
최대이륙중량 7,666 kg
호버링 최대중량 8,392 kg
로터 시스템 메인 로터 4엽, 테일 로터 4엽
엔진 General Electric T700-GE-401C 터보샤프트 엔진 x2기
엔진출력 T700-GE-401C
1,890 HP (x2 3,780 HP)
순항속력 265 km/h
최고속력 296 km/h
한계속력 411 km/h
전투행동반경 234 km
최대작전거리 334 km
분당상승률 685 km
실용상승한도 2,790 ft/min (14.2 m/s)
레이더 AN/APG-78 사격통제 레이더 (스텁윙팁에 장착)
추적장비 AN/AAQ-30 Hawk Eye XR 목표탐지시스템
경보 / 대응장비 AN/AVR-2B(V) 레이저 경보 장치
AN/APR-39(V) 레이더 경보 장치
AN/ALE-47 채프/플레어 사출기
AN/ALQ-212(V) ATIRCM/CMWS
하드포인트 총 6기
고정 A49E-7(V) UTS turret
M197 20mm 3열 기관포 x1기
750발
로켓 LAU-68C/A 7발 런처 or LAU-61D/A 19발 런처
Hydra 70 70mm 무유도 로켓 or APKWS II 유도 로켓 탑재
미사일 AIM-9사이드와인더
2발 탑재
스팅어
2발 탑재
AGM-114K 헬파이어2
16발 탑재
승무원 2명 (조종사, 무장관제사)

5.  AH-1Z운용현황

미 해병대 

-총 200기 도입할 예정이며 2020년도 계약분이 최소 되면서 2021년까지 생산할 예정.

 

체코공군

-총 4기 도입 예정임.

바레인 왕립 공군

-총 12기 도입 예정입니다. 2022년까지 도입 완료 예정.

 

파키스탄 육군 항공대

-총 15기 도입 예정, 현제 9기 운용 중. 

 

5-1. 미 해병대 퇴역 예정

2020년 3월 데이비드 버거 미 해병대 사령관은 해병대 소속 공격 헬리콥터 2개 대대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으로의 잠재적 적인 중국군과 주 전장인 동남아시아 섬 지역 엣 싸우기 위서는 무거운 전차/야포, 비대한 대형 상류 함정/헬리콥터 편제를 과감히 개편하고 , 대신 기동성에 중점을 두고 중대급 전투단을 중심이 되어 가벼우면서 고화력인 유도탄, 로켓탄, 적의 레이더에 잘 피탐되지 않을 드론과 소형 고속상륙정 등을 사용하여 여러 섬들 사이를 이동하면 중국군을 치고 빠지며 강력한 적 전력을 발견하면 타군의 중무장 병기를 유도하여 격하하는 식으로 육군의 제75 레인저 연대 같은 역할을 수행하여 중국군과 싸우겠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이전에 알려진 바와 달리 미 해병 경공력 헬기 비행 대 개편은 AH-1Z공격 헬리콥터가 전량 조기 퇴역하는 것은 의미하지 않으며, 미 해병대가 운영하는 전체 189 구대의 AH-1Z수량 중 27대만 조기 퇴역합니다. 

미 해병대는 이 27대의 정확한 처분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며, 부품 동류 전환, 비무장화 후 산림청과 같은 타기관으로 양도 , 동맹국에게 판매하는 방안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5-2. 대한민국 해병대 도입 시도

해병대 상륙공격 헤리 콥터 사업은 200년대 초부터 언급되었으나, 예산 문제로 오랫동안 미뤄졌습니다. 

그라다 2017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2018년 1월 대한민국 해병대는 중기 계획으로 공결 헬리콥터 대대를 창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병대 숙원 '상륙공격 헬리콥터 후보 기종 공개'

지난 2019년 1월 14일 국방 기술품질원에서 상륙 공력 헬리콥터 사업 비용 분석을 입찰 공고했습니다. 

국방기술 품질원의 상률 공결 헬리콥터 사업 선행연구에 국내외 업체 5곳이 정보를 제공 헸으며, 기존 후보로는 BELL의 AH-1Z바이퍼, 아파치 가디언, TALT-129, SIKORSKY, S-70, KAI마린온의 무장 탑재형이 제안되었습니다. 

 

도입 예산은 1조 원 내외로 책정될 수 있다고 하며, 또한 도입 규모는 상륙 공력 헬리콥터 24대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2021년 창설될 예정인 해병대 항공단은 2개의 상률 기동 헬리콥터 대대와 1개의 상류 공격 헬리콥터 대대로 구성되고

1019년 1015일 경기 화성 해병대 사령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공중돌격 엄호와 항공화력지원을 담당할 상률 공력 헬리콥터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도입 여부를 결정할 한국 구방 연구원의 전력 소요 분석은 오는 12월까지 진행되며, 분성이 완료된 이후 방위사업청에서 국내 개발 또는 해외에서 도입할 것인지 대한 획득 방식을 검토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다른 글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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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전술 지대지 유도무기인

KTSSM:Korean Tacical Surface to surface Missile system

 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보겠습니다. 

KTSSM의 유도탄은 목표를 침투 관통하면서 폭발, 타격 효과를 극대화하는 탄두를 탑재하고 있다. 사진=국방과학연구소

1. 개요

한국형 전술 지대지 유도무기는 신속하고 연속적인 발사와 초 정밀 타격 정확도를 통해 적의 주요 표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술 금 탄도 미사일입니다. 

 

♠전술급 탄도 미사일이란?

주로 사거리 300km이내의 목표물을 겨냥한 전술적 목적의 탄도 유도탄을 말합니다. 

개발은 한화에서 단거린 탄도 미사일 일명 KTSSM이람 불리며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급격하게 제기되어 나온 번개 상업 중 하나입니다. 당초에는 2016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진행하였고 2017년 7월 완성되어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최대 4발까지 장착가능한 고정형 코드 방식 KTSSM-1 의결 우 2020년부터 양산 및 배치가 시작되었으며, 최대 2발까지 장착 가능한 천무 풀랫폼의 KTSSM-2의 양산 및 배치는 차후에 이어질 예정이라 합니다. 

 

2. 상세 설명

비록 번개사업은 애초 목표했던 시간대에서 맞추지 못했지만 이른 통해 한국형 전술 탄도미사일에 대한 효용성과 개발 가능성이 입정 되었고 여기에 발사 플랫폼을 된 천무 다연장 로켓이 성공적으로 개발됨에 따라서 한국형 킬 체인 사업의 타격체계 목정으로 지속적인 소요 제기가  이루어져 된 천무 다연장로켓이 성공적으로 개발됨에 따라 한국형 킬체인 사업의 타격체계 목적으로 지속적인 소요 제기가 이루어져 2014년 일반 공개 사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현재 개발업체는 선정한 상태이며, 2020년까지 완료를 목표로 하여 다른 사업명으로 지속해서 연구개발중입니다. 

2016년 3월 말에 발표된 2017~2021년 국방 중기계획의 확보 대상 무기로 포함되었습니다. 

2018년부턴 전력화를 시작한다는 계획으로 

제원은 미군의 ATACMS와 유사할 것으로 보이며, 언론에 의해 알려진 요구 작전능력은 사거리 150~290KM 정도에 CEP 10M의 정확성과 GPS 재밍 및 회피 능력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 현무-2 탄도 미사일과 비교

현무-2가 20~40억 원 이상, 토마호크가 10~17억 원 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저렴한 가격으로 해당 탄도탄의 용도를 생각해보면 현무-2와 달리 한국군의 가능한 싸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 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KTSSM은 현무-2와는 탄도탄이라는 점만 같을 뿐 임무와 개발 방향이 완전히 다른 미사일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일 사령부에서 ATACMS 통제권을 가져가면서 현재 군단급에서 활용할 수 있는 사거리 100~200KM 전술 타격 체계가 없어서 전술 탄도 미사일이라는 이름이 맞게 천무 차체에 2발을 탐재할 경우 육군 군단급에서 운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해군에서 독자적인 250KM급 전술 타격 체계인 해룡 전술 함대지 유도탄을 개발한 것과 비슷한 성격입니다. 

 

현무-2 미사일은 대한민국 육군 미사일사령부의 지휘 아래 적 지휘톤 제시설, 미사일 기지와 같은 고 가치 표적을 노려야 하는 미사일이며 동시에 한국군의 최중요 자산 중 하나이기에 심지어 개발, 양산, 개량 사업이 모두 '성능개량사업'이라는 단일 항목으로 위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착된 GPS 침도 보안을 위해서 군용 GPS를 장착하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 GPS를 장착했습니다. 

만약 군용 GPS칩을 장착하려고 한다면 미국에 해당 무기 체계의 전반적인 사항 즉 세부 성능, 양산 수량, 배치 및 운용상황, 보안계획 등을 모두 제출하고 이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장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키리스크스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한민 미사일 사거리 지침에 따라 개발하고 있는 모든 탄도 순항 미사일의 대략적인 성능, 배치 상황, 사격 시업 등 주요 사항을 미국 측에 전달하고 있으나 군용 GPS침 장착을 위해서는 이보다도 훨씬 자세하게 해당 무기 체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군용 GPS를 허락받아 현무-2를 고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군용 GPS/GLONASS복함 수신 집 정도를 장착하면서 동시에 고성능 관성항법장치(INS)를 탑재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필연적으로 가격이 상승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한국군 내에서 현무-2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추진체를 비롯한 구성품들도 양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성능 위주로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에 비해 KTSSM은 군잔 장이 통제 아래 대화력전에 동원되어 적 갱도포가 숨은 진지를 무너뜨려 생마장 시키고 군단 작전범위 내의 적 종심을 타격하는 미사일로 군단 포병에서 운용하는 MLRS, 천무와 함께 운용될 물건입니다. 

이렇게 현무 2와는 임무가 완전히 다르니 북한의 수많은 갱도 진지를 상대로 쓰기 위해 KTSSM은 가능한 싸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KTSSM은 현무 2와 같은 전략적 가치는 전혀 없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외부에 관련 사항이 어느 정도 노출되어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KTSSM은 개발 및 양산 에산과 일정 등이 모두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며, 미국에 허락을 받아 군용 GPS칩을 장착했습니다. 

당연히 보다 재밍에 강력한 군용 GPS를 탑재한 이상 관성항법장치와 같은 다른 유도 장치들은 가능하면 저렴한 것들이 탑재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런 식이어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데 별 지장이 없습니다. 

충전된 추진제 또한 열 경성 소재보다 경제성이 뛰어난 열 가소성 소재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무 2와 달리 KTSSM은 자신의 임무에 맞는 정도의 적절한 성능에 가능한 저렴한 가격을 추구한 탄도탄입니다. 

https://youtu.be/DWo8 pljEX50

실사격영상

4. ASBM 가능성?

2020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가 KTSSM이 해상 표적을 놀랄 만큼 정확히 명정 시키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를 두고 KTSSMDL 대함 탄도 미사일 (ASBM)로 개발, 운용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기대 섞인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로부터 말하자면 이는 사실과 거기가 멀다. 미사일은 대함 무기로 쓰려면 미사일 탄두 부분에 함선을 식별할 수 있도록 고도로 정밀한 추적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대함 탄도탄용 밀리미터파 능동/수동 탐색기 개발이 꾸준히 연구 중이라 합니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아니더라도 중/장기 적으로 현무나 KTSSM기반 ASBM이 나올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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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중인 1967년 2/14일~15일 사이에 베트남 짜빈동에서 벌어진 한국 해병대와 북 배트 남군 간의 전투. 

짜빈동전투 썸네일 이미지 

1. 짜빈동 전투 개요

1967년 2월 14일 ~15일까지 벌어진 전투로 월맹, 배트 공과 대한민국 해병대 제2 해병대 제2해병여단 사이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배트 남군의 지휘관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총 2,400명 이상의 병력이 참전했고 이준 243명이 전사 2명이 포롤 잡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군은 장교 10명, 사병 284명으로 구성된 2 여단 3대대 11중대가 참전했으며, 이중 15명, 전사 33명이 부상당했습니다. 11중대 중대 정은 정경진 대위였고 이슬리로 당시 중대 전술기지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대한민국 국군 상황

1966년 9/23일 제 해병여단은 베트남 중구 꽝응아이성 북부지역 쭈라이로 이 동핸 지역 평정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려나 행당 지역은 배트 공의 활동이 상당히 왕성한 지역으로, 북 배트남 전규군의 침 추가 용이한 지역이었습니다. 

 

기지 바로 남쪽의 짜빈동 마을은 국군이 우물을 이용하기 위해 자주 찾는 것으로 주민들과 군인들이 친밀한 상태였습니다. 그러 난 잦은 부비 트램 폭발사고로 조사한 결과 주민들이 논밭에 일하는 척 부비트랩을 매설하는 것을 발견하고 주민들이 일하던 곳을 패하서 다니자 부비트랩 사고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즉 우호적 관계라고 믿었던 주미들은 친 베트콩 성향이었고 중대 기지는 사실상 적지에 있는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투 당일 1967년 2.14일 이미 다수의 적이 기지 가까이 피난민으로 위장하여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피난민들이 중대 기지 근처를 떠도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중대장의 판단으로 결계를 강화했습니다. 

 

당시 짜빈동 기지 내에는 3개 소총 소대, 1개 화기 소대, 그리고 배고 부대로 1중대 1소대 4.2인치 박격포 1개 소대 81mm 박격포 1개 소대, 81mm 박격포 1개 반 106mm 무반동총 1개분대 등으로 총 별력 294명이었고 다음 감 부들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중대장 정경진 대위 부중대장 양백수 대위, 화기소대장 김기홍 중위, 1 소대장 신원배 소위, 2 소대장 김성부 소의, 3 소대장 이수현 소위 60mm 박격포 반장 김상열 중사, 1중대 3 소대장 전정상 소위 , 105mm 포병 관측장교 김세창 중위, 중포 중대 1 소대장 FDC반장 김세기 대위, 중포 중대 2 소대장 이정국 중위.

 

이 병력은 북쪽에 3소대, 남서쪽 1소대, 남동쪽 2소대를 배치했고 주요 화기를 중앙에 배치하여 전 지역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증원된 1중대 3소대가 예비로 각 소대 후방에 1개 분대씩 배치됐다가 적의 주 접근로였던 3소대 후방에 다시 배치됐습니다. 

 

그리고 2/14에서 2/15일 밤사이에 걸쳐 규모가 증각 된 연대 규모의 북 배트 남군이 짜빈동 일대에 위치하던 국군 해병대 2 여단 3대대 11중대의 전술기지를 급습했습니다. 

 

짜빈동 전투 관련 영상

 

3. 전투 경과 

3-1. 짜빈동 1차 공격

제11중대가 주둔하고 있던 짜빈동 마을은 꽝응아이성 북쪽 12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기지는 둘레가 800m, 높이가 30m 정도 되는 구릉지대에 타원형으로 설치되었습니다. 배트 남군의 기습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해병여단은 예하부대에 경계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11중대는 여단의 지시에 따라 주변 지역의 수색 및 정찰을 강화하면서 기지 보강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주요 화기의 진지를 유개화 하며, 기존에 구축했던 교통호와 개인호를 보강했습니다. 

조명지뢰와 대인지뢰를 추가로 매설하고 많은 부분을 보완하면서 2/14일 밤을 맞았습니다. 1967년 2/14일 밤에는 초승달이 떴으나 오후 10시 무렵부터 짙은 안개와 가랑비가 내려 시야 확보가 어려워졌습니다. 

오후 11시 30분경에는 배트 남군 침투ㅜ 부대가 3소대 전방기지 외각 철조망을 파기 통(폭탄 통)으로 폭파시켰고

 

중대는 즉각 81mm 조명탄을 뛰어 적정을 확인하였으며 1소대 규모의 적들이 숲으로 도주하는 것을 발견, 집중 사격으로 가했습니다. 

 

배트 남군은 산발적으로 대응하였으나 중대의 하력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했습니다. 

그들이 도주한 후 중대장은 2차 공격에 대비해 50%의 병력을 저 투 배치하고 결계를 강화했습니다. 이때를 이용해 11중대는 중대의 방어태세와 상극 부대의 지원 화력을 재점검함으로 써 예상되는 취약점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3-2. 2차 공격

3-2-1. 적의 거센 공격

11중대는 적의 제1차 공격이 감행된 후 전투 준비를 마쳤습니다. 

11중대와 돌산 사이에는 마른 냇가가 있었는데, 김세창 중위는 군대 군데 냇가에 낮은 둔덕들에 적이 은폐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그가 소속된 해포 7중대에게 포대 효력사로 서너 차례 위치를 이동하며 의심지역에 대한 요란 사격을 실시하였습니다.  그곳엔 월맹의 선봉대 대가 있었고, 표병 대대의 카운터를 맞고 와해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월 뱅 군은 후방 대대와 임무 교대를 하는데 4시간 걸렸습니다. 

덕분에 자정에 총 공격하려던 월맹군은 4 시감이나 시간을 미루게 되었습니다. 오전 4시 10분경 지난밤 적과 교전한 바 있는 제3소대 전방에서 은밀히 접근하는 적을 발견 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대장은 즉시 전 병력을 완편 배치했고 적들은 최대한 끌어들여 기습적으로 사격을 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어서 조명탄이 터지자 중대 전술 기지를 포의 하던 베트남 군은 기지를 향해 집중적인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11중대 역시 대응 사격을 가함으로써 한 동안 포격전의 양상이 지속됐습니다. 

 

베트남군의 공세는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해병대의 집중적인 포화 속에서도 3소대 정면에서 돌파를 시도하던 베트남군 주력은 외곽 철조 마을 폭파하고 3소대 진지를 돌파했습니다. 

 

이어서 1소대 지역의 일부 진지도 돌파당했고 4.3인치 박격포 소대가 위치한 포진지가 적의 공격을 받아 박격포 사격을 중지해야 했습니다. 

 

이에 중포 중대 제2소대장의 지휘로 박격포를 숨기고 박력포 소대를 2개 분대로 나누어 포 진진 와 포를 보호해야 했습니다. 

11중대는 모든 가용병력을 모여 역음을 감행했으나 중대 전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사이 2 여단 본부에서는 11중대의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판단하고 진내 사격, 즉 브로큰 애로우 상황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미군 교과서에 실린 대한민국 해뱅대의 신화 짜빈동 전투 이야기 동영상

3-2-2. 상황의 반전과 결사항전

11중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날이 밝으면서 11중대의 역습은 성공했고 베트남군도 더 이상 공세를 지속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수 병사들이 부상당했으나 후송은 생각지도 못하는 나전이 벌어졌습니다. 

이학현 상병은 교통호에 적이 진입하자 수류탄을 터트려 적과 함께 산화하였다고 합니다. 송영섭 일병은 기관총 사수가 전사하자 되어 사격을 지속하다가 적탄 6발을 맞고 증상을 입자 자신들의 무기를 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관총의 총열을 뽑아서 풀숲에 멀리 던져버린 후 수류탄을 이용해 자폭하였습니다. 

 

진지를 돌파했던 적들을 모두 사살한 것은 오전 7시 20분경으로 상황이 반전되자 기지 외각에서 저항하던 1개 중대 규모의 베트남군도 북서쪽으로 도주했습니다. 여단은 그쪽으로 지원 하력을 집중했습니다. 

 

한편 11중대의 피해가 크자 2여간응 오전 5시 20분경부터 6중대를 비상 대기시켰습니다. 그러나 비와 안래로 시야가 불량했기 때문에 6중대는 오전 7시 30분에야 공중 기동으로 주변 수색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4. 짜빈동 전투 결과 

확인된 11중대의 전과는 적 사살 243명 포로 2명 등이었으며, 확인된 전과 이외에도 다수의 적들인 포격 등으로 인해 사망 혹은 부상한 것으로 추정되고 확인된 베트남군의 시신 중에는 1 연대 90대 대장을 비롯한 다수의 장교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로써 11중대는 증강된 연대 규모의 북 베트남 정규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고 중대 전술기지 방어에 성공함으로써 해병대의 전투력을 과시했으며 앞서 두코 전중에서 대두된 중대 전수 기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전투였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는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 후 호찌민이 짜빈동 전투의 결과를 보고 받은 후 한국군을 만나면 일단 후퇴하고 인민의 재산과 병력을 보호하도록 하고 100%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 싸우지 말라는 지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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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해, 공군 합동 타격에서 테러범 알 살까지 수행하는 현존 최강의 소형 전술 미사일 일명 "닌자 폭탄"

육,해,공군 합동 타격에서 테러범 알살까지 수행하는 현존 최강의 소형 전술 미사일 일명 "닌자 폭탄" 이미지

1. 헬파이어 미사일 개발 역사

헬파이어와 헬파이어 II는 기본적으로 미육과 해병대의 대전차 미사일로 개발되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정밀 타격 능력으로 인하여 헬파이어는 대규모 기갑전의 임무에 국한되지 않고 대 테러 전쟁에서 알카에다 탈레반 등 테러 집단의 고위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임무에 적극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임무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헬파이어 II에서는 기존에 결성 표적에 특화되었던 성형 작약 탄두를 대신하여 연성 표적이나 건문 내무의 표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고폭 파편 탄두(AGM-114M) 나열 열압력 탄두(AGM-114N)를 채용하는 등 변화를 도모했습니다. 

 

특히 공군의 무인공격기에 헬파이어를 채용하면서 이러한 요구는 더욱 절실했습니다. 

애초에 저고도 , 저속의 헬기를 플랫폼으로 하는 미사일이었으므로 자세 변환이나 고고도 투발에 서는 제한이 있었으며 결국 AGM-114P와 P+같은 고정익기 전용 모델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파생형이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미 국방부는 2002년부터 초반 3군 합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미사일을 구매하는 AGM169 JCM(합동 공통 미사일) 사업을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업계의 경쟁적 참여한 가운데 2004년 5월 록히드 마틴이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JCM사업은 개발기간 4년을 목표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2개 전선에서 전쟁을 수행하던 미 국방부는 결국 예산 부족으로 사업액을 감액했습니다. 이로 인해 개발비용과 기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결굴 2005~6년에 미의회는 JCM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헬파이어 II를 개량하는 것이 훨씬 더 비용 절감된다는 이유로 JCM 사업을 취소하게 됩니다. 

 

결국 JCM을 대신하여 다기능 표준 미사일로써 개발된 것이 바로 AGM-114R 헬파이어 II입니다. 

그러나 헬파이어 II R형은 JCM후속이라는 독특한 위상 덕분에 헬 파이 II로 뭉뚱그려 분류되기보다는 헬파이어 로미오(미사일중 R-Remeo형)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헬파이어 미사일 동영상

 

헬파이어 로미오는 다목적 미사일이라는 저의에 맞게 기갑 차령이나 방공 시스템부터 소형 고속정이나 suv차량 또는 동굴 속의 적 전투원까지 다양한 목표를 제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록히든 마틴이 개발을 담당하여 2009년 10월 초도 시험발사에 성공했으며, 2011년 3월 6번째 시험 발사까지 성공하면서 실전배치를 실시하고 2021년 총도 작전 능력을 인증받았습니다. 

애초에 단일 기종으로 다 야한 목표를 교전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헬 파이로 로미오는 기존 모든 헬파이어 II(K/M/N/P)를 교체 대상으로 합니다. 

한편 테러와의 전쟁이 가속되면서 헬파이어 로미오도 변형 모델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바로 AGM-114R9시리즈입니다. 

 

R9 시리즈는 주로 대인 공격용으로 개발되어 테러조직 지도자 등 고 가치 표적(HVT) 제거 임무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R9X는 독특한 형상으로 암살 임무에 특화되어 언론으로부터 "닌자 폭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무인기에서 헬파이어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미군은 이제 고정익기나 회전익기 구분없이 유연하게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형 전술미사일을 합동군 차원에서 요구하게 되었다. <출처: 미 공군>

2. 헬 파이 미사일 특징

헬파이어로 로미오는  반능동 레이더 유도방식의 다목적 미사일입니다. 

지상 차량, 회전익기, 고정익기, 그리고 수사함 등 어떠한 플랫폼에서도 발사가 가능하며 발사 준비에서 폭발까지 전 과정에서 플랫폼에서도 발가가 가능하며, 발사준비에서 폭발까지 전 과정에서 기존의 헬파이어 계열에 비하여 향상된 능력을 부여하는데 중점을 두고 개발되었습니다. 

 

우선 고정익에서 투발이 난 함정에서 수직 발사의 경우 360도 방향으로 교전해야 하므로 헬파이어 로미오는 3축 관성 계측장치를 채용하여 플랫폼의 자세전환 없이도 교전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유도장치 및 항법장치의 개선으로 헬파이어 II의 이전 모델들보다 더울 높은 고도에서도 투발이 가능하다 합니다. 

CCHM를 장착하여 비행 진동으로 인한 미사일의 이산 진단을 순 쉽게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다목전 탄두는 GD-OTS에서 생산을 담당합니다. 

기본적으로 탄두는 선수 탄두와 주 탄두가 존재하는 이중성 형 장약으로 K형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주장 약에 파편 슬리브를 장장하여 폭발과 파편 비산 효과를 확신시킬 수 있도록 하여 헬파이어 II K형과 M/N형을 결함 하는 효과가 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헬파이어 II K2형에서 시도되었던 형식입니다. 

 

한편 탄두에서도 여태까지 헬파이어 II의 모든 개선사항이 결합되었습니다. 텐덤 탄두인 헬파이어 II K형은 선두 탄두 

LX-14 약 1KG, 주 탄두에 LX-14 5.7KG를 적용했으나 파괴력을 높인 개량형인 K2는 장약으로 폴리머 결합 장약인 LX-14 대신 둔감성 장약인 PBXN-9으로 교체했었습니다. 

 

PBXN-9으로 교체함으로써 구조적 변함이 없이 무게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파형형 서울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K2A형에서는 강철 파편 슬리브로 강철 대신 탄탈륨을 적용하여 장갑 파편이 15M 정도 비산 하면서 연성 표적을 파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헬파이어 미사일 파괴영상

 

K2B에서는 슬리브로 강철 대신 탄탈륨을 적용하여 장갑 관통력을 높였습니다. 

헬파이어 로미오에는 IBFS라는 이름의 파편 슬리브가 적용되었습니다. 한편 헬파이어 로미오는 R2라는 변형도 존재하는데, 이는 사실상 기본형인 AGM-11R과 유사하지만 폭발 고도 HOB세스를 추가한 모델입니다. 

 

이에 따라 차량이나 건물 등의 타격 시 원하는 고도에서 폭발하도록 하여 파편과 폭풍으로 인한 살상의 효과를 높이는 건세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헬 파이로 로미오는 이외에도 R-3, R-8, R-9, R-12, R13 등 다양한 버전이 존재합니다.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은 R-9 계열입니다. 

 

R9 계열은

주로 무인 공격기에서 운용하는 고 가치 표적 공격용 미사이 롤 폭발력보다 물리적 충돌 에너지로 대사를 무력 화영 부수 피해를 줄이는 것이 특징으로 합니다. 

 

우선 AGM-114R-9E는 부수 피해 감소 모델로 탄두에 장약을 줄여 폭발 범위를 제한한 모델인 반면 AGM114-9H는 부수 피해 최소화 모델로 장약을 최소 하여 파편 분산에 의한 피해를 거의 없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혀 새로운 형태인 헬파이어 R9X의 존재가 알려졌는데 AGM-114R-9X는 탄두에서 장약을 제거하고 직점 충격으로 목표를 무려 화하느데, 미사일의 외부에 6개의 접이식 블레이드를 달아 하강 시에 펼쳐지도 옥 한 것이 특징입니다. 

블레이드를 장착한 이유는 비해 하 강시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에 더하여 살상력을 높이기 위한 초치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헬파이어 로미오 계열 중에서 암살용인 AGM-114R-9X 미사일. 6개의 블레이드가 펴지며 폭약이 들어있지 않은 채로 충돌한다. <출처: NAVER 무기백과사전>

3. 헬파이어 미사일 제원

유도방식 반능동 레이저 유도(SALH)
탄두 형식 다임무 탄두
전체 중량 49KG
전체길이 180CM
직경 33CM
속도 마하1.3
사거리 최대12KM
가격 125,000(대한민국 도입 예상가, 한화 환산 약 1.46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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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전투기 판매에 게임판을 뒤집기 위한 한 수 일까?

MAKS 2021에서 공개된 수호이 LTS(경량전술항공기) "체크메이트" <출처 : overtdefense.com>

1. 개발의 역사 

2021년 모스크바 국제 항호가 우주 엑스포(NAKS) 첫날, 러시아의 항공기 제조업체인 로스텍의 자회사인 OAK사가 부스에서 단발엔진 스텔스 전투기의 목업(mock-up)을 전시하면서 그간 개발 사실의 거의 알려지지 않던 전투기가 공개되었습니다. 제조사는 해당 전투기를 결전 술 전투기로 소개했으며 이날 행사는 블로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인 직접 부스에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의 부스 방문은 코로나 사테에 따라 철통 같은 경계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언론을 의식한 푸틴 대통령은 마스도 없이 전시장을 다녔다고 합니다. 주변에 다가오는 것이 허용된 이는 러시아 연방 보호국(FSO)의 감시 하에 2주간 격리 절차를 거치 뒤 코로나 검사까지 마친 이들뿐이었다고 합니다. 

 

OAK는 이번에 공개한 경량형 스텔스 전투기의 이름을 체크메이트라고 발표하였으며, 동체 측면에 각인된 75라는 숫자와 결 자사(수호이) 명칭에 따라 언론들은 해당 기체의 제식 번호를 SU-75로 소개했습니다. 

 

러시아 국영 방산 수출업체인 UAC는 해당 전투기 개발을 이제 막 1년 정도 진행했다고 밝혔으며, 현제 단계까지 빠르게 개발을 진행할 수 있던 것은 최신 컴퓨터 기술과 가상 테스트 덕분 입을 강조했습니다. 

 

체크메이트는 이미 시험 단계까지 도달한 상태로 보이고 있으며 이는 이미 비행이 가능한 시제기가 완성됐거나 완성이 임박했음을 의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수호이75 VSF-35 라이트닝 비교 동영상

러시아는 구체적인 개발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러시아 언론사는 해당 기체의 초도 비행이 2023년으로 잡혀있으며 2026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일부 언론들은 러시아 공군기 해당 기체 구배 계약을 따로 체결한 사실이 없다고도 하였으며

UAC 측 또한 체크메이트의 개발은 입찰 경쟁을 통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로스텍사가 자비를 들여 개발을 추진했음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특히 MAKS행사 간 체크메이트의 개발 배경에 대하 수많은 소문이 돌았는데 전문가 들의 의견을 현제 러시아 군이 보유한 SU-27 계열과 SU-57 전투기는 무거운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기동성 높은 경량형 전투기를 비밀리에 긴급 개발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러시아 공군은 이 기체를 도입할 계획이 없으므로 러시아 공군의 미국 F-35나 F16을 대응할 목적으로 개발했을 가능성은 현제로서는 낮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로스텍은 오히려 이기체가 인도나 베트남, 일부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수출 시도를 할 것이라는 내비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국과 대결이 첨예한 편인 인도와 베트남이 이 기체로 인민 해방군 공군을 견제 하하라는 의미를 담아 기체 명칭을 체크 메이트로 작명하였다고 하는 말이 나오 있습니다. 

 

향후 체크 메이트가 국제 수출 시장에 데뷔하게 된다면 우선적으로 경쟁할 기종은 다소의 라팔 전투기, 스웨덴 사브, JAS-39 그리펜 전투기, 될 전망이고 향후 최대 300대가량의 체크메이트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결국 향후 개발될 향산 기체의 성능과 가격 조건에 달리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MAKS 2021에 출품된 Su-75. (출처: Чінгіс Дамбієв / Wikimedia Commons)

2. SU-75 체크메이트 특징

현제까지 공개된 바에 따르면 단발엔진을 장착한 초음속 전투기이며 스텔스 설계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대형 내무 무장창이 설치됐으며, 최고 속도는 마하 1.8에 육박하는 데다 항속거리는 2,800KM에 달할 예정이라 합니다. 

 

탑재 중량은 7,400KG로 다소 작은 편에 속하지만 경량형 전투기임을 고려한다면 같은 등급대의 전투기 중에서는 준수한 편입니다. 

또한 체크메이트 개발에는 이전 SU-35S와 SU-57에 사용된 첨단 기술과 부품을 다수 재활용할 ㅇ케정이므로 대당 단가 역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현제 로스텍이 목표로 삼은 가격은 약 2,500만 달러에서 3,00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되는데, 기술과 부품의 재활용으로 단가를 크게 낮추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 가격은 고객 국 요청에 따른 무장이나 항전 설치, 개조가 가해지지 않은 수수 기체 가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제작사는 시간당 기체 운용비부터 어지간한 유사 등급의 전투기보다 현저하게 낮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2-1. 체크메이트가 지향한 개발 철학

빠르고, 은 밀서가 높으며, 고고도 비행이 가능하고, 가벼운 다목적 전투기입니다. 

엔 지은 SU-35로 검증된 AL-41F엔진을 단발로 장착했으며 전통적으로 기체 역학 설계는 러시아 쪽이 우수했기 때문에 기동성 측면에서는 동급 기체 중에서 준수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AL-41F엔진은 약 32,000파운드 추력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데 F-35의 라 135 엔진은 4만 파운드 추력을 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엔젠 출력이 다소 낮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체 자체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이점은 양산 기체가 오 나성 돼야 학인이 가늘할 것으로 보입니다. 

SU-75체크메이트 조정석 이미지 (출처: Чінгіс Дамбієв / Wikimedia Commons)

외양에서 가장 눈의 뛰는 것은 엔진 공기 흡입구로 동체 아래에 마름모꼴 형태로 흡입구가 설계된 모습입니다. 

이는 미국 합동 공격기 사업에서 최종 탈락한 보잉 X-32 설계와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두기체의 엔진 흡입구는 엔진으로 산소공급을 최대화하되 흡기구 내 엔진 커 프레서 블레이드의 바깥 노출을 줄여 레이더 피탐지 면적(RCS)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또한 수직 이익을 최대한 눕히면서 수평 이익을 없앤 대신 수직 이익이 통째로 움직이면서 방향타 역할을 대체하게 한 점도 두기체 공통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MAKS에 출품된 기체는 R-73단 거리 공대공 미사일 (NATO코드명 AA-11 DKCU) R-77 능동형 레이더 유도실 공대공 미사일 AA-12에 더 및 KH-59MK 대함 미사일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으나 내무 무장창이 설치되어 있어 이안에 약 5발의 공대공 미사일이 수남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얄팍한 형태의 측면 무장장이 있어 각각 한발 정도의 미사일이 더 수납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시횡 출품됐던 체크메이트에는 스톰 브레커 SDB-II에 대응하는 GROM -E1과 GROM-E2폭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밖에 기본 무장으로 30MM 기관포가 설치될 것으로 소개됐으나, 이것이 기본 장착인지 혹은 고객 요구에 따른 추가 장착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조정석에는 한 장의 대형 MFD와 소형 MFD 여러 장이 붙어 있어 단 한 장의 대형 패널만 붙어 있는 F-35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전방 상향 시현 장치 (HUD)도 설치되어 있으므로 F35 같은 헬멧 고정식 디스플레이 시스템(HMDS) 설치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레이더는 능동현 전자 주사식 AESA 레이더가 장착된다고 공개하였으며 강력한 전자전 공격으로 방해와 간섭이 심할 때도 6개의 표적의 동시 추적할 수 있다고 UAC 측은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AESA 레이더가 장착될지에 대해서는 언급되거나 공개된 바가 없습니다. 

 

현재 SU-75는 1인승으로 설계되어 있으나, 제조사는 고객 국이 조정 훈련 용도로 2인승 필요로 할 경우 개발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항모 탑재용 항모 형상도 개발을 고려 중입니다. 

3. SU-75 체크메이트 제원

용도 스텔스 전투기
제조사 수호이(Sukhoi) 설계국/러시아 통합 항공기제조 주식회사(OAK)
승무원 1명
전고 불명
날개길이 불명
자체 중량 불명
최대속도 마하1.8
실용상승한도 불명
항속거리 2,800km~3,000km
전투범위 1,500km
필수이륙활주거리 400m
최대 중량 20톤
탑재 중량 7,400kg
추진체계 120kN급 AL-41F 엔진(애프터버너 시 180kN) x 1 
추력 대비 중량 1
대당가격 2,500만~3,000만 달러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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