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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육군에 대표 메이커 부대인 맹호부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맹호부대 로고와 월남점 파병당시 군인의 모습 이미지

대한민국 육군의 기계화 보병사단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전에 창설된 부대이며 메이커 사단 중 하나입니다. 

상징명칭은 맹호 부대이고 경례구호는 맹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사단 공식 구호" 강한 수기사! 살맛 나는 맹호부대!"이며 이전 공식 구호는 "조국이 부르면! 맹호는 간다!"라고 합니다. 

 

약칭은 수시사로써 수방사, 정보사 같은 사령부의 약칭인 줄 아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나 수바사와 비슷하기 때문에 여기에 배속받은 신병들은 서울 간다고 조하기도 합니다만 이름과는 다르게 서울에 있는 부대는 아니고 경기도 동북부 가평, 포천 쪽이라 보면 됩니다. 

차라리 30 기계화여단이 서울에서 더 가깝습니다. 실제로 이름만 보고 수도에 있는 줄 알고 좋아했다가 실망했다는 병사들이 많다고 합니다. 

 

수도군단과 비슷한 케이스이며 그래도 둘 다 수도권인 경기도에 있으니 틀린 명칭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1. 맹호부대의 역사 

1949년 6월 20일 수도경비사령부로 창설되었는데 당시에는 그 명칭처럼 서울 향토방위를 담당하던 경비부대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 발발하고 한강방어선 전투를 끝으로 서울이 함락되어 수도방위라는 의미가 사라지자 7월 5일 해체 후 (구) 수도사단(현: 7사단)으로 부터 수도 명치과 1 연대를 넘겨받아 7월 8일 1,8,18 연대 근간의 수도사단으로 재편한 게 현재의 수도사단입니다. 

 

이 신생 수도사단 역시 박격포 정도가 중화기였을 정도로 매우 열악한 상태에서 진천 전투를 치르었으나 김석원 준장의 활약으로 북한군 2사단을 7일간 묶어두었고 청주 전투에서도 민가에서 빌린 곡괭이와 대검으로 진지공사를 해야 할 정도였으나 이역시 부대 건재를 유지하며 속리산을 거쳐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게 됩니다. 

 

그 후 안강-기계 전투를 치를 때 제7보병사단 재창설을 위해 8 연대가 떠났고 그 빈자리에 독립 기갑연대가 예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천 상륙 자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통일의 꿈을 안고 청진까지 맹진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흥남에서 배를 타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통일이 꿈을 안고 청진까지 맹진하였으나, 중곡 군의 개입으로 흥남에서 배를 

타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와중에 18 연대가 3사단 26 연대와 배를 바꿔 탄 버렸는데 처수의 난잡함 속에서 원대복귀를 위해 서로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어서 결국 연대를 맞교환해 18 연대 대신 26 연대가 예속되었습니다. 그 후 38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고지전에 투입되기도 했으며 (수도고지- 지능형 능선 전투 등) 이따금 후방의 지리산 공비 토벌에도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휴전 협정 이후 수도사단은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과 이동면에 산재해 있게 되며 1953년 9월 18일 기갑연대 3대대 11 중대장 안도현 대위와 일행 장교가 2개 중대를 이끌고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으로 이동했는데, 이후 이 중대들은 훗날 제27보병사단의 모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지역 향토방위 위주 보대로 제6군관구 사령부(현 수도군단)와 30사단(현 30 기갑여단), 33사단(현 17사단)이 담당하게 되었으며 지금의 수방사는 1961년 용산구 후암동에서 재창설된 수도경비사령부의 후신이라 합니다. 

베트남 전쟁 때 파병된 부대중 하나이며 현재도 최정예 부대로 수도권 방위 및 반격 작전의 중추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베트남전에서 철수한 사단은 사실상 해체 도니 상태였으나 (베트남전 파병 시 여기저기서 파견을 받아 병력이 운용되었기에) 미 7사단 철수 시 장비를 인수받아 최초의 기계화사단이었던 32사단이 수도사단으로 단대호를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현재는 제20 기계화 벼 병사 단과 함께 제7군단의 예하부대로 편성되어 있으며, 현제 경기도 일대에 주둔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이전에는 제5군단의 예하부대로 편성되어 있던 적이 있으며 지금처럼 제7기동군단으로 편성된 것은 1983년 이후입니다. 그 당시 막 기계화보병사단이 된 제20 기계화 보병사단과 함께 제7군단 예하로 예속 변경이 되었습니다. 

 

2. 맹호부대의 특징 알아보기

일반 소속 부대 역시 훈련의 강도가 높고 빈도도 매우 잦은 편이고 맹호부대에 입대한다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 합니다.  한전 역자가 말하길... 장갑차 좀 탔다 내렸다 하다 보면 전역한다. 정말 훈련 빈도는 지나칠 정도로 놀아서 한 달에 3회, 심하면 4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준비태세만 하루에 4번, 훈련-복귀 훈련- 복귀를 반복하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전역한다. 

한때는 국군에서 제일 먼저 최신장비를 배치받았지만 지금은 제20 기계화보병사단에 밀리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덕에 수시사에서는 20사단을 테스트베드 부대이기 때문에 장비들이 먼저 들어오는 거지 수시 사랑 붙으면 양기 사는 상대도 안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히는 k1전차는 수기사가 그 이후 개량형인 K1A1과 K21 장갑차는 20사단이 먼저 지급받았으며 이제는 K2 흑표전차도 20사단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K21은 수기사에도 배치가 되고 있고 어느새 전량 배치가 완료되어 있으며 2015년까지 점진적으로 확정하였다고 합니다. 

더불어 최신장비 들어온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닌 것이 이전에 쓰던 주차호를 전부 없애고 새로 만들어야 하고 그에 따른 교리 및 교범 사용법 등이 바뀌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다시 교육훈련을 실시해야 하므로 그만큼 간부나 병사나 죽어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걸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실상은 붙으면 그게 그거입니다. 

 

20사단이 화력 최강부대라고는 하지만 최신 장비가 언제나 1 순의 배급되는 같은 7군단인 이상 수기사와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해병대의 구호인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의 원조가 "한번 맹호는 영원한 맹호"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 해병대의 "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은 '미 해병에 "Once Marine, Always Marine'에서 빌려온 구호이어서 당연히 틀린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월남전에서 접촉한 맹호 부대원들이 임의로 자신들의 구호로 차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맹호부대 가 동영상

 

3. 명칭과 상징  알아보기 

일반적인 사단과는 달리 번호로 매기는 형식이 아닌 저런 식의 이름을 채용하는 지라 면 사다인지 궁금해하는 훈련병들도 존재합니다. 숫자로 분류할 시에는 대체적으로 0사단이나 10 사산이라고 부르며 애초에 다른 사단과 달리 숫자로 명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말하지 않으면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게도 제3보병사단 하고 많이 엮이는데 그 이유는 원산 최초 입 서문제가 있습니다. 이유는 원산 전투 다시 원산에 함께 투입된 제3보병사단과의 전투 지경선이 애매하게 설정된 탓에 서로 이를 자주 침범했고, 급기야 수도사단장 송요찬 준장과 3사단 26 연대장 이차 엽 대통령이 여왕산 산록에서 옥신각신 하까지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문제는 서로가 원산에 먼저 입성했다고 주장하는 수준으로 번졌고 차다 못한 당시 1 군단장이었던 김백일 장군이 당시 사단장이었던 이종찬 장군과 송요찬 장군을 불러 공동 입성으로 합의시켰다고 합니다. 

 

상징은 울부짖는 호랑이. 맹호 마크의 의는 외곽의 방패는 국가방위, 포효하는 호랑이는 용맹한 비호부대, 번득이는 눈은 번개부대, 녹색 바탕은 희망을 상징하며 혜산진 부대를 나타냈습니다. 

적색 맹호 혓바닥은 수기사 포병여단, 백색 둘레는 단결을 의미합니다. 군북의 부대 마크는 보안 문제로 한동안 폐지되었다가 1982년 여름에 다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병사들이 휴가를 나라깨 마장동 군장품 가계에서 사제를 부착하고 했었으며 그런데 새로 지급 도니 마크에 비하면 사제는 그야말로 엉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사실 부대 마크가 새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으로 인터넷을 뒤지면 훨씬 볼품없는 예 마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타사 단과 달리 맹호 마크는 위낙 복잡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위장용 투컬러 패턴의 마크로 교체되어 저 원색의 부대마크는 일반 전투복에서는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이지만 전차 전면 장갑 등에 그려 넣었던 부대 마크도 전부 지워진 상태이며 공식적으로 원색 마크를 사용할 수 있는 복장은 근무 목 이난 정복 아니면 예복 물론 사단 소속 병사는 군악대가 아니라면 평생 입어볼 일 없는 옷들입니다. 

 

전역 때 군장점에서 원색 마크의 휘갑치기를 쳐서 나갈 수는 있다면 디지털 전투복에 이 약장을 달면 너무 눈에 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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