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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밀리터리 마니아입니다. 

오늘은 북한도 개발하여 발사했다고 주장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미 국방부는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이뤄진 극초음속 무기 발사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공기흡입 극초음속 미사일 개념도.사진=미국 국방부

1. 극초음속 미사일이란?

기존의 아음속 또는 초음속 순항 미시 대체한 미사일을 의미하며 기존에 순항 미일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상대방이 탐지하더라도 방어할 시간이 극히 짧다. 항공기, 군함, 잠수함에서 운용돼 차세대 대함 미사일이나 전술 지대지 미사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낮은 고도에서 마하 5(1.7m/s)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미사일, 유도무기를 뜻합니다. 

일반적인 초음속 전투기의 최고 비행속도가 마하 2~3이내이므포, 그보다 2배가 넘는 속도로 비행한 셈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최소 수준인 마하 5의 속도면 서울에서 발사되어 평양까지 분을 조금 넘는 시간만에 타격이 가능합니다. 

 

전 세계에서 극 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성고 한 국가는 2021년 기준으로 러시아, 중국, 미국 3개국뿐입니다. 

 

극초음속 미사일 알아보기

 

2. 극초음속 활공체 알아보기 

 

탄도미사일에 글라더 형태의 할공체를 탄두에 답 재해서 발사하는 방식을 말하며 곡선을 그리면서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서 낙하하는 방식입니다. 현존하는 탄도미사일의 로켓 엔진으로는 극 초음속을 발생시키기 곤ㄴ란해서 활공체의 속도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현제 개발되는 극 초음속 미사일의 대부분이 이방식을 채택하며, 뒤에 설명한 내요으로는 극 초음속 순항 미사 일에 비해 기술적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잔아 대부분 2020년 중으로 개발, 배치돼 전망이라 합니다. 

그런 탄두에 고난 이이도의 공력 기술과 중력 가속을 절밍제어하면서 부스터 없이 속도를 유지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쨌든 기존의 탄도 미사일보다는 개발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미사일, 중국의 DF-17 미국의 LRHWAGM -183 ARRW가 있습니다. 

 

3.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알아보기

스크램제트 엔지를 이용해서 지속적인 고속 비행이 가능합니다. 특히 탄도 미사일 기반의 극초음속 활공체가 발사 초기에 는 상대방의 탐지가 가능해 대응 기회를 허용하는 반면, 극 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상대적으로 활공체에 비해 저고도 비행이 가능하므로 적이 대응할 기회를 최소화하는 기습 효과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활공체와는 달리 종말 단계까지 계소 가솔 할 수 있어 복잡한 기도가 보다 유리합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극 초음속 활공체에 비해 기술적 난도가 높습니다. 러시아의 지르콘 미사일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2030년대를 넘겨서야 등장할 전망입니다. 

 

2021년 8/2일 러시아 국방부에서 KH-95라는 공중 발사 플랫폼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을 개발 중에 있다고 밝혔으며, 이 또한 2030년대 이전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미국도 2021년 9/27일 레이시온과 노스롭 구루먼이 공동 개발 중인 스크림 제트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인 HAWC 발사에 성공하여 2022년에 프로젝트 완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지르콘 미사일, 중국의 DF-100, 미국의 HAWC 가 있습니다. 

 

4. 극초음속 미사일 국가별 개발 현황 알아보기

러시아 

러시아는 선두권에 있습니다. 러시아는 2019년부터 이스 타다르 미사일의 항공기 발사 버전인 킨 잘 순항 미사일과 ICBM 탑재 활공체 형태인 아방가르드를 대량생산, 실전 배치하고 있으며, 스크림 제트 엔진이 탑재된 순항미사일 방식인 지르콘 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수차레 공개하고 2025년 안에 실전 배치한다고 발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한술 더 떠 2021년 8월 2일 러시아 국방부에서 신형 장거리 극 초음속 미사일 KH-95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스템까지 개발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미사일은 향후 TU-22 M3 M, TU-160M PAK DA에서 운용된다고 합니다. 

 

2021년 10.7: 러시아 국방부는 또 다른 마하 5 이상 비행할 수 있는 최신 극 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며 , 이 미사일은 5세대 SU-57 스텔스 전투기에 장착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인도

러시아와 협력 관계에 있는 인도는 지르콘 미사일을 기반으로 브라모스 -II라고 명명된 극초음속 스크램 제트 미사일의 공 돌게 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9년에 따로 독자적인 스크램 제트 엔진의 실사 시험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2017년 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2019년 공개된 활공체 형태인 DF-17을 2020년부터 배회하고 잇고 

2020년에는 복 격기를 통해 탑재, 발사되는 극 초음속 미사일의 시험체가 포착되었습니다. 싱쿵-2로 명명된 웨이브 라이더 방식의 새로운 극초음속 활공 탄두와 스크림 제트 장거리 순항 미사일로 추정되는 DF100을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미국도 중국, 러시아와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우선 극초음속 활공체로 단거리인 OPFILE와 중장거리 인 LRHW, LRHW의 잠수함 및 수상함 버전이 IR-CPS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0년 12월 폭격기에서 발사되는 최고 속도 마하 20의 AGM183 A ARRW를 선보였습니다. 

 

이외에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공기흡입식 극 초음속 미사일의 개발도 재추진하고 있으며, 서방에서 스크램 제트 연구에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호주와의 공동 개발에도 착수했습니다. 

 

유럽 국가들 중 초음속 엔진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프라스는 라팔 전투기에 탑재하는 핵투발용 램제트 초음속 순항 미사일인 AS, P-A의 후계 미사일로 FCAS에 탑재하기 위한 스크램 제트 극초음속 미사일 ASM4G를 개발해 2035년까지 배치할 예정입니다. 

또한 극 초음속 글라이더 시험체 VㅡMAX계획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

일본도 도서방위용 고속 활공탄이라는 명칭으로 중국과 분잰 중인 남서부 도서 방어 작전을 명목으로 극 초음속 활공체 무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우선 2023년까지 초기형을 개발하고 , 2026년까지 대함 타격도 가능한 웨이브 라이더 방식의 개량형을 개발한다는 방침. 또한 2030년 내 배치를 목표로 스크림 제트 방식의 순항미사일도 개발 중입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2020년 8월 정경두 당시 국방장관이 국방과학 연구소 설립 50주년 기념사를 통해 자체적인 극초음속 미사일일 개발계획의 존재를 처음 공개했습니다. 

연말인 12.16일의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국방부 차원의 소요 결정에 존재를 처음 공개했습니다.  연 망린 1216일의 전군 지휘관 회의 헤서는 극 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국방부 차원의 소요 결정에 포함시켜 본 격적인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단 2020년대 중으로 현무 탄도 미사일을 통해 발사되는 부스트 글라이드 방식을 우선 확보하고, 2030년대에는 차기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기반으로 하는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을 개발할 전망입니다. 

 

 

이보다 앞선 6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극초음속 무기체계 국제개발 동향과 군사안보적 함의 '보고서는 ADD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액체 램제트(Ram jet) 추지 기관을 개발했으며, 2010년~2012년 극초음속 핵심기술 응용연구, 

2011년~2017년 초고속 공기 흡입 엔진 특화연구실 설치를 통한 관련 연구 등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8년부터는 마하 5 이상의 지상발사형 극초음속 비행채를 개발 중이며, 2023년까지 비행 시험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021년 1/30일 자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KF-21일 에 장착할 극 초음속 유도탄을 개발하기 위 ADD 등과 논의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조선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극 초음속 활공 전투부 (탄두)에 대한 설계를 끝냈다고 공개 발언해 관련 개발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2021년 9월 28일 북한은 궤적이 활공탄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했고, 다음날인 30일, 해당 미사일의 명치가 화성 8형이라고 밝히면서 극 초음속 미사일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정거리 450KM 넘었으며 고도는 30KM 이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속도가 낮고, 엔진이 달라 사실상 실패라는 해석에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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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총중 mp40 기관단총과 mp44(STG44) 돌격소총 

소련과 미국도 감탄하여 탐낸 무기입니다. 

오늘은 이무기에 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독일소총  위쪽 MP40, ,,아래STG 44소총입니다.   출처: 국방과학 연구소 

MP40 9㎜ 권총 탄환 연속 발사 근접전 유리
철판 프레스 보디·합성수지 보디 커버
기관단총 중 가장 유명한 상징적 모델
STG44 AK·K2 등 가스 피스톤 방식 시초
전용탄 부담 개발 중지 명령에도
몰래 만들어 보급 일선부대 호평

2차 세계 대전 (20세기) 초중반 소총은 나무 재질의 외관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은 전혀 다른 방식의 총을 개발하였습니다. 온통 검은색 철로 만들어진 MP40은 미래적인 느낌과 함께 나치의 직은 군복과 잘 어울리면서 영화 속에 어둡고 무 서우 악당의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1.MP40

기관권 통으로 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권총 탄환을 사용하는 것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P08 루거에 사용하는 9mm 권총 탄환을 연속으로 발사하는 MP40은 지금 SMG와 같은 기관단총 가운데 가장 유명합니다. 

그리고 상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절삭가공 바디와 기본 설계 시초가 되는 MP36~MP3 8을 기본으로 철파 프레스 바디와 몇 가지 작은 변화를 거쳐 완성형이 됐습니다. 

특히 MP40은 그동안 권총탄을 사요 하는 기관단총에 관심이 없던 미군도 본격적인 개발에 뛰어들게 할 만큼 큰 충격적인 총기였습니다. 

 

지독히도 화격을 사랑하는 미군은 M1A 1 톰슨 이아 M3A 1등 45 구경 기관단총을 사요 하고 있었습니다. 연속 사격이 목정인 기관단총은 비교적 짧은 교전 거리와 다 탄 수 이점이 있는 9mm 탄환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정작 mp40은 복영 탄창이 아닌 단열 탄창이라 크게 장탄수의 이득은 없었습니다. 

 

독일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기술적으로 진보돼 무기들을 선보였고 연합군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항공기를 비롯하여 잠수함, 전차 등 하늘, 땅, 바다 가릴 것 없이 앞선 기술을 보여 주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화기 류에도 상당히 혁신적인 기술을 자랑합니다. 

 

또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철판 프레스 공법, 목재 외 한계를 극 보흔 합판을 적용 베이클라이트 증의 합성수지 사용으로 인한 생산량 증대와 균일한 품질 등은 mp40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철판 프레스로 만들어진 몸체는 함성수지로 찍어낸 몸체 커버, 그리고 접철식 개머리판 등은 당시로선 독일 외에는 이렇게 완성도 높은 기술을 선보인 나락 없었습니다. 

 

전쟁이 끈나 뒤 소련과 미국이 경쟁적으로 독일의 생산공장과 노회 물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독일 기술이 탐나는 것은 소련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냉전시대 양대 산맥으로 성장한 미국과 소련을 돌이켜 보면 역사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2. STG 44

STG44( Sturmgewehr 44)는 총기 역사에서 또 하나의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할 만합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총은 '돌격소총'이라 개념을 탄생시킨 소총으로 

AK, K2 등에 가스 피스톤 방식의 시초이자 개념을 만들어준 기념비적인 모델입니다. 전용탄을 사용했던 점만 빼면 상당히 우수한 총입니다. 

 

히틀러는 탄종이 늘아나는걸 원치 않아 MP44 (STG 44) 개발을 중지하라고 명령했지만 결국 몰래 만들어진 이 총의 보급한 결과 일선 부대의 호평과 지금 요청을 얻어냈습니다. 

덕분에 이름을 MP44에서 STG44로 바꾸고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빛을 발하는 것이 진정한 명품이듯이 짧은 화약 기간 동안 STG 44는 근접전, 장거리 저격, 점사, 연사 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소총으로 그 명성을 길이 남겼고 전후 총 개 개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때문에 STG44는 총기사에 걸작으로 불리며 지금도 사용 중인 AK-47이나 M-16 같은 대표적인 돌격 소총의 아마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프래스 가공에 위한 제작 기술은 소련이 1950년대 후반 AKM에 가서야 구형할 수 있었을 정도로 앞선 테크닉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당대를 뛰어넘는 무기 사의 걸작이었습니다. 

 

참고문헌 : 국방일보 ,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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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화제 21세기 특수 부대원의 모습- 다양한 소설, 영화로서 새로운 형태의 전쟁 , 특수부대원 활약

미국 국방성, 육군 등 실제의 미래 보병 전투 체계 개발 계획을 추지 중이고 위장 능력 갖춘 전투복과 작지만 강력한 보병 화기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궁극적으로 미래 특수부대원의 모습은 ‘헤일로’ 시리즈에서 묠니르 전투복을 착용한 ODST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진=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각종 최첨단 무기와 기능을 갖춘 전투복을 착용하고 망토를 날개처럼 별 쳐서 하늘을 활공하며 주변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영상 등 미래 전장 이미지는 영화를 통해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가까운 미래 전쟁에서 확약하게될 특수부대원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들이 사용하게 될 첨단 무기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함께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롭 키팅거 박사의 단편 전쟁소설 『첩자.회피.보고서.탈출』에 등장하는 스텔스 망토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늦어도 2030년대에는 실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진=미국 해군연구소 홈페이지

최근 미국 해군 연구소 (USNI)

롬 키티 거 박사가 기고한 단편 전쟁소설 형식의 가상 시니오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새 오운 형태의 전쟁과 특수부대원의 활약을 소개했습니다. 

미 해군 연구소가 매일 발행하는 월간지 프로시딩스에서 '회피, 첩자, 보고서, 탈출이란 제목으로 게재된 내용을 소개해 드리자면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미래 전쟁의 모습 그 이사 응ㄹ 표사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일레로 소설은 극초음속 무기와 결합된 초정밀 핵 탄두의 등장으로 인해 대륙간 핵탄도미사일(ICBM) 스텔스 폭격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강대국 간의 핵 균형이 깨진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 미래의 전장 -상상을 초월하는 미래 전쟁 시나리오 

이 소설에서 관심을 가져할 것은 

중국에서 (미래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비밀 무기 개발에 대한 ) 극비 정보를 입수 한 특수 부대원이 수많은 난관을 뚫고 탈출하는 과정과 미래 등장할 신무기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되어있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원은 알약 하나로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조작해 2주 동안 완전히 다른 인종으로 위장할 수 있으며 각종 경보 및 탐지장비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투명망토, 고에너지 레이저 수류탄,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고 부드럽지만 주변과 완벽히 동화돼 탐지가 불가능한 침투 및 탈출용 글라더 등을 사용합니다. 

출처 Alex Jay Brady 트위터(https://twitter.com/AlexJayBrady/)

반대로 특수부대원을 추격하는 중국군은 벌 때처럼 군집 비행을 하며 침입자를 추적하고 필요한 경우 독극물까지 살포할 수 있는 마이크로 쿼드 콥터와 드론의 감시센서와 동조해 하늘 위에서 작전지역을 조망할 수 있고 개조된 신체와 슈퍼컴퓨터로 표적의 예상 동선까지 파악해 1초에 수십 발의 레일건으 발사할 수 있는 저격수 등으 도원해 주인공의 뒤를 바짝 뒤쫗는다는 내용의 전쟁 소설입니다. 

 

군사마니아들이 이 소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2050년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무기들이 2020~2030년에 싱 용화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미국의 미래 전략, 그중에서도 대 중국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2. 최첨단 전투복- 시가 은폐 기술인 적용

광학 위장 혹은 능동 위장으로 불리는 시각 은폐 기술이 적용된 전투복, 전투장비가 곳 등장할 것 같습니다. 

이기술은 쉽게 말하면 자신을 투명 인간처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프레데터 무기 관련 동영상

 

군사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까운 미래에 특수부대원이 갖추어야 할 필수 기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시각 은 페기 술은 영화 프레데터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창작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89년의 만화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광학 미채 기술입니다. 

 

시각 은폐 기술

인간의 시각뿐만 아니라 적외선 및 자외선 탐지 장치로도 식별이 불가능한 특징이며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중 등장하는 전차와 항공기 , 로봇 등도 투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양한 특수전 장비들은 현재 개발되고 가까운 ㅇ미래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점단 무기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면 고고도를 순항하며 특수부대원들을 침투시키고 공중 지휘 및 화력지원이 가능한 다목적 스텔스 수송기, 고고도 강하 및 수중 침투 가능하고 필요할 경우 화력 지원 임무까지 가능한 1인승 스텔스 캡슐,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침투 헬기,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스텔스 전투복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 스텔스 슈트 개발 영상

 

3. 특수부대를 위한 미래기술, 어디까지 왔을까?

현실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보게 돼 특수부대원의 모습은 영화 '엘리시움, 에지 오브 투모로'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강화 외골격 슈트 (Pwered Exo -Skeleton)를 착용한 모습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기한 외골결 로봇 6가지 동영상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국방성과 미 육군 탈로스 (talos), 랜드 워리아, 솔저, 퓨처 포스 위리 어등 다양한 명칭의 미래 보병 전투체계 개발 계획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계획의 공통점은 ict를 활용해 병사들의 보다 효율적인 전투를 가능하게 하고 UAV와 드론 등 무인 무기 체계와 자유롭게 유함 하여 궁극적 미래 전쟁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미래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인체 기능이 강화하고 화생방(NBC) 방호 능력, 제한적인 방탄 능력,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위장능력 등을 가준 첨단 전투복과 작지만 강력한 위력을 갖춘 보병 화기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예산과 급격한 변화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다양한 최첨단 전투복을 착용한 특수부대 워의 등장을 의심하는 사람을 아무도 없습니다. 첨단 ICTDHK 4IR의 눈부신 발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문헌 :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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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구르카 용병 전쟁 관련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늠늠한 구르카 용병

1.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구르카 전적

1,2차대전 구르카 용병 참전 , 작전을 지휘 하고 있는 구르카 용병들의 모습 이미지 출처:국방TV

구르카 병이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건 제2차 세계 대전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나 영국-아프라 니스탄 전쟁에서 별다른 사진 이난 취재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상당한 자료와 취재가 이뤄졌기 때문에 북 아프리카에서는 독일 국방군을 상대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했습니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 장병들의 증언에는 이들이 밤마다 독일군의 진지를 주기적으로 기습해 장병들의 목이나 귀를 베어가는 공포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고 실제로  이들의 전과를 의심하여 참호 구축이나 화장실 청소나 하라고 비아냥대던 영국 육군 장교 앞에서 적군에서 도륙해 온 귀를 한부 구니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일본 육군은 정글전에 능해서 역국 육군 지휘관들이 정글에서 싸우기를 꺼려했는데, 그러자 구르카족은 이 정글에서 일본 육군을 겁내지 않고 맞서 싸웠고, 엄청난 활약들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의 막 나가는 전술 반자이 돌격에도 구르카들은 코웃음 치면서 무쌍을 찍기도 했습니다. 

사실 영국군의 화력에 반자이 돌격을 하던 일본군은 마구 털리던 와중에 가까스로 영국 눈 진지에 일본도나 총칼 들고 와봐야 쿠크리 들고 기다리던 쿠르가를 만나면.. 그야말로 일본군 피다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고]1997년에 월간 지오 한글판에서 이들에 관한 취재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2차 대전 당신 이들은 쿠쿠리 하나로 일본 군들을 대적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도를 단숨에 동강 내고 쿠크리 하나 나로 일본 육군 15명을 메아 죽인 구르카 병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2차 대전 당시 구르카 대의 용맹함과 무시무시함, 잔혹함은 적과 아군을 가지 않고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일본군에 붙잡혀 포로 생활을 하던 미군 병사들을 구르카 부대가 구출하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수용소에서 포르들을 학대하던 일분군 병사들의 귀를 잘라 선물한 일화도 있습니다. 

폭격기 승무원은 양곤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양곤에는 앞서 언급한 포로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karng thomasian 과같은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chindits병사의 이야기인데 양곤 수용소를 해방한 구르카 연대가 어디인지는 불명이지만 

(양곤 탈환 작전에는 10 구르카 소총 연대, 3구가 소총 연대, 구르카 부대에서 따로 차출한 대대로 구송돼 50인도 공수여단 등 많은 구르카 부대가 참전했기 때문에 알기 힘듭니다. ) 전우였던 chindits에 대한 일본군의 학대에 분노하여 저랬을 수 있습니다. 

 

2. 포틀랜드 전쟁의 구르카의 전설

 

1982년 포틀랜드, 포트리 스텐리를 지키는 아르헨티나 군이 구르카 들이 온다고 실제로 영국군이 계속 민사심리전을 펼쳤고 SAS부대가 기습을 담당할 예가있 었는데 아르헨티나군이 구르카들이 온다고 하자 서로들 달아나거나 손 들고 기어 나와서 이들은 무혈 입 성하여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심지어 몇몇은 이들에게 항복하면서 제발 구르카에게 우릴 넘기지 말아 달라고 울며 사정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이걸 전해 들은 구르카 병들은 우린 저항하지 않는 자, 포로는 일절 건드리지 않는다.라고 하면 불쾌해했었다고 합니다. 

 

다만 위의 서술은 레퍼런스 있는 것도 아니어서 걸러들어야 하지만 만약 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포트 스트리가 아닐 구스 그린 전투 때 벌어진 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스 그린을 지키던 아르헨티나 군은 신병 의주로 편성되어 급조된 부여였으므로 사기도 낮았고 훈련 도도 낮았기 때문입니다. 

 

구스 그린 전투 뒤에 한 전초기 기지에서 추위와 배고픔음을 못 이겨 아르헨티나군이 (코마도와 교대 후 주둔해 있던) 구르카에게 항복했고 , 구르카들은 항복한 아르헨티나군에게 몸수색을 위해 엎드려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다 엎드렸는데 한 공군 장교가 버티고 있자 구르카 들이 쿠크리로 위협해서 엎드리게 한 기록이 있습니다. 

구스 그린 전투 후에 근방 아르헨티나군은 대체로 구르카에게 항복했다고 합니다. 

이사실은 포클 렌든 전쟁 문서에도 기록되어있는 팩트입니다. 

 

실제로 포트 스텐리 주둔 아르헨티나군은 주변 감제고지랑 방어선이 무너져 항복을 하였고 스탠리와 주변 감제고지를 지키는 아르헨티나군은 사기도 높고 혹한기 훈련 등 훈련도 제대로 받고 무장도 충분한, 나름 정예 부대였습니다. 

으외로 영국군은 제법 고전하고 있었는데 이때 구르카 대대는 스탠리 주변 감제고지인 윌리엄 산 점령에 투입되었고 감제고지를 수비하는 아르헨티나 군은 사기도 높고 장비도 충분했기에 구르카를 보고 졸기는커녕 박격보를 쏴서 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후에는 아르헨티나 군의 반격으로 13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은 사실도 있습니다. 

 

윌리엄 산 점령 작전은 스코츠 가드가 주도한, 그리고 또 다른 감제고지인 텀블다운 산 점령과 같은 작전 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영국군 근위대 가 텀블다운 산 점령의 주공을 맡는 동안 구르카 대대는 텀블다운 산 남쪽의 월리엄 산을 공격하는 조공 맡은 것입니다. 

 

3. 카길 전쟁

199년 파키스 타과 인도가 카슈미르에서 벌인 국지전인 카킬 전쟁에서 인도군 소속 구르카 병들도 참전했습니다. 

당시 국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역시 백병전에서 이들은 무서운 활약을 했기에 파키스탄군들이 절대로 이들과 가까이서 싸우지 말라는 분부도 내렸다고 합니다. 

 

당시 중앙일보 보대에 의하면 구르카 병 등과 백 정전을 벌이던 파키스탄군이 호되게 당하게 되어 물량전으로 반격하였을 정도로 이때 부상을 입고 포가 된 구르카들이 종전 뒤 풀려나서 인도군 훈장을 받고 후한 보상을 받은 사실도 있습니다. 

 

파키스탄 군도 용병인 그들은 꽤 우대해 줬는데, 만일 박대했다가 나중에 보복당할까 두려워해서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파키스탄에 것 주하는 파슈툰족드고 만만치 않게 전투민족이고 파키스탄의 주 인종인 펀자브 인들도 무서운 민족으로 꼽힙니다. 이들도 히말라야 못지않게 척 밥한 산지 힌두쿠시를 중심으로 온갖 외세 공격을 자기 힘으로 막아내던 전투 민족입니다.  그런 이들이 상당수인 파키스탄군도 구르카에게 무척 고전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미 120년 전 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그루 카 군들이 파슈툰족이 다수히 카불을 함락할 때 이름을 날렸던 걸 보면 이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4. 구르카 병과 30인 탈레반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영국 구르카 용병들 출처 :AFP

네팔 비마 출신의 영국 구르카 연대 3대대 소속, 딥 프라사드 푼 하사는 2010년 9월 17일 아프간 헬만드 주 라힘 칼라이 근처에 있는 기지에서 야간 경비 근무를 서다가, 전바의 어둠 속에서 뭔가 땅 파는 소리 들었습니다. 그느 처음 짐시의 소리인 줄 알았으나 수리의 정채는 IED를 매설 중이 더 2명의 탈레반들이었습니다. 

 

그의 소대는 순찰을 나간 시점이었기에 그는 즉시 무전기로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심각대에 거치돼 있던 GPMG 1문을 때어 들고, 개인 화기인 SA80 한정과 하부 레일에 부착돼 유탄 발사기 한정, 수류탄 다수, 무전기 두대를 가지고 지붕을 올라간 후 사격을 개시 탈레반들도 RPG를 발사해서 사격을 가해왔으나 푼 하사는 15분 이상 그 위치를 사수하면서 400여 발의 탄환ㄴ고 수십 정의 수류탄 등등 손에 잡히는 무기를 몽땅 사용해 최소 세명 이상의 탈레 반응ㄹ 죽이고 다수를 부상 입혔다고 합니다. 

 

그때 푼 하사는  덩치 큰 탈레반 전자 한 명이 벽까지 완전히 접근해 왔고 그가 사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하사는 지붕 위에서 사격하고 있던지라 무거운 GPMG로는 사격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놈이 접근해서 벽을 타고 오르려는 것까지 발견. 이에 푼한 L85A 2를 들고 발사 하 형 했지만, 이미 단기간 안에서 별다른  관리 조치 없이 400여 발을 연달아 손 직후라 기능 고장이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주위에 무기로 사용할만한 마땅한 물건을 찾다가 삼 삭대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대응하였다고 합니다. 

홀로 30여 명의 탈레반들을 물리치 공훈으로 푼 하사는 2011년 3월 25일 용 십자훈장을 받았습니다. 

 

5. 선발과정 

 

 

구르카 용병 선발과정 동영상

구르카의 급여 난 연금은 원칙적으로 영국군의 동등합니다. 

2018년 기준으로 이병이 연간 14,000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2,260만 원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영국에서도 고속이라 할 순 없지만 결코 적지 않는 연봉입니다. 한데 네팔에서는 이 정도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을 받는 것입니다. 

연간 국민소득이 같은 시기 한국(27000달러)의 70분의 1 수준인 400달러(50만 원 정도)가 조금 넘는 최빈국(2015년)이므로 구르카로 복무하고 전역한 사람은 부유층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2~300명 선발에 경쟁률은 매년 2만 명 가까이 응시하므로 70:1을 넘습니다. 

신체검사와 체력 테스트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면접 등 다 야한 전형을 요구하고 17세에서 21세 사이만 응시 가능하므로 사회 엘리트인 대학생 등리 몇 년씩 구리 카 준비에만 매달려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카트만두에는 구리 준비를 위한 사설 학원 20 역군 가량이 성업 중입니다. 

또 아버지가 용병 출신이면 직접 아들을 훈련시키기도 합니다. 용병 역사가 200년이나 되다 보니 3대가 용병이거나 친척 중에 용병이 많은 집안도 있습니다. 구르카 민족이 많이 모여 살고, 도시 자체가 히말랴 산자락에 있어서 심신을 단련하기 최고인 포카라에는 한국의 학원가 마냥 용병 양성 학원 단지가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 고등학교처럼 보이는 운동장 딸린 건물의 80%는 용병 학교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네팔 버전 한국식 공무원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8년도 기준 경쟁률이 700"1을 넘는 다고 합니다. 

2015년 2월 기준으로 영국군 가운데 구르카 출신 은 장교가 110명, 사병이 2,610명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사교육을 만이 하는 도시민에 합격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해 40명 선의 합격자를 배출하는 유명 사설 학원의 수강료는 한화 월 3만 원으로 한국이라면 용돈 수준이나 네팔에서는 부유층이거나 구르카 출신의 아버지가 있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이런 학원은 전직 구르카 출신이 운영하며 영국군의 선발 전형에 맞춘 커큘럼으로 교육을 합니다. 

 

반면 지방민이나 저소득층은 밭일이나 평소 운동 등으로 체력을 단련한 수밖에 없고, 영어나 수학도 이들에게는 큰 장애물인데 네팔은 아지 학교조차 없는 지방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천 명 가량인 1차 합격자도 한 번도 배해 보지 못한 시골 마을도 많습니다. 그러니 최종 선발되면 가문의 영광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발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면 구르카 출신 모병관이 가을에 고향을 돌면서 지역 예선을 실시합니다. 

여기서는 키와 가슴 둘례 등 신체조건과 기본적인 체력 테스트를 치르며 약 2~3배 수를 선발합니다. 예선 통과자들은 포카라에 위치한 모병소에 입소하여 보름간 최종 경선을 진행합니다. 이때 입소자는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모병소로 들어가는데 마치 한국의 수능 등굣길 분위기입니다. 

 

다양한 선발 전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체력 테스트로서 다양한 고목을 수행하는 주에 하나라도 미달되면 그 즉시 탈락입니다. 




2021.10.02 - [특수부대] - 구르카 용병- 영국에서 활약하는 구르카 ,전쟁터의 사신으로 불리다.

 

구르카 용병- 영국에서 활약하는 구르카 ,전쟁터의 사신으로 불리다.

구르카족은 네팔 중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몽골계 소수 부족으로 구르카 용병은 이들 부족 출신의 용병들을 말합니다. 영국이 구르카족 전사들을 용병으로 고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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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카족은 네팔 중서부 산악지대에 사는 몽골계 소수 부족으로 구르카 용병은 이들 부족 출신의 용병들을 말합니다. 

영국이 구르카족 전사들을 용병으로 고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현제 구릉족 전사들은 영국, 인도,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에서 용병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구르카 용병의 쿠쿠리 훈련 장면 이미지  출처: 영국군

1. 구루 카 용병 개요

영국에서 운영하는 네팔인들로 구성돼 외인부대입니다. 현지에서는 '고르카라고 불리며 고르카 지역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는 고르카 지방에 사원이 있는 중세 힌두 성전사 그루 고 라크나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네팔의 산간 지방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대입니다. 이들의 활약은 어마무시합니다. 

걸어 다니는 전쟁에 사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세르파와 더불어 기본적으로 세계 최고 고산 재대에서 살아가는 덕에 일반인라면 정시도 못 차릴 고지대에서도 뚜어 다닐 만큼 심폐량이 높으며, 그에 딸 신체 능력도 당연히 뛰어납니다.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매우 우수한 용병으로 유명합니다. 네팔의 3대 수입원으로 마약, 관광, 구르카 용병을 꼽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네팔의 전통칼 이라고도 불리는 쿠크리를 사용합니다. 

다양한 민족이 있는 네팔 구르카 부대원들 중 상당수는 동아 시인 계통입니다. 

 

대영제국이 싱할라족이나 시크교도, 라지푸트 다음으로 가는 전투 민족으로 꼽았으며 이들과 달리 영국 육군의 용병에 긍정적이었던 구르카 용병을 지금까지 잘 고용하고 있습니다. 

영국 육군의 2개 구르카 대대 중 1개 대대는 브루나이에 주둔 중입니다.

 

인도 육군도 자체적으로 구르카 병을 모병하여 10만 명 규모의 구르카 부대를 편성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네팔군도 있습니다. 

 

싱가포르 경찰도 연국 육군에 모병을 위탁하여 2000명 규모의 구르카 부대를 편성하고 있습니다. 

 

브르나 군에도 자체적으로 구르카 병을 모병하여 2,000명 규모의 구르카 예비대가 술탄의 친위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 구르카 용병의 역사적 배경

네팔의 고르카 왕국과 동인도 회사에 구르카 전쟁(1814~1816) 중에 영국은 자신들이 구르카도 칭한 고르카 리 군인들에게 김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평화협정에 따라 고르 칼라 군은 동인도 회사 군대와 계약하여 이들로 합류하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네팔 산간 지방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체트리(타 쿠리), 머거르, 구릉의 사람들이 영국과 맞서 싸운 원조 구르카입니다. 

영국군을 공포에 떨게 한 구르카 용사 이미지

 

브리민(브리만 네팔에서는 브리민이라고 부릅니다.), 세르파/타망 들은 입대가 허용돼 않았습니다. 

오늘날 구르카는 모든 네팔의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존의 구릉, 머거르, 체트리(타 쿠리) 외에도 라이, 림부, 세르파, 타망, 네 와리 등이 속해 있습니다. 

 

원래 영국은 각지의 식민지에 현지인으로 구성된 외인부대(세포이 같은 부대)를 창설해 유지해 왔으나, 인도 및 홍콩, 아프리카 등 자국 식민지를 독립시켜주는 과정에서 현지인 부대도 대부분 해체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구르카 용병부대만은 해체하지 않은 채 지금도 대대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르카 부대 청설 이래의 전사자도 만여 명에 달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영국 육군의 일부로 정글 등지에서 일본군을 기습하여 큰 손실을 입혔으며, 유럽과 아프리카 일부에서도 활약했습니다. 옆 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나라들은 모두 이들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1962년 다시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브루나이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싱가포르에 주둔한 구르카 부대가 도입되어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포틀랜드 전쟁 때는 일부 아르헨티나 육군 병력들은 구르카 부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항복하거나 도망쳐 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국 육군의 규모가 많이 축소된 최근에도 여전히 중요한 전투부대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후반 파키스탄과 국경분쟁에서 인도 육군 소속 구르카 병들이 파키스탄 육군과 대적하여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2-1. 전투 종족으로 영국 육군의 용병이 되다. 

1803년이래 네팔의 구르카 정부는 인도의 국경지대를 노골적으로 침범하여, 영국을 도발했습니다. 

특히 인도 북부의 영국령 촌락을 약 200여 개나 병합하고 갠지스 강 상류까지 침략할 기미를 보였습니다. 영국의 인도 총독 민토 겨은 이 지역은 역구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네팔은 계속 권리를 주장하여 양도하지 않았으므로 새로 부임한 총독 모이라 결이 비상 수단으로 현지에 경찰서를 설치하고 강 결한 태도로 임하였습니다. 

 

당연히 구르카 측이 가만있지 낳고 1814년에 그 경찰서를 습격, 18명의 경찰과 을 살해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도 이에 대응하여 선전포고를 하고 군대를 4개 부대로 편성하여 네팔로 진격시켰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험난한 지세 이용한 구르카족은 여러 성세를 중심으로 완강히 저항함으로써 영국군은 초전에 고전하였으나, 서틀 레지 방변으로 진격한 사령관 D. 옥털로 나의 분전으로 요새를 차례로 격파하고 구르카군의 최후 거점인 마룬 등의 요새를 격파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패배한 구르카 득은 항복하여 영국과 사가 우리 강화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교원에서 출간흔 랜드 엔 피플에 따르면 이 당시 영국군은 구르카 족의 용맹함에 치를 떨면서도 역구 측에게 점심 먹을 시간이니 전투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고 단신들의 티타임 동안에는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구르카족의 매너에 감탄했다는 비회도 있습니다. 

 

특히 구르카족이 머리가 날아간 상태에서도 역 국군을 향해 계속 칼을 위 둘렀다든지,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쿠크리 하나를 들고 왔다든지 하는 이야기도 적혀있으며 전쟁 막바지에는 휴식시간에 영국이나 구르카 족이 서로 간의 부상자를 치료해주는 훈훈한 광경도 나왔다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구르카족이 적이었으나 그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고 그 결과 영국군에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2-2. 영국군이 된 전투 종족

이들이 맹활약한 전투로 알라 주는 게 세포이 인도용 병대들의 반란을 진함 한 전투와 영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입니다. 

1차 전쟁(1839~1842)에서 호되게 털린 영국은 당시 영국군 및 인도계들로 이뤄진 영국군이 전멸(1명만이 살아 돌아 옴) 다한 것을 교훈 삼아 산악전의 고수인 구르카병을 2차 전쟁에 벌어진 1878년에 대거 파병했습니다. 

그리고 카불 점령에 크나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20만이 넘는 구르카 병이 참전하여 용맹을 떨쳤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먼저 진격하며 전설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물로 4만에 이르는 구르카 병이 전사했을 정도로 이들의 피해도 컸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벌어진 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구르카 군이 대거 파병 나갔지만 영국은 1차 대전의 피해도 엄청났던 터에 여기에 총력을 다하듯 없어 지원도 흐지부지된 상태였으며, 몇 달 안가 전쟁은 대출 끝났던 탓에 구르카 군은 2차 전쟁과 달리 큰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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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카 용병부대 구쿠리 한자루면 된다. 


구르카 용병 이야기 2편을 기대해 주세요

2021.10.03 - [전쟁사] - 구르카 용병 -두번째 이야기 (전쟁활약상)

 

구르카 용병 -두번째 이야기 (전쟁활약상)

이번에는 구르카 용병 전쟁 관련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구르카 전적 구르카 병이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건 제2차 세계 대전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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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21 레드백(Redback)은 한화 디펜스가 k21 보병 전투장갑차의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방산 기업들과 협력 개발한 궤도현 보병 전투 장갑차입니다. 

2022년 4월~6월 육군 기계화 부대에서 시범 운용하게 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AS-21 레드백 완성시제. 2021년 1월 12일 호주 멜버른에서 첫 공개되었다. 사진=한화디펜스

레드백(Redback)이라는 이름은 호주 육군이 차기 전투 장갑차를 도입하는 사업인 '랜드 400 3단계 "에 참여하면서 호주에 서식하는 강한 독성에 붉은 등 독거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1. K21핵심기술 기반으로 전투중량이 43톤이다. 

레드백은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 장갑차인 K21 보병 전투 장갑차 (IFV)에 적용된 핵심기술과 K9 자주포의 파워팩 설루션을 기반으로 한 탁월한 기동성, 30mm 기관포와 대전차 미사일을 갖춘 강력한 화력, 능동 방호 시시 텀으로 보호되는 뛰 어산 생존성을 자랑합니다. 

 

1-1. 레드백 제원

  1. 전장: 7.7m
  2.  전폭:3.64m
  3. 전고: 3.72m
  4. 전투중량: 43톤
  5. k9 자주포의 파워팩을 구성하는 MTU MT 881 ka-500 디젤엔진을 장착
  6. 최대출력: 1000마력 
  7. 최대 시속: 70km 주행 가능
  8. 항속거리: 560km

1-2. 특이점

서스펜션으로 '암 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ISU In- arm Suspension Unit)를 장착해 고르지 못한 지면과 야지에서 차체에 미치는 충격을 흡수함으로써 사격 안정화 및 승무원 승차감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때는 주력으로 운용되던 구형 m48전차나 m113장갑차 등에는 좌우 바퀴를 잇는 긴 쇠막대 형태의 '토션바가 서스펜션으로 사용되었으나 토션바는 차체 충격 및 진동, 승차감 등에서 정미화 추세의 기계화 차량에 적합하지 않아 유기암 현수 장치( HSU, Hydropneumatic Suspension Unit)가 개발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영국의 시굴을 바탕으로 국산화에 성공한 HSU를 K9 자주포 적요한 후 이보다 발전된 형태인 ISU를 개발해 세계 최초로 K21 보병 전투장 감차와 K2전타에 적용했습니다. 

 

레드백에는 철제 괘도가 아닌 캐나다 수시(Soucy) 사가 개발, 생산하는 고무, 내열성 합성섬유 철선 등으로 구성된 복합 소재 고무 궤도(CRT; Composite Rubber Track)를 사용하여 주행성능과 내구성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한화 디팬스에 따르면 CRT 사용으로 내구성은 철제 괘도(200~3000KM) 보다 훨씬 향상된 최대 5000KM이며 쿼드 중량은 철제 대비 50% 이상 줄였습니다. 또 ISU와 CRT복합 적용으로 퀘도 자체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은 철제 퀘도 대비 약 70%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합니다. 

 

 

2. 무장체계

 

2-1. 하이브리드형 포탑 30mm 기관포 

레드백은 상부에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사(Elvit System ) dml MT30M K2포탑을 기반으로 한 호주 EOS사의 하이브리드 형 포탑으로 불리는 T2000모델이 탑재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원격 사격통제체계, 광학장치, 사격 통제 장치 등이 결합되게 됩니다. 

 

2-2. 주무장

미국에 아리언 테크 시스템(Alliant Techsystoms)이 설계하고 노스롭 그루먼이 생산하는 Mk44S부시마스터(Bushmaster)-2 30mm 기관포가 선택됐습니다. 

 

이 기관포는 미국과 영국 등 nato19개국 동맹국이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30 ×173mm 구경탄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직접충격에 의한 폭발뿐만 아니라 신관 선택에 따라 공중 폭발 및 근접 폭발이 가능합니다. 유사시 일부 부품만 교체하면 40mm 기고 나포로도 손쉽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2-3. 부무장

7.62mm 기관총으로 포탑의 원격사격통제체계와 결합해 운용할 수 있습니다. 

12.7mm 기관총이나 자오 유탄발사기도 연동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라파엘사가 개발한 5세대 대전차 미사일 스파이크(Spice) LR2 대전차 미사일도 운용하게 됩니다. 

이 미사일은 전자광학장치와 적외선 샌서 등으로 정밀 유도되는데, 발사 후 승무원이 발사 후 화면을 보면서 미사일을 목표물로 유도하는 타격하는 방식입니다. 

 

3. 헬멧 전시기로 외부 상황 손 쉬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작전현장에서 탐승한 체 주변 상활을 유안으로 관측하는 일이 쉽지 않고 영상장치를 사요 해 파악하는 것도 제한적인 편입니다. 

그래서 래드 백 승무원에게 제공되는 아이언 비전(Iron Vision)은 승무원 헬멧에 부착된 전시장 치로 소 승무 워 은 장갑차 외부에 장착돼 카레 락 촬영하는 영사를 이 헬멧 전시기를 통해 봄으로써 외부 전 방향의 상황을 한 누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사가 항공기 조정사들이 사용하는 '헬멧 마운티드 시스템(HMS)에 적용된 기술을 응요 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레드백은 지뢰와 총탄 공격에 대비한 특수 방호 설 게로 한 방호력이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첨단 전투기 레이더로 쓰이는 능동위상 배열 레읻(AESA)을 이용하여 장갑차로 접근하는 적 대전차 미사일 등을 포차, 대응탄으로 요격하는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능동 방어체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4. 경쟁 장갑차 독일 링스 '링스 KF41'

 

 

링스 KF41 보병 전투장갑차는 독일 라인 메탈사에 세계 시상을 겨냥해 차세대 전투 차량 패밀리의 하나로 개발하였으며

KF란 독일어에 궤도차량을 의하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링스는 KF41은 2016년에 공개된 링스 KF31 장갑차와 형제 격으로 2018년 유로사토리(1967년 최초 개막된 지상분야 최대 전시회)에서 처음 소개되었으며, 2020년 9월 헝가리에서 전개된 나토(NATO)의 브라보 워리어(Brovo Warrior) 훈련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링스 kf41은 승무원(조정수, 전 차장, 포수)과 8명의 보병이 탐승합니다. 6명의 보병이 탑승하는 KF31 보다 더 크고 무거우며 무장도 다릅니다. 

 

KF41은 라인 메탈 35mm Wotan 기관포를, KF31 DMS 라인 메탈 30mm MK30-2/ABM 기관포를 탑재, 운용합니다. 

KF41은 립헬(Liebherr) 1,140마력의 디젤 엔진과 렝크(Renk) HSWL 256 자동 변속기를 탑재해 최고 시속 70km로 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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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까지 활약한 미국의 전차이며

   남북 전쟁의 셔면 장국에 이름을 따서 전차 이름을 지었습니다. 

셔먼 전차 이미지 

제작국 가민 사용국가 제원

육군 전차
재작국가 : 미국
제작연도: 1941년
사용국가: 미국, 영국, 이스라엘, 한국 등 미국 연합국 
길이 5.89m
너비 2.62m
높이 2.74m
무게 30t
최대속도 시속 38.62㎞
항속거리 193㎞

1. 개발 역사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까지 활약한 미국의 중전차로서 남북 북 전쟁 당시 남군의 '악마'라고 부르며 두려워한 셔면 장군의 이름을 따서 셔면이라 지었습니다. 여라가 비 파생모델일 개발되어 연합군의 주력 전차로 사용되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구소련의 주력 전차에 비하여 성능이 떨어졌지만 신뢰성이 우수하여 , 4만 9천여 대 의 전차가 생산되었습니다. 

 

1941년 3월 개발안이 제출되고 1941년 9월에는 시제차 T6이 완성되었고 미 육군은 에버딘 병기 시험장에서 T6을 시험한 뒤 1941년 10월 M4로 제식 채용하였습니다. 

 

생산을 앞두고 항공기 증산 계획으로 엔진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자동차 3사에 대체 엔진의 개발이 요구되었고 GM이 개발한 M6046액링 디젤 엔진이 채택되었습니다. 

 

이 엔진은 병렬로 설치하여 한쪽의 엔진이 고장 나도 다른 쪽 엔진으로 구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1942년 2월에는 M4 시리즈 가운데 처음으로 M4A1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M4는 1942년 7월부터 생산되었습니다. 

모두 4만 9234대가 생산되었으며, 75mm 전차포를 장비한 모델 외 76.2.mm전차포를 장비한 모델도 있습니다. 

 

무장과 재원, 동력장치 등은 모델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되었습니다. 

 

m4의 경우

400마력의 콘티넨탈 r-975-c1 9기 통 공랭식 가솔린 엔진을 장비하고 장갑 두께는 12.7~88.9mm입니다. 

주무장은 40 구경 75mm 전차포 m3 1문과 포탄 97발, 부무장은 12.7mm 중기관총 m21정과 실탄 300발, 7.62mm 기관총 M1919 A2 2정과 실탄 4,750발 이 을 무장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영국 연방국가 등 연합군에 대향 공여하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전투부터 연합군 기갑 부대의 주력 전차로 사용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수적으로 독일 기갑 부대를 앞도 하였고 한국전쟁(6.25 전쟁)이 벌어진 뒤에는 미국이 한국군에게 공여하여 초기 한국 기갑부대에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셔면 전차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전차에 장단점과 특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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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저번 시간에 이어 외인 부재 2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프랑스 외인부대 두번째이야기 썸네일 

1. 현대 외인부대 모습

1960년대 콩고 내전에 참가해서 활약을 많이 했습니다. 외인부대 출신 용병단이 카탕가 반군에 협조해서 아일랜드 유엔 평화유지군과 싸운 자도빌 전투도 있습니다. 70년대에도 자이르 분란과 내전에 참가를 했고 90년대 재발한 2차 콩고 전쟁에도 외인부대 병사들이 많이 참가했습니다. 

외인부대 총기 점검중 이미지 출처 : 외인부대

걸프전, 말리 내전과 미구국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투입되었습니다. 

해외 파병 병력이 필요할 경우 차출 1 순 의인 신속전 개군에는 프랑스 육군 제6경 기갑여단과 제9경기갑 해양 여단 , 제11 공수여단, 제27산악 보병여단 등이 있는데, 외인부대 병력도 이들 부대에 소개 있기 때문에 파병을 자주 가는 편입니다. 

 

파병을 나가변 가보급의 3배에 달하는 수당이 나오고, 진급 점수도 팍팍 쌓이기 때문에 , 파병에 대한 선호도는 높다고 합니다. 현제도 북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등에 여러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입니다. 

 

2. 외인부대의 생활상 

병력 수급 방식이 모변제이고 수익이 짭짤하고 군장비가 좋다는 점, 훈련의 질이 보장되고 파병을 가서 실전 거인 분위기가 조성되며 짬밥이 아닌 경력을 따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한 민국 국군과 판박이입니다. 

어느 나라 군대나 그렇겠지만, 한국군과 판박이라는 것은 체벌과 군기 부분에서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훈련소에서나 훈련 상황에서의 애기로 평소의 분위기와 군기는 비교도 안되게 프리 합니다. 

사격제를 취하고 서서쏴자세를 하고 있는 외인부대원 이미지 출처: 외인부대

또한 부대에 따라 다른데, 보통 그러한 불필요한 군기를 잡지 않거나 가혹행위가 덜한 부대가 장비와 훈련의 질 또한 좋은 곳입니다. 그라 해당 장병이 적절한 신체능력과 언어능력을 지녀야 그러한 것이 보장되는 부대로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나약한 신체+ 불어구사율0%라면 낙후된 부대에 배치되어 어마어마한 부조를 겪으며 로망과는 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외인부대 부대는 훈련의 강도부터가 한국에서 흔히 메이커 부대로 불리는 여러 전방부대와 비견될 정도로 살벌해서 신체가 약하다면 입대 훈련을 중도 포기하고 나갈 확률이 높습니다. 

 

외인부대는 아무래도 프랑스인들을 대신해 전쟁에 나가는 외국인 용병부대이기 때문에 그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당연 왠만한 한국의 정예 부대급으로 훈련이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하의 특수부대인 코만도를 가려면 아무레도 현역들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불어 실력이 종아야 하고 특전사나 UDT/SEAL과 같은 한국 눈 특수부대에 입대하여 수료 OR 자대 배치 후 거기서도 평타를 칠 정도의 체력은 되어야 합니다. 

 

외인부대 지원자의 8할은 군 경험이 없는 일반이 출신이며, 4개월간의 훈련중 본 대대에서 훈련 소대만 따로 나오서 첫 1달간 훈련을 받는데 농장, 소위 팜(FARM)이라고 부리는 프랑스 외곽에 위치한 훈련소에서의 숙식 훈련을 받는 동안은 상당히 고대 게 훈련하고 정신, 육체적으로 고생시킵니다. 

 

이때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더러있다고 하고 훈련 중의 중도 포기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걸 통화한 사람은 나머지 3달간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정말 마음이 맞지 않아 그만 두 눈 경우를 제외하면 쭉 자재까지 가게 된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자대까지 가는 사람은 지원자의 10% 정도라고 합니다. 

 

의무 복무기간은 5년이며 6개월 단위로 연장을 신청할수 있습니다. 이는 5년은 그 어떠한 사유로도 복무해야만 합니다.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고 의복무기간이 주어진 군인이 탈영했다가 다시 프랑스에 입국해서 체포될 경우 곧바로 군 교도소행이며 만기 출소 후에도 잔여 복무기간을 다 채워야 합니다. 

이러 경우 당연하지나 탈영한 그 계급에서 지급이 막히며 장기 복무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기본 복무 기간 기준으로 간부가 되려면 죽다 살아날 만큼 치열한 전투를 겪거나 웬만큼 큰 공훈을 세워야 합니다. 

군공이 없을 경우 간부가 되려면 10년 넘게 걸립니다. 

 

2차 대전 직후에는 갈 속이 없진 SS나 독일 국방군 출신 경미한 전범 등 독일인들이 과거를 묻지 않았던 외인부대에 입대했습니다. 

그 외에도 외국인의 신원릉 추적할 방법이 없으니 범죄자 등이 입찰 개 연서가 당시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사이 과거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출생지등을 철저히 따져본 다음에 훈련소 입대를 허용합니다. 

범죄자 등은 인터폴 까지 연계한 철저한 신원 조사를 거쳐 가려내고 이렇게 신원 조사를 하는 진짜 이유는 국제 수배범이 이수배를 피해 도피 입대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인데 신원조사에서 수배범이 밝혀지면 바로 인터폴에 넘깁니다. 

3. 외인부대 입대조건

 

외인부대 입대 조건은 

나이는 생일까지 꼼꼼히 따져서 17살 6개월 ~39살 6개월까지만 지원 자격이 있습니다. 39살 7개월부터는 얄짤없이 불합격이며 17살 5개월 이하의 연력은 부모 또는 후견인 동의서가 있어야 하며 외교 마찰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대사관 공증까지 받아야 합니다. 물론 그것도 14살 0개월 이하일 경우 제한됩니다. 

 

서류는 자신에게 해당되는 모든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예를 들면 출신 대학교, 예비역의 경우 복무기로, 회사에 다니적이 있으면 재직 증명서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모국어는 할줄 알아야 하며 문맹 역시 결격사유입니다. 입대하면 프랑스어를 새로 배워야 하는데, 문맹이라 함은 언어구사능력이 전무하기 때문에 여기서 결격사유가 됩니다. 

 

지병 검사가 엄청나게 까다로운 데 충치도 결격사유입니다.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도 결격사유이며 단, 안경 착용자는 안 결을 지참하면 됩니다. 

모든 종류의 후유증이 존재한 지병은 결격사유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서든 복무가 가능한 병력을 충원하는 게 이들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남극, 북극부터 아프리카들의 잔혹하기 짝이없는 적도 부근의 환경, 사막, 섬 같은 환경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후유증은 업야 하고 더디 서든 부적격해서는 안됩니다. 

 

입대 시엏은 체력 측정과 정신 검사가 있는데 엄정히 선발해서 뽑는 것이니 만큼 체력 측정 기준이 그래도 있는 편입니다. 

생각보다는 빡빡하지는 않은데 이는 '훈련소에서 만들어 준다.'라는 개념이 크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훈련소의 훈련강도는 아무래도 프랑스 정규군의 프랑스인을 대신해 파병을 갈 외국인 용병들을 단기 집중 양성할 목정이라 전체적으로 강하고 실전적인 훈련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4. 외인부대는 다 특수부대?

훈련중인 제2외인공수연대 공수특공대 요원 출처: 외인부대 

외인부대는 정규전을 수행하는 프랑스 육군 전투여단에 배속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정규 부대입니다. 

이중 해외에 가장 많이 파견되었던 부대가 공수연대였고, 또 활약도 인상 깊었기 때문에 외인 부대 특수부대라는 인식이 생겼으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공구 연대 자체는 특수부대가 아닌 공수 알 보병이며, 외인부대 내에서 특수부대는 각 연대마다 있는 코만도 팀입니다. 

 

외인부대는 5개 보병연대, 1개의 기병(기갑)연대와 2개의 공 벼 연대, 그리고 1개의 공수연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른 2개의 연대가더 있지만 이들은 사령부와 신병훈련소를 책 입지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전투부대의 성격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위이 부대중에서 각 부대 예하의 코만도 공식적으로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인 것입니다. 

즉 외인부대 자체는 특수부대가 아니며 외인부대는 한의 병과로 인식이 될만크 부대 내의 담당 임무가 매우 많습니다. 

 

많은 밀덕들이 또는 특수부대 에 강한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코마도를 들어가려고 하지만 이 코마도는 일반 연대에서 우선적으로 수년 군생활을 해야 합니다. 

체력적으로도 한국의 특수 부대수준을 갖추어야만 하고 거기다 유창한 불어가 가능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혹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 연대들이 다 약하다는 것은 아니며, 모병제인 프랑스군 내에도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온갖 위험한곳에투입시키는 신속전개 충격 군 용병부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징병제 한국군 보병부대의 병사들에게 실시하는 체력 훈련보다 훨씬 강도가 세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한국에서 특수부대 필이 꼿혀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체력적인 문제 +언어장벽으로 인해 자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애초에 외인부대 자체는 특수배도 아닐뿐더러 체력이나 언어가 안되면 자연 스래ㅐ 주변에서 갈굼을 당하게 되고 , 그러다 보면 결국 인종차별까지 당하게 되는 등 온갖 수난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강하면 혹은 강해보이면 특수부로 생각하고 보는 민간인들의 대표적인 착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대의 성격을 굳이 따지자면 (산하에 기병(기갑) 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제한적인 특수임무가 가능한 정규 경보병 부대 정도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미국에 레인저내지 한국에 수색대대나 특공대와 비슷한 성격, 물론 이들과도 다른 면모도 많이 보이긴 합니다. 

 



2021.09.26 - [특수부대] - 프랑스 외인부대

 

프랑스 외인부대

프랑스 국민이 아닌 외국 인르로 만 구성돼 부대 외인부대 하면 생각나는 프랑스 외인부대 1. 부대 개요 레지오 에트랑제 (Légion étrangère) 프랑스 육군 소속의 인이 부대, 프랑스군 내의 엘리트

rokmc76.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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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이 아닌 외국 인르로 만 구성돼 부대 

외인부대 하면 생각나는 프랑스 외인부대

프랑스 외인부대 이미지 

1. 부대 개요

레지오 에트랑제 (Légion étrangère) 프랑스 육군 소속의 인이 부대, 프랑스군 내의 엘리트 부대이자ㅏ 1 순의 해외파병군 중 하나입니다. 외인부대 내에선 기계화 보병, 공수 보병, 경보병, 코만도, 전투공병 등 수많은 성격의 부대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시속 전개군 및 충격 군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하에 프랑스 특수전 사령부 소속으로 특공, 정찰, 흑색 작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인 코마 도도 존재합니다. 

 

프랑스 인이 아닌 타국인 중 18세~40세의 신체 건강한 남성을 모집 대상으로 합니다. 

여군은 뽑지 않습니다. 

 

1831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와 전쟁으로 혼란한 상태였으며 유럽 각구에서 몰려온 부랑자, 망명자 등의 유입은  골치 아픈 문제였습니다. 두 문제를 도시에 해결하고자 루이필리프 1세는 외국인 부랑자, 망명자 등을 용병으로 모집하여 전쟁터로 치워버리다는 방안을 고안해 냈습니다. 거기다 프랑스인들 중 장 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범죄자, 실업자 등도

외인부대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창설된 이후 전제 게의 각종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최근까지 약 3만 5천여 회의 전투를 치르면서 외인부대는 우리 고향(Legio Patria Nostra) 명예와 충성(Honneur et Fidélité)이라는 부대 정신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또한 프랑스 엘리트 부대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현제도 프랑스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활약 중입니다. 

2012년 기준으로 외인부대의 총 행정 지휘관은 육군 소장이고, 부대의 총규모는 8천여 명의 수준입니다. 

 

공식 행진곡으로는 le Boudin 이 있습니다. 

 

2. 부대 구성

부대구성 마크 

 

부대 전체의 규모는 사단 병역의 규모이지만 외인부대는 지휘계통이 잇는 부대가 이니라 하나의 병과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인부대 사령관은 군령권이 있는 사단장이라기보다는 공병 감인 준종감처럼 병과감에 가깝습니다. 외인부대 사령관은 외인부대에 대한 작전 지휘 권이 없고 인사, 행정 등 군 정권만 행사합니다. 미 해병대 사령관이 미 해병대의 대해 군정권만 행사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3. 프랑스 외인부대 역사

프랑스 외인부대는 1831년 루이 피 리프가 식민지인 알제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창설한 용병 5개 대대가 그 시조이며 이후 루리 필 리크가 식민지인 알제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창설한 용병 5개 대대가 그 시조이며, 이후 루리 피 리프 시절에 정규군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를 통제하는 역활을 부여받았고, 알제리에 기지를 두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외에도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카메론 전투에서는 65명의 외인부대가 2천 명의 멕시코 육군과 싸워 5명만 사 아남 았습니다. 전가기에는 모로코에서 리프 전쟁에 참 가히 기도 했습니다. 

 

3-1.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당시 외인부대는 대부분 해외 식민지에 주준하였고, 제13 외인 반여단만 유럽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13 외인 바 여단은 프랑스 항복 이후 역고으로 건너가 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했고 식민지에 주둔하던 외인부대는 자유 프랑스군과 비사 프랑스 괴뢰군으로 양분되어 1941년 6월 시리아 레바논 전역에서는 자유 프랑스 13 외인 반 여단과 비사 프랑스 6인 외 인보 병연 대가 다마스쿠스에서 서로 교전하기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이념이 다른 독일인들의 사례도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자유 프랑스 소속으로 영국군과 함께 싸운 외인 부대원 준 독일계의 비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비르 하킴 전투 당시 프랑스 외인부대 출처 외인부대 홈페이지

3-2.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는 베트민 측이 대포와 대공포를 분해해서 산 정상까지 끌고 온 뒤 조립해 포격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웠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엄청난 희생 끝에 결국 항복하였습니다.

 

외인부대 역사상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이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모두 10,483명이 전사했는데 외인부대 역사상 1 만당 위를 넘기는 전사자는 오로지 베트남 전쟁뿐이었다고 합니다. 전사자 중 한국 출신이 3명 있다고 합니다. 

 

포로로 잡힌 프랑스군에 대하여 베트민은 악랄한 대우를 했는데 꼴랑 미숫가루 한 줌만 주고 수백 km를 걸어 가게 했습니다. 

당연히 쓰러지는 사람은 개머리판으로 패줬으며 결국 다 죽어가는 사람은 사살했습니다. 

포로 학대라고 프랑스가 분개했으나 이 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과 포로 학대를 내세우는 베트민의 반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전쟁의 직간접적 원인이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배 때문이란 걸 생각한다면.. 생포된 외인부대원 가운데, 베트남과 간은 공산국가 겸 우방 국이었던 동독 지역을 비롯한 당시 공산국가 지역들의 출신자에 한정하여 고향에 가는 걸 조건으로 우방국 예우 차원에서 조기 석방시켜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동독 출신 및 공산권 출신의 왼 인부 대원중 몇 명이 조기 석방되는 경우 있었습니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프랑스 군 활주로까지 포위 더어 항공 탈출도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라나 패배가 뻔히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결사항전을 각오한 것을 보면 엄청난 구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3-3. 알제리 전쟁 

우방의 도움으로 2차 대전의 승전국에 오른 프랑스 제4 공화국은 시대가 바뀌어감에도 식민지에 대한 욕심을 포기 못한 채로 이도 차이나 전쟁의 패전과  더부어 알제리 전쟁의 늪에 빠져있었습니다. 

알제리 독립군과의 전쟁에서 자행된 각종 학살과 반 인륜적인 범죄는 특히 프랑스 공수부대와 외인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는데 국내의 반전 운동 돠 해외의 비난 여론으로 프랑스 정부는 코너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알제리는 프랑스 영토라는 우파의 압력과 여론도 거셌고 특히 보수적인 프랑스 군부는 알제리를 포기할 경우 공공연한 구사 쿠데타 협박까지 일삼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 4 공화국은 무 저지고 드골이 다시 정 치르 복귀하면서 5 공화국이 성립되었습니다. 

드골은 우파와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당연히 그들은 드고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알제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드골은 군부와 국우파의 뜻대로 알제리의 기약 없는 늪에 빠져 가망 없는 구사 작전을 감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알제리 전쟁으로 프랑스 경제는 피폐해진 상황이었고 어떻게든 알제리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알제리를 둘러싸 우파와 좌파의 좌우대립은 국민을 분 열시 킬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군의 징집에 엄청난 저항이 일어나고 있었고 알제리 내의 프랑스 군의 학살은 해외의 비낭 여론을 형설 하고 있었습니다. 

1961년 에 드골 정부는 알제리 국민의 투표를 통해 프라스의 일부로 남아서 똑같은 프랑스 국민으로 남던지 아니면 완전한 독림을 하던지 그 선택을 알제 링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부수적인 군부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4명의 최고 위급 장군들은 드골을 제거할 구사 반란을 계획했습니다. 

 

프랑스 생 사르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최고위급 엘리트 강성파 장군들이 군사반란을 계획하는 도중 윗글 감지한 드골 정부에서 주요 전쟁 지휘 간들을 속속 해임하거나, 본국이나 유럽으로 발령을 내서 드골에 충성하는 장군들로 하나 둘 자리를 채웠습니다. 

 

그 결과 군사반란 당시에는 반란군 측은 퇴역장군이 되었거나 주요 작전 사령관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다시 주알제리 프랑스군은 47.7만 명 규모였는데, 이중 최정예 엘리트 부대인 공수부대 3개 연대가 포섭이 되어서 (당시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은 2개 구수 사단 ㅈㅇ 제1 외인 공수연대와 14샤쇠르 공수연대, 18샤쇠르 공수연대 3개 연대만 포섭)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특성상 중화기가 없이 경무장을 한 이들 3개 연대의 전투력은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의 0.6%에 불과한 전력이라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반란  개시 6일 만에 반란군은 스스로 항복을 하고 , 반란에 가담한 3개 공수연대 장교 114명을 포함한 220명의 장교가 파면되었고, 이후 반란군 색출 작업을 통해 전체 프랑스군 장교의 3%에 해당하는 1,000여 명이 장교가 주로 공수부대 장교들을 중심으로 파면되었습니다. 

 

이 반란사건의 결과 반란에 가담한 장교들이 이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은 주동자들은 구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 집해는 이뤄지지 않았고 대략 평균 징역 15년 정도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군사 반란 중 사망자는 발란 군 측 외인 공수 연대의 습격에서 무선 소신 소를 지키다 사망한 병사 한 명입니다. 

당시 반란에 가담한 프랑스 정규 육군 공수부대인 녹새 베레 제1 외인 공수연대와 붉은 베레로 유명한 르파로 이제 14, 18샤쇠르 공수연대는 반란사건 후 즉시 부대가 해체되었습니다. 

 

반란군 측에는 군내 사조직인 organization armee sedrete(OAS) 회원이 많았는데 OAS는 당시 극한으로 치닫던 알제리 전쟁에서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군사작전에 환멸을 느낀 장군들이 알제리 독립군에 대한 달 법, 불법적 보복을 위해 결정한 초법적 암살 테러단체로 , 임간인에게 대한 무차별 테러나 독립운동가나 정치인에 대한 암살 테라, 불법 체포 및 구금, 고문 등을 이삼았는데 알제리 군사반란을 도도한 장군들이 OAS를 창단한 주도세력들이었습니다. 

 

OAS가담 장교들은 에리트 공수부대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발 나군이 전부 공수부대였고 반란이 실패한 후에는 일부가 탕 영하여 , 드골 대통령 암살 등을 시도하다가 구속되는 가 하면 알제리에서 테러를 이 삼다가 사형을 당하는 등 여파가 있었습니다. 

알제리 반란 사거로 외인부대나 공수부대와 같은 엘트 ㅈ원병 부대의 장교들보다는 징지병 부대 장교들의 충성심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되었습니다. 

 

 

2021.09.26 - [특수부대] - 프랑스 외인부대 2번째 이야기

 

프랑스 외인부대 2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저번 시간에 이어 외인 부재 2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현대 외인부대 모습 1960년대 콩고 내전에 참가해서 활약을 많이 했습니다. 외인부대 출신 용병단이 카탕가 반군에 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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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차세대 전투기 -유로 파이터 타이푼

유로파이터 타이픝 이륙 장면 썸네일 이미지<출처 : 유로파이터사>

안녕하세요. 밀리터리 마니아입니다. 

오늘은 유럽 국가들이 연합해서 만든 차세대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제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면서 유럽의 항골 산업은 비행기를 전투기로 발전시켰습니다. 

제2차 세계 대선 당시에는 인류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ME 262 전투기를 탄생했습니다. 전투기 개발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정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는 유럽 주요 4개국 공동 개발이라는 상징 성과 생산 대수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차세대 전투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1. 유로 파이터 타이푼- 유럽대표 차세대 전투기 사업

유로파이터 타이푼 편대 비행 장면 <출처 : 유로파이터사>

 

유로파이터 전투기 개발 계획이 시작된 것은 1979년입니다. 

당시 서독, 영국 , 프라스는 유럽형 전투기 개발 계획인 ECF(European Combat Fighter)에 합의했습니다. 이탈리아도 이 계획에 참여하게 됩니다. 1981년  ECP 그룹 내 의견 차이로 프랑스가 계획에서 탈퇴 하였습니다. 프랑스의 탈퇴 이후 1986년 6월 ECFsms EFA( European Fighter Aircaft)로 명치가 바뀌게 되고 스페인이 새롭게 개발계획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나 개발 계획은 냉전의 종식, 독일의 경제 불황,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이후 개발 계획은 1992년 12월 EFA에서 유로파이터 2000으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1994년 3월 독일의 DASA(현 EADS 도이칠란트) 사가 제작한 시험기인 DA1이 첫 비행에 성공합니다. 1998년에는 유로파이터 2000이란 이름은 사리지고 유로파이터 타이푼이라는 제식 명칭을 갖게 됩니다. 

 

2003년 8월부터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는 본격적인 양산에 돌 이하게 됩니다. 같은 해 10월 스페인 공군을 시작으로 각국 공군에 배치되게 됩니다. 

유로파이터 전투기는 본격적인 양산에 돌입하게 됩니다. 같은 해 10월 스페인 공군을 시작으로 각국 공군에 배치되게 됩니다. 유로파이터 전투기는 총 620여 대가 생산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생산 대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개발에 참가한 4개국 외에도 오스트리 라에 15대, 사우디 아라비아에 72대가 수출되어 일부 운용 중에 있습니다. 

 

 

2. F-15를 이긴 뛰어난 공중전 능력(가상대결)

유로파이터 격납고에 있는 모습 <출처 : 유로파이터사>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의 성능상 가장 큰 특징은 뛰어난 공중전 능력에 있습니다. 차세대 전투기인 SU 35/37에 대응하기의 위해 근접교전과 가시거리 밖 교전 능력에 특화 도니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장시간 초계 비행이 가능하고 긴급 발진시 3분 안에 축 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생존성 향상을 위해 제한적이지만 기존 전투기보다 우수한 스텔스 성능을 갖춘 있습니다. 이를 위 기체 이 80% 이상의 비금속 재료인 복합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했고 레이더 반사율이 가잔 큰 엔진 공기 흡입구 부부에는 레이더 전파를 흡수할 수 있는 레이더 전파 흡수재(RAM)를 사용하였습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의 뛰어난 공준전 능력은 세계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미공군과의 훈련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2005년 영국에서 벌어진 영국 공군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T-1 복좌 훈련기 1대와 영국 레 큰 히스 주둔 미공군 F-15E전투기 2개가 공중전 훈련에서 유로파이터 타이푼 T-1복좌훈련기는 F-15E전투기 2대를 격추시키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010년에는 스페인 캐널리 섬 상공에서 벌어진 스페인 공군과 미공군의 공준전 훈련에서 스페인 공군 소속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2대가 미공군의 F-15C8대와 맞서 , 비공식 기록이지만 격추된 기체수 0:7이라는 압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3. 상시 초음속 배행 가능한 슈퍼크루즈 능력

유로 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에 주목할만한 점은 슈퍼크루즈 비행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전투기는 일시적으로 초음 속의 속력을 낼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초음속 비행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음속 이상의 속력을 내려면 애프터 버너라는 장치를 사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에 장착된 EJ200 터보팬 엔진 <출처: 유로파이터사>

 

애프터버너란?

제트 엔진을 통해 연쇄된 배기가스에 다사 한번 연료를 투입하여 재연 소시 키는 장치인데, 사용할 경우 빠른 속력을 얻을 수 있지만 , 연료 소모량이 엄청나게 커지는 것이 단점입니다. 

 

슈퍼 크루즈 비행이란?

최신 기술을 이용해 애프터 버너의 가동없이, 정상적인 연료 소모 범위 내에서 초음속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전투기 속격의 혁신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제 실전 임무에서 슈퍼크루즈 배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전투기는 F-22 전투기와 유로파이터 타이푼 밖에 없습니다. F-22 전투기의 경우 효유리 종흔 제트엔진과 무장을 동체내부에 장착하는 방식을 통해 저항을 덜 받도록 제작된 기체 디자인에 그비밀이 있습니다. 

 

F-22전투기 경우 마하 1.58의 속력으로 슈퍼크루즈 비행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는 무장을 동체 외부에 장착하는 기존 전투기의 형상을 유지하면서도 , 뛰어난 항골 역학 설계와 작지만 강력한 엔진 덕분에 슈퍼크루즈 배행이 가능합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는 무장 장착 시 마하 1.2 무장 미장착시는 마하 1.5로 슈퍼크루즈 비행이 가능합니다. 

 

4. 최첨단 조정석과 전자장비

슈퍼크루즈 비행 성능과 더불어 우수한 방어용 전자장비, 첨단화돼 전정석도 특징입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의 조정 사는 전투 시 조정석의 버튼 조작뿐만 아니라 음성으로 직접 레이터, 디스플레이, 항법, 통신장비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는 우수한 방어용 전자장비, 첨단화된 조종석도 특징이다. <출처: (cc) ReaL-FrienD at filckr.com>

그리고 다기능 정부 밴 배 시스템(MIDS)을 통해 전투기 외부로부터 수집된 각종 정보가 전투기에 탑재된 각종 센서로부터 입수된 정보와 서로 유합 되어 조종사에게 시현됩니다. 

융합된 정보는 조정석 전방의 전방 시현기 (HUD)뿐만 아니라 조정사의 헬멧 시현기(HMD0에도 시현되기 때문에 조종사는 신속히 정부를 받아들여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센서 융합, 데이터 융합이라 알려진 이 능력은 공중 전시나 공대지 작전 시 조종사의 상황 인식 능력을 크게 높여 줍니다. 

 

5. 스윙 롤 전투기로 진화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가진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이지만 공대지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약점입니다. 

부족한 공대지 능력 때문에 경쟁기종에 밀려 우리나라와 싱가포르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습니다.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멀티롤/스윙 롤 전투기가 최근의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즉 시장에서 원하는 전투기란 어느 하난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잘하는 팔방미인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로 파이터 타이푼도 이런 트렌드에 맞추어 공대 작전능력을 추가해 나가고 있습니다. 

유로파이터 넉넉한 기체 설계가 장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고 공대지 작전 능역의 강호는 현재 진행 중인 상태로 , 사정거리 300KM 이사의 스텔스 순항 미사일인 스칼프 /스톰 쉐도우와 타우러스 장착되며 스마트 폭탄인 강화형 페이프 웨이 역시 장착 가능합니다. 

 

이후에는 지상의 이동하는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헬파이어와 유사한 브림스톤 공대지 미사일이 장착될 예정입니다. 

 

참고 문헌: 무기에 세계,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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