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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최후의 방패 아이언 돔을 아시나요? 이번 시간에는 아이언돔에 관하여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가자지구로부터 날아오는 로켓탄을 요국하는 아이언 돔 미사일 <출처: IDF 이스라엘 국방군>

1. 개발 역사 

2000년대부터 가자 지구에서 활동한 팔레스타인계 무장단체인 하마스(Hamas)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산발적인 로켓 공격을 감행하면서 위협을 가했습니다. 하마스는 주로 조악하게 제작한 콰삼(Quassam) 로켓을 이스라엘 남부 접경 근처에 산발적으로 발사했으나 정밀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마스가 122mm  BM-21 그라드(Grad) 발사기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로켓 사거리가 길어져 백만 명이상(이사라엘 전인구가 약 830만 명)이 거주하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이 하마스의 위협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윈쪽:하마스가 설치한 콰심 로켓의 간이발사기,  오른쪽 :하마스의 로켓공격으로 파괴된 이스라엘 가옥 <출처: IDF>

하마스는 2000년대부터 2008년까지 약 10년 기간 동안 4,000발의 로켓과 4,000발의 박격포탄을 이스라엘 남부로 발사하면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야기했습니다. 

한편 2006년부터 남부 레바논을 거점으로 삼은 이란 연계 테러단체 헤즈볼라가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북부가 위협받기 시장했습니다. 

 

헤즈볼라는 2006년 한해동안 4,000발(자로 카츄샤 로켓)이 넘는 로켓을 이스라엘 영내로 발사했습니다. 이공 격으로 북부의 항구도시인 하이파 등이 피탄 당해 44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25만 명 이상이 로켓 사거리 범위 내에서 긴급히 소개하거나 아예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부와 북부의 위협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방위군 (IDF) 페트리어트 미사일에 착안하여 자체적인 단거리 미사일 미사일 방어체계의 개발을 추진했으나, 미국은 이것이 요격 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에 반드시 실 폐할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이스라엘 군 내부에서 조차 끝도 없이 방어해봐야 의미가 없으니 원점을 제가 할 수 있는 공격 자산의 개발이 낮다는 의견을 대두되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다니엘 골드 준장이 이스라엘 국방안보연구개발국, 통치 DDR & D 국장에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애초부터 미사일 방어체계에 강력한 옹호자였던 그는 예상 확보를 위해 규정을 우회하였고 심지어 이스라엘 국방부 측이 미사일 방어체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직접 정치권을 설들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에 정치권은 선제 공격을 받은 후에나 공격원점을 제거할 수 있는 방어무기를 개발하기보다는 애당초 민간 피해를 업에 버려 이스라엘 정부가 적에게 대응을 할지 말지에 대한 정치적 선택권을 쥘 수 있는 무기의 개발이 낫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변화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국방부 2007년 부로 아이언돔 (Iron Dome) 근거리 미사일 방어체계 개발을 승인했으며, 이에 이스라엘 국방안보 연구개발국과 라파엘 사에 공동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위쪽:아이언 돔의 요격미사일인 타미르(Tamir) 미사일 <출처: IDF>아래쪽:아이언 돔 포대 <출처: IDF 블로그>

 

아이언 돔은 2009년 3월 첫 시험발사에 들어가면서 검증과정을 거쳤으며, 같은 해 8월에 운용 적합 판정이 나와 이스라엘 공군 (IAF) 산하에 대대급 아이언돔 포대가 처음으로 찰성 됐습니다. 

아이언돔 포대는 2010년 1월까지 콰삼 로켓과 카츄사 로켓의 특성을 표사한 표적을 요격하면서 테스트와 업그레이드를 거쳐 2011년 3월부로 남부 전역 신도시인 베에르세바에서 신전 배치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언 돔의 첫 실전 기록은 2011년 4월 7일, 아쉬켈론 시내로 날아온 그라드 로켓 한 발을 요격하면서 달성됐습니다. 

4월 8일에도 4발의 로켓이 산발적으로 날아왔지만 또다시 아이언 돔이 모두 요격했으며, 2회의 성공적인 요격으로 아이언돔의 성능이 검증되자 이스라엘 방위군 방공단은 포대 증설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방공단은 위협 수준이 높은 지역을 모두 방어하기 위해선 최소 13개의 포대가 필요하다고 추산했지만 업체의 생산력이 이를 즉각적으로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은 한시적으로 포대를 이동시키면서 전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2011년 말까지는 가자 지구에 날아오는 로켓이 산발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격은 무리 없이 요격했습니다. 

 

 

아이언돔 요격 장면이 살아있는 동영상 

아이언돔의 성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은 2012년 3월부터 였습니다. 

가자 지구로부터 3월 9일 하루 동안 약 300발의 로켓이 이스라엘로 발사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악한 로켓의 성능 때문에 상당수는 발사 후 가자지역 안에 떨어지고 177발가량만이 이스라엘 국경 너머에 착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핵심 지역 중심으로 방어하고 있던 아이언 돔은 총 71회의 요격을 실시했으며, 그중 56회의 요격을 성공했고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은 완벽 하게 방어해냈습니다. 

그해 말인 2012년 11월부터 벌어진 가자 겨울 전쟁 (혹은 필라 오브 디펜스 작전, 2012년 11월 14일~21일)중 아이언 돔은 총 421회의 로켓 공격을 성공적으로 요격했으며, 875발은 인적이 없는 개활지에 착탄 했고, 58발은 도심지에 떨어졌지만 민간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제연합(UN)은 이와 별도의 142발이 가자지구 내에 추락한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 이스라엘은 총 4명의 민간인 피해를 입었으며, 이중 세명은 아파트에 로켓이 명중하면서 사망했습니다. 

전후 CNN 측이 추산한 아이언돔의 요격 성공률은 85% 수준이었습니다. 

 

아이언돔이 다시 본격적으로 동원된 것은 불과 2년 뒤인 2014년 7월로 통치 프로텍티브 에지 작전으로 불리는 가자 여름 전쟁(7월 8일~8월 26일) 때였습니다. 

 

2014년 6월 12일 세명의 이스라엘 청소년이 서안 지역으로 납치된 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6월 30일에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계 청소년 한 명이 헤브론에서 살해당하면서 아랍계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양측이 충돌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용의자로 유대계 근본주의 단체 소속 6명을 체포하고 3명을 기소했으나 쌍방의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결국 무력 충돌로 격화되고 말았습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시내에 대한 로켓 공격을 실시하는 한편 이스라엘 공군은 항공기로 하마스 거점 폭격을 단행하면서 7월 초부터 본격적인 전쟁테세로 돌입했습니다. 

 

약 50일 남진한 전쟁 기간 동안 총 4,594발의 로켓이 이스라엘 국내로 발사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언돔 포대는 이즈음까지 전국에 전개를 완료했기 때문에 735발을 요격하면서 중요 자산의 90%를 방어하고 오직 70발에 대해서만 요격을 실패했습니다. 이때 하마스가 발사한 4,594발의 조악한 로켓 상당수는 비행궤도가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25% 이하의 목표 명중률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기간 중 여섯 명의 민간인을 잃고 87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이들은 모두 아이언 돔의 방어 범위 바깥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전쟁은 2014년 8월 26일 자로 종전했습니다. 

 

미국은 초창기부터 아이언돔 개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개발비를 투자해왔으며, 2010년에 하원 승인을 거쳐 2억 500백만 달러를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에는 7천만 달러, 2013년에는 6억 8천만 달러, 2014년 2억 2,500만 달러, 2015년에는 3억 5,100만 달러를 할당해 아이언 돔의 개발을 지원했습니다. 

 

미 정부는 지속적으로 개발 및 양산비용을 계속 투자해 가잔 최근인 2018년 3월에는 역대 최고액인 7억 5백만 달러를 승인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의 공동개발뿐 아니라 기술이전을 실시할 예정에 있으며, 2014년부터 미국의 미사일 제조업체인 레이시온사가 아이언 돔 생산에 참여해 미국 내 하청업체들과 함께 타미르 요격 미사일을 공동 생산 중에 있습니다. 

 

2. 아이언돔의 특징 

앞서 말했듯 아이언 돔은 적의 선제공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우군 및 민간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아군 측이 여유를 갖고 정치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게 해 주며 즉 선재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영토와 국민의 피해를 획기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반드시 보복 공격을 하거나 반격을 해야만 하는 압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2012년 가자 겨울 전쟁에서는 가자 지구로부터 1,200발 이사의 로켓 공격이 있었으나 핵심 자산이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저 강도 분쟁으로 유지하다가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방위군은 예비군 동원을 발령했으나 공세작전은 실시하지 않고 휴전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언 돔은 총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탐지 및 추적 레이더 (EL/M -2084) 전장 관리 및 무기 통제 체계 (BMC)그리고 미사일 발사장치 (MFU)입니다. 

아이언돔과 다비드 슬링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EL/M-2084 레이더의 모습. <출처: 미 미사일 방어국[MDA]>

아이언 돔 체계의 가장 핵심인 레이더는 이스라엘의 레이더 전문 업체이자 방산 대기업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자회사인 엘타 시스템 이 개발했습니다. 요격의 핵심인 타미르 미사일은 체계 통함을 담당한 라파엘사가 제작하며, 일부 구성품은 미국의 레이시온이 공동 생산하고 있습니다. 

 

아이언 돔은 아군 측으로 날아오는 포탄이나 미사일을 탐지할 시 포착한 정보를 곧장 BMC로 전송하며, BMC는 해당 위협의 예상 비행경로를 예측한 후 타미르 미사일이 요격할 수 있는 충돌 지점을 계산합니다. 아이언 돔은 해당 위협 요소를 요격할 경우 낙하 잔해물이 가급적 중립지역(비거주지역이나 개활지)에 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아이언 돔의 가장 큰 특징은 근거리에서 적 포탄이나 로켓 위협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빠른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언 돔 포대의 레이더는 다수의 적 포탄을 탐지하면 위협 수준이 높은 표적부터 순타적으로 요격을 시작하며, 해당 표적의 예상 탄착지점이 들판이나 강처럼 굳이 방어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장소라면 문제의 표적에 대해서는 요격을 포기합니다. 

 

또한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 요격 실패 시 재시도를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동시에 두발의 타미르 미사일을 발사해 표적을 제거합니다. 

 

아이언 돔은 최근 무인 항공기 (UAV) 요격용으로도 운용 중에 있습니다. 이사르 엘 군이 운용 중인 MM-104 패트리어트 요격체계보다 운동 단가가 싸다는 점 때문에 부각된 용도로, 페트리어트의 경우 한 발당 2~3백만 달러가 소요되는 반면 아이언돔의 타미르 미사일은 1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라파엘 사는 2015년 부터 테스트에 들어가 무인항공기 요격에 성공했으며, 근점 전파 신관 발사뿐 아니라 운동에너지 탄두로도 비행 중인 무인기 요격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특히 아이언 돔은 고도 10km 탐지범위 70km 이상을 커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고도 무인기가 정찰을 시작하거나 무장형 무인기가 무장을 발사하기 전에 요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중입니다. 

 

 

3. 아이언 돔 운용현황

2010년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간 아이언 돔은 계산상 15개 포대를 전개해야 이스라엘 전역을 커버하지만 현제 생산량의 문제 때문에 10포대까지만 설치한 상태라고 합니다. 지금쯤을 전부 배치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아이언돔 도임을 시작으로 적측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성했으며 제리 상위 단계인 광역 방어에는 고도 50km에서 100km까지 방어하는 애로우 2와 3, 중고도 방어는 최대 고도 15km 최대 방어 범위 300km까지 방어하는 디비드 슬링 저고도 방어는 고도 10km까지 커버하는 아이언 돔으로 짜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향후 레이저로 물체를 지져버리는 아이언 빔을 근점 방어 용도로 배치시켜 탄도 미사일 - 중거리 미사일- 근거리 공격- 초 근점 공격을 단계적으로 막을 수 있게끔 연동시킬 예정입니다. 

 

2016년 12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이웃의 적대국인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제 아스칸 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 체계를 도입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아이언 돔을 구입했습니다. 

 

이는 아이언 돔의 천 수출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2012년에는 가자 겨울 전쟁 간 아이언돔의 성과를 보고 관심을 가진 인도가 도입 협상에 들어갔으며, 인도 방산 획득의 특성상 오랜 시간 줄다리기가 이어진 끝에 2017년경 20억 달러 규모로 아이언돔 도입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2017년 11월경에는 아르헨티나 공군이 프라스로부터 슈퍼 에땅 다르 전투기 5대를 구입하자 역국 국방부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포틀랜드 제도 방어용 아이언돔을 약 1억 500백만 달러로 계약했습니다. 

 

영국이 도입하는 아이언돔은 스카이 세이버로 명명될 예정입니다. 

한편 2021년 5월에 발생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아이언돔을 맹활약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여러 차례 아이언돔 시스템 도입에 대해 검토를 했으나, 합동참모본부의 입장은 아이언 돔이 미사일 공격보다 포탄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근거리 방어체계이기 때문에 한반도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우발 상황 시 한국에게 우선적 위협이 되는 북한 장사정포는 주로 170mm 혹은 240mm 방사포 위주인 데다 단시간 동안 집중적인 공격이 이루질 가능성이 큰데 , 아이언돔이 이런 상황에 적합한 체계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 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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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mse)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사드는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로부터 군 병력과 장비, 인구밀집지역, 핵심시설 등을 방어하는 데 사용됩니다. 

 

1. 1987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사드란 무엇인가?

1. 북한이 600여 발을 보유한 스커드 탄도 미사일은 대표적인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중 하나다. 2. 사드는 사거리 300㎞~3,500㎞ 정도의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사드의 개발은 지난 1987년 소련의 신현 전역 탄도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미 육군 전략 방어 사령부가 수행한 대기권 내 탄도미사일 상층 방어 개념연구가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전역 탄도미사일이란? 사거리 300~3,500km 정도의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 의미합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할게 소련이 해제되면서 한때 개발에 진전이 어려운 상황을 맞았지만, 1991년 걸프전과 함께 개발에 탄력을 받게 됩니다. 

 

 

2. 페트리어트는 강력하지만 서거리가 낮고 짧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 

걸프전 당시 미군과 다국적군의 패트리어트는 이라크의 스커드와 알 후세인 탄도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요격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습니다. 페트리어트는 특정 지점 즉 공군기지와 같은 주요 군사시설만을 방어하는 방공무기체계로 개발되어, 광범위한 지역의 탄도미사일 방어가 불가능했습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실은 차량 이미지 출처: 미육군

또한 페트리어트의 요격고도가 10~20km에 불과해 탄도미사일 요격 기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높은 고도에서 탄도미사일의 핸탄두가 폭발한 경우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패트리어트보다 놓은 고도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며 선, 광범위한 지역을 방어할 수 있는 새로운 탄도 미 상리 방어체계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2. 고고도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사드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사드의 요격 미사일은 대기권 내의 성층권과 전리층 사이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합니다. 

사드의 요격미사일은 마하8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데, 미사일에 내장된 킬 비이클이라는 요격체계가 탄도미사일을 파괴합니다. 

 

요격체는 페트리어트 PAC-3 미사일과 같은 탄도미사일에 직접 충돌해 파괴하는 HIT -TO- KILL방식을 사용합니다. 

 

사드 미사일 발사장면 이미지  출처 : 레이시온

HIT -TO-KILL방식은 대량 살상 무기 즉 핵과 화학 타을 탑재한 탄도미사일에 매우 효과적인 거 승로 알려져 있습니다. 엄청난 운동에너니고 탄도미사일의 탄두를 완전히 파괴해 파편으로 인한 피해, 핵 이난 화학 오염물질에 의한 2차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드 요격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는 200KM에 달하며 최대 고도는 1050KM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드는 개발 초기 전구 고고도 지역방어체계라고 불렸었는데 이런 특징 때문입니다. 

 

3. 사드의 눈, AN/TPY -2 레이더 관하여 

 

종말단계방식의 AN/TPY-2 레이더는 약 1,000㎞에서 상승중인 탄도 미사일을 감지해 600여㎞에서 낙하하는 탄도미사일을 정확히 탐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출처: 레이시온>

사드는 발사대 6개(1 기당 8개 미사일 탑재)와 레이더 통제 및 통신장비 등으로 1개 포대가 구성됩니다. 

이 가운데 사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AN/TPY-2 레이더는 위상 배열 레이더로 2만 5천 여 개의 조그만 송수신기를 한 개의 평면에  정력 한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AN.TPY-2 레이더는 2가지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드의 사용되는 종말단계 방식의 AN/TPY-2 레이더는 약 1,000km 상승 중인 탄도 미사일을 감지해 600여 km에서 낙하하는 탄도미사일을 장확히 탐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밖에 전진배치 방식은 중거리 탄도 미사일이나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사전에 탐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최대 참지 거리가 1,800~2,000k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진배치 방식의 AN/TPY-2 레이더는 FBX-T(forward -Based X-Ban - Transportable)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스라엘과 터키 그리고 일본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4. 다중 방어체계를 구성하는 사드 

 

사드시스템 설명 동영상

사드는 지난 2008년부터 미 육군에 미 육군에 배치되었습니다. 현제 3개 포대가 미 육군에 배치되어 있으며, 향후 3개 포대가 추가될 예정입니다. 사드는 패트리어트와 함께 탄도미사일의 종말단계 (목표로 떨어지는 단계)에서 2중의 방어체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사드가 100km 이상의 고도에서 탄도미사일을 먼저 요격하고, 마지막으로 패트리어트가 10~20km 고도에서 탄도미사일을 다시 한번 요격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종말단계 이전에 미사일이 날아오는 중간 단계에서도 SM-3, GBI 등으로 추가적인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겹겹이 보호되는 다중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다중 방어체계는 요격 기회가 대폭 늘어나, 대규모 탄도미사일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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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중국 초음속 미사일 DF 17 개발 배경에 이어 특징과 운용현황에 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민해방군은 2019년 10월 1일 국경절의 열병식을 통하여 최초의 극초음속미사일인 DF-17을 공개했다. &lt;출처: 인민해방군&gt;

 

1. 초음속 미사일 특징 알아보기. 

DF-17은 기본적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입니다. DF-17은 2단으로 구성된 미사일로 1단에 해당하는 기본 발사체와 2단인 극 초음속 비행채로 구성됩니다. 

우선 기본 발사체는 DF-16 미사일의 1단에 해당하며, 손쉽게 말해서 DF-17은 DF-16의 1단 탄두부를 HGV로 바꾼 것입니다. 

DF-16은 미사일의 1단에 해당하며, 손쉽게 말해 DF-17은 DF-16의 1단 탄두부를 HGV로 바꾼 것입니다. 

중국 로켓군의 주력 단거리 고체연료방식 미사일로, 과거 주력이었던 DF-11가 DF 15를 대체하여 2010년대 초반부터 배치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DF-16은 1톤의 탑재 중량에 800~1000km를 비행할 수 있으며, 1단은 22종의 탄두가 존재하는데 일반 탄두 이외 MARV 탄두는 상대적으로 정밀한 목표 타격이 가능하다 합니다. 

 

DF-16(좌, 중간)과 DF-16B 단거리 미사일의 모습 &lt;출처 : Public Domain&gt;

한편 WU-14로 알려졌던 극초음속 발사체가 결합되면서 DF-17은 사거리가 거의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애초에 극초음속 탄두가 기존 사거리보다 1,000~1500km 정도 사거리를 늘려줄 뿐만 아니라 속도까지 증가시키므로 DF-17은, 1,800~2500km의 사거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시험비행에서 DF-17은 부스터 분리 후에 마하 10의 속도로 대기권에 재진입했으며, 60km 고도에서 11분간 1,400km를 활공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DF-17의 HGV는 스크램젯으로 추진되며, 목표를 향한 정밀기 송은 물론이고 미사일 방어체계의 요격미사일에 대한 회피 기도도 가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발사 차령으로 후배이 산장 완산 특수차량 유한회사가 만든 WS2500 10륜 특수차량을 채용했습니다. 

완샨 특수차량은 2011년 북한으로 ICBM 발사 차량의 차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회사로, 중국의 거의 모든 이동식 발사 차량을 이 회사에서 만듭니다. 

WS2500 차량은 20톤의 차량으로 DF-16과 DF-21의 발사 차량으로 유명합니다. 

 

DF-17의 발사 차량은 2019년 열병식에서는 미사일이 외부에 공개되는 형식이지만, 2021년에는 차량 뚜껑에 덮개가 장착된 모습이 확인되었습니다. 

 

 

중국 극초음속 미사일 동영상 뉴스

 

2. 극초음속 미사일 파생형 알아보기. 

2-1. DF-17 극초음속 미사일

중국 최초의 극초음속 미사일, 다소 짧은 사거리인 DF-16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추진체로 삼았으나 HGV의 비행능력으로 인하여 중기 탄도 미사일 되었습니다. 

 

 

2-2. 화성-8 극초음속 미사일 

북한 최초의 극초음속 미사일로 2021년 9월 28일 시험발사가 공개되었습니다. 극초음속 활강체의 형상은 중국의 DF-17을 벤치마킹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1단 발사채와 발사 차량은 화성-12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것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3. 제원 살펴보기 

 

분류 중거리탄도미사일(MRBM)/극초음속무기체계 
전체길이 11 m 추정
발사중량 15,000 kg
비행속도  마하 5~10
사정거리 1,800 ~ 2,500 km
실전배치 2019년

 

 

2022.01.18 - [육군 무기체계] -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DF-17을 아시나요?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DF-17을 아시나요?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DF-17 극 초음속 미사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속력은 마하 10의 속도로 미군을 격파하려 A2/AD의 주역입니다. 1. DF-17 개발 역사 알아보기. 1945년 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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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DF-17 극 초음속 미사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속력은 마하 10의 속도로 미군을 격파하려 A2/AD의 주역입니다. 

 

2019년 열병식에 등장한 DF-17 극초음속미사일 <출처: 인민해방군>

1. DF-17 개발 역사 알아보기. 

1945년 공산당이 국공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건국된 중화 인민 공화국은 대만으로 물러난 국미당 정부가 미국을 이끌고 공격해올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북한의 남침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6.25 전쟁에 직접 개입하였습니다. 펴면 적으로는 북한을 지켜주는 항 미원 조 전쟁이었지만, 실은 자국의 안보위협인 미국에 대하여 한반도에서 예방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후 1.2차 대만해협 위기(1954~1958)에서 미국은 국민당 정부를 지원하며 중국을 견제했고, 한편 중국은 호치민을 도와 북 베트남 독립부터 남베트남 공산화까지 지원하면서 미국과 대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중소국경분쟁 등으로 소련이 중국의 당면한 위협으로 자리하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 미중 간의 극적인 데탕트(긴장완화)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제관계의 급변으로 인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1971년부터 대만 국민당 정부를 대신하여 UN 상임이사국이 되었으며 , 미중간의 협력관계는 1980년대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 난 1989년 천안문 6.4 민주화 항쟁을 공산당 정부가 유혈 진합에 나서면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제재가 잇달았고, 특히 미국은 대중 무기수출 중지 등의 조치에 나섰습니다. 

 

한편 1996년중국이 대만의 총통 직접선거를 겨냥하여 대대적 군사훈련으로 압박을 가하자 미국은 2개의 항모전단을 급파하여 중국의 압박에 대항했습니다. 

 

이러한 제 3차 대만 해협 위기를 통해 중국은 해양력과 항공력의 우위에 바탕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능력을 상쇄시킬 능력을 개발해야 함을 절감했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 지상군 위주로 구송되었던 중국의 인민 해방군은 1990년대 들어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해군과 공군의 강화에 최우선적인 순위를 부여했습니다. 

공군은 SU-27등 러시아 전투기를 도입하고 국내 생산형인 J-11을 준비했고, 자국산 4세대 전투기인 J-10을 독자 개발함은 물론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J-XX(현 J-20)의 개발에 나섰습니다. 

 

해군은 러시아제 수상전투함과 잠수홤 등 도입했고, 자국산 구축함과 회위함을 개발하는 한편 항공모함까지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아무리 해,공군을 증강해도 미군을 압도하기에 어려웠습니다.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미국이 동아시아로 접근을 못하게 막는 반접근 지역 거부 전략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반 저금 지역 거부(A2/AD) 전략이란 우선 중국의 동남부 해안선부터 200해리까지의 해역인 제1도련에서는 지역거부를 200~600해리까지의 제2도려련에서 반접근을 주로 하는 전략을 뜻합니다. 

 

목표는 미국이 제1,2 도련 내에서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포기여 후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항모나 스텔스 전투기 이외에 이러한 A2/AD 전략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자신이 바로 탄도미사일입니다. 

 

중국은 둥펑 계열의 탄도 미사일로 미 항모전단을 공격하여 침몰시키는 전술을 기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래식 탄두를 사용할 겨울 3차례 공격이 예상되는 데, 제1차 공격으로 항모의 갑판을 노려 항공기와 갑판을 파괴하고, 제2파는 항모의 엔진 등 추진부를 공격하여 항행을 무력화시키고, 제3파에 항모를 침몰시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격의 대상은 항모에 그치지 않고 도련선 내에 존재하는 미군의 항공기지나 해군항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미 항모전단을 공격할 대표적인 대함탄도탄(ASBM)은 DF-21D와 DF026B가 대표적입니다. 

 

한편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은 DF-26등 정밀한 탄도미사일을 넘어서 요격이 불가능한 미사일을 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극초음속 무기체계에 대한 연구개발에 나섰습니다. 

 

특히 2012년 극 초음속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JF12퐁동터널을 완공하고 이듬해부터 초기 시제 모델인 WU-14 극초음속 활강체의 퐁 동모 델과 이를 탄두로 탑재한 DF-ZF 미사일 풍동 모델에 대한 시험평가를 실시하였습니다. 

 

중국은 2014년부터 WU-14 극초음속 활강체(HGV)의 시험발사를 시작했다. <출처 : Public Domain>

한편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은 DF-26  등 정밀한 탄도 미사일을 넘어서 요격이 불가능한 미사일을 추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극초음속 무기 체계에 대한 연구 개발에 나섰고 특히 2012 년 극초음속 시뮬레이션 이 가능한 JF-12 풍동 터널을 완공화고 이듬해부터 초기 시제 모델인 WU-14 극초음속 활강체(HGV)의 풍동 모델과 이를 탄두로 답재한 DF-ZF미사일의 풍동 모델에 대한 시험 평가를 실시하였습니다. 

 

(WU-14와 DF-ZF는 모두 미 국방부에서 붙인 식별명) 풍동시험장은 마하 5~9에 해당하는 풍동은 물론이고 3000도씨에 이르고 고열까지 모사하면서 실시한 상황을 최대한 모사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중국은 2014년 1월 9일 최초로 WU-14 극초음속 비행채(HGV)의 시험 비행을 실시하였으며 

이사실은 미국의 위싱턴 프리비 콘이라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처음을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국방부는 이튿날 이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로써 중국은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극초음속 비행체의 개발에 성공한 3번째 국가로 인정되었습니다. 

특히 WU-14는 기존에 중국이 보유하는 다양한 탄도미사일에 탄두를 대신하여 정착 가능한 HGV로, 다양한 결합 하여 미국의 SM-3 대단도 미사일의 요격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을 추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중국은 2014년 1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무려 9차례의 HGV발사 시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발사에 사용된 것은 WU-14 장착한 DF-ZF로 이로써 실전테세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2019년 10월 1일 국경절에 중국은 DF-ZF로 알려졌던 DF-17 공개함으로써 극초음속 미사일의 실전배치를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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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휴대용 대전차 로켓 추진 병기. 팬저 파우스트를 개량한 팬저 파우스트 3은 최대 사거리 900m에서 700mm 두계의 압연 강판을 뚫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도 운용 중입니다. 

독일이 1992년부터 운용을 시작한 휴대용 대전차무기 판저파우스트 3 이미지  <출처 : 독일연방군 Bundeswehr/Sebastian Wilke>

1. 개발의 역사 

무기의 개발은 위협의 발전에 따른 결과입니다. 

전차의 발전은 이를 상대하기 위한 대전차 무기의 발전을 불러옵니다. 대전차 무기 가운데, 보병의 근거리에서 운용할 수 있는 로켓포나 무반동총 등과 같은 휴대용 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일원이었던 서독은 1955년 미국 등에 의해 재군비가 시작되면서 소련이 점령한 동동을 포함한 바르샤바 조약의 막강한 전차 전력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서독 연방군 (분데스 베어)은 M20 슈퍼바카 등 미국제 무기로 무장을 시작했지만, 1963년부터 판저 파우스트 (Panzefaust) 44mm DM2 아우스프룽 1. 란체(이하 판저 파우스트 44로)라는 자체 개발품으로 무장했습니다. 

연방군은 PzF 44를 소대와 중대급에서 운용했습니다. 대대급에서는 스웨덴 사브가 개발한 칼 구스타프의 독일 제식 명인 슈베 레 판저 파우스트 칼 구스타프를 운용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신형 전차 개발은 바른 속도로 이루어졌고, 이를 상대하기 위해선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연방군은 1973년 1월 23일 새로운 휴대용 대전차 무기에 전술적 요구 사항을 마련하면서 신형 무기 개발에 나섰습니다. 

 

요구된 사항은

  1. 알려진 모든 전차에 대해서 효과적일 것. 
  2. 안전하고 손쉬운 취급이 가능할 것.
  3. 낮은 교육비용
  4.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도 발사가 가능할 것 등이었습니다. 

1978년 10월 업체인 제안 요청이 발행되었고 , 1979년 초에 판저 파우스트 44 개발을 주도한 당시 다이너마이트 -노벨이 개발 계약을 따냈다고 합니다. 

 

다이너마이트 노벨은 판저 파우스트 44 개발 경험을 살려 빠르게 개발을 진행했고, 1979년 11월 초기 시제품 제작을 마쳤습니다. 

발사관 내부 직경과 발사체 직 겨울 따 판저 파우스트 60/110으로 불렸던 초기 시제품은 1980년 처음 시험되었으며 

1984년 시스템에 대한 사용 인증이 내려졌습니다. 

 

이무기 대전차 무기를 뜻하는 판저 파우스트라는 이름을 이어받았고 세 번째라는 뜻으로 판저 파우스트 3, 줄여 판저 파우스트 3으로 명명되었습니다. 

 

판저 파우스트 3은 전작이 판저 파우스트 44 란체처럼 발사관에 로켓 추진식 탄두를 끼워 발사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습니다. 

판저 파우스트 3은 인증된 지 2년 후인 1986년부터 첫 병사 시험이 진행되었고 1987년 7월부터 배치를 위한 저율 양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연방군은 1987년 11월에 초기 운용 능력을 선언하면서 도입을 시작했지만, 1992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도입이 선언되었습니다. 

 

공식 도입 선언인 정어진 것은 소련의 붕괴와 동독과의 통일 때문이었습니다. 

판저 파우 3은 통일된 독일 연방군이 채택하기 이전인 1989년 일본어 라이선스 생산을 결정하면서 처음 도입했습니다. 

1991년에는 스위스가 도입을 경정하는 등 수출이 이루어졌습니다. 

 

판저 파우스트 3은 일본, 스위스에 이어 독일 연방군에 성공적으로 도입된 이후, 사용자 피드백을 적극 수렴하면서 계속 발전했습니다. 

 

발전은 탄두 개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 이루어진 개량은 폭발 반응 장갑(ERA)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탄두를 텐덤형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개발형 판저 파우스트 3의 탄두는 단일 성형 작약 대전차고 폭탄(HEAT)타니었지만, 개량형은 탄두 앞쪽에 ERA 상대하기 위한 선단 탄두를 하나 덜 달았습니다. 

 

이렇게 개량된 것을 판저 파우스 3 -T로 명명했습니다. 

이후 다이나 레이 전라는 컴퓨터 화된 조준장치로 교체한 판저 파우트스 3-T600 벙커 등 구조물을 파괴하기 위해 장애물 극복용 HEAT와 내부에서 폭발하는 파편 탄두로 구성된 벙커 파우스트 등 여러 개량형이 개발되었습니다. 

 

전차잡는 판저파우스트 3 설명 동영상

2. 판저 파우스트 3 특징

휴대 가능한 다회용 대전차 무기로 개발되었습니다. 

  1. 발사관
  2. 조준기가 합쳐진 발사장치
  3. 탄두 로켓 추진체 그리고 반동과 후폭풍 감소용 카운터 메스가 합쳐진 카트리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로켓탄두가 부착된 발사관과 분리된 발사장치 <출처 : sni_tb.fortunecity.ws>

발사관은 금속재 파이프에 복합재가 덧대어진 형태로 여러 번 사용해도 폭발력 등으로 인한 변형이 없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발사관 중앙에는 헥크러운트 코흐가 제작한 발사 장치를 결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결얄화가 요구되었고, 카트리지 포함 무개를 10kg 이하로 줄인 버전도 나왔고, 이를 판저 파우스트 3 LWD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빌 시장 치는 2.5 배률 광학 조준경이 up-7v망원 조준경과 손잡이, 격발 장치, 그리고 개머리판이 합쳐져 있다고 하며 조준경은 주간 전용이며, 야간 운용을 위해서는 사수가 야시고 극을 쓰건, 광할 조준경 대신 심 라드 KN205f 2 야간 조준경을 장착했습니다. 

 

이외에도 헨솔트가 개발한 다이나 레이지라는 컴퓨터화된 조준장치를 대신 부착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심 라드 is 2000 탄도 컴퓨터가 결합 도니 다이나 레인지를 사용할 경우 유호 사거리가 정지 목표 600m, 이동 목표 400m까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이나 레이지 부착 모델은 판저 파우스트 3 T-600, 판저 파우스트 3 -IT-600등으로 뒤에 600을 붙여 부른다고 합니다. 

왼쪽 이미지 UV7 조준경 각 부 설명 ,오른쪽 이미지 컴퓨터화 된 다이나레인지 사격통제장치 <출처 : modernfirearms.net>

2010년대 중반부터는 더 발전된 다이나 호크 화력 통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준경 밑으로 앞에서부터 전방 손잡이, 권통손잡이, 어깨 받이가 접혀 있습니다. 전방 손잡이와 어깨 받이를 표고, 나중에 권총 손잡이를 펴면 격발용 방아쇠가 드러나게 됩니다. 

 

전방 손잡이는 바닥에 엎드려 사용할 때 발사 각도를 조정하기 쉽도록 손잡이를 돌려 길이를 조정할 수 있지만, 없는 것도 있습니다. 

안전 레버는 s(안전과 발사(f)로 되어 있습니다. 안전 레버 앞에는 발사 고나에서 발사장치를 제거할 때 쓰는 레버가 위치합니다. 

 

판저 파우스트 3의 핵심을 카트리지입니다. 

카트리지는 탄두, 초진체 그리고 비행 안정용 핀으로 이루어진 탄체, 내부에서 점화하여 가스를 발생시키는 점화부, 그 뒤로 작은 플라스틱 공이 채워진 반동 및 후폭품 억제용 카운터 메스의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로 조립되어 있으며, 발사관 앞에서 끼우는 방식으로 재장전이 가능합니다. 

탄체의 직격은 스위스만 채택한 124 mmHEAT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110mm입니다. 기본형인 판저 파우스트 3의 경우 탄두는 성형 작약으로 이루어진 대턴차고 폭탄(HEAT)을 사요 합니다. 

 

탄체 앞쪽에 성형 작약에 의해 형성된 메탈 제트가 제대로 충분히 발생하도록 탄두를 표면에서 이격 시키는 역할을 하는 연장관이 있습니다. 

 

연장관은 장갑차량을 상대할 경우 뽑아서 고정하지만, 건물 등 소프트 스킨 표적의 경우 폭풍 파편 효과를 위해 연장관을 빼지 않아도 됩니다. 

 

연장관을 사용할 경우 400mm 장갑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판져 파우스트 탄은 DM12와 DM12A1이 있습니다. 

탄체 중량 3.9kg, 발사준비상태 중량 12.8kg, 탄 포함 전체 길이 1350mm, 포구속도는 초기 160m/s, 최대 243m/s의 제원을 가집니다. 

 

일반적인 유효 사거리는 이동 표적 300m, 정지 표적 400m,  정도지만 유효사거리를 600m로 늘린 탄도 개발되었습니다. 

개량형인 판져 파우스트 3T는 폭발 반응 장갑(ERA)을 적용한 장갑차량이 늘어나면서 이를 처리하기 위해 선단부 HEAT을 추가한 탠덤 탄두를 채택했습니다. 

외형적으로 탄체 앞쪽에 뭉툭한 파이프가 추가된 형태입니다. 

 

 

판저 파우스트 판저 파우스트 3T는 ERA와 함께 700mm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판저 파우스트 3T용 탄은 DM22입니다. 

탄체 중량 4.3kg, 발사준비 상태 중량 13.2kg, 탄 포함 전체 길이 1400mm, 포구 속도는 초기 150m/s제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파괴력을 더 향상하기 위해 연장관이 3단으로 된 판져 파우스트 3 -IT도 개발되었습니다. 

Dm72탄을 사용하는 판져 파우스트 3 IT는 900mm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사거리 600mm탄을 기준으로 탄체 중량 4.3kg, 발사준비상태 중량 15.1kg , 탄 포함 전체 길이 1400mm, 포구속도는 초기 150m/s, 최대 227m/s의 제월은 가지게 됩니다. 

 

벙커 파우스트는 적 벙커를 처리하기 위해 구조물을 파괴하기 위한 선단부 고폭탄 (HE)과 이로 인해 생긴 구멍을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가 폭발하는 파편 탄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벙커 파우스트용 탄은 DM32로 표시됩니다. 

 

17mm의 장갑판 또는 360mm의 벽돌 벽을 관통할 수 있고 그 후 파편탄(FRAG)이 내부에서 기폭 됩니다. 자체 중량 4.3kg, 발사준비상태 중량 13.3kg, 탄 포함 전체 길이 1270mm, 포구 속도는 초기 150m/s, chleo 227m/s의 제원을 가지게 됩니다. 

 

개량형을 포함하여 판저 파우스트 3 계열이 운용하는 탄은 대부분 HEAT가 대부분이고, 이밖에 점착 유탄(HESH) 조명탄, 연막탄 등이 다 야한 탄종이 존재합니다. 

 

훈련을 위한 장비도 개발되었고 판저 파우스트 EX는 탄두의 모양과 무게만 같을 뿐 추진체가 없는 훈련용입니다. 

 

3. 운용현황

개발국 독일, 라이선스 생산한 일본과 벨게애, 그리고 직도입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모리셔서, 네덜란드, 페루, 대한민국, 기록 스위스 등 총 11개국입니다. 

 

일본은 IHI 에어로스페이스에서 라이선스 생산했으며, 110mm 개인 휴대 대전차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라이선스 생산은 우리나에서도 이루어졌으면 풍산에서 생산했습니다. 

 

국가급 단체 외에 이슬람 국가 is와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이라크 내 쿠르드족에게도 발사관 200개와 탄 2,500발정고가 지원되었습니다. 

 

판져 파우스트 계열은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시리아 내전 등에서 일부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발사인 다이너마이트 노벨은 판저 파우스트 3 대체하기 위해 일회용 무반동 유탄 무인기 RGW 시 리즈를 개발했습니다. 독일군에서 운용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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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G3개발사 전편에 이어 2번째 시간을 이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새로운 소총을 만들어버린 HK사.

어렵사리 만들어진 CETME/HK의 소총의 앞날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서독군은 1956년 벨기에제 FN FAL 벨기에제 G1 자동소총으로 제식 채용하게 되면서 BGS도 당연히 G1을 채용하게 되면서 CETME/HK 소총을 더 이상 채용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BGS에 납품하기로 한 시제 총기의 생산은 HK의 경험 부족으로 난항을 거듭했습니다.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HK는 CETME 소총의 독일 생산에 성고하고 시험용 총기 400 여정을 1956년 10월에 BGS에 납품하였으며, 이후 1957년 4월까지 시험평가가 실시되었습니다. 

 

 

 

 

CETME/HK의 소총이 개발되는 사이 서독 연방군과 BGS는 FN FAL을 G1 소총으로 제식채용했다. &lt;출처: Public Domain&gt;

한편 1958년이 되자 이제 서독 국방부 가 CETME/HK 소총에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독군도 이미 FN FAL소총을 G1 자동소총으로 제 식체 용하고 있었지만, 서동 정부가 FAL 소총의 라이선스 생산을 요구하자 FN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2차 대전 시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기억에 벨기에 정부는 직도입은 몰라도 면허 생산은 허용할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독군은 자국서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자동소총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마침 BGS에서 시험 평가하고 있던 CETME/HK 소총은 매우 시의 적절한 대안이었고, 결국 BMV는 1958년 4월 17일 시험 평가용 소총을 400 정이나 주문했습니다. 

 

이에 따라 HK7월 1일까지 400 정의 CETME/HK 소총과 함께 1,600개의 탄창과 기타 수리부속을 납품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사실상 CETME/HK 소총의 채용을 결심하고 매우 진지하게 시험평가에 나섰습니다. 

BWB(국방기술 조달청)는 꼼꼼한 시험평가 과정을 실시하면서 여러 가지 사항을 개산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BWB는 우선 본격적인 시험평가에 앞서서는 17가지의 개선사항을, 시험평가 종료 후에는 4가지 개선사항을, 그리고 양산 전에는 3가지 개선사항을 요구했습니다. 

 

2. 요구사항 내용

1. 시험평가 전 개선 요구사항

  1. 소여 기와 총류탄 발사기를 결합하여 설계할 것. 
  2. 가늠쇠 보호장치를 강화하여 제작할 것
  3. 가늠자는 플림 -업이나 다이얼 방식으로 제작할 것
  4. 운반 손잡이에 고정 장착을 장착할 것. 
  5. 조종간 고정장치의 위치를 변경할 것. 
  6. 탄피의 배출 시 발향을 바꾸는 기구를 부착할 것. 
  7. 개머리판 끝부분의 재질을 금속 대신 고무로 변경할 것. 
  8. 권총 손잡이의 양산 절차를 단순화할 것. 
  9. 멜빵의 장착 위시를 변경할 것. 
  10. 잔 전손 잡이을 길게 제작할 것. 
  11. 파이프의 위약을 변경할 것. 
  12. 반동 스프링 가이드를 변경할 것. 
  13. 권총 손잡이에 장착되는 핀을 변경할 것. 
  14. 버퍼링 장치를 변경할 것. 
  15. 개머리판의 형상을 변경할 것. 
  16. 방아쇠 안전장치의 모양을 변경할 것. 
  17. 장전 손잡이를 더울 인체공학적인 형상으로 변경할 것. 

2. 시험 평가 종료 후 개선 요구사항. 

  1. 양각대를 강화할 것. 
  2. 손 보호를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 
  3. 권총 손잡이의 형상을 더욱 인체공학적으로 교체할 것. 
  4. 전체 중량을 감소할 것. 

3. 시험평가 종료 후 양산 전 개선사항

  1. 안전장치가 걸려있는 상태에서도 장전이 가능하도록 방아쇠 구조를 변경할 것. 
  2. 20발이 수납 가능한 탄창을 제작할 것. 
  3. 마지막 탄환 발사 이후 약실이 개방된 상태로 되도록 만들 것. 

 

 

G3소총 설명 동영상

독일군을 위한 개조 과정에서 HK가 만드는 소총은 점점 CETME 소총과는 다른 소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CETME소총의 총몸은 저탄소강, 즉 연철로 만들 졌습니다. 사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돌격소총들을 만들 때부터 총몸에 저탄소강을 썼는데, 돌격소총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CETME 소총도 단영히 이런 전철을 따랐던 것입니다. 

 

저탄소강을 사용하면 손쉽게 가공이 가능하여 부족한 설비로도 저가로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가공을 위한 저탄소강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CETME 소총은 독일의 돌격 소총처럼 상대적으로 저위력의 탄환을 발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로러로킹의 지염블로백 작동방식을 사용한 것도 처음에 채용했던 탄환의 위력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62mm NATO탄을 사용하면서 총기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극도로 증가하면서 더 이상 저탄소강을 쓸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HK는 저탄소강을 대신하여 더욱 강성이 높은 합금강을 채용하였습니다. 또한 노리쇠를 구성하는 노리쇠 앞쪽과 노리쇠 뭉치, 롤러 등도 모두 강성이 높은 다른 재질로 바뀌었습니다. 

 

HK는 원활한 작동을 위해 무려 20가지가 넘는 롤러들을 개발하여 원하는 것을 채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3. G3소총 드디어 채용되다. 

한편 HK가 소총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라인 메탈의 HK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사실 라인 메탈은 윈래부터 CETME 소총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독일 내 생산을 CETME에 제한했지만 HK를 이미 파트너로 선정했기에 좌절된 바 있습니다. 

 

이제 독일 내 양산을 놓고 1957년 CETME는 HK/라인 메탈 팀과 협상에 들어갔는데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CETME는 이제 독일 국방부와  직접 면허생산 계약을 맺고자 했습니다. 

독일 국방부도 CETME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기를 바랐지만, 해외수추권한까지도 확보하기 바랐는데, 이 부분에서 결국 CETME와 대립하면서 계약은 체결되지 못했습니다. 

 

계약이 이뤄지지 못하자 1958년 3월쯤에 이르러 CETME/HK 소총의 독일 생산을 위한 모든 준비작업이 중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페인이 채용한 CETME 모델 B 소총은 NATO표준탄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과연 FN FAL을 대체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까지 더해졌습니다. 게다가 서독 연방군의 규모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애초에 50만 명 규모의 군대를 목표했지만 숫자는 계속 줄어갔습니다. 

이는 차기소총의 생산량과도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CETME는 새롭게 계약 협상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심지어는 그간 꺼려왔던 해외 수출 권리까지도 독일 측에 넘길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CETME 소총의 뿌리가 독일의 STG45(M)이며 그 개발의 주역이 루드비히 포 그림러를 포함한 독일 총기 설계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독일의 핏줄을 가진 총기가 독일인의 손에 들오온 셈이었습니다. 

 

CETME 측이 양보하자 계약은 이사천리로 잰 행 되었습니다. 

1959년 2월이 되자. CETME, HK, 라인 메탈은 물론이고 독일과 스페인 양국 국방부까지 서명한 계약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에 딸 대금이 지급되고 생상에 필요한 기술 문건들이 이전되면서 드디어 CETME/HK 소총의 독일 생산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1959년 소독 연방군은 CETME/HK 소총을 자동소총,으로 제식 채용하였습니다. 

 

한편 연방군을 위한 G3 양산에서 서독 국방부는 신생업체인 HK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HK 이외에도 라인 메탈에서도 G3가 생상 되었으며, 초도 주문량으로 HK와 라인 메탈은 각각 65,000정을 생산했습니다. 

 

HK와 별도로 라인 메탈도 독자적인 GE변형 모델들을 개발했으나,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G3가 성공하면 할수록 CETME와 HK의 관계는 멀어졌습니다. 특히 이미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 CETME 소총의 개발자였던 포그럼러가 마우저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CETME는 마우저와 전략적 협력을 하기에 이렀는데, 포 그림러는 마우저에서 시험용 기관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5 정의 시제 기관총이 만들어져 서독 연방군의 제공되었지만, 이미 MG3라는 우수한 기관총을 보유하던 연방군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우저의 CETME소총 개발은 방향을 잃고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4. G3소총으로 미래를 HK 미래를 열다. 

실전 배치된 G3는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독일군의 G3실전배치와 만족스러운 운용은 다른 NATO 회원국 드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군대로부터 관심을 끌었습니다. 

독일 다음으로 채용한 것은 포르투갈로, 이들은 CETME 사양이 아니라 G3사양으로 자구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은 스칸디 나비아이 3개국으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자국에서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이외에도 터키, 파키스탄, 이란, 그리스와 프랑스에서도 G3면허 생산되었습니다. 한때 FN FAL로 나토 전역을 장악할 것 같았던 FN FAL 은 G3에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HK의 야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던 G3의 작동방식에 바탕하여 다양한 총기들을 개발했는데 5.56 × 45mm탄을 사용하는 HK33과9mm파라블러탄을 사용하는 MP5 기관단총을 만들면서 제품군을 다양화했습니다. 

 

물론 G3자체를 경기관총화여 만든 HK 11(탄창 급탄 방식)과 HK21(탄띠 급탄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G3는 기관총보다 저격총으로 만들어져 더욱 인기를 끌었습니다. G3SG/1에서 시작하여 MSG3이 등장했습니다. 

이후에는 프로 플로팅 배럴을 장착한 PSG1과 MSG90까지 등장했습니다. 

 

물론 HK의 주력 상품군은 G3만은 아니었습니다. 

HK4권충이나 P9, VP90등 다시 기준으로 획기적인 총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HK가 마우저나 라인 메탈, 발터 등의 거물들을 제치고 독일의 대표적인 총기업체로 성장할 수 있던 것은 G3소총의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1.12.22 - [육군무기체계] - G3 소총 개발사 - 스페인이 부린 제주에 대박친 독일의 소총 을 아시나요! (1부)

 

G3 소총 개발사 - 스페인이 부린 제주에 대박친 독일의 소총 을 아시나요! (1부)

G3소총 개발 배경과 소총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해 클러& 코흐의 등장하다. 2차 대전에 패전한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무기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습니

rokmc76.tistory.com

 

참고문헌:한국 국방 안보 포럼,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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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3소총 개발 배경과 소총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해 클러& 코흐의 등장하다. 

2차 대전에 패전한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무기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STG44나 MG42 같은 당내 최고의 명작 총기를 만들던 독일 엔지니어들은 프라스나 스페인 등이 국가로 건너가서 총기연구소에서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런 가운데 전직 마우저(Mauser)사의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특수 정밀가공업체를 만들었습니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마우저 공장 인근에 방공호로 쓰이던 자리에 작업장을 차려놓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헤클러 & 코흐(hk)입니다. 

 

헤클러 &amp; 코흐 G3 자동소총 &lt;출처: Public Domain&gt;

헤클러 & 코흐는 두 창업자들의 이름에서 회사명을 따왔습니다. 

마우저의 관리자였던 에드문드 헤클러 (1906~1960)와 티오 도어 코흐(1905~1976)는 마우저 출신 총기 설계자로 HSC권총을 설계했던 알랙스 자이들(1909~1989)을 영입하고 익명의 자산가들의 지원을 받아 1949년 창업을 했습니다. 

 

HK는 원래 총기사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제작기계용 정밀부품 등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서독의 연방국경경비대(BGS)와 연합군 점령군 사령부가 K98K 소총과 MG42 기관총의 수리부속을 요청함에 따라 1951년 HK가 그 부품을 만들면서 총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HK 본사의 모습 &lt;출처: Heckler &amp; Koch GmbH&gt;

총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HK는 방공호 작업장에서 나와 오베른 도르프의 구도시인 린덴 호프의 언덕에 구 마우저의 건물로 공장을 옮겼으며 특히 1955년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여 서독은 NATO에 가입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군대를 재건하기 시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서독의 무기 생산 금지 조치가 해제되면서 HK는 본격적으로 총기회사로 전환을 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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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ETME 와 HK가 만나게 되다. 

한편 HK주 거래처였던 BGS는 1954년 스페인의 국립 조병창인 CETME에서 발배한 7.92mm 시제 자동소총인 모델 2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시험평가를 담당했던 BGS 담장자는 이탄 환이 7.62mm 구경이라면 BGS가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CETME는 7.62mm×41mm CETME탄환을 사요 하는 모델 A1을 정식으로 발매했습니다. 

그러나 BGS에서 얘기했던 7.62mm탄환은 1954년 NATO의 제식 탄환으로 선정된 7.62 × 51mm NATO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실수를 깨달은 CETME는 NATO탄과 유사한 규격을 갖춘 7.62 mm×51mm CTTME탄을 개발하고 이를 발사하는 모델 A2와 모델 B를 속속 발매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CETME 소총은 NATO 규격탄에 맞는 모델이 아니었고, 규격에 민감한 독일인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BGS는 NATO탄을 사용하는 CETE 소총의 시제 모델 400정을 만들어 달라고 발수했습니다. 

 

독일의 엄격한 요구에 고심하던 CENTME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독일의 협력사를 찾기 시작하였으며 

BGS와 협력하던 HK가 결국 1954년 부터 CETME와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두 회사를 연결시켜주었던 것은 네덜란드의 탄약 화사 MWM의 사장인 헨크 비저였습니다. 

 

물론 HK는 최초에는 소총의 개발에 도움을 주는 역할에 한정되었습니다. 비록 조력의 역할이었지만 HK는 CETME 개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7.62 × 51mm탄의 원활한 사격을 위하여 각인 약실을 채택하도록 약실 설계를 바꾼 것도 HK였다고 합니다. 

 

CETME 소총의 독일 도입이 구체화 되면서 독일 내의 양산이 거론되면서 CETME는 독일 내 양산을 위해 마우저와 접촉했으나, 마우저는 CETME의 제안을 비웃으며 이언 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CETME는 1956년 HK를 양산파트너로 지정하고 이에 따라 CETME의 독 일용 소총의 개발과 양산을 HK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HK는 이제 베팅에 나섰으며 당시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3개국을 제외한 CETME 소초의 전 세계 생산 권한을 갖고 있던 것도 역시 헨크비저였습니다. 

 

아예 생산설비를 갖출 것이라면 전세계로 총기를 판매하겠다고 결정한 HK는 비저에게 이 권리를 양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비저가 이를 승낙하건 아니건 간에, CETME의 결정이 없이는 전 세계의 생산 권한은 양도될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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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독일 권총 루거 P08을 아시나요. 오늘은 2차 대전 중 전리품으로 인지 많은 루거 P08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쟁영화를 보면 교전 직후 점령지를 수색하여 전리품을 챙기는 장면이 종종 그려지고 있는 가끔 고가의 귀중품을 습득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의 무기 노획이 주목입니다. 

루거p08권총 이미지 

그 이유는 차후에 적들이 무기를 재사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필요할 경우 아군이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룬이 사용하기 곤란한 노획 무기는 추후 적들이 재사용하지 못하도록 즉시 파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니만 언제 줄을지도 모르는 전쟁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적의 무기나 장비라면 일단 보유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중 모든 사병들에게 지급되지 않지만 휴대가 편리하며, 가지고 있다고 특별히 손해 볼 것이 없는 권총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노획 무기는 부대가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전에 투입된 많은 병사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는 힘든 법입니다. 

더구나 권총의 경우는 참전 기념물로 습득하려는 경우도 많습니다. 

 

뭐 굳이 무기를 기념물로 가지려 할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전쟁이라는 시공간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현상입니다. 어쩌면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를 원하고 이를 기념하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모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2사세계 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 투입되었던 미군들이 전리품으로 갖고 싶었던 독일군 무기라면 단연코 루거 P08권총이었습니다. 

 

1. 독특한 특징이 있는 루거의 모습에 대해 

P08이 최고의 전리품으로 대접받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고장이나 오발이 자주 발 생하여 독일 군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던 점을 생각한다면 굳이 무기로 재사용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실화를 바탕으로 2001년 제작된 유명한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이를 노획하여 자랑하고 다녔던 병사가 어이없게 오발로 목숨을 잃는 모습이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무기라는 측면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P08의 인기의 이유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자료에는 독일군 고급장교들만이 착용하였던 무기라서 그랬다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이권 총을 노획하였다면 독일군 장교를 사살 혹은 포로로 잡았다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의미하므로 많은 미군 병사들이 가지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총을 잡았을 때의 그립감이 상당히 호 펴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폼이 나는 모양새입니다. 

 

루거자동권총 동영상 

우리와 달리 총기의 보유와 사용이 자유로운 미국인들에게 권총은 하나의 문화라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미군 중에는 군대에 오기 전에 이미 여로 종류에 총을 잡아보았던 이들이 많았고 따라서 새롭거나 쉽게 접하지 못했던 권총이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습니다 

 

비록 모든 독일군 장교들이 P08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형적인 면에서 독일군을 상징할 만한 독특한 점이 있어 인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2. 미군도 사용하려 검토하였던 권총이다. 

제2차 대전을 상징하는 권총으로 만한 알려졌지만 사실 P08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1898년 독일 총기 제작사인 루드비히 뢰베 사의 게오르그 루거 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기존의 권총을 계량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1893년 후고 보어 하르트 가 반자동 보어 하르트 권총을 개발했는데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무거웠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오나 하여 탄생한 권총이 바로 P08으로 토글 액션 (Toggle action)이라 불리는 특수한 쇼트 리코일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권총에 대해 처음 관심을 보였던 곳은 독일이 아니었습니다. 

1900년 스위스 육군이 7.62mm파라블럼탄을 사용하는 P1900모델을 3,000정 구입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납품 사례입니다. 

비슷한 시계에 불가리아에도 1 만정이 판매되었는데 민수용이었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후에 미군들이 혈안이 되어 수집하려 다녔지만 미군용을 ㅊ택되 수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1903년 미 육군 당국은 차기 권총 후보들로 P1900과 9mm 파라블럼 탄을 사용하는 P1902모델을 각각 구매하여 테스트하였습니다. 

 

심사 끝에 자국산 콜트(colt)를 채택하면서 미군 납품은 무산되었지만, 이후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재미있었던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3.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전에 특화된 무기로 발전하다. 

이처럼 해외에서의 호평과 달리 정차 독일에서는 1904년 해군에 의하여 겨우 제식화 되었습니다. 해군용 모델은 105mm 총신을 가졌는데 1905년 독일의 식민지였던 동아프리카와 서남아프리카에서 저항 진압에 사용되면서 처음 올 실전에 데뷔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독일군의 핵심인 육군에서는 1908년에서야 채택하였고 이때 비로소 P08이라는 제식 부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명성에 비한다면 자국 내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아 시작은 이처럼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대향 생산되어 독일군에 납품돼 P08은 제1차 대전 당시에 참호전에 적합한 무기로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명성을 떨쳤습니다 

근접전을 위해 트롬멜 탄창과 개머리판을 장착한 P08 <출처 : (cc) Kar98 at Wikimedia.org>

참호전이 일상화되자 보병들이 적진까지 들고 뛰어간 소총들은 검이나 몽둥이 용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속사가 가능한 권총은 좁은 곳에서 적과 근접하였을 때 사용하기 편리한 무기로 등장하였습니다. 막연히 고급장교용 무기로 생각하던 P08이 이처럼 최전선의 사병들도 애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P08용으로 32발을 탑재할 수 있는 트롬멜탄창이 등장하였고 이를 장착한 P08마치 기관단총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최초로 전선에 투입된 기관단총인 MP18이 P08과 같은 9mm탄을 사용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재미있는 부분이 아니가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기관단총 처엄 자동 연사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사수의 능력에 따라 속사가 가능하였고 30발이 넘는 장탄량은 상대보다 많은 이점을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p08은 발사 후 복좌 장치가 후방으로 접히면서 탄피를 배출시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탄환을 장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습니다. 그러데 이러한 특징은 이물질의 총기내 유입을 불러와 툭하면 고장을 내는 원인이 되었고,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22년 9mm탄의 사용이 금지되며 7, 62mm탄용으로 p08이 일부 생산되었으나 고가의 제작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양산이 되지 않았습니다. 

 

4. 권총 성능보다 모야으로 얻어진 유명세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독일군은 재부 장하면서 새롭게 개방된 발터(Walter) P38을 표준 권총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이처럼 p08은 도태될 운명이었지만 전쟁이 거대해지고 무기와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부족한 수량을 보충하며 전쟁 말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일부 자료에는 1945년까지 p08이 생산되었다고는 하는데  제2차 대전 당시에 사용된 대부분이 1922년 이전 생산된 재고물량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구시대의 무기가 되어버린 p08이 최일선에서 활약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형식적으로 무장을 하는 고급장교, 해군 승조원, 공군 조정사 그리고 점령지를 관리하는 후위 부대에서 주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적에게 포위된 고급 장교들이 명예를 지키려 자살하는 데 사용하는 무기로 인식되면서 연합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P08이 본의 아니게 독일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루거 권총은 명중률이 높고 장탄수가 많다는 장점을 갖추지만, 툭하면 작동이 불량일 만큼 신뢰성이 너무 문제가 많아 오래전에 사라질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 상황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로 인해 성능에 비해 명성을 얻은 권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종전 후에는 군경용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였음에도 콜렉터들에게 골동품으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처럼 눈요기 감으로 나마 볼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멋진 외형의 루거 P08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생각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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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육군에 현대화 지뢰탐지 체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MV-4 Mine Clearance System

MV -4 지뢰제거 체계는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특수 기동지원여단이 운용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무인 원격화 지뢰제거장비입니다. 

크로아티아 DOK-ING사의 제품으로 군은 2020년 4월 1대를 도입했습니다. 

수대가 추가 도입될 예정이며 운영자 실습 및 지뢰제거 훈련을 거쳐 2020년 후반기부터 임무 현장에 투 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MV-4 지뢰제거로봇 시제품 시연 장면 이미지&amp;nbsp; 출처 : 국방일보

MV4는 승무원 없이 리모컨 운용자 제어 장치(OCU)로 조정하는 무인 및 원격화 지뢰제거 장비라는 점에서 종전의 지뢰제거장비와 다릅니다. 우리 군의 지뢰제거 작전이 수작업 위주에서 무인화, 원격화 장비 중심으로 발전하는 첫걸음이라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MV4전면부에는 작전 목적이 맞게 플레일(FLAIL)를 비롯해 Tilller, Roller, Gripper, Blade 등 다양한 도구 (Tool)를 탈부착해 둉도에 따라 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뢰제거의 경우, 쇠뭉치들이 쇠사슬에 연결된 형태의 플레일을 고속 회정시키며 기동 하는 MV4는 땅속 30cm 깊이까지 매설된 지뢰를 폭파해 제거해 준다고 합니다. 차체에는 고강도 특수강이 적용돼 대인 지뢰는 물론 대전차 지뢰가 폭발해도 견딜 수 있습니다. 

 

업계 측 자료에 따르면 시간당 2200㎡의 지뢰제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ocu에 의한 원격조정 가능 거리는 평지의 경우 1㎞ 이상으로 매설된 지뢰가 폭발해도 운용 요원이 다칠 우려가 없습니다. 장비에 달린 카메라로 원거리에서도 작전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뢰제거작전을 수행하는 장병들의 안전성 확보는  물론, 작전의 완전성, 효율성 강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게 5.1톤에 175~250마력의 엔진으로 기동력이 우수하다하며 가로 50㎝, 깊이 30㎝의 도랑, 세로 30㎝ 정도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으며 한지점에서 360˚ 회전할 수 있습니다. 

 

MV4는 평시 지뢰제거 작전은 물론 전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지뢰 매설 예상 지역을 MV4와 동일 모델인 M160을 운용하는 미군이 이라크를 비롯한 실전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한 전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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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디펜스가 독일 GDELS와 기술 협력하여 생산하는 장비 2027년까지 총사업비 5,300억 원 투입하여 제작할 장비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육상에서 최고 80km/h(비포장 35km/h)로 달릴 수 있는 M3. 사진출처:GDELS 홈페이지

자주 도하장비는 별도의 장비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땅과 하천에서 기동 하며 배 (문교)가 되거나 다리(부교)로 연결해 전차나 장갑차 등을 신속히 도하시킬 수 있는 수륙양용의 전투 지원 장비입니다. 

 

육군의 기계화 부대의 공격 속도를 유지, 보장할 수 있는 신속한 도하작전 등 미래 지상작전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장비로 꼽혀왔습니다. 

 

현용 리본부교(RBS·Ribbon Bridge System)는 다리가 될 교절을 차량이나 헬기로 강상으로 옮겨야 하고 진수 후에는 역시 차량에 실어 이동시킨 교량가설단정(BEB·Bridge Erecion Boat)을 이용해야 하는 등 가설 속도가 현대 기동전 요구치에 미치지 못하고 생존성에도 제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군은 이같은 제한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주 도하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2016년 9월 30일 제96회 방위사업 추진 위원회에서는 해외 엄체와의 기술 협력 생산 방식을 획득하고자 하는 자주 도하장비 사어 추진 기본 전략을 심의 의결하였고 이에  현대로템이 영국 BAE 시스템즈(BAE Systems)와 터키 FNSS가 공동 개발한 AAAB(Armored Amphibious Assault Bridge)를 개량 국산화 생산하는 방안을 한화 디팬스는 독이르이 GDELS(Gemeral Dynamics European Land Systhems)가 개발한 M3를 기반으로 국산화하는 M3K 장비를 각각 제안하였습니다. 

 

2020년 12월 방위사업청은 자주 도하장비를 개발 , 생산할 우선 협상대상자로 한화 디팬스를 선정한 후 2021년 6월 21일 제137회 방위 사어 추진 위원회에서 기술협력 생산 범위 및 연도별 생산계획 등이 포함된 획득계획을 심의 의결했습니다. 

 

자주도하장비 관련 동영상

이에 2021년 8월 13일 방위사업청과 한화 디펜스는 사업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 시술 협력 생산에 본격적으로 착수했습니다. 

기술 협력 생산(Technology Cooperaation Production)이란 외국에서 개발되어 싱 용화 되었거나 실용화를 위하여 시험 평가한 결과, 전투용 적합으로 판단되어 생산 중인 무기 체계를 외국의 원 제작 업체와 기술 협력하여 생산 권한을 양도 및 대여 또는 지원 하에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연구개발에서의 기술협력과는 다른 성격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M3K는 돌일 아이제 베르크 카이저슬라우테른 이 최초 설계 후 GDELS(Genaral Dynamics European Land Systems)가 생산한 M3 자주 도하장비( Amphibious bridging and ferrying, Amphibious Vehicle)를 한화디팬가 기술협력 생산 방식으로 국산화할 자주 도하 체계입니다. 총사 어비 5,300억 원 투입될 예정입니다. 

 

이에 딸 한화 디펜스는 자주 도하장비(M3 기종) 기술을 이 저 받아 국내에서 2027년까지 한국형 자주 도하장비를 전력화할 예정이라고 방위사업청은 8월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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