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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최후의 방패 아이언 돔을 아시나요? 이번 시간에는 아이언돔에 관하여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가자지구로부터 날아오는 로켓탄을 요국하는 아이언 돔 미사일 <출처: IDF 이스라엘 국방군>

1. 개발 역사 

2000년대부터 가자 지구에서 활동한 팔레스타인계 무장단체인 하마스(Hamas)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에 산발적인 로켓 공격을 감행하면서 위협을 가했습니다. 하마스는 주로 조악하게 제작한 콰삼(Quassam) 로켓을 이스라엘 남부 접경 근처에 산발적으로 발사했으나 정밀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마스가 122mm  BM-21 그라드(Grad) 발사기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로켓 사거리가 길어져 백만 명이상(이사라엘 전인구가 약 830만 명)이 거주하는 이스라엘 남부 지역이 하마스의 위협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윈쪽:하마스가 설치한 콰심 로켓의 간이발사기,  오른쪽 :하마스의 로켓공격으로 파괴된 이스라엘 가옥 <출처: IDF>

하마스는 2000년대부터 2008년까지 약 10년 기간 동안 4,000발의 로켓과 4,000발의 박격포탄을 이스라엘 남부로 발사하면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야기했습니다. 

한편 2006년부터 남부 레바논을 거점으로 삼은 이란 연계 테러단체 헤즈볼라가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북부가 위협받기 시장했습니다. 

 

헤즈볼라는 2006년 한해동안 4,000발(자로 카츄샤 로켓)이 넘는 로켓을 이스라엘 영내로 발사했습니다. 이공 격으로 북부의 항구도시인 하이파 등이 피탄 당해 44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25만 명 이상이 로켓 사거리 범위 내에서 긴급히 소개하거나 아예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부와 북부의 위협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방위군 (IDF) 페트리어트 미사일에 착안하여 자체적인 단거리 미사일 미사일 방어체계의 개발을 추진했으나, 미국은 이것이 요격 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에 반드시 실 폐할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이스라엘 군 내부에서 조차 끝도 없이 방어해봐야 의미가 없으니 원점을 제가 할 수 있는 공격 자산의 개발이 낮다는 의견을 대두되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다니엘 골드 준장이 이스라엘 국방안보연구개발국, 통치 DDR & D 국장에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애초부터 미사일 방어체계에 강력한 옹호자였던 그는 예상 확보를 위해 규정을 우회하였고 심지어 이스라엘 국방부 측이 미사일 방어체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직접 정치권을 설들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에 정치권은 선제 공격을 받은 후에나 공격원점을 제거할 수 있는 방어무기를 개발하기보다는 애당초 민간 피해를 업에 버려 이스라엘 정부가 적에게 대응을 할지 말지에 대한 정치적 선택권을 쥘 수 있는 무기의 개발이 낫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변화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국방부 2007년 부로 아이언돔 (Iron Dome) 근거리 미사일 방어체계 개발을 승인했으며, 이에 이스라엘 국방안보 연구개발국과 라파엘 사에 공동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위쪽:아이언 돔의 요격미사일인 타미르(Tamir) 미사일 <출처: IDF>아래쪽:아이언 돔 포대 <출처: IDF 블로그>

 

아이언 돔은 2009년 3월 첫 시험발사에 들어가면서 검증과정을 거쳤으며, 같은 해 8월에 운용 적합 판정이 나와 이스라엘 공군 (IAF) 산하에 대대급 아이언돔 포대가 처음으로 찰성 됐습니다. 

아이언돔 포대는 2010년 1월까지 콰삼 로켓과 카츄사 로켓의 특성을 표사한 표적을 요격하면서 테스트와 업그레이드를 거쳐 2011년 3월부로 남부 전역 신도시인 베에르세바에서 신전 배치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언 돔의 첫 실전 기록은 2011년 4월 7일, 아쉬켈론 시내로 날아온 그라드 로켓 한 발을 요격하면서 달성됐습니다. 

4월 8일에도 4발의 로켓이 산발적으로 날아왔지만 또다시 아이언 돔이 모두 요격했으며, 2회의 성공적인 요격으로 아이언돔의 성능이 검증되자 이스라엘 방위군 방공단은 포대 증설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방공단은 위협 수준이 높은 지역을 모두 방어하기 위해선 최소 13개의 포대가 필요하다고 추산했지만 업체의 생산력이 이를 즉각적으로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은 한시적으로 포대를 이동시키면서 전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2011년 말까지는 가자 지구에 날아오는 로켓이 산발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격은 무리 없이 요격했습니다. 

 

 

아이언돔 요격 장면이 살아있는 동영상 

아이언돔의 성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은 2012년 3월부터 였습니다. 

가자 지구로부터 3월 9일 하루 동안 약 300발의 로켓이 이스라엘로 발사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악한 로켓의 성능 때문에 상당수는 발사 후 가자지역 안에 떨어지고 177발가량만이 이스라엘 국경 너머에 착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핵심 지역 중심으로 방어하고 있던 아이언 돔은 총 71회의 요격을 실시했으며, 그중 56회의 요격을 성공했고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은 완벽 하게 방어해냈습니다. 

그해 말인 2012년 11월부터 벌어진 가자 겨울 전쟁 (혹은 필라 오브 디펜스 작전, 2012년 11월 14일~21일)중 아이언 돔은 총 421회의 로켓 공격을 성공적으로 요격했으며, 875발은 인적이 없는 개활지에 착탄 했고, 58발은 도심지에 떨어졌지만 민간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제연합(UN)은 이와 별도의 142발이 가자지구 내에 추락한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 이스라엘은 총 4명의 민간인 피해를 입었으며, 이중 세명은 아파트에 로켓이 명중하면서 사망했습니다. 

전후 CNN 측이 추산한 아이언돔의 요격 성공률은 85% 수준이었습니다. 

 

아이언돔이 다시 본격적으로 동원된 것은 불과 2년 뒤인 2014년 7월로 통치 프로텍티브 에지 작전으로 불리는 가자 여름 전쟁(7월 8일~8월 26일) 때였습니다. 

 

2014년 6월 12일 세명의 이스라엘 청소년이 서안 지역으로 납치된 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6월 30일에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계 청소년 한 명이 헤브론에서 살해당하면서 아랍계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양측이 충돌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용의자로 유대계 근본주의 단체 소속 6명을 체포하고 3명을 기소했으나 쌍방의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결국 무력 충돌로 격화되고 말았습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시내에 대한 로켓 공격을 실시하는 한편 이스라엘 공군은 항공기로 하마스 거점 폭격을 단행하면서 7월 초부터 본격적인 전쟁테세로 돌입했습니다. 

 

약 50일 남진한 전쟁 기간 동안 총 4,594발의 로켓이 이스라엘 국내로 발사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이언돔 포대는 이즈음까지 전국에 전개를 완료했기 때문에 735발을 요격하면서 중요 자산의 90%를 방어하고 오직 70발에 대해서만 요격을 실패했습니다. 이때 하마스가 발사한 4,594발의 조악한 로켓 상당수는 비행궤도가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25% 이하의 목표 명중률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기간 중 여섯 명의 민간인을 잃고 87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이들은 모두 아이언 돔의 방어 범위 바깥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전쟁은 2014년 8월 26일 자로 종전했습니다. 

 

미국은 초창기부터 아이언돔 개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개발비를 투자해왔으며, 2010년에 하원 승인을 거쳐 2억 500백만 달러를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에는 7천만 달러, 2013년에는 6억 8천만 달러, 2014년 2억 2,500만 달러, 2015년에는 3억 5,100만 달러를 할당해 아이언 돔의 개발을 지원했습니다. 

 

미 정부는 지속적으로 개발 및 양산비용을 계속 투자해 가잔 최근인 2018년 3월에는 역대 최고액인 7억 5백만 달러를 승인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의 공동개발뿐 아니라 기술이전을 실시할 예정에 있으며, 2014년부터 미국의 미사일 제조업체인 레이시온사가 아이언 돔 생산에 참여해 미국 내 하청업체들과 함께 타미르 요격 미사일을 공동 생산 중에 있습니다. 

 

2. 아이언돔의 특징 

앞서 말했듯 아이언 돔은 적의 선제공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우군 및 민간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아군 측이 여유를 갖고 정치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게 해 주며 즉 선재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도 영토와 국민의 피해를 획기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반드시 보복 공격을 하거나 반격을 해야만 하는 압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2012년 가자 겨울 전쟁에서는 가자 지구로부터 1,200발 이사의 로켓 공격이 있었으나 핵심 자산이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저 강도 분쟁으로 유지하다가 긴장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방위군은 예비군 동원을 발령했으나 공세작전은 실시하지 않고 휴전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언 돔은 총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각각 탐지 및 추적 레이더 (EL/M -2084) 전장 관리 및 무기 통제 체계 (BMC)그리고 미사일 발사장치 (MFU)입니다. 

아이언돔과 다비드 슬링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EL/M-2084 레이더의 모습. <출처: 미 미사일 방어국[MDA]>

아이언 돔 체계의 가장 핵심인 레이더는 이스라엘의 레이더 전문 업체이자 방산 대기업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자회사인 엘타 시스템 이 개발했습니다. 요격의 핵심인 타미르 미사일은 체계 통함을 담당한 라파엘사가 제작하며, 일부 구성품은 미국의 레이시온이 공동 생산하고 있습니다. 

 

아이언 돔은 아군 측으로 날아오는 포탄이나 미사일을 탐지할 시 포착한 정보를 곧장 BMC로 전송하며, BMC는 해당 위협의 예상 비행경로를 예측한 후 타미르 미사일이 요격할 수 있는 충돌 지점을 계산합니다. 아이언 돔은 해당 위협 요소를 요격할 경우 낙하 잔해물이 가급적 중립지역(비거주지역이나 개활지)에 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아이언 돔의 가장 큰 특징은 근거리에서 적 포탄이나 로켓 위협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빠른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점입니다. 

 

아이언 돔 포대의 레이더는 다수의 적 포탄을 탐지하면 위협 수준이 높은 표적부터 순타적으로 요격을 시작하며, 해당 표적의 예상 탄착지점이 들판이나 강처럼 굳이 방어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장소라면 문제의 표적에 대해서는 요격을 포기합니다. 

 

또한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 요격 실패 시 재시도를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동시에 두발의 타미르 미사일을 발사해 표적을 제거합니다. 

 

아이언 돔은 최근 무인 항공기 (UAV) 요격용으로도 운용 중에 있습니다. 이사르 엘 군이 운용 중인 MM-104 패트리어트 요격체계보다 운동 단가가 싸다는 점 때문에 부각된 용도로, 페트리어트의 경우 한 발당 2~3백만 달러가 소요되는 반면 아이언돔의 타미르 미사일은 10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라파엘 사는 2015년 부터 테스트에 들어가 무인항공기 요격에 성공했으며, 근점 전파 신관 발사뿐 아니라 운동에너지 탄두로도 비행 중인 무인기 요격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특히 아이언 돔은 고도 10km 탐지범위 70km 이상을 커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고도 무인기가 정찰을 시작하거나 무장형 무인기가 무장을 발사하기 전에 요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중입니다. 

 

 

3. 아이언 돔 운용현황

2010년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간 아이언 돔은 계산상 15개 포대를 전개해야 이스라엘 전역을 커버하지만 현제 생산량의 문제 때문에 10포대까지만 설치한 상태라고 합니다. 지금쯤을 전부 배치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아이언돔 도임을 시작으로 적측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성했으며 제리 상위 단계인 광역 방어에는 고도 50km에서 100km까지 방어하는 애로우 2와 3, 중고도 방어는 최대 고도 15km 최대 방어 범위 300km까지 방어하는 디비드 슬링 저고도 방어는 고도 10km까지 커버하는 아이언 돔으로 짜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향후 레이저로 물체를 지져버리는 아이언 빔을 근점 방어 용도로 배치시켜 탄도 미사일 - 중거리 미사일- 근거리 공격- 초 근점 공격을 단계적으로 막을 수 있게끔 연동시킬 예정입니다. 

 

2016년 12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은 이웃의 적대국인 아르메니아가 러시아제 아스칸 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 체계를 도입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아이언 돔을 구입했습니다. 

 

이는 아이언 돔의 천 수출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2012년에는 가자 겨울 전쟁 간 아이언돔의 성과를 보고 관심을 가진 인도가 도입 협상에 들어갔으며, 인도 방산 획득의 특성상 오랜 시간 줄다리기가 이어진 끝에 2017년경 20억 달러 규모로 아이언돔 도입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2017년 11월경에는 아르헨티나 공군이 프라스로부터 슈퍼 에땅 다르 전투기 5대를 구입하자 역국 국방부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포틀랜드 제도 방어용 아이언돔을 약 1억 500백만 달러로 계약했습니다. 

 

영국이 도입하는 아이언돔은 스카이 세이버로 명명될 예정입니다. 

한편 2021년 5월에 발생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아이언돔을 맹활약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여러 차례 아이언돔 시스템 도입에 대해 검토를 했으나, 합동참모본부의 입장은 아이언 돔이 미사일 공격보다 포탄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근거리 방어체계이기 때문에 한반도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우발 상황 시 한국에게 우선적 위협이 되는 북한 장사정포는 주로 170mm 혹은 240mm 방사포 위주인 데다 단시간 동안 집중적인 공격이 이루질 가능성이 큰데 , 아이언돔이 이런 상황에 적합한 체계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 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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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속도전을 수행하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대운들은 지정된 시간보다 앞서 부대에 집결했습니다. 

최종 검열을 위해 인진 구출 계획의 수정과 장비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충동 직전까지도 새로운 정보들이 속속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엔테베 작전 -작전계획 파해치기. 썸네일 이미지

 

장비점검이 끝나자 공격 부대인 사이렛 메트 칼의 지휘관인 요나단'요니' 네타냐후 중령은, 이작전의 초대 목표는 인질 구출이지 적의 근거지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가잔 중용한 용소 중 하나였습니다. 30분에서 1시간 안에 인질 구출부터 퇴출까지 완수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질 구출에 직접적인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목표물 이외에는 가급적이면 교전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질 구출에 성공하고 나면, 그땐느 부주적인 목표물과도 교전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방침을 세우고 우발 사태 발생 시 행동요령들을 토의하면서 사이렛 매트칼의 전술 토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갔습니다. 

 

11시 30분경 사이렛 매트칼과 공군 수송 비행대대를 포함한 구출 부대는 합참의 장성들 앞에서 작전계획을 보고 했습니다. 

구출 부대는 13시 20분 로드 공항에서 출발하여 시나이반도의 사름알세이크 항공기지로 향했습니다. 

수송기와 지상 구출 부대와의 합동훈련은 아질 실시된 바가 없었고 지휘계통도 조종 대고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정부는 아직 구출작전의 실시 여부를 결정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비 기를 포함한 5대의 c-130 수송기는 러시아 정보수집선과 이집트 레이더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저공비행으로 사막 위를 날았습니다. 무더운 사막 위를 저공비행하던 수송기는 심한 난기류까지 만나서 샤름 알 셰이크 항공기지에 착륙했을 때에는 모든 대윈들이 심한 멀미에 시달렸습니다. 심지어는 사이렛 매트칼 대운 중 1명은 심한 구토 증세로 구출 작전에서 제외되기까지 했습니다. 

 

2. 아프리카 대륙으로 출발하다. 

15시 30분 숌론 장군은 구출 부대의 출동을 명령했습니다. 

더 이상 출발을 미루었다가는 자정의 공격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왔기 때문입니다.. 라빈 수상이 아직 구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임무가 취소된다면 부대를 소환하면 그만이었습니다. 

 

1번기에는 숌론 장군과 지휘부, 요니와 사이렛 미트 칼 대원 29명, 사이렛 차하님 대운 52명, 벤츠 승용차, 랜드 로보 2대가 실려 있었습니다. 2번기에는 지취부 추가 인원, 사이렛 찬하 님 17명, 그리고 장감차 2대와 숌론의 지휘용 지프 1대, 3번기에는 사이렛 골라니 30명과 장급 차 2대, 그리고 지프 1대, 4번기에는 사이렛 골라니 20명, 의료반 20명, 지상 재급유 요원 10명, 그리고 급유펌프가 실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잔뜩 별력과 장비를 실은 c-130은 이륙 시부터 제한 중량을 초과한 상태였습니다. 

비행은 약 7시간 반이 걸리는 여정이었습니다. 샤롬 알 세이크를 이륙한 c-130 편대는 고도 50피트로 초저공비행을 하면 선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레이더 감사 망을 피해 홍해를 건너 에티오피아에 도달했습니다. 

 

일단 에티오피아 영공에 접어들자 c-130은 다시 고도를 2만 피트로 올리고 정상적인 비행을 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에는 대공 수색 레이더가 없었기 때문에 구출 부대가 발각될 염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남남서로 비행을 계속하던 편대는 케냐의 북쪽을 거쳐 우간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22시 30분경 드디어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몇 분만 더 가면 엔테베였습니다. 

 

c-130이 엔테베 공항 관제탑과 착륙 중인 브리티시 항공 여객기의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한편 작전의 총고나 지휘를 위한 공군 사령부도 출동했습니다. 에쿠 델 아담 합참 부의장과 벤야민 펠레드 공군참모총장은 보잉 707 지휘 통제기에 탐승하여 구출 부대의 총괄적인 지휘와 이스라엘 본국과의 연락 임무를 맡았습니다. 

 

3. 야간의 착륙을 하다. 

계획에 따라 나머지 c-130 수송기 3대는 편대에서 이탈하여 상고에 대기하고 1분기가 엔테베 공항으로 접근을 시작했습니다. 숌론 장군과 요니 줄 령도 조종석에 모여 지상을 향해 c-130이 내려가는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C130은 모든 조명을 끈 채 레이더만으로 고도를 측정하면서 지상으로 향했습니다. 원래 야시경을 사용하기로 했었지만 장비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레이더 착륙을 감행했습니다. 

 

페테랑 조종사 샤니 중령은 완벽한 조정하에 기체는 1976년 7월 3일 23시(엔테베 현지 시각으로는 자정)에 엔테베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엔테베 작전상황이미지- 1번기가 23시(현지 시각 자정)를 기하여 착륙을 개시하면서 구출작전이 시작되었다.

 

기체가 착륙하자 기내는 작전 준비로 바빠졌습니다. 사이렛 매트칼은 벤츠와 랜드로버의 시동을 켜고 출발할 준비를 했습니다. 한 면 사이렛 찬하 님 대원 10명은 착륙한 뒤 정지하기 위해 감속하는 c-130의 사이드 도어로 뛰어내려 활주로에 비상등을 설치했습니다. 활주로의 끝에 도착한 c-130은 기수를 돌려서 구청사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c-130의 후방 램프가 열리면서 33대의 차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간다군으로 위장한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이 드디어 구출작전을 시작한 것입니다. 

 

4. 밤의 정적을 가르는 총성 소리. 

29명의 사이렛 메트 칼 대원들은 모두 우간다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벤츠 승용차 1대와 랜드로버 군용 지프 2대에 탑승했습니다. 

 

라이트를 켠 3대의 차량은 약 70km 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라이트를 끄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오히려 끄고 달릴 경우 우간다 경비 병력에게 의심을 살 위험이 있었고 또 어두운 밤에 헤드라이트를 켜면 강력한 빛 때문에 눈이 부셔 경기병들이 차량 안의 이스라엘 특수부대원들을 알아보기 힘든 게 분명했습니다. 

약 1분을 달리자 차량 행력은 구청사로 향하는 차량 전용 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길 양쪽에서 우간다군 경비병 2명이 나타났습니다. 

오른쪽 경비병이 벤츠를 향해 정차 명력을 내렸습니다. 벤츠가 계속 달리자 경비병은 소총을 장전하고 차량을 세우라는 수신호를 보냈습니다. 경비병이 사정권 내에 들어오자 요니는 벤츠의 속도를 줄이고 마치 신분을 증명이라도 할 듯 창문을 내렸습니다. 

뒷좌석에 앉은 요니와 다른 대원은 소음기를 단 베레타 M1951권총을 경비병들에게 발사했습니다. 

그러나 경비병은 쓰러지듯 총알을 피하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우간다군으로 위장한 사이렛 매트칼의 기만전술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비록 최초의 교전으로 기습의 효과를 잃기는 했지만, 테러범들은 어둠 속에서 구출부대를 우간다군으로 착각했다. 사진은 우간다 군복과 AK로 무장한 사이렛 매트칼 대원의 모습이미지.

아무리 숙련된 대테러 부대원이라 해도 이동하는 차량에서 좁은 승용차 창문 사이로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길가 오른쪽에 있던 경비병은 이러서 서 벤츠 앞에 소총을 발사했습니다. 

 

왼쪽 경비병은 구청사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후방의 두 번째 랜드로버에 탐승한 대원들이 사격에 가세해 경비병들을 모두 사살했습니다. 

그라나 밤의 정적을 가르는 총성으로 인해 이제 기습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요니는 대원들에게 전속력으로 달리 것을 지시했습니다. 청사까지는 겨우 200m도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5. 구청사로 돌입 시작. 

구청사 쪽으로 다가가면서 요니의 눈앞에는 테러범들과 우간다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 누구도 사이렛 메트 칼의 차량 행렬에 총격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구청사의 중앙홀 입구에 차량을 세운다는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요니는 벤츠와 랜드 로보를 구청사 관제탐 아래쪽에 신속히 세웠습니다. 인질 구추 부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테러범과 우간다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니는 정차와 동시에 대원들에게 건물 소탕을 명령했습니다. 

사이렛 매트칼의 부지 휘관인 무키 배 처 소령은 자신의 공격 제대를 이끌고 구청사 건물로 돌진하면서 건물 밖의 우간다 병사들에게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러자 테러범들은 달하나면서 외쳤습니다. 

 

사일렛 메트 칼은 일단 구청사에 도착한 이후 3개 제대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대운들은 작전계획에 따라 구청사의 진입구에 집결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운들이 진입을 주저하는 듯 보였습니다. 

요니는 전진 하라고 수차례 소리쳤지만 무키는 계속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핵심인 구출작전에서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그것은 인질의 사망으로 연경 됐습니다. 요니는 무키 앞으로 달려 나와 도력을 지시했습니다. 

실제로 지연된 시간은 15초 정도였지만, 요니에게는 1초가 아까웠던 것입니다. 

 

그 순간 도열한 대원들의 뒤에서 총성이 들렸습니다. 관제탐 뒤에 나무 박스 사이에서 우간다 경비 영이 대원들을 향해 총격을 시작한 것입니다. 대원들은 곧바로 응시하여 불청객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인 벌어졌습니다. 방금 전의 총격에 요니가 쓰러졌던 것입니다. 

 

요니 중령이 쓰러졌다는 소리를 대원 하나가 외였지만 대원들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요니는 이미 작전의 준비 단계에서 대운들에게 확고히 지사 했으며 자신을 포함하여 누가 쓰러지더라도 개의치 말고 작전을 수해하라흔 것이었습니다. 

대원들은 요니를 신경 쓸 여유도 없이 그의 지시대로 3개 제대로 나뉘어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엔테베 공항 구청사 공격도 이미지

6. 구청사에서 벌어진 혈전

요니의 돌격 명령에 제일 머전 달려 들어간 것은 이미르 오퍼라는 22 세의 젊은 대원이었습니다. 

아미르가 중앙홀의 입구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보이자 테러범 1명이 유리창을 뚫고 AK-47 소총을 난사했습니다. 

아미르는 첫 번째 출입문 대신 두 번째 출입문을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실내 한가운데 인질들이 엎드려 있었습니다. 또다시 총알이 아미르 쪽을 날아왔습니다. 아미르는 누 운자 신을 노리는 테러범을 향해 기관단총을 발사하여 사실했습니다. 그리고 CQB(근전전 투기 술)의 기본에 따라 오른쪽 벽을 계속 따라가면서 테러범을 찾았습니다. 

 

한편 아미르의 뒤를 따라 두 번째로 진입한 암논 펠레드가 그의 왼쪽을 돌면서 실내를 수색했습니다. 그때 엎드려 있던 인질들 사이에서 2명의 남녀가 AK소총을 들고 아미르를 겨누면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원래 이들은 창밖에서 이동하고 있는 구출 부대원들을 조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달려 들어온 아미르에 놀라 반사적으로 조준 방향을 발 꾼 것이었습니다. 

 

펠레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테러범 2명을 탄창 하나로 애 치웠습니다. 

바로 이때 무키 소령과 아모스 오랜 이라는 대원이 동시에 중앙홀로 들왔습니다. 기둥 뒤에 숨어 있던 테러범 한 명이 아모스를 겨누고 AK소총을 발사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아모스도 그 테러범을 발견하고는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둘은 것의 동시에 총을 발사했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 났습니다. 아모스의 탄환이 테러범의 총을 뚫고 들어가 공기를 멈추고 테러범을 사살한 것이었습니다. 불과 0.1초도 안 되는 간발의 차이로 아모스의 발사가 빨랐던 것입니다. 

 

7. 대혼란의 현장 

C-130이 착륙한 지 3분 만에 테러범 7명 중 4명을 사살하고 인질을 확보했습니다. 그라나 아지 인질의 안전이 확보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우간다군을 오나 벽하게 제압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테러범들이 공격해올 가능서도 높았습니다. 인질을 확보하고 중앙홀을 점령한 작전 1 제대의 대원들은 긴장했습니다. 

 

제일 먼저 진입한 아미르는 갖고 있던 확성기로 영어와 히브리어로 인질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혼란에 빠른 인질들은 간단한 지시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질들 가운데 1명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대원들이 긴장하고 총을 겨누었지만 어린 소녀임을 알고 총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인질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습니다. 대운들의 지시를 듣지 못하고 일어나 19세 청년이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사실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한편 인질 가운데 또 다른 2명이 사살된 채 발견되었는데 테러범과 대원들 간의 총격이 오가는 과정에서 도비탄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질을 확보하고 있는 사이에 작전 1 제대의 나마지 팀은 VIP 라운지 점령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원 들은 VIP라운지 정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원중 한 명이 안쪽으로 수류탄을 던졌지만 수류탄은 도로 빵으로 튀어나와 대원들 옆에서 터졌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대운 1명 만이 파편에 경상을 입었을 뿐이었습니다. 

곧바로 다른 진입구를 찾은 팀이 VIP라운지로 돌입하자 2명의 손을 올이고 대원들에게 다가왔습니다. 

 

대원들은 그들에게 멈추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계속 다가왔습니다. 대원들은 이들이 인질인지 테러범인지 잠사 고민하는 사이 다가오는 자들의 허리춤에서 수류탄 주머니를 보았습니다. 

 

대원들은 주저 없이 소총을 발사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테러범의 손에 꽉 쥐어져 있던 수류탄이 떨어지면서 폭발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기적적으로 중상자는 없었습니다. 팀원들은 VIP라운지 인근을 계속 수색하다가 한쪽 방에서 중어 있는 테러범은 발견했습니다. 

 

대원들이 방금 가한 치열한 총격 과정에서 도비탄에 맞아 숨진 것이 분명했습니다. 

 

8. 우간다군을 제압하다. 

작전 1세대가 인질을 구출하는 사이 2 제대는 구청사의 2층을 공격했습니다. 

2층은 원래 식당이 있던 자리로 인질 사건이 발생한 이후 우 우간다 군 경비 병력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대원들은 계단을 올라가면서 눈에 보이는 병사들을 하나둘씩 사살했습니다. 

그란 막상 2층에 올라갔을 때 남아 있는 것은 담요와 침낭뿐이었습니다. 총격이 시작되자 우간군은 현장에서 도망간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편 구청사 밖에서는 지휘 통제반이 관제탐의 우간다군과 치열하게 총격을 주고받았습니다. 지휘 통제반은 랜드로버에 탑재된 50 구경 기관총을 관제탐에 발사했지만 적의 사격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청사를 점령한 대운들도 교전에 참가했지만 적의 사격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소 총격이 잦아들자 군위관이 쓰러진 요니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AK소총 찬이 요니의 쇄골 아래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부상이 심해서 요니를 살리 수 없음을 안 군의관의 대처에게 상황을 알렸습니다. 부지휘관인 부처는 자신이 작전지휘관을 인계받았음을 전 대원에게 알렸습니다. 이제 문제는 관제탐을 포함한 청사 주변을 제압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편 작전이 시작된 지 6분이 나나 2분기가 착륙했습니다. 1분기가 차량을 전개한 장소에 대기 중이던 숌론 장군은 2번 기로부터 자신의 지휘 지프를 수령하고 장갑차 2대를 이끌고 구청사에 도착했습니다. 관제탑에 있던 우간다군이 간헐적으로 사격을 가해오자 숌론은 장갑차에 교전을 명령했습니다. 장갑차에서 기관총과 RPG를 발사하자 관제탑은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교전 와중에 3번 기도 도착했습니다. 나머지 장감차 2대가 3번 기로부터 발진하여 구청사 뒤편에 전개했습니다 엔테베 도심으로부터 이어지는 도로에서 나타날 지고 모르는 우간다 증원 별 역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사이 최초에 전재했던 장감차 2대중 1대가 인근의 우간다 공군기 쪽으로 향했습니다. 장갑차는 주기되어 있던 우 간다 군 미그 -17기들을 산산조각 냈으며 이스라엘군이 우간다군의 미그기를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 군의 안전 한 퇴출을 위해 사전에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디 아민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복수라는 성격이 더 짙었습니다. 

 

이로써 작전 개시 15분 만에 인질의 구출과 우간다군 제압이라는 어려운 임무가 와수 되었습니다. 

그라나 작전이 완전히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일렀습니다. 모든 인질과 부대원이 엔테베 이서 안전히 퇴출하기 전까지는 작전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특수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퇴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9. 발 빠른 퇴출 하다. 

몇 분 후에 재금유팀과 의료진을 실은 4분기가 도착했습니다. 

의료진이 요니를 포함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가운데 재급유팀도 재 파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한편 구청사를 확보한 구출 부대는 인질을 청사 앞쪽에 모아 랜드로버와 트럭으로 수송까지도 후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인질의 호송에 여념이 없는 사이 엔테베로부터 이어진 도로에 우간다군을 태운 수송트럭 2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라나 이스라엘군이 준비한 장갑차는 손쉬운 표적을 쓸어버렸습니다. 

 

어둠과 혼란 속에서 인질들은 구출 부대원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원들이 여라 차례 소지품을 버리고 차량에 탑승하려고 주의를 주었지만, 인질들 중 몇몇은 소지품을 챙기기 위해 호송 대열을 이탈하여 구청사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또 공포 속에서 히스테리에 빠진 인징 몇몇은 대원들의 지시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대원들이 강제로 수소기로 끌고 가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어둠과 혼란 속에서 대원들은 인질의 수조차 점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퇴출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질이 아니라 재급유였습니다. 

사이렛 미트 칼이 구청사를 점령하는 사이 사이렛 찬하 님은 교전 없이 신청사를 점령하고 연료탱크를 확보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사일렛 매트칼과 사이렛 골라니가 구청서를 확보하고 인질을 소개하는 동안 재금유팀은 사이렛 찬하 님과 합류하여 신속하게 재급유를 시장했습니다. 수송기 4대에 전부 재급유하기 위해서는 무려 40분 이상이 추가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구출 부대에게는 이런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때 707 공중지휘 통제기로부터 긴급 전문이 들왔습니다. 케냐 정부가 이스라엘군의 재급유를 허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엔테베에서 나이로비 까지라면 약 1시간 거리로 현재의 연룔로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구출 부대는 재급유를 중단했고, 인질을 태 운수 송기 1대가 먼저 엔테베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시계는 23시 52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10. 구출 부대의 퇴출까지 90분 걸림. 

이렇게 인질을 소개하고도 구출부대의 상당수는 엔테베에 남았습니다. 인질 호송 수송기로부터 구출자가 모두 105명이라는 보고를 받자, 곤 중지휘 통제 기는 지상의 숌론 장군에게 남은 인질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인진 수는 106명 이어 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출된 인질은 이스라엘인 93명과 에어프랑스 승무원 12명을 합해 총 105명이었습니다. 구출되지 못한 인징 1명은 치료를 위해 구청사에서 병원으로 옮겨졌던 73세 도리프 로크였습니다. 그녀는 다음날 이디 아미의 수하들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숌론은 잔류 인질이 없는지 청사 주변을 수색했습니다. 피랍기 내부에 인질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기된 에어버스기까지 수색했습니다. 

 

철저한 수색 끝에 구출 부대는 더 이상 남아 있는 인질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편 구출 부대는 공항 청사 주변의 주차장에 시간 지연식 폭약을 설치하여 우간다군의 추적 의지를 꺾고자 했습니다. 

 

7월 4일 0시 30분 3대의 C-130이 엔테베를 이륙하면서 모든 작전은 종료되었습니다. 

C-130이 최초로 착륙한 지 90분 만에 인질을 구출하고 모든 대원을 회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인도한 모세처럼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20세기 최대의 인질 구출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작전 결과, 테러범 7명과 우간다군 45명이 사사되었고, 인질 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구출 부대원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인질 구출작전에서 사망한 단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구출 부대의 지휘관 요니 네타냐후였습니다. 총망받던 장교인 요니 중령은 지휘관이 최전선에서 이끄는 강한 군대 이스라엘 국방군의 전통을 장렬하게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정부와 국방군이 이런 위험한 작전을 감행했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욤 키푸르 전쟁의 실망스러운 성과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대테러작전에서는 1974년 마일라 초등학교의 인질 구출작전에서 23명의 초등학생 사망하고 , 1975년의 텔아비브 사보이 호텔에서는 인질 8명과 3명을 잃는 등 눈에 띄는 실패를 거듭해 왔습니다. 작전 실패라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스라엘군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도박에 뛰어든 셈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리더십과 창조력, 강인한 전투력, 길고 강한 애국심으로 무자한 젊은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사상 최악의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사상 최대의 인질 구출작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수행해 성공해냈습니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전문 특수작전에 대한 지도부의 신뢰가 없었다면 작전은 실행조차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최고의 부대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예상이나 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부가 일선 부대를 엄마나 굳게 신뢰하는 가의 문제라는 점을 엔테베의 인질 구출작전은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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