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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카의 정식 명칭은 슈투어츠캄프플록 초이크는 급강하 폭격기라는 뜻으로, 독일어의 특성상 단어가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줄여서 슈투카라고 불렸으며 곳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2차대전당시 독일의 폭격기 슈투카 이미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2차 대전은 당시까지 실용화되었거나 아니면 시험 삼아 만든 무기가 그야말로 아낌없이 등장하였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다시 무기를 모두 거론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며 그 전쟁을 상징하게 된 무리를 추려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슈투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JU87 폭격기도 그런 무기 중 하나입니다. 

제2차 대전사를 언급할 때 독일의 팽창과 침략 개시 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시기를 설명하는 각종 문헌이나 시청각 자료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JU87입니다. 

비록 최고 성능의 폭격기라도 단정할 수는 없지만 JU 87만큼 2차 대전을 떠올리게 하는 무기는 없을 것입니다. 

 

1. 생각한 것보다 어려운 폭격 비행을 알아보기. 

요즘은 외과수술 타격이라고도 불리는 초정밀 공격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종종 오폭 뉴스를 점할 때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하늘에서 지상의 목표물을 정확하게 공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조수석에 탐승한 승무원이 대략 위치를 짐작하고 손으로 폭탄을 투하였던 제1차 대전 초기에는 명중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후 폭격기의 고도와 속도를 계산하여 폭탄을 투하하는 기술이 등장하였지만 여전히 명중률이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2차 대전 당시에는 대규모 편대가 출결 하여 폭탄의 비를 퍼붓는 이른바 융단 폭격이 보편화되었습니다. 

강력해 보이고 무시무시하지만 사실 쏟아부은 수많은 폭탄 중 하나만이라도 명중하면 성공이라 생각하던 방식이어서 효율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일단 낭비되는 폭탄도 문제지만 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격추되는 폭격기도 많았습니다. 전쟁을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수행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무지막지한 소모전을 감당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폭격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습니다. 

폭격기의 안전을 고려한다면 고고도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며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좋지만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결론은 폭탄을 목표 위치까지 최대한 근점 하여 투하하는 것이었습니다. 저고도로 비행하면 격추당할 위험이 커지게 됩니다. 

Ju 87의 급강하 폭격 개념도. 목표물까지 정확히 근접하여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기에 이동 표적물의 공격도 가능했다.

이때 고고도로 비행 중 목표를 발견하면 곧바로 강하하여 최대한 근접한 후 폭탄을 투하하는 방법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급강하 폭격기입니다. 

 

개념은 1 차세 게 대전 다시부터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급강하할 때 기체가 받는 정항을 극복하는 등의 여러 난제가 있었습니다. 

1930년대 들어 이런 문제를 해결한 급강하 폭격기들이 본격 등장하였습니다. 

 

2. 재건과 함께 시작된 프로젝트 알아보기. 

재군비 선언 이전부터 비밀리에 독일 공군의 재건을 준비하던 우 데트는 1933년 미국 방문 다시 커티스 사의 F11C 급강하 폭격기의 시범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연구를 위해 즉시 2개를 구입하여 본국으로 가져갔을 만큼 급강하 폭격기가 향후 독이 군에게 반드시 필요한 무기임을 직감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으로 1935년 도입 사업이 시작되면서 이전부터 급강하 폭격기 개발을 하던 유수의 항공기 제작사들이 경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결과 융커스 사의 엔지니어인 풀먼이 설계한 JU87이 치열한 경쟁 끝에 낙점되었습니다. 

기체 구조가 튼튼하였고 야전에서 장비도 쉬웠는데, 회형상 특징은 강착 장치가 고정식이었고 주익이 기체 아래의 시계를 확보하기 용이한 갈매기 날개 모양이었습니다. 또한 급강하 돌입시 조종사의 의식을 잃을 가능성을 대비하여 특정 고도에서 폭탄을 자동 투하하고 기체의 자세를 잡아주는 장치도 설치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 JU87 DMS 90도의 수직강하도 가능하였지만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폭탄 투하 후 이탈 등을 고려하여 속도를 시속 240km 정도로 줄인 후 80도 정도의 각도로 강하였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ju 87은 급강하 폭격기의 약칭인 슈투카로 불리는데 사실 슈투카는 모든 종류의 급강하 폭격기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이지만, 활약이 워낙 인상적이다 보니 이후 ju87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여기 지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개발 당시에 엔징의 완성되지 않아 5기의 실험기들에 롤스로이스 사의 캐스트랄 엔진이 장착되었습니다.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엔진이긴 했지만 영국은 본의 아니게 적국의 무기 개발에 공헌을 하게 돼 새입니다. 

시험 중 여러 사고를 겪으며 개량을 거치 후 1937년부터 ju87A 형을 시작으로 독일 공군에 납품되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스페인 내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슈트카 설명 동영상

3. 전격전을  이끌어 가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JU87은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들이 요충지를 급습하여 상대를 흔들어 놓으면 곧바로 기갑부대가 돌풍같이 진격하여 전선을 돌 하한 후 적의 후방을 차단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포위된 상대방은 궤멸되거나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전격전이라 명명된 이러한 독일의 기동전에 의해 폴란드와 프랑스가 순식간에 점령당했습니다. 

급강하 돌입 시 발생하는 소음에 더해 이른바 '에라 코 나팔'이라 불린 무시무시한 사이렌 굉음으로 인해 폭격을 당하는 지상군은 공항 상태에 빠져 우 왕자와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전과는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이때부터 슈투카는 독일의 승리를 자랑하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폭격의 정확도가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독일 공국의 수장이 괴링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급강하 폭격기 만능론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았던 슈투카의 전성기도 거기서 멈추게 됩니다. 

이른바 공군만의 전쟁으로 표현되는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꼬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의 상대는 공군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편이어서, 슈투카의 활약은 무주공산에서 펼쳐진 것이었습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이라는 보검을 가진 영국의 하늘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동안 간과했던 약점이 여실히 드러난 것입니다. 

 

속도가 느린 슈투카는 한마디로 영국 공군의 날렵한 전투기들의 밥이었는데, 특히 급강하에 돌입할 때 공격을 받으면 소수 무책이었습니다. 

독일 공군에게도 뛰어난 BF 109 전투기가 있었지만 항속 거리가 짧아 폭격에 나선 슈투카를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습니다. 영국 공군에게도 뛰어난 BF 109 전투기가 있었지만 항속 거리가 짧아 폭격에 나선 슈투카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영국 공군 조종사들이 슈투카 파티를 벌인다고 할 정도로 갈수록 피해가 커지자 결국 돌일은 8월 19일부터 슈투카의 영국 본토 항공전 투입을 중지하였습니다. 

 

 

4. 슈투카 전설이 되다. 

슈투카의 흑백사진이며 이률장면과 비행장면 이미지 

하지만 히틀러의 엄청난 도발 욕구가 있는 한 슈투카가 계속 의기소침한 채 뒷방에 물러나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사상 최대의 독소전쟁을 개시하자 전선의 주역으로 다시 떠오른 것입니다. 영국에서와 달리 독일이 초전부터 제공권을 장악해 버리면서 이전처럼 손쉽게 폭탄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부전선에서 전차 같은 이용 표적 공격에 뛰어난 전과를 보였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날이 갈수록 전투가 격화되면서 슈투카는 새롭게 변시 하였습니다. 

상부를 타격하면 단 한 발로도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37mm 기관포를 주익에 장착한 개량 기종이 소련 기갑 붇재의 저승사자로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대포 새라고 불린 슈투카로서, 독소전쟁 중반부터 기갑 전 녘이 절대 영세였던 독일 지상군에게는 천군만마, 소련군에게는 지옥의 사자 같은 존재였습니다. 

 

슈투카와 이기종이 구사한 전술은 냉전시기에 미국이 근접지원용 공격기를 개발할 때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지상군 근접 지원 전투의 모범이라 할 수 있었는데, 특히 519대의 소련 전차를 격파한 전설적인 슈투카 에이스인 루델이 쓴 자서전 '트로츠뎀'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뜻의 독일어이며 새로운 공격기를 개발하던 미국 엔지니어들의 필독서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 한 탱크 킬러가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A-10입니다. 

총 6,500 여기가 생산된 슈투카는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에도 일부 공급되었지만 대부분 독일군에 의해 소비되었습니다. 

 

성능만 놓고 본다면 전쟁 초기를 지나면서 시대에 뒤쳐진 폭격기로 취급될 수 있었지만 마땅한 대체기가 없었던 독일은 이를 개량하면서 끝까지 애용하였습니다.

 

아마도 특유의 외양도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2차 대전 내내 꾸준히 사용되었기에 슈투카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무기가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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