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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소총으로 모신나강이 있습니다. 

오늘은 모신나강 소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발 배경과 소총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신나강 소촐 이미지 

1. 모신나강 개발의 역사 

1877년 발칸반도로 세력을 확장하기를 원하던 러시아는 오랫동안 일대를 지배해온 오스만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전쟁이 16세기 이후 12번째였을 정도로 약국은 그야말로 철천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약 10개월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승리한 러시아는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시킨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등을 위성국으로 거느리며 스리브족의 맹주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러시아 군부는 엄청난 피해에 곤혹스러웠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역할은 담당한 플레브나 공성전에서 두배나 많은 병력을 투입해서 승리했지만 전사자가 3배가 더 많았을 정도입니다. 

보유한 무기의 성능 차이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특히 소총의 질적 격차가 컸습니다. 

오스만 군이 무장한 윈체스터 소총이 러시아군의 벼르단 소총보다 사거리가 길고 연사력도 월등한 소총입니다. 

 

이처럼 러시아는 레버 액션 윈체스터에도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1880년대가 되자 소총의 대세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볼트액션식으로 넘어가던 중이었습니다. 주변국의 최신 동향을 접한 러시아는 상황이 위중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으며 1889년 신예 소총 개발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상금을 내건 국제 공모에 최종적으로 툴라 조병창의 모신과 벨기에의 엔지니어인 나강을 제안이 경쟁을 벌였습니다. 

모신은 프랑스의 르벨 M1886 소총과 한창 개발 중이던 오스트리아의 만리허 소총을 참조한 프로토 타입을 제출하게 됩니다. 

 

한창 개방 중이던 7.62mm탄을 사용하도록 설계되었으나 제작과 유지 보수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나강의 제안은 9mm탄을 사용하므로 추가 개조가 요구되었고 바로 직전에 있었던 자국군의 소총 사업에서 독일마저 우의 M1889 소총에게 밀렸기에 품질도 의문시되었습니다. 

 

모신나강과 같은 1891년 제식화된 다양한 종류의 7.62×54mmR 탄. 120년이 지난 현재도 많이 사용 되는 걸작 총탄. < 출처 : (cc) CynicalMe at Wikimedia.org >

이에 추가 공모를 실시했으나 이 두 소총을 앞서는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결국 개발자들에게 성능개선을 요구했고 그렇게 해서 개령된 모델로 시험을 진행하여 나온 결과물의 나강의 제출안이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며 가장 기초적인 무기인 소총을 계속해서 외국산으로 사용하는 것은 자존심 문제라는 의견도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볼트액션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세기 전반에 모든 열강들은 예외 없이 자국산 소총을 사용하였으며 고심 끈에 군부는 모신의 제출안을 개조해서 나강이 설계한 탄창을 결합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개발되어 1891년 부터 양산에 들어간 새로운 제식 소총에 세출 소총 m1891이라는 제식명이 부여되었고 모신에게는 포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러자 나강이 자신도 개발자라며 소송을 걸어 배상받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후 세줄 소총 M1891은 모신나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소련은 공로를 가리기 위해 무기명을 개발자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재정 로시아 시절에 개발되었지만 세중 소총 M1891이라는 이름은 소련군의 무기 체계가 어울리지 않았기에 혁명의 혼란기가 정기된 직후인 1924년에 모신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단지 탄창 때문에 나강의 이름까지 붙이는 것은 억지라며 현제 러시아에서는 모신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모신나강 덕분에 러시아는 경쟁국들과 같은 시기에 본격적인 볼트액션 소총 시대에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20세기 초반까지 러시아의 공업 수준이 떨어져서 생산의 상당 부분을 외주에 의존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샤텔로 조병창, 미국의 레밍턴, 웨스팅하우스 등에서도 제작이 우어졌습니다. 여담으로 설계도가 러시아의 도량형인 아르신 방식으로 표기되어 업체들이 수치를 재계산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개발 과정과 자국 산업 수준의 불신 때문에 모신나강에 대한 일선의 최초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새롭게 표준이 된 7.62 × 54 mmR탄의 초기 불량률이 높았던 점도 나쁜 평판을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 경쟁 소총과 비교했을 때 성능은 그다지 차이 나지 않았습니다. 

 

또한 문제가 되었던 7.62 × 54 mmR탄도 실제로는 1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 중일만큼 뛰어난 총탄입니다. 

모 시나강이 생각보다 좋은 소총이라는 사실은 한참 후인 제2차 대전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개발 당시에 군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대한 구조를 단순화시킨 덕분에 모신나강은 어지간한 악조건에서도 무난히 작정했습니다. 

 

독소전쟁 초반이던 1941년 겨울에 윤활유가 얼어붙어 돌이 군의 무기는 작동하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모신나강은 같은 상황에서도 사격에 문제가 없었고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한 소총이었던 것입니다. 

 

2. 모신나강의 특징 알아보기. 

모신나강의 외관은 기존에 사용하던 베르단과 유사하나 5발을 내부 탄창에 장찬 할 수 있어 연사 속도가 빨랐습니다. 

노리쇠 작동이 악명이 높았던 카르카노 소총 같은 사계도 있지만 사실 볼트 액션 소총은 기계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아 연사력은 수의 숙련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모신나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조준기, 노리쇠, 방아쇠 등의 개량이 이루어져서 성능이 꾸준히 향상되었습니다. 

 

전설적인 저격수인 시모 헤위헤. 핀란드산 모신나강인 M24를 사용했다. < 출처 : Public Domain >

모신나강은 총신이 상당히 긴 편이며 러시아식 스파이크 총검까지 달면 무려 병사들의 신장과 맞먹은 173cm를 넘길 정도여서 휴대가 불편했습니다. 

러시아 평원처럼 넓은 개활지에서 백 병정을 벌인 경우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제1차 대전에서 일상화가 된 참호전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량이 이루어질수록 총신이 중어 들었는데 특히 1907년에 등장한 기병 대용 m1907 카빈은 총신이 28.9cm나 짧아졌습니다. 

 

볼트액션 소총은 사격의 정확도가 높습니다. 여기에  모신나강은 긴 총신 덕분에 사거리가 길고 파괴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때문에 전쟁사에 길이 빛날 많은 저격수들이 애용했습니다. 1939년 발발한 겨울 전쟁 당시에 3개월 동안 적군 542명을 사살한 역사상 최고의 저격수인 헤위헤도 핀란드산 모 시너가 인 m24를 사용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게도 소련군은 자신들이 개발한 모신 나강에 게 치욕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3. 모신나강 제원

제작사 툴라 조병창 외
구경 7.62m
탄약 7.62×54mmR
급탄 5발 들이 스트리퍼 클립
전장 1,232mm
총열 730mm
중량 4kg
유효 사거리 500m
작동 방식 볼트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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