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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취역한 미공군의 지상 지원용 공격기 인 건쉽 통칭 천사의 날개를 두른 하늘 위에 전함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록히드 마틴의 C-130 허큘리스를 기반으로 기관포 및 곡사포 위주의 무장을 장착 그래서 미국은 공중에서 포격을 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AC-130 스펙터 건십 항공기 이미지   출처 : 미공군

 

1. 개발 역사 알아보기.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치열한 전장 환경뿐 아니라 전 인도차이나 반도에 걸쳐 있는 드 넓은 전장 환경 때문에 별력의 집중성과 화력지원으로 큰 고민을 안았습니다. 

특히 지상전력에 대한 근접 항공지원(CAS: Close Air Support)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는 전장 공간이 넓었기 때문에 병력의 이동 간 적 기습에 취약해지는 경향도 있었고, 사방에서 출몰하는 게릴라 긴급한 화력지원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에 미 공군은 민수용으로 제작한 더글러스사의 DC-3을 군용으로 개량하여 7.62mm 미니건과 각종 무장을 장착한 AC-47 스푸키(Spoky)를 베트남에 투입했습니다. 구니 버드로 불린 AC-47은 최초 야간 공격 간 적진지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전광탄을 쏟아낼 목적의 플레이어십 목적으로 설계했었으나, 개발이 논의되던 중 베트콩이 야간 기습이 빈번해졌기 때문에 기체에 충분한 무장을 장착할 필요가 높아져 설계가 변경된 것입니다. 

 

AC-47은 애초에 조명탄을 투입하는 플레어십으로 개발되었다가 건십으로 바뀌었다. 출처: 미공군

이에 따라 미공군은 세계 최초로 고정익 기체에 부장을 탑재해 지상전력을 지원하는 내용의 건십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출범했습니다. 

미공군은 거대한 플랫폼에 대구경 화력 체계와 다양한 무장을 통합하면서 이 새로운 개념의 고정익 항공기에 원래 남북 전쟁 중 강철 포함에 붙였던 건십이라는 명칭을 차용했습니다. 

 

건십 항공기는 기동성이 중점을 두지 않되 적재 중량은 커야 하고, 목표 상공에 최대한 오래 머물며 표적을 제거해야 하므로 제트엔진 대신 프로 페러식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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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십 항공기는 기동성에 중점을 두지 않되 적재 중량은 커야 하고, 목표 상공에 최대한 오래 머물며 표적을 제거해야 하므로 제트 엔진 대신 프로 페러식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완성된 AC-47 DMS 900m 상공 세어 원형을 그리며 비행하며 17초 내에 약 4,200 제곱미터의 면적 구서구석까지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미공군은 단 두 주 만에 개조를 완료한 AC-47 두대를 전장에 투입했으며, 1964년 12월 14일에 첫 전투에 투입되면서 21명의 베트콩을 제거했습니다. 또한 12월 23일에는 탄옌(thanh yen)의 전초기지에 적들이 야간 기습을 가해오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전개됐으며 AC-47은 4,500발의 총알을 쏟아붓고 17발의 전광탄을 날리면서 적의 기습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 공군은 AC-47 스푸키를 통해 건십의 효용성을 확인했으나 항공기의 탑재 중량, 항속거리, 화력이 조금씩 부종 했으므로 본격적으로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화력지원을 실시할 수 있는 건십 전용 항공기를 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공군은 차세대 건십 항공기 요구도를 잡으면서 탑재 능역과 항속 거리에서 유리한 수 솔기 기반의 C-130 허큘리스를 비본 기체로 선택했습니다. 특히 허큘리스는 터보프롭 기반의 항공기였기 때문에 제트기보다는 속도가 떨어지지만 헬기보다는 빨랐고 고고도에서 체공이 가능 시간이 길었으며, 탑재 중량이 커 다양한 무장을 동체뿐 아니라 주익 하부까지 장착해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AC130 건십 설명 동영상 

미공군은 1967년 부로 우선 JC-130A 중 기체 번호 54-1626번기를 선택하여 AC-130A건쉽 2 프로젝트를 위한 시제기 개조용으로 지정했습니다. 기체의 개조 작업은 오하이오주 데이튼에 위치한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 내의 미공군 항공역학 체계부가 담당했습니다. 

 

AC-130A에는 직접 관측 야시경이 전방 도어에 장착되었고, FLIR초창기 모델이 좌측 렌딩기어 옆에 설치됐습니다. 

기본 무장으로는 미니건과 회전식 기관포가 왼쪽 측면에 지상을 바라보도록 장착됐습니다. 

 

특이하게도 AC-130에 아날로그 방식의 하력 통제 컴퓨터 시제품 하대를 제작하여 설치한 건 당시 라이트-페터슨 공군기지 내 미공군 항전장비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던 왕립 공군의 톰핀커트 중령이었습니다. 

 

이렇게 개조가 완료된 AC-130은 프로리다주에 위치한 에글린 공군 기지에서 초도 비행을 실시한 후 계속 시험 평가와 개조를 지속적으로 진행했습니다. 

 

AC-130은 1967년 9월부터 전투 시험평가 인증을 받았으며, 처음으로 베트남에 전개되어 주월 한국 군사령부도 위치하고 있던 나랑 공군 기지에 배치되어 90일간 시험 평가를 진행했습니다. 

사격 중인 AC-47 스푸키 건십 (출처: Public Domain)

이후 실전에 투입된 AC-130은 베트남에 전개되어 전쟁 기간 중 10,000대가 넘는 적 차량을 격파했고 수없이 많은 근접 항공지원(CAS) 임무를 소화하면서 우군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AC-130은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베트남 하늘에 등장하여 야간에는 천사의 날개로 불리는 200만 촉광의 전광탄을 쏟아내며 밤하늘을 밝혔고, 주간에는 적에게 첨첨이 포위된 우군 머리 위로 날아가 사방의 적들을 일소했습니다. 

 

AC-130은 베트남 전쟁 종전 뒤에도 반세기 넘는 기간 동안 그레나다, 파나마,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활약했습니다. 

 

한편 미공군은 AC-130을 실전에 배치하면서 이를 후속할 기체를 개발하는 내용의 프로젝트 건십 3 사업을 1968년 2월부터 발주했습니다. 

 

이에 페어차일드 항공의 C-119 플라잉 박스카를 바탕으로 한 AC-119G 섀도를 개발했습니다. 당초 AC-119는 앞서 운용한 AC-47 스푸키와 교체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므로 총 52대가 양산되어 베트남에 전개되었지만 섀도는 덩치에 비해 화력과 출력이 부족해 AC-130에 비견할 만한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운용 주체였던 미 제71 특수작전 비행대대가 1969년 부로 본토 귀환이 결정되자 소수의 기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AC-119도 미본토로 회수되었다가 1975년경에 대부분 퇴역 치리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AC- 130은 몇 차례 대체 기종의 개발이 고려됐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대신할 기체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AC-130은 몇 차례 대체 기종의 개발이 고려됐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대신할 기체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AC-130은 몇 차례 대체 기종의 개발이 고려됐지만 실질적으로 이를 대신할 기체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AC-130은 1960년대 첫 개발로부터 반세기가 넘은 현제까지도 건재하게 운용되고 있습니다. 

 

AC-130은 비교적 최근인 이라크 자유작전과 항구적 자유작전뿐 아니라 IS 척결 작전에도 참가하여 활약한 바 있으나 안타깝게도 미공군은 AC-130이 미래 전장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항공기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일단 동체가 크고 뭉툭하기 때문에 레이더 신호 특성이 높고, 비행 속도는 낮기 때문에 생존성이 계속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건십의 특성상 적지 종심을 직접 파고들어야 하므로 이 또한 미래 전장 환경에서 분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전무가 들은 미래 건십의 임무를 인명피해 부담이 없고 스텔스 성이 높은 무인항공기 계통이 데채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전장 위의 AC-130은 건재하므로 그 미래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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