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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에서 잠수함을 상대로 하는 무기 중에 초계기가 있습니다. 잠수함 킬러로서 활약을 하는데 그동안 구형 초계기를 사용해 왔습니다. 이번에 최신형 초계기를 들여온다고 합니다. P-8A포세이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P8A포세이돈 대잠초계기 이미지   출처 미해군

1. 개발 역사 

보잉 P-8포 세이 돈은 2009년 4월 25일에 초도 비행을 했습니다. 미 해군이 해상초계기로 운영 중인 록히드 P-3 오라이온 터보프롭 대반 초계기를 대체하기 위해 새롭게 전력화되고 있는 차기 다목적 초계기입니다. 

 

보잉사가 737-800 ERX를 밀리터리 스펙 규격의 P-8 플랫폼 생산 및 통합을 담당하고, GE사와 프랑스의 스네크 마 사가 합작해서 설립한 CFM 인터내셔널 사가 엔진을 생산·공급합니다. 

 

미 해군은 P-3C 오라 이론 대잠초계기의 구형 기체의 구조 및 시스템의 한계로 운영 연장과 개량을 진행하더라도 성능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RMFOTJ 1990년대 말 록히드의 P3-C 오라이온을 대신하여 해상초계 및 대잠전을 수행할 기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기체는 다목적 임무 항공기(MMA, Multi-mission Maritime Aircraft)라고 불렸습니다. 미 해군은 다목적 임무 항공기의 사업제안요구서를 2000년 2월 발송하면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다목적 임무 항공기 사업은 육상, 해상, 항공에서 다얗안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다목적 임무 항공기의  운용 목적이 기존의 전면적 대규모 전쟁뿐만 아니라 테러나 다양한 목적이 운용 가능하도록 개발하게 했습니다. 사업 소요 재게 시에 미 해군이 구매를 히면 비행기 수량은 최초에는 251대였으나 이후 사업이 축도되면서 117대로 사업이 축소되었습니다. 

 

최초 다목적 임무 항공기 사업은 록히드 보잉, BAE 3사가 경합했는데 록히드 이 오라이온 21과 보잉의 737-800 ERX비즈니스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6월 보잉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미 해군은 보잉의 후보 기를 P-8A 포세이돈으로 명명했습니다. 

 

보일 사는 위싱턴 주에 있는 렌튼 공장에서 테스트용 시제기를 제작했고, 2008년 7월 제작을 완료해서 2009년 4월 25일 초도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저고도에서 주로 작전을 수행하는 P-3 오라이온 초계기와 다릴 저고도 및 고고도에서 작전이 가능한 P-8A포세이돈 초계기는 2008년도 중반 이후 미 해군의 고고도 초계기를 운영하는 작전 방식의 변화로 인해 2008년도 중반 이후 생산되는 P-8A포세이돈 기체에는 자기 이상 탐지 장치(MAD)가 제외되어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죽산 MAD를 장착한 P-8I형을 채택해 고고도 작전을 선호하는 미 해군의 P-8A과 달리, 인도 해군은 저고도에서 운영을 강조한 P-8I형을 발주해서 현제 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P-8A 포세이돈 HAAWC 운영 <출처: ⓒ Boeing>

 

P-8A 포세이돈은 2011년 테스트 운영 중에 일부 결함이 발견되었으나 보잉 사는 이를 해격 하고 생산시설을 확충해서 사업계획보다 빠른 2012년 이전에 양산 기체를 미 해군에 인도했습니다. 

 

2013년 P-8A는 미 해군의 성능 테스트 및 무장 통합 테스트를 통화함으로 써 P-8A의 전율 생산을 승인받았습니다. 

P-8A은  민수용 보잉 737-800RX여객기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군용으로 개발되어 장비 및 항공기 안전과 경제성 및 고고도에서 대형 섬박 이난 함정이 대한 공격이나 무장 능력 면에서 우수하지만, 연근해 및 저 고고 작전 능역이 부족하고 무장 탑재와 소형 함정에 대한 효과적인 타격 무기 및 무장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런 단점을 보강하기 위해, 저고도로 직접 이동해서 폭뢰나 대잠용 경어뢰를 투하하는 방식 대신 원거리나 고고도에서 스탠드오프(Stand -off) 형식으로 경어뢰를 투하하는 GPS 유도 키트와 활강익, 미익 등으로 구성된 활강 키트를 장착한 HAAWC 대잠어뢰 ALA(Air Launch Acccessory)를 적용한 고고도 대잠전 무장 역량 체계(HAWC, HIGH aLTITUDE aNTI-Subnarine Ware Weapon Capability)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보일 사의 P-8A은 미 해군 P-8A/P-8As와 인도 해군 수출용 P-8I/P-8ls 파생형이 있습니다. 

 

2. P-8A 특징 알아보기 

P-8A 포세이돈은 보잉의 상용 및 방위산업 라인업을 최대한 이용해서 생산하는 인라인 생산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생산이 가능하고 민수용 비행기에서 검증된 비행 성능으로 안정된 작전 수행이 가능한 것이 특징입니다. 

 

P-8A는 보잉이 1968 년 상업운항을 시작한 이래 계속 생산 중인 대표 여객기 737 시리즈 중 1997년에 생산을 시작한 보잉 3세대 민수용 737-800 ERX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P-8A는 보잉이 1968년 상업 운항을 시작한 이래 계속 생산 중인 대표 여객기 737 시리즈 중 1997년에 생산을 시작한 보잉 3세대 민수용 737-800 ERX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P-8A 포세이돈 개발에는 CFM 인터내셔널(CFM Intermational), 노스럽 그루먼, 레이시오, 스피린 에어로시스 템스, BAE 시스템스 및 GE에이비에션 (GE Avition) 이 다양한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p-8a 포세이돈의 탄생과정 동영상 

 

P-8A은 기본적으로 9명이 운용합니다. 

조종사 2명에 더하여 ASW, ISR 등 콘솔 조작, 장비 점검 소노부이(sonobuoy) 운용들을 위한 기술 요원 7명으로 구성됩니다. 추가적으로 기타 임무요원이 탑승하면 11명까지 탑승합니다. 조종석은 보잉 737NG와 같은 최신 조종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으며, 장시간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교대용 조종사 좌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P-8A의 동체 구조는 전면 부부터 멀티모드 레이더, 조종석, 승무원 대기실, 고출력 배전반, 시각 관측용 관측 창, 듀얼 터치 스크린 터치 플레이 및 데이터 입력 키보드를 장착한 5개의 전술 워크스테이션 콘솔, 일반 대기 좌석, 데이터 ㅅ토리지 시스템, 통신장비, 임무수행 장비 시스템(폭탄, 소노부이 등), 창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익에는 각종 무장을 부착하는 윙 파일론(wing pylons)이 있으며 41,000피트(약 12km)에서 최대 490노트(약 907km/h)이고 순항속도 440노트(815km/h)로는 최대 9.5시간 작전 비행이 가능합니다. 플랫폼으로만 보몬 군 작전 기준으로 25년 최대 25,000시간 동안 사용이 가능하고, 한번 급유로 최대 4,500마일이 날 수 있습니다. 

위쪽: P-8A 포세이돈 기내 설비 배치 구조도이미지 ,아래쪽: P-8A 포세이돈 전술 워크스테이션 콘솔이미지  <출처: ⓒBoeing>

특히 두얼 CFM-56B 상용 엔진은  각각 27,000 Ibf의 추력을 제공하여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항공기보다 상승 및 비행 능력을 크게 향사시켰습니다. 각 엔진에는 180 KVA(킬로볼트암페어)의 엔진 구동 발전기기 90 KVA 용량의 상업용 APU와 결합하여 기내의 다양한 전자장비에 450 KVA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합니다. 

 

P-8A의 무장으로 내부 무장 장착 베이 5개소에 658kg, 전방동체 및 주익의 파일론 6개와 소노부이 발사기에 1,361kg을 탐재할 수 있습니다. 

 

낙하산을 사용하여 투하하는 Mk 46/54 경어뢰, 기뢰, 대잠 폭뢰 등 대잠, 대함용 무기체계나 JDAM 등의 폭탄으로 무장이 가능합니다. 

외부무장을 위해 전방 동체에 2개, 엔진이 잇는 양쪽 주익에 각각 2개 파일런에 임무 목적에 따라 AGM-84D/G 하푼 공대함 미사일이나 AGM 84H/K SLAM-ER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 가능하고, LGB, JDAM 등의 폭탄도 운여가 가능합니다. 

 

P-8A의 최대 특징은 뛰어난 센서 유함 능력입니다. 

기존의 초계기와 비교해서 월등한 성능으로 다양한 센서에서 수집되는 각종 영상 및 신호정보를 융합, 해석할 수 있고, 컴퓨터 시스템 및 네트워크 체계를 오품 시스템 아키택처로 구성하여 무인 항공기(UAV, 레벨 2 제어 수신)까지 조종할 수 있습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긴 탐색 거리 및 다양한 작전 능력을 유연하게 재구성 및 확장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다목적 임무 항공기입니다. 

 

일회용 소노부이를 투하해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기존 초계 이와 달리 P-8A는 무인기나 무인 선발을 이용해 무인 장비의 탐지 물의 종류 및 피아식별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P-8A포세이돈과 연동되는 미 해군 고고도 광역해상초계 (BAMS) 무인정찰기인 노스럽 구르면  MB-4C 트리톤은 길이 14.5M, 무게 14.62톤, 최고속도 757km/h, 최고 배행 고도 18,288m, 작전 바 경 15,186km이고, 해상의 선박 등을 정밀 전찰, 감시할 수 있는 다기능 능동 센서(MFAS)를 탑재하고 있어 어떤 기상조건에서도 24시간 지속해서 해상의 적에 대한 집중적인 정보, 감시, 정찰(ISR)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상초계기 P-8A초계기 동영상

3. 제원 살펴보기 

 
기종 P-8A
형식 쌍발 터보팬 장거리 해상작전/대잠초계기
전폭 39.59m
전장 37.64m
전고 12.83m
최대이륙중량 85,139kg
엔진 GE CFM56-7 터보팬(27,300파운드) × 2
최대속도 789km/h
실용상승한도 41,000피트
항속거리 2,222km
항전장비 APY-10 다목적 해상수색레이더, IFF, 견인디코이, EO/IR센서, ESM, IR/ECM
무장 SLAM-ER 공대함미사일
기뢰 및 어뢰
내부 장착대 5개소, 외부 장착대 6개소
승무원 9명(조종사 2명 + 7명)
초도비행 2009년 4월 25일
 

참고문헌: 유용원의 군사세계, 군용기 연감에서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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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의 특수전단이며 해군 작전사령부 직할 전단 중 하나로

해군의 특수전부대입니다. 

모체인 해군 수중 파괴대의 영문 약칭대로 통상 UDT(Underwater Demolition Term)라 부르기도 하며, 육해공 전천후 작전팀을 의미하는 UDT/SEAL(SEA, AIR, LAND)이라고도 칭합니다. 부대 청설 과정과 SEAL임 무확 잔 과정에서 나타나들 미 해군의 네이비 씰을 모델로, 매년 시행되는 부대원들의 유학이나 연합훈련 및 다양한 교류를 통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해군 특수전단에 씰 대원들의 훈련 모습  출처 : 해군 특수전 전단

국군 내에서 개방적이고 선진화된 특수부대 중에도 가장 손에 꼽는 부대입니다. 

미군 특수전 부대에서 세계적으로 폴란드 GROM 등과 함께 가장 같이 작전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탑 티어급 부대임과 동시에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 선박 작전을 성공적으로 오나 수하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부대입니다. 

 

1. 해군 UDT/SEAL

UDT/SEAL이라는 이름은 미 해군 NAVY SLEAL의 모체인 UDT를 벤치마킹하여 창설한 부대에 훗날 미 해군의 UDT가 발전하면 부여된 SEAL 임무를 덧 붇여 UDT.SEAL 이 된 것입니다. 

적 해산 정찰, 첩보 획득, 해상 정찰, 내륙 기습 폭파공작, 해안 장애물 제거,  뢰 탑색 및 소해, 유격 개 및 요인 호송, 특공대 철수 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를 시작되어 UDT 육해공을 가리지않는 전천후 침투, 암살, 직접 타격(DA), 대테러, 경호 임무가 추가되었습니다. (SEAL). 

 

특수전단의 본거지이자, 각종 교육, 훈련 시설을 갖추고 있는 진해에 주둔하며, 대부분의 인원이 속해 있는 제1 특전대 대가 주력부대입니다. 

동애 1함대의 제3 특전대와 평택 2함대 제5특전대대는 함대 기지 또는 각 함대가 관할하는 접 적애 역에서 벌어지는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부대입니다. 

이외에도 인천을 비롯하여 접적해역 모처 등에도 소수의 해군 특전대원들이 파견 근무하고 있습니다. 

 

진해의 제1특전대대는 공중대, 해상대, 해중 대대 3개 작전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1대대 대원은 이 3개 작전대 중 하나에 소속되어 해당 임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합니다. 

장기복무자의 경우 몇년에 지나면 순환근무로 소속 작전대를 옮는 경우 많아 최소한 2개 이상의 제대를 설립합니다. 

피랍선박 대응훈련을 수행하기 위해 패스트로프 강하 후 진입하고 있는 UDT/SEAL 대원들 출처: 해군특수전단

폭발물 처리(EOD)와 해상 대테러 (MCT: Maritime Counter Terror)는 별도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며, 장 기자 간부는 해당 제대에 속하지 않더라도 자원하여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습니다. 

 

EOD 및 MCT는 고도의 전문과정이라 폭발물 처리 대대와 특수 임부 대대에는 특전병이 배속되지 않습니다. 

특전병이 배속된다 하더라도 이는 작전요원으로 배속된 것이 아닙니다. 

참고로 해상 대테러(MCT) 교육의 경우, 청해부대 파견 전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정입니다. 

폭발물 처리(EOD) 임부는 1968년 4월 22일 부여되었습니다. 임무 부여에 따른 사전작업으로 1966년 장교 1명, 부사관 2명이 미 해군 폭발물 처리 교유과정에 보내졌으며 최종적으로 19968년 5월 1일 폭발물 처리 대가 창설됨으로써 마무리되었습니다. 

 

폭발물 처리대 (EOD)를 2017년에 확대 개편하여 폭발물 처리 대대로 독립/승격, 현제는 대대급 부대입니다. 

이는 폭발물 처리 임무를 수행하는 단위부대 중 전군에서 가장 큰 규모의 부대입니다. 

 

2018년 9월 1일, 5 전단 55 전대 예하의 SSU가 특수전전단의 해난 구조전대로 편입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해군 UDT/SEAL 에서 육군 특전사처럼 지역 대라는 명칭을 썼지만 이후 작전 대라는 명칭을 바꿨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제1특전대대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되고, 오키나와와 미국 본토에서 증원된 미국 특수부대들은 주한 미군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됩니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 특수전사령부 육군 특전사 및 여기에 배속된 해군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와 주한미군 특전 사령부가 병합되어 연합 특수전사령부(CUWTF)를 구성합니다. 

 

2. UDT역사 알아보기.

50년대 초창기 UDT 청사는 1 부두에서 일본 해군이 쓰던 작은 목조건물에서 UDT태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취사장은 함대 사령부에 있어서 먼 거리를 매일 이동해야 하는 매우 불편함이 있었다고 하고 당시 1등 병조 9 하사) 월급이 (100원) 이등병조(중사) 월급 5400원이었다고 합니다. 

 

UDT는 별도 부식비가 나오는데 공군 조정사와 동일한 특급대우를 받았습니다. 

그 시절 상사 월급보다 부식비를 더 많이 받았던 시절이라 윤택한 생활은 물론 매끼 고기가 목욕한 기름기 있는 구을 먹을 수 있었는데 모든 것이 UDT(ㅠ-9) 훈련이 지구 상에서 얼마나 혹독하고 힘들었는지 않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6.25 사변을 거치면서 미군으로부터 전달 된 특수작전부대 편성과 운영은 그대로 해군 특전부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52년 2월, 미 정철 정보대 (RIU.Reconnaissance lntelligence Unit)가 해체되면서 한국 해군에 정찰 정보대의 창설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이에 한국 함대 정보국(NID-Naval lnteligence District)은 1952년 11월, 미 해군 특수전부대 UDT양성과정인 B-6 과정에 김성권 중 의릉 유학시켰습니다. 

 

당시 UDT청설 목적은 '요인 암살 및 첩보수집이었습니다. 김중위에 이어 1953년과 1954년 미 해군 B-6 과정에 유학한 11명으로 대한 미국 해군 UDT가 탄생됐습니다. 

 

1955년 5월 25일 한국 함대 B-6 교육과정이 발족됐고 같은 해 11월 9일 제1기 과정 26명을 수료시켜 대한민국 해군 UDT가 창설되었습니다. 

1955년 미국 UDT교육과정 수료사진

해군 지휘부에서는 한국 UDT가 창설된 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시 미군의 전쟁수행 핵심 전략인 상률 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적 해안 정찰, 첩보 획득, 해상 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해안 장애물 제거, 기뢰 탑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 호송, 특공대 철수 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를 수행하며 큰 활약을 보인 미 해군 UDT를 모체로 하여 창성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미 해군 UDT의 선진 교육을 통한 작전개념 정립과 차기 국내에서 배출해야 될 UDT 요원들의 교관 확보와 더불어 임무수행에 필요한 장비 획득이 우선시 되어 1954년과 1955년 해군 내 국가기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체력이 우수한 대원을 공개모집, 미 8군 주도의 영어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교 3명과 사병 4명 등 총 7명을 최종 선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해군은 설발된 7명을 두 차례로 나누어 미 해군 UDT과정에 유학을 보냈고 장인표 대위 등 7명 전원이 소저의 미 해군 UDT과정을 수료하여 한국 해군 UDT가 탄생되었습니다. 

 

이들은 미 해군 UDT 교육과정에서 습득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UDT찰성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제2전단 예하 함정 교육대(STU)에서 UDT 모집을 공고하였습니다. 지원 자격에 별다른 조건은 없었고, 신체 건강한 해군 장병이면 지원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수료 후 특별대우와 미국 유학 기회 보장, 파격적인 주, 부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라 해군 내에서 보급품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고 식사 및 의복 지원도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해군에서 제시한 조건은 해군 내에 최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모집공고 후 300여 명의 사병들이 지원하여 지원자들은 팔굽혀펴기, 달리기, 등 1차체력검정을 실시하고 다음날 해안대 방파제 앞 해상에서 2차로 수영 및 잠영 테스트를 거쳐 최종 80명이 선발되었습니다. 

 

 

1955년 8월 5일 UDT1기생이 입교하였고 해군의 최초 UDT 교육은 교육훈련에 필요한 가종 교재와 장비 등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력 달련과 수영 위주로 제2 전단 예하 함정 교육대(향무) 주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훈령이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지만 미 해군 UDT 교육과정과 유사한 내용을 구성하여 체력, 지옥주 훈련(극기주), 구보, 수영, 잠수 등의 다양한 교육훈련을 13주간 실시하였고 특히 이때 실시한 잠수 교육은 국내 잠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어 한국 잠수 역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매일 계속되는 강한 훈련에 생도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 해군 UDT과정을 수료한 7명의 교관들은 UDT의 혼과 열정을 심어 죽 위해 미 해군 UDT과정보다 더 강한 훈련으로 교육하였고 1955년 11월 9일 마침내 병 조장 이만수 등 26명은 대한민국 UDT1기로 배출되었습니다. 

 

1955년 11월 9일 UDT1기 수료식과 더불어 장인표 대위를 초대 지휘관으로 교관 7명과 UDT1기생 26명 등 총 33명으로 해군 함대 해변단 에하에 수중파괴대 (UDT)를 창설했습니다. 원래는 해군 현역 장병만을 대상으로 모집하였으나 1988년 이후부터는 민간 모병을 병행하였고, 현재는 미간 모병을 통한 입대자가 대부분입니다. 

 

오늘은 해군 특수전단에 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는데 다음에는 UDT 하는 일과 훈련과정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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