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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 작적 2부를 시작하겠습니다. 

20세기 최대의 인질 구출 작전으로 적의 허를 찌른 특수작전이었습니다. 그럼 1부에 이어 2부를 시작하겠습니다. 

1. 완성되지 못한 작전계획과 협상시한 

이작전 계획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c-130 4대를 엔테베 공항에 착류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엔테베 공항은 최근에 개수가 이루어져 구청사와 신청사로 나눠 있었습니다. 인질들이 있는 곳은 구청사 쪽이었습니다. 

엔테베 작전당시 c-130 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는 사이렛 메트칼 대원들 모습

c130 1분기가 구청사에 착류 하면, 사이렛 메트 칼이 인질 구출 작전을 수행합니다. 

1번기에 사이렛 메트 칼과 함께 동승한 공수부대원은 신청사를 점거하기로 하고 2분기에는 탑승하는 장갑차와 특수부대 및 공수부대는 사이렛 메트 칼을 증원하여 화력지원 임무를 맡게 되고 3, 4번기에 탑승한 예비 병력에게는 구출한 인질들을 안전하게 탑승 하키는 임무를 부여하게 됩니다. 

 

구출 작전의 총지휘관인 덴 숌론 준장은 구출작전 자체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했으나, 전력 구성에 대서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구출 부대는 테러범뿐만 아니라 우간다군과도 교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작전계획이 아진 구체와 되지 못한 사이에 협상 시한이 다가왔고 구르합참의 장이 라빈 수상에게 아직 군사작전을 실행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고하자 이스라엘 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테러범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여태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라비 정부는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을 벌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테러범을 풀어줄 용의까지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무려 206명의 인질이 붙잡혀 있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교적 부담이 큰 탓도 있었습니다. 

 

 

한편 이런 이스라엘의 결정을 받아들인 테러범들은 인질 처형 시기를 7월 4일 일요일로 연장해주었습니다. 

또한 테러범은 100명의 인질을 추가로 풀어주었습니다. 

이제 엔테베 공항에는 이스라엘 국민이거나 이스라엘 국적이 아닌 유대인들, 그리고 에어프랑스 승무원 12명까지 포함해 총 106명의 인질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유대인을 공격하겠다는 테러범의 의도는 명백해졌습니다. 

 

이는 오히려 여론에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정부에게 항전 의지를 심어주어 군사작전을 결시하도록 재촉하는 계기가 되게 됩니다. 

 

2. 구출 부대의 규모를 논하다

한편 당시 국방장관이던 시몬 페레스는 참모들을 불러 의견을 물으면서 구출 작전의 가능성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를 합참의장은 여전히 단 이틀간의 준비로는 이러 대규모 구출 작전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으며 작전은 사상자 발생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스라엘군으로서는 마알랏 초등학교 참사(1974년 5월 15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테러범 3명이 마알랏의 한 초등학교에 난입하여 105명의 학생과 교사를 인질로 잡은 사건) 이후 더 이상 군사작전으로 인한 재앙을 감당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주요 목표지점인 엔테베 공항 구 청사에 대한 정보가 너무 피상적인 점도 문제였습니다. 열띤 토의 끝에 페레스 장관은 곧바로 세부 작전의 입안과 훈련을 실시를 지시하였고 숌론 장군을 작전 지휘관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모들은 작전은 언제라도 취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회의가 끝난 직후 숌론 회의가 끝난 직후 숌론 장군은 사이렛 매트칼 부대장 요나단 요니 네타냐후를 호출했습니다. 

숌론이 제사한 작전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이렛 매트칼이 구청사와 인근 지역을 점령하는 동안 공수부대와 골라니 부대가 신청사와 관제탑을 제압하고 인질 구출 부대의 증원 및 호위 병력으로 대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숌론은 대규모 병력으로 전력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요니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더욱 작고 기동성 있는 부대의 규모를 유지행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숌론의 작계는 너무 광대해서 실행에 옮기는 데 제한 사항이 많으므로, 병력의 규모를 줄여 더욱 유연성 있는 작전을 실행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요니의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숌론은 부대 구종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요니가 작전의 세부를 구상하도록 전체적인 기본 방안만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요니는 밤새 작전의 세부를 검토했습니다. 

 

3. 작전의 세부사항 알아보다. 

결국 다음날인 7월 2일 금요일 오전 7시를 가해 숌론은 최종 작전 명력을 하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석방된 인질들을 조사하면서 인질의 정확한 위치, 우간다군의 배치 현황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 중이었지만, 이는 그때까지 사이렛 매트칼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작전 계획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상태로 입안되었습니다. 

 

구분 구성부대 및 지휘관 임무
지휘제대 지휘통신부
(지휘 : 댄 숌론 준장)
1. 작전 전반에 대한 지휘통제
2. 통신 총괄
공격제대 사이렛 매트칼
(지휘 : 요니 네타냐후 중령)
1. 구청사 내의 인질구출작전 실시
2. 구출 인질을 C-130까지 호송
지원제대 사이렛 찬하님/사이렛 골라니
(지휘 : 숄 모파즈)
1. 적 증원 병력이 공격제대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차단
2. C-130을 보호하며 지상급유 지원
3. 주기된 우간다군 미그기를 파괴하여 차후 추적을 방지
4. 구출된 인질들이 C-130에 탑승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
항공제대 C-130 비행대대
(지휘 : 요수아 샤니 중령)
1. 구출부대를 엔테베 공항까지 은밀히 수송, 야간 착륙
2. 지상에서 재급유 실시 후 인질 및 병력을 싣고 퇴출

 

4. 공격 제대의 임무을 알아보다. 

우선 C-130 1분기가 모든 조명을 끈 채로 어두운 활주로에 착륙합니다. 이를 위해서 C-130 비행대의 대대장 샤니 중력이 직접 1번가의 조종간을 잡을 예정이었습니다. 

한편 착륙한 1분기가 활주로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특수부대 1배 조가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후속 기체를 위해 지상 유도등을 설치합니다. 

1번기에서 내린 구조대는 우간군으로 위장하고 구청사로 접근합니다. 

 

원래는 사이렛 매트칼이 이디 아민 일행으로 위장하고 구청사로 접근하려고 했었습니다. 때마침 이디 아민이 아프리카 통일기구(OAU)에서 회담을 마치고 우간다로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실로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민이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중지되었고, 대신 우 간군 고위 장성의 방문처럼 위장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35명의 사이렛 메트 칼 대원들은 몯 우간다 군복을 입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대원들은 우간다인 처럼 보이기 위해 검은색 위장크림을 칠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야간에 기습하는 작전이므로 우간다군 결계병에게 발각될 위험이 적었고, 얼굴에 검은색 위장크림을 칠할 경우 오히려 내부 소탕 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편 차량으로는 벤츠 승용차 1대, 랜드로버 군용 지프 2대를 선택했습니다. 

랜드로 보는 우간군이 흔히 사용하는 병력수송차량이고, 벤츠는 우간다 장성이 관용차량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엔테베 작전에 대한 동영상

일단 구청사에 도착한 부대는 3개 조로 나뉘어 작전 1팀이 3개 출입문을 동시에 파쇄하여 1층으로 진입한 뒤 테러범을 제압하고 인질은 구출합니다. 

이와 함께 작전 2팀이 구청사 2층으로 올라가 주둔하고 우간군을 제압합니다. 

한편 지휘 통제반은 청사 외부에서 대기하면서 랜드로버에 탑재된 50 구경 기관총으로 위협 지대를 제압합니다. 

 

요니는 관제탑을 공격 목표에서 제외했습니다. 

관제탐을 공격하려면 인원이 더 필요한 데다가 공격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올 확률 또한 높았기 때문입니다. 특수전에서는 목표가 집중될수록 소요 인원과 작전 시간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그만큼 상대적으로 전력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5. 지원, 항공 제대의 임무를 알아보자.

인질구출 부대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은 바로 구청사 200미터 부근에 위치한 우간군의 기지였습니다. 여기에는 무려 1,000명의 병력과 함께 미국 전투기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을 차단하는 임무는 사일렛 매트칼이 아닌 사이렛 찬하 님과 사이렛 골라니로 구성된 합동기동부대에게 밭겨졌습니다. 

다수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지원 제대에는 M113 장갑차 4대가 포함되었습니다. 

 

사이렛 매트칼이 인질을 구출하는 동안 사이렛 찬하 님은 구청사 인근에 차단선을 구축하여 우간다군의 증원을 막습니다. 

또한 일부가 우간다 공군의 미그기에 폭탄을 설치하여 적 전투기의 C-130 요격을 사전에 방지했습니다. 

한편 사이렛 고라니는 C-130 근처에 남아 항공기를 보호하고 인질과 구출대의 퇴로를 확보했습니다. 

 

항공 제대는 사실상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았습니다. 4,000KM 거리를 급유 없이 침투 비행하고, 야간에 조명도 없이 아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적진 한 가우데에 착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지휘관과 조정 사들은 그 짧은 시간에도 훈련을 반복하면서 단기간 내에 야간비행기술을 놀랄 만끜 향상했습니다. 

 

이렇게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최종 협상 시한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작전의 실행까지는 채 이틀도 남지 않았습니다. 

 

2021.12.09 - [특수부대] - 사이렛매트칼- 이스라엘의 대 테러 부대/ 엔테베 작전 1부

 

사이렛매트칼- 이스라엘의 대 테러 부대/ 엔테베 작전 1부

이스라엘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로 특수 정찰, 대테러 진압, 인질구출 등과 같을 고난도 임무를 수행하는 대테러부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일렛은 히브리어로 '정찰대'라는 뜻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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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로 특수 정찰, 대테러 진압, 인질구출 등과 같을 고난도 임무를 수행하는 대테러부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일렛은 히브리어로 '정찰대'라는 뜻으로 , 사이렛 메크 칼은 영국 특수부대인 SAS를 모방해서 창설되었습니다. 

1976년 엔테베 작전을 포함하여 1964년 6일 전쟁의 쉬라 크락 작전, 1973년 욤프키프르 전쟁, 사보이 적전, 1982년 레바논 전쟁 등의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이스라엘 특수 부대 사일렛 미트칼 부대로고 이미지와 부대원 이미지  

한편, 사이렛 매트칼은 상당기간 대원을 비밀리에 선발했으나, 1980년대부터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일렛메트 칼에서는 네타냐후 총리 에후드 바락 전 총리, 모세 알론 에스 라엘 국방장관, 이스라엘 첨보 기관 모사드 수장인 대니 아톰 등 이스라엘 역대 총리들을 비롯해 유수의 정치인들이 배출됐습니다. 

 

1. 엔테베 작전(사일 레 메티칼 부대)

사일렛매트칼의 대표적인 작전으로 1976년 아프리카 엔테베 공항 인질 구출 작정인 일명 엔테베 작전이 있습니다. 

1976년 7월 3일 이스라엘 로드 공항을 출발하여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에어 프랑스 소속 AF-137기가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ELP) 테러범 2명과 독일계 혁명 분파인 테러범 2명에게 납치돼 254명의 승객이 인질로 잡혔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즉각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사일렛매트칼을 출동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7명의 남치범 전원과 우 간다 군 30명을 사살했으며 10대의 소련제 전투기도 파괴하는 등 기습 작전을 성공리 종료한 작전입니다. 

 

그럼 엔테베 작전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1. 에어프랑스 비행기 피랍

1976년 6월 27일 12시 30분경 이스라엘의 로드 공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소속 A300에어버스 여객기 AF-139편이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 내렸습니다. 

아테네 공 하의 보안은 허술한 편이어서 금속탐지기에 모니터링 요원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56명의 승객을 태운 AF-137편은 이륙 3분 만에 피랍되었습니다. 승객들 가운데 테러범들이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에어프랑스 소속 AF-139편은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서 이륙하자마자 테러범에게 납치되었다. 보안이 허술한 아테네 공항은 테러범이 항공기에 잠입하는 데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이 여객기에는 254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3분 1의 이스라엘 국민이었습니다. 여객기를 남치한 테러범은 모두 4명으로 2명은 형 분파 소속의 독일 테러범이었고 2명은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소속의 아랍 테러법이었습니다. 특히 독일인은 남녀 커프로, 남자는 월프리드 보세라는 유명한 청부 테러범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여객기 피랍을 예상하고 쵝 정예 부대인 사이렛 매트칼에 출동대기를 명령했습니다. 

사이렛 매트칼은 부대 명칭을 그디로 말하자면 합동 참모본부 직할 정찰 부대이지만 실제로는 대테러부대입니다. 

여객기를 납치한 4명의 테러범. (좌측 상단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엘 나지 알 아잠(Jael Naji Al Azam), 파예즈 압둘라힘 자베르(Fayez Abdur-Rahim Jaber), 브리기테 쿨만(Brigitte Kuhlmann, 여자 테러범), 윌프리드 보세(Wilfried Böse).

테러범들은 종종 이스라엘로 여객기를 몰고 와서 정치적인 요구를 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1972년 아람 테러범들은 벨기에의 사베나 항공 여객기를 납치하여 로드 공항으로 몰고 와스는 국제 언론 앞에서 요구사항을 열거한 바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예상한 이스라엘은 사일렛 매트칼을 로드 공항에 대기시키고 인질 구출작전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피랍 기는 이사라엘 롤 향하지 않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리비아의 벵가지에 기착했습니다. 

사일렛 메트 칼은 다시 기지로 돌아가 추후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벵가지에서 7시간 반을 대기하던 피랍 기는 재급유를 받고 이륙하여 동쪽으로 향하였습니다 부대는 다시 출동대기 상태에 들어갔으며 피랍기가 고드 공항에 내래는 즉시 구출작전을 실행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자정이 되자 놀랍게도 피랍기가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는 시실이 확인되었고 다음날 새벽 3시 피랍 기는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내리게 됩니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인민 해 아전 선 테러범 3명이 납치법들에 합류했습니다. 

1-2. 피랍기 아프리카로 향하다. 

승객들은 피라 된 에어버스 여객기가 엔테베 공항에 착류 하고도 무려 9시간이나 더 기내에 억류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6월 28일 월요일 정오가 되면서 테러법들은 승객들을 공항 구청사의 승객 로비에 감금하게 됩니다. 

 

그날 늦은 오후 우간다의 대통령인 이지민은 승객들에게 자신이 직접 테러법들과 인질 협사를 하고 있으며, 우간다 병사들이 승객의 안전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아민은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범과 협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29일 15시 30분경 페루인이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의 지휘 하에 움직이는 테러범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발표했습니다. 

 

엔테베 작전 관련 동영상 

서독, 프랑스, 스위스, 케냐, 그리고 이스라엘에 투옥된 테러범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석방되지 않는 다면 이스라엘 시각으로 7월 1일 14시에 피랍 승객들을 살해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발표가 나자 당시 이스라엘 수당이던 이츠하크 라빈은 각료들을 모아 대안을 검토했습니다. 

이스라엘 국방 합참의장인 모타 그를 장군은 라비 수상과 회의에 앞서 군사적 작전을 검토할 것을 자신의 참모들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구리의 참모는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군 유일의 C-130 비행대대장이던 요수아 샤니 중령력은 엔테베에 피랍기가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이미 대략적인 비행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병력과 장비를 싣고 엔테베까지 갈 수 있는 기체는 C-130이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공군 참모총장이 작전에 관하여 물었을 때 모든 문제에 대해 유 항하게 대답할 수 있다고 합니다. 

 

 

1-3. 군사작전의 가능성을 보다!

한편 구리 장군은 라빈 수상에게 군사작전의 가능성을 보고 했지만 당시로서는 대수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당시로서는 이디 아마이 피랍사건의 중재자로 공정히 활동하는 듯 보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각은 이 독 재자와의 협상을 통해 인질을 석방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또한 승객의 3분의 2가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었으며 항공기도 이스라엘 국적자가 아니라 프랑스 국적기였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가 협상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국민이 아니었으며 항공기도 이스라엘 구적기가 아니라 프랑스 국적기였기 때문에 프라스 정부가 협상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서 우간다는 무려 4,000KM 가까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애당초 이런 거리를 극복하고 인질구출 작전을 생 행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한편 같은 날 저녁 한참 부의장인 에쿠텔 아담 장군은 사이렛 메트 칼의 이전 부대장이던 애 후드 바라크 대령을 호출했습니다. 

그는 바라크에게 군사작전의 가능성을 특공대원들과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비공식적으로 토의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바라크는 밤새 특수부대원들과 토의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 최초의 인질 구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특수부대가 고무보트를 가지고 엔테베 공항 인근의 빅토리아 호수로 강하하여 강을 건너서 공항으로 삽입한 뒤, 인질을 구출하고 우간다군에게 투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이전까지 한 번도 고무보트로 하드 덕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중 가장 작은 문제일 정도로 계획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로서는 이 계획이 가장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1-4. 엔테베는 중립 지역이 아닌 적이었다. 

작전에 필수 요소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게는 정보가 너무 적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우간다는 원래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첨단 제트기의 제공을 거부하여 이디 아민은 1972년에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하였습니다 

정실 외교 채널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정보를 수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간다의 무관으로 파견돼 바 있던 이스라엘군의 비 루크 바 레프 준장이 이디 아민과 직접 통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비 루크 바 레프 준장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민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테가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인진을 구출하여 우간다군에게 투항한다는 계획 또한 무용지물이 되어버니 터였습니다 그럼에도 강하 작전 준비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C-130 대대장인 샤니 중령은 고무보트 강하 시험은 실패하여 고무보트가 터졌지만 이후 문제 해결하고 하드 덕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엔테베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승객 47명이 석방되었습니다. 

이들이 프랑스 대사관 을 거쳐 파리로 돌아가자 정보 당국은 피랍 상황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디 아민이 테러범에게 협력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우려는 석방인질들의 증언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강하 작전의 가능성을 확인한 목요일 저녁, 전혀 다른 구출 작전을 새롭게 입안해야만 했습니다. 

작전의 침투하여 인질을 구해오는 어려운 작전이었습니다.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인질협상의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실은 팔레스타인 테러범을 지원하고 있었다. 사진은 이디 아민(좌)과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의 다정한 모습이다. 

1-5. 적의 심리를 이용한 기습작전

특수작전의 핵심 요고가 무엇 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사람들은 보통 기습작적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정답이 아닙니다. 

 

기습이란 적이 대비되어 있지 않을 때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수작전에서 적은 대개 기습을 예상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특수부대가 타격할 주요 목표에는 언제나 우수한 경계병력이 있고 인질 구출 작전에는 특수부대의 기습을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는 테러범이 있습니다 특수부대에게 적이 대비되어 있지 않을 때 공격하는 사치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특수부대는 상대적 전력 우위에 승부를 거는 부대입니다. 

실제적으로 병력이 적더라도 기습 속도, 그리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적을 기만하고 압도하여 상대적 전력 우위를 통해 임무를 완수합니다. 

 

즉 특수작전의 핵심 요소는 상대적 전력 우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 엘곤은 엉뚱한 곳에 이런 상대적 전력 우위를 찾았습니다. 

 

새로운 구출작전을 입안하는 가운데 다소 엉뚱한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C-130 수송기를 곧바로 엔테베 공항에 착륙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란 이것은 매우 훌륭한 의견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우간다까지 직접 날아가서 작전을 수행하는 모모한 직을 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엔테베 공항에 직접 착륙하는 것은 최고의 기습 효과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적의 심리를 활용한 기만이자 기습작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야간에 조명 없이 C-130을 착륙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전에 한 번도 블랙아웃 랜딩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란 프로토 타입 야시경을 보유했던 이스라엘 공군은 사이 사막에서 야간 착률 시험을 성공하면서 구출작전이 가능함을 입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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