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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밀리터리 마니아입니다.

오늘은 스텔스 최강 전투기 2번째 비행기 F35라이트닝Ⅱ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항공전력이 처음으로 맹위를 떨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공권의 장악은 전쟁의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제공권이란 항공전력이 적보다 우세하여, 적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육∙해∙공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제공권을 장악하는데 핵심 요소는 전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투기는, 각 나라 공군력의 척도이자 국방력의 상징이 되었고

전투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세계 각국은 성능이 더 뛰어난 차세대 전투기 개발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차세대 전투기 가운데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전투기 중 하나가 미 록히드마틴사가 개발한 F-35 전투기입니다..

F-35 전투기는 차세대 전투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텔스(Stealth) 성능과 함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멀티-롤(Multi-Role) 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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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군 통합 전투기


F-35 전투기는 JSF(Joint Strike Fighter), 3군 통합 전투기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미군은 전 세계상에서 유일하게 3군, 즉 공군, 해군, 해병대가 전투기를 운용 중인 국가입니다. 3군이 다양한 전투기를 운용하면서 국방예산의 많은 부분이, 3군이 필요로 하는 전투기의 개발과 도입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미 국방부는,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1961년 미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 1916~2009)는

미 공군과 해군이 공통으로 사용할 전투인, TFX(Tactical Fighter Experimental)의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F-111 전폭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 해군은 F-111이 항모에서 사용하기에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도입을 포기했고 이후 미 해군은 F-14 전투기를 개발했다. 미 공군이 500여 대의 F-111F- 전폭기를 도입했지만, 공중전 성능 부족으로 인해 F-15 전투기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미 공군과 해군의 통합 전투기로 계획된, F-111 전폭기는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F-35 전투기는 JSF, 즉 3군 통합 전투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A, B, C형의 3가지 형이 있으며, A형은 공군용, B형은 해병대용, C형은 해군용이다. <출처: 미 공군>


세계 최대의 전투기 개발 계획


1990년대 구 소련이 붕괴되고, 국방예산은 대폭 줄어들면서 1993년 미 국방부는 결국 3군의 각종 전투기를 통합하는 전투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개발 과정에서 X-32, X-35 2종의 기체가 경쟁하게 되었으나 X-35가 승리하였고, 이를 발전시켜 3군 통합 전투기인 F-35 전투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F-35 전투기는 미 공군의 F-16 전투기, A-10 공격기, 해군과 해병대의 F/A-18 호넷, 해병대의 AV-8B 해리어 Ⅱ 등, 3군이 현재 운용 중인 전투기 대부분을 교체할 예정입니다.

 F-35 전투기는 3가지 기체 형태로 개발되고

기본형인 F-35A 전투기는 통상적인 이착륙 방식의 공군용 전투기이다.

 

이밖에 단거리 이륙 및 수직 착륙(STOVL, STOVL,Short Take-Off and Vertical Landing) 모델-F-35B 전투기

함재기- F-35C 전투기가 있다. 

 

F-35 전투기는 하나의 전투기에서 세 가지 기체 형태로 개발되지만, 기체 간의 공통성을 80% 정도로 끌어올려 생산 공정과 가격 상승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전투기입니다.

미군이 도입할 F-35 전투기는 무려 2,243대로 모두 3,824억 달러 (한화 약 459 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개발에 동참한 영국을 비롯한 8개국의 소요와 수출까지 감안한다면, F-35F- 전투기의 생산 대수는 3천 여대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먼저 보고 먼저 쏘는 전투기


F-35 전투기는 F-22 전투기에서 사용되었던, 스텔스 성능을 보편화시킨 전투기입니다.

스텔스 성능이 발휘되도록 설계된 동체와 레이더 흡수 재료를 통해, F-35 전투기의 레이더 반사면적은 매우 작은 수준이고 F-35 전투기는 스텔스 성능은 레이더에 대한, 저 탐지 성에만 머물지는 않습니다. 스텔스 기를 탐지하는 기술이 발달되면서, 스텔스 기를 탐지하는 수단인 적외선과 적의 전자정찰에도 스텔스 성능을 가져야 했습니다. 

 

F-35 전투기는 독특한 설계를 통해 적외선 탐지율을 낮추었고 또한 F-35 전투기에 장착되는 AN/APG-81 레이더는 저피탐 성 전파를 발산해, 적의 전자정찰에도 잘 잡히지 않습니다. 다양한 스텔스 기술이 접목된 F-35 전투기는, ‘먼저 보고 먼저 쏘는’ 스텔스 전투기의 기능에 충실한 전투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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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세대를 위한 조종석


F-35 전투기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멀티-롤 스텔스 전투기로 개발되었습니다.

F-35 전투기는 공대공, 공대지 그리고 정찰 임무까지 소화한다. 이러한 임무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F-35 전투기는 전투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조종석에 대변화를 주었습니다. 전투기 조종석에 설치된 기계식 계기판과 다기능 디스플레이(MFD)를 없애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위해 최초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Panoramic Display) 방식을 채용했고 즉 하나의 대형 디스플레이가 기계식 계기판과 다기능 디스플레이를 대체한 것입니다.

 

또한 터치 스크린 방식이 적용되어, 다양한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투기 조종석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전방 시현 장비(HUD)도 없어졌고, 이들 기능은 통합 헬멧 시현기로 옮겨졌으며 통합 헬멧 시현 기는 야간 투시경 기능과 함께 공대공 미사일과도 연동됩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F-35 전투기의 조종석을, 아이폰 세대를 위한 조종석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F-22 전투기보다 앞선 항공전자장비


F-35 전투기는 개전 초기에는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장과 연료를 동체 내부에 탑재하고,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타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표준 무장으로는 AIM-120C 암람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제이담(JDAM) 폭탄을, 각각 2발씩 동체 내부 폭탄 창에 탑재합니다. 다른 구성으로 4발의 AIM-120C 또는 8발의 소구경 폭탄 (Small Diameter Bomb)을 내부에 장착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에 다양한 무장을 탑재할 수 있고 한편 고정 무장으로는 F-35A 전투기는 GAU-12 25mm 벌컨포가 탑재됩니다. F-35B와F-F-35C 전투기는 포드 형식으로 필요에 따라 GAU-12 25mm 벌컨포가 장착되고 F-35 전투기의 엔진으로는 미 P&W사의 F-135 엔진이 탑재됩니다.

 

 F-35 전투기는 F-22 전투기에 비해 발전된 항공전자장비를 탑재하고 F-22 전투기의 AN/APG-77 레이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N/APG-81 레이더는 공대지 모드에서 매우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신형 표적획득 및 추적체계인 AN/AAQ-40 EOTS(Electro-Optical Targeting System: 광전자 표적 장비)와 접근하는 미사일이나 공중 목표물에 대한 식별 및 위치를 파악하는 6개의 적외선 센서로 구성된 AN/AAQ-37 DAS(Distributed Aperture System: 분산형 개구 장비)는, F-22F- 전투기에는 없는 최첨단의 광학 감시장비입니다.


공군형인 F-35A 전투기의 무장 장착 능력. <출처: 미 록히드 마틴사>


개발 지연과 가격 상승


최첨단의 성능을 자랑하는 F-35 전투기이지만, 개발 일정 지연과 생산 지연에 따른 비용 상승으로 커다란 역경을 겪고 있습니다. 총 사업비용은 4백조 원대로 증가했고, 이는 8년 전 보다 무려 65%나 증가한 것입니다.

 

특히 2001년 JSF 기종 선정 당시 대당 가격은 5,020만 달러(한화 560억 원) 수준이었던 것이, 2010년에는 대당 9,240만 달러(한화 약 1,035억 원)로 84%나 비용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F-35 전투기 개발 계획은 최근 각종 개발 일정을 빠르게 소화하면서, 전반적인 상황은 과거에 비해 호전되고 있다.

2011년 7월에는 미 플로리다 주의 에글린 공군 기지에, 미 공군 최초의 양산형 F-35A 전투기가 배치되었고 2011년 10월에는 미 해병대용 F-35B 전투기가 미 해군의 헬기 강습양륙함 와스프호에서 이착륙 시험

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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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밀리터리 마니아입니다. 

오늘은 지상최고 전투기 대적불가 전투기 F-22 렙터에 개발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이 방대하여 2편에서 3편으로 제작하려 합니다. 

시리즈대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GOGO!!


F-22의 개발사

5세대 전투기 탄생의 험난한 역사


세계 최초의 제5세대 전투기인 F-22A 랩터 <출처: 미 공군>


F-22와 같은 첨단 전투기는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는다. 2006년에 처음으로 실전 배치된 F-22를 위한 사전 연구가 시작된 것은 이미 1969년의 일이었다. 개발에서 실전배치까지 2~30년이 걸리는 전투기 개발 일정에 비추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치열한 개념연구의 연속 (1969~1979년)

새로운 제공 전투기, 즉 ATF(Advanced Tactical Fighter: 차세대 전술전투기)는 1969년~ 1970년에 수행된 “1985년 미 공군 미래 예상 전력 연구사업(TAC-85)”에서 그 필요성이 최초로 제기되었다. 이때의 개념에 따르면 차세대 전술전투기는 공대지 능력을 핵심으로 하며 공대공 능력은 방어용으로서만 갖추게 될 것이었다. 이 차세대 전술전투기는 기존의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의 F-4, 리퍼블릭(Republic)의 F-105, 그리고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inamics)의 F-111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1971년 4월~6월에 미국의 공군 전술 사령부(TAC), 공군 본부(AFHQ), 공군 무기체계 사령부(AFSC), 공군 항공시스템 개발부(ASD), 아날리틱 시스템 사 등에서 파견한 대표단이 ATF의 개념을 확립하기 위한 회동을 가졌다. 공군 무기체계 사령부는 이후 공군 항공시스템 개발부에 사전 설계분석을 지시하는 한편, 미 항공기 업계에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1971년 11월 한 달 동안 8개의 항공기 제조사들이 연구용역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그중 2개 업체가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 업체는 바로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맥도넬 더글러스였다.


AFTI 사업을 통하여 미군은 미래에 필요한 기술적 요구를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출처: NASA>


1973년 1월 26일, 최초의 공식적인 ATF 작전요구능력 제안서인 TAC-ROC 301-73의 초안이 완성되었다. 이 제안서는 중고도(中高度: 해발 1만 피트~2만 5,000피트)에서 작전하며 초음속 비행능력을 갖춘 항공기를 요구했으며, 공군 항공시스템 개발부, 공군 참모부 및 기타 공군 유관기관들에 배포되었다. 그러나 각 기관들은 이 제안서 초안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다양한 공군 유관기관들이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작전요구능력 범위에 대해 검토하던 1973년, 공군 항공역학연구소에서는 “미래형 전투기 기술 통합(Advance Fighter Technology Integration; AFTI)”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다. AFTI 사업에 따라 다양한 연구보고서들이 만들어졌고, 풍동(風動) 모델 및 무선조종 모델이 개발되면서 “미래형 항공기”에 대한 새로운 기술을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ATF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AFTI 사업은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최종 형태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AFTI사업을 통하여 FLIR/타게팅 포드 등 중요한 기술적 진보가 가능했다. <출처: 미 공군>


공군은 이후 수십 년 동안 ATF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기체들을 시험했다. 이런 노력에 의하여 ROC 301-73이 수정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일련의 연구들이 계속되었다. 

  • 1974년 공대지 기술 통합 및 평가 연구 
    1975년 근접 항공지원 임무분석 
    1976년 근접항공지원 및 전장 통합 임무분석 
    1976년 공격형 항공지원 임무분석
    1976/1977년   타격무기체계 연구 
    1978년 타격무기체계 연구가 “성능개량형 전투기 연구”와 “차기 전술 공격 시스템 연구”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지속[이 두 가지 연구 사업을 합쳐서 ITAS(Improved Tactical Attack System: 차세대 전술 공격체계)라고 한다]
    1979년 “전술기 기술 개념 대안 연구(Tactical Fighter Technology Alternatives; TAFTA: ATS의 후속사업)”와 “1995년을 대비한 전투기 연구” 추진(이 두 연구사업은 1981년 중반에 종료)
  •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추가적인 연구가 계속됐다. 특히 차기 대공 교전 임무분석(Advanced Counterair Engagement Mission; ACEMA)을 통해 임무 요소 요구 제안서(Mission Element Need Statement; MENS)가 구체화됐다. MENS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 어떤 종류의 전투기를 개발해야 하는가? 
  ➢ 1995년에는 무엇이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가? 
  ➢ 현재의 기술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가?

ACEMA와 MENS  이후에는 미래  전술공격체계 임무분석(Advanced  Tactical Attack System Mission Analysis; ATASMA)이 수행됐다. 이 분석에서 전술 사령부의 공대지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도출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개발 가능성, 운용개념 및 전반적인 대안 등이 검토됐다. 


공대공 기체가 필요하다 (1980~1981년)

재미있는 것은 1980년에 이르러서야 ATF의 임무 분야에 공대공 능력이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80년 4월, 전술항공기 기술의 사업운 용안 R-Q7036(4)/63230F가 배포되면서 ATF 사업의 방향이 재설정되었다. 이와 함께 차세대 전술전투기에 적용할 수 있는 최신 현용 기술에 대한 검토도 시작되었다. 점차 “제공권 장악”이 새로운 전술기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전술 공격기나 제공 전투기 등으로 특화된 별도의 기종들, 혹은 하나의 기체로 모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항공기 등 다양한 모델들이 제시되었다.


사업은 원래 공대지 위주였으나 점차 공대공으로 바뀌어갔다. <출처: 필자>


1981년 5월 21일, 정보제공 요구서(Request for Information; RFI)가 9개의 항공기 제조사에 발송되었다. 그 9개의 회사는 보잉, 페어차일드, 제너럴 다이내믹스, 그러먼(Grumman), 록히드(Lockheed),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Douglas), 노스롭(Northrop),  록웰인터내셔널(Rockwell International), 그리고 보트(Vought)였다. 이들은 개념 모델과 함께 각종 기술서류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기술 수준은 1990년대 초에서 중반에 초도 작전능력을 획득할 수 있도록 했다. 비용은 120대, 150대, 또는 1,000대 생산을 기준으로 산출하게 했다.

다음 달에는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엔진에 대한 정보제공 요구서가 발송되었다. 여기에는 후부 연소기를 사용하지 않는 초음속 지속능력(슈퍼크루즈)과 1,500피트라는 단거리 이륙 (Short Take Off and Landing; STOL) 능력, 통합적인 스텔스 능력, 저가의 유지비용 등이 포함되었다. 

RFI 과정은 업체들의 중간보고 및 최종보고까지 포함하여 9개월이 걸릴 예정이었다. 정부는 보고서들을 매우 신속하게 검토했고, 제출받은 지 60일도 지나지 않아서 업체에 피드백을 보냈다. 최초의 RFI는 공대공 능력과 공대지 능력을 똑같이 강조했지만, 1982년에 이르자 공대공 능력, 즉 제공권 확보가 ATF의 핵심 목표로 바뀌었다. “공대지 항공기가 반드시 공대공 능력까지 갖지는 못하지만 공대공 항공기는 공대지 능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결론에 의해 RFI의 방향이 수정된 것이었다. 


Su-27(좌)과 MiG-29(우)의 등장은 미 공군이 차기 전투기에서 공대공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정찰위성들이 촬영한 소련의 프로토타입(시제기) 전투기들은 미 공군의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뛰어난 비행능력을 가진 MiG-29(미코얀 설계국 9-01)와 Su-27(T-10)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미 공군은 제공권 장악이 우선순위임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MiG-25 전투기 쇼크”가 재현된 것이다.

신형 소련 전투기들의 위협에 대항할 기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1979년 말부터 점점 중요하게 부각되던 차세대 제공 전투기의 생산은 이제 시급한 당면과제로 바뀌었다. 이제는 공대지 능력 못지않게 공대공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더 이상 연구단계가 아니다 (1981년)

1981년 11월 23일, ATF는 드디어 사업승인을 받아 “0단계”, 즉 개념연구단계에 들어갔고, 이로써 공식적인 무기체계 사업이 되었다. 불행히도 그다음 해에 예산지원이 잠시 중단되면서 개념에 대한 연구도 늦어졌으나 이듬해인 1983년도부터 예산이 재배정되면서 사업은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이때쯤 되어서는 신형 전투기 설계 기술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합성소재 및 경량합금, 신형 비행제어장치 및 항전 장치, 개량형 추진체계, 그리고 스텔스 능력에 이르기까지 항공기의 모든 부문에서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한편 차세대 전술전투기가 실제 운용단계에 이를 때는 미 공군과 해군의 일선 항공기들이 모두 운용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즉 맥도넬 더글러스의 F-15 이글(Eagle), 제너럴다이내믹스의 F-16 파이팅팰컨(Fighting Falcon), 그러먼의 F-14 톰캣(Tomcat), 그리고 맥도넬더글러스의 F/A-18 호넷(Hornet)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기에 차세대 전술전투기가 배치된다는 것이다.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요구성능 및 작전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은 1981년 11월의 평가 이후에 구체화되기 시작했는데, 보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편 앞으로  진행될 사업을  평가하기 위한  일정이 짜였다. 실물 개발(Full Scale Development; FSD)은 1987년에, 초도 작전운용은 1993년이나 1994년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또한 최종적으로 결정될 차세대 전술전투기는 타격 기이든 제공 기이든 상관없이 최신 기술을 기반으로 하며 아주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게 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해야 했다. 이런 문제들은 ATF의 실물 설계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1980년대에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은 유럽의 바르샤바 조약군이었지만, 차세대 전술전투기는 유럽 이외에도 세계의 분쟁지역 곳곳에서 효율적으로 작전할 수 있도록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전투기가 될 예정이었다. 이미 중동 지역에서의 작전까지 감안한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항공사들은 RFI에 대해 대부분 다목적 항공기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RFI를 통해 나온 명백한 결론은 맥도넬 더글러스(현 보잉)의 F-15를 교체할 제공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미 공군은 21세기 초에 존재할 복잡하고도 다양한 위협들에 대처할 수 있는 제공 전투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ATF의 본격적 시작 (1982년)

1982년 8월 24일에 사업지침이 발표되면서 사업명칭도 정식으로 ATF로 바뀌었다. 동시에 두 가지 하위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하나는 차세대 전술전투기 사업으로 미 공군은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그러먼, 록히드, 맥도넬 더글러스, 노스롭, 록웰의 7개 기체 제작사와 각각 1백만 달러 상당의 개념 개발 계약을 맺었다. 다른 하나는 미 해군과 합작으로 추진하는 통합 전투기 엔진 사업으로,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GE) 및  프랫 &  휘트니(Pratt&Whitney; PW)와 각각 2억 200만 달러의 엔진 기술 시연 계약을 맺었다. 그 외에도 앨리슨(Allison), 개렛(Garret), 텔레다인/CAE (Teledyne/CAE)가 이 사업에 참가했다. 

7개의 기체 제작사들은 19개의 개념 모델을 제출했다. 노스롭의 경량 “협동 전투기(F-16보다작은 크기의 모델)”부터 록히드의 “배틀 크루저(YF-12A 장거리 요격기에 기초한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들이 제출되었다. 또한 공군 항공역학연구소도 공군의 자체 모델인 아음속 스텔스 전투기 모델을 제출했다.


초기 RFI에 따라 각 항공방산기업들이 제시한 개념설계안 <출처: 미 공군>


초기 RFI에 따라 각 항공방산기업들이 제시한 개념설계안 <출처: 미 공군>

결국 19개의 제출 모델들 가운데 서로 다른 4가지 설계철학을 대변하는 모델 4개가 추려졌다. 그 네 가지는 초경량에 저가로 생산할 수 있는 단순 설계모델, 초음속 순항 및 기동을 중시하는 설계모델, 아음속 스텔스 설계모델, 그리고 고고도에서의 초음속 비행 능력에 중점을 둔 설계모델이었다.

이런 4가지 설계철학으로부터 이상적인 차세대 전술전투기는 스텔스 능력, 슈퍼크루즈, 우수한 기동성을 갖춘 공대공 전투기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이런 전투기라면 지대공 미사일의 위협이 적을 뿐만 아니라 대공포화 및 기타 단거리 대공시스템에 노출될 위험도 아주 적었다.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임무 및 성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들의 진보가 전제되어야 했다. 슈퍼크루즈 능력을 갖추면서 추력 비율이 높은 엔진, 스텔스 능력을 갖추면서 무장과 연료와 항전장비(항공 전자장비)를 탑재할 수 있는 적절한 크기, 그리고 복합소재의 개발 및 사용 등이 주요한 요건들이었다. 다른 요건들로는 첨단 레이더, 통합적이고 스텔스 능력을 갖춘 항전장비 등을 들 수 있었다. 

1982년 12월, 미 공군은 여러 제조사들의 응답을 분석한 RFI 최종보고서를 내놓았으며, 이때는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최우선 임무가 무엇인지도 결정된 상태였다. 그리고 1982년이 끝나갈 무렵, 하원은 ATF 사업에 2,300만 달러라는 예산을 배정했다. 그리고 1983년 5월 18일, 드디어 최종 RFP(Request For Proposal: 제안요구서)가 업계로 발송되었다. 같은 달, 엔진에 대한 최종 제안요구서도 제너럴 일렉트릭, 앨리슨, 프랫 & 휘트니 3개 사에 전달되었다. 최종 제안요구서가 발송될 무렵, 스텔스 기술도 ATF의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1983년 5월 26일에는 ATF의 제안요구서도 스텔스 성능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ATF에 스텔스 성능이 강조됨에 따라 F-117(좌)과 B-2(우)를 만든 록히드와 노스롭은 유리한 위치를 점령했다. <출처: 미 공군>


이런 변화는 록히드와 노스롭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양사는 이미 스텔스 성능을 갖춘 기체를 제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내에 스텔스 성능을 갖춘 차세대 전술전투기 기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 시기에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고 통합하려면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단점을 감수해야 했다. 스텔스 기술은 아직 초보적 단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항공기의 특성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체의 외장 소재라든가 배기구, 레이더 형상 등이 문제였다. 특히 당시 기술로는 배기구가 스텔스 능력을 갖게 만드는 것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스텔스 개발사를 보아도, 스텔스 능력을 갖춘 배기구는 효율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이와 같이 스텔스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기체의 비행성능에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했다. 

치열한 제안서 전쟁(1983~1986년)

1983년, 오하이오 주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Wright-Patterson AFB)의 항공시스템 개발부(ASD)에서 ATF 무기체계  사업국이 발족했고,  국장으로는 알버트  피시릴로(Albert Piccirillo) 대령이 임명되었다.
1983년 9월, 미 공군은 7개 사와 개념연구 계약을 맺고 ATF 작전요구조건에 맞는 전투기 개념을 제출하라고 했다.


ATF 시연과정에서 록히드가 제시한 설계안. 4가지 개념 가운데 왼쪽 맨 위의 것이 F-22와 가장 유사하다.                     <출처: 록히드마틴>

1984년 말, 공군은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기본 요구조건을 4차례나 바꾸어가면서 업계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차세대 전술전투기는 작전반경 800마일, 마하 1.4~1.5의 슈퍼크루즈 능력, 2,000피트의 이륙거리, 이륙 총중량 5만 파운드, 그리고 대당 4천만 달러 이하의 생산가(1985년 기준)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요건은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수명주기비용(Life Cycle Cost: 제품의 생산·사용·폐기·처분에 이르는 전체 수명 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총비용)이 맥도넬 더글러스의 F-15보다 적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합 750대의 차세대 전술전투기를 생산하고, 한 해에 최대 72대까지 생산한다는 계획이 세워진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러나 맥도넬더글러스의 F-15 생산량이 한 해에 42대를 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 공군이 제안한 생산대수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수치였다. 설계방향연구 계약이 만료된 것은 1984년 5월경이었다. 결국 성능 비교 비행이라는 전통적인 기종 선정과정이 반복되리라는 것이 자명해졌다. 


제너럴다이내믹스가 제안한 ATF 모델. 수평꼬리 날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록히드마틴>

 


제너럴다이내믹스가 제안한 ATF 모델. 수평꼬리 날개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록히드마틴>

 


1985년 9월, 이런 성과들을 바탕으로 ATF의 공식적인 제안요구서(RFP)가 작성되었다. 1986년 1월을 답변 제출기한으로 하고 있는 이 제안요구서는 1985년 10월 7일 공식 승인을 받고 이튿날 곧바로 7개 항공기 제작사들에 전달되었다. 이 제안요구서는 최초의 제안과 달리 대당 가격의 상한을 4,000만 달러에서 3,500만 달러로 낮췄다. 실물 개발, 즉 엔지니어링 및 제작 개발(EMD)을 포함한 수주액은 총 650억 달러로 사상 초유의 금액이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준비해왔다고는 하지만 1월까지는 너무 촉박하다는 업체들의 주장에 따라 제출기한은 4월로 연기되었다. 하원으로부터 집중적인 압박을 받아온 해군이 그러먼의 F-14 톰캣을 대체할 기종으로 해군형 차세대 전술전투기(NATF) 개발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때였다. 

한편 제안요구서에는  프로토타입 제작에  대한 시연·평가  절차(Demonstration &  Validation; DEM/VAL)가 포함되어 있었다. 비행성을 갖춘 기체를 만드는 프로토타입 연구는 실물 및 축소 모델을 통한 풍동시험, RCS(Rader Cross Section: 레이더 반사 면적) 계산, 항전장비 개발, 기타 부가장비 테스트 등으로 이루어졌다. 전산 유체역학(Computational Fluid Dynamics)이나 컴퓨터 예측을 통한 RCS 및 부가장비 테스트 등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면서 개발비용은 비약적으로 절감되었다. 


ATF의 최종설계안을 보면 스텔스 설계가 이미 이 시기부터 안정적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록히드마틴>


개념연구 단계에서는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그러먼, 록히드, 맥도넬 더글러스, 노스롭, 그리고 록웰인터내셔널이 참가했다. 이 단계는 프로토타입 계약이 성사되는 1986년 10월 31일에 종료되었다. 이 과정에서 2개 사, 즉 해군기 제작업체로서 명성이 높아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던 그러먼과, B-1B 사업을 진행하느라 ATF 사업에 전력투구하지 못했던 록웰인터내셔널이 탈락했다.

1986년 5월, 당시 공군장관이던 에드워드 올드 릿지(Edward Aldridge)는 원래의 제안요구서에서 중대한 변경사항이 있음을 발표했다. 애당초 서류 연구단계의 시연 평가를 통해 차세대 전술전투기를 선정하기로 한 것과는 달리 시연평가 과정에 최종 후보기 2종 사이의 성능 비교 비행(fly-off)을 포함시키겠다는 것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각 경쟁사는 2대의 프로토타입 기체에 2개의 엔진 제작사에서 만든 엔진을 각각 장착하여 납품해야 했다. 이 발표의 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연 평가는 비행 가능한 프로토타입과 항전장비 프로토타입을 포함한다
시연 평가에는 2개 업체만 참가한다 
제작사들 사이에 팀을 만드는 것을 장려한다 
제작사의 비용 제안도 포함한다
제작사는 제한된 예산 내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시연 평가를 진행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예산운용 계획의 제출도 포함한다

서류상의 성능 비교 비행보다는 확실히 비용이 급증했지만 새로운 방식의 비행시험을 통해서 실물 기체의 제작, 스텔스 및 기본 비행성능을 더욱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미 공군은 당장의 비용절감을 포기하는 대신 안정적이며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1986년 7월 28일, 남은 경쟁사들이 프로토타입 설계 제안서를 제출했다. 공군 항공시스템 개발부는 12주 동안 각사의 제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록히드와 노스롭의 제안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보잉과 제너럴 다이내믹스, 그리고 맥도넬 더글러스의 제안 중에서도 뛰어난 점이 있었다.


ATF로 인해 항공 방산업계가 재편되다(1986년)

한편 비슷한 시기에 650억 달러의 일부라도 차지하려는 5개 경쟁사들 간에 이합집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ATF 검토 과정 초기에 이미 선두주자로 인정받은 록히드는 1986년 6월부터 보잉 및 제너럴 다이내믹스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위한 협의에 나서 10월 13일에 합의를 보았다. 이에 따라 록히드는 주 계약자로서 보잉과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독특한 장점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남겨진 2개 사, 즉 노스롭과 맥도넬 더글러스도 2주 후에 결국 손을 잡았다.


록히드 ATF 설계의 진화과정 <출처: 록히드마틴>


1986년 여름이 되자 5개의 핵심 항공기 제작사들이 구성한 두 컨소시엄 중 하나가 사업을 따내리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결국 1986년 10월 31일, 이 두 컨소시엄이 각각 프로토타입 2대를 제작하여 시연 평가에 제출하도록 선정되었다. 각 컨소시엄에 지급한 돈은 6억 9,100만 달러였다. 록히드 팀이 제출한 모델 1132(초기에는 092형으로 불렸다)에는 YF-22, 노스롭 팀이 제출한 N-14 제안 모델에는 YF-23이라는 공군의 제식명을 부여했다.

각사에 지급한 6억 9,100만 달러 가운데 약 1억 달러가 레이더 및 광전자 센서에, 약 2억 달러가 항전장비 통합에 할당되었으며, 그 이외의 비용은 기체 개발 등에 할당되었다. 엔진 개발은 이와는 별도로 진행되어 제너럴 일렉트릭과 프랫 & 휘트니 2개 사에 각각 6억 5,000만 달러가 주어졌다.

개발 중인 항공기는 공군에 납품하기 전까지는 기본적으로 각 회사에서 소유하고 운용하는 민간 항공기였으므로 민항기 번호도 부여되었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YF-120-GE-100 엔진을 장착한 록히드의 YF-22는 N22YF로, 프랫 & 휘트니의 YF-119-PW-100 엔진을 장착한 기체는 N22YX로 명명되었다. 노스롭의 YF-23 가운데 PW 엔진을 장착한 기체는 N231YF로, GE 엔진을 장착한 기체는 N232YF로 명명되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1989년 말에 테스트베드(Testbed: 시험용) 항공기가 첫 비행을 할 예정이었다. 그 후 1990년 여름 말에 실물 개발 제안서 제출을 마감하고 1990년 말이 되면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추진체계 경쟁에서는 프랫 & 휘트니가 제너럴 일렉트릭에 비해 우세를 보였다. 이즈음에는 차세대 전투기 엔진(Advanced Fighter Engine; AFE)이라고 불린 이 엔진의 제안요구서에 따르면, 1983년 5월에 이미 3만 파운드의 추력이 요구되고 있었다. 그해 9월에는 프로토타입 엔진 제작 및 테스트를 위해 양사에 5억 5,000만 달러가 지급되었다. 당시 프랫 & 휘트니의 엔진은 PW5000, 제너럴 일렉트릭의 엔진은 GE37이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후에 공군은 이들에게 각각 F119과 F120이라는 제식명을 부여했다.

최초의  예비  비행정격시험(PFRT:  Preliminary  Flight  Rating  Test)과  지상 AMT(Accelerated Mission Test: 가속 임무 시험)는 1986년에 비감 항성의 프로토타입 엔진을 가지고 실시했다. 감항성(항공에 적합한 안정성과 신뢰성을 갖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술적 특성) 엔진으로 시험평가를 하기 시작한 것은 2년 뒤부터였다. 

프로토타입 기종의 선정이 끝나자 시연 평가 단계의 목표도 달라졌다. 이제는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성공적 임무 완수에 필요한 차세대 기술이 실현 가능하고 실질적이며, 성공적으로 엔지니어링 및 제작 단계(EMD)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구체화된 시연 평가(1987~1988년)

수정된 방식의 시연 평가를 위해 업체들은 각기 다른 엔진을 장착한 2개의 기체를 제작해야 했다. 프로토타입은 직접 성능 비교 비행을 하거나 차세대 전술전투기에 요구되는 모든 성능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었고, 각사가 제안하는 개념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 시험계획을 수립할 때도 각 제작사들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했다. 시연 평가는 다음의 3단계로 이루어졌다.

(1) 시스템 제원 개발

이 단계에서는 효율성 분석, 설계 비교분석 연구, 각종 테스트, 시뮬레이션, 기술평가 등을 실시했으며, 무기체계 특성 및 작전요구성능을 개량해나갔다.


YF-22는 록히드의 스텔스 기술, 보잉의 항전장비 통합, 제너럴다이내믹스의 조종제어기술이 결합되었다.                   <출처: 미 공군>


(2) 항전 프로토타입

완전히 통합된 항전장비(항공 전자장비)의 성취도를 시연하는 단계로 우선 지상형 프로토타입을 통해 시연했다. 록히드는 1988년 10월에 최초로 지상 항전 프로토타입(AGP; Avionics Ground Prototype)을 시연했으며, 노스롭도 비슷한 시기에 시연을 실시했다. 

이후에는 중형 민항기를 테스트베드 항공기로 활용하여 실제 비행 중에 항전장비가 유효하게 작동하는지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록히드는 보잉 757을, 노스롭은 BAC-111을 개조하여 비행용 항전장비 실험에 활용했다.

(3) YF-22A/YF-23A 프로토타입

이 단계에서는 양사가 제안한 모델의 프로토타입들이 만들어져 엔지니어링 및 제작 단계에 있는 기체가 가질 능력을 시연했다.

록히드/보잉/제너럴 다이내믹스 팀은  각각의 특장점을 살려 작업을 분담했다. 록히드는 F-117A 사업의 경험을 살려 설계와 제작을, 보잉은 주력인 항전장비의 개발과 통합을, 그리고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F-16의 설계 경험을 살려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 by wire: 기계적 조종 시스템을 컴퓨터를 통해 전기 신호장 치로 바꾸는 방식) 시스템의 통합을 맡았다.


YF-23은 노스롭과 맥도넬더글러스가 팀을 이루어 개발했다. <출처: 미 공군>


노스롭과 맥도넬 더글러스 팀도 마찬가지로 특장점을 살렸다. 노스롭은 F-5 프리덤 파이터(Freedom Fighter)와 F-20 타이거샤크(Tiger Shark)를 개발할 때 얻은 경량 전투기 설계 경험과 첨단재료 및 스텔스 기술을 통합했고, 맥도넬 더글러스는 XP-67부터 F-1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투기들을 개발하면서 얻은 풍부한 경험을 개발에 반영했다.

지연되는 일정(1987~1988년)

프로토타입의 출고 시기가 다가오자 록히드와 노스롭 양 팀은 자체 중량 목표를 당초의 5만 파운드 대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5만 5,000파운드로 수정했다. 이런 중량 문제 때문에 설계도 수차례 변경되고 사업 일정 자체도 미뤄졌다.

록히드 팀은 문제가 적었던 당초의 사다리꼴형 날개에서 다이아몬드형 날개(이것은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시연 평가 초기에 제안했던 설계안이었다)로 설계 방식을 변경하면서 부가적인 문제들을 떠안게 되었다. 게다가 고 받음각 상태(날개의 앞면을 높이 들어 올린 상태)에서도 저속으로 비행할 수 있기 위해 전방동체의 기체부를 상당히 줄였기 때문에 이에 따른 설계변경이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집중적인 풍동시험을 통해 기수와 수직 꼬리날개의 형태를 최적화하는 데 노력을 집중했다.


같은 축소모델로 AIM-120 암람, AIM-9 사이드와인더 등 미사일을 장착하고 풍동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출처: 록히드 마틴>


그러나 록히드와 노스롭 양 팀의 설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엔진 역추진기에 있었다. 이는  원래  ATF의  설계요구조건이었으며  참여업체    하나인  맥도넬 더글러스가 F-15S/MTD(STOL/Maneuver Technology Demonstrater: 단거리 이륙/기동기술 시연기)를 통해 세밀하게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특성은 무게·정비·가격 관련 사항들을 조정함으로써 상쇄할 수 있다는 일치된 결론이 나왔다. 게다가 실물 크기의 테스트베드 항공기 연구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비행 중에 엔진 역추진 기를 사용하면 배기 발산 때문에 방향안전성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냉각문제가 나타난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에 그렇지 않아도 힘든 배기노즐부(분사구)의 스텔스 설계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문제까지 있었다. 결국 역추진기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변경되면서 업체들은 예정된 일정을 넘겨버렸고, ATF의 일정도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중반까지 ATF 사업국은 프로토타입의 설계변경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결국 1987년 7월이 되면서 이런 문제들로 인해 설계변경을 허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7월 13일, 3개월간의 설계 수정 과정을 거친 새로운 설계안 1132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공군은 12월경에 다시 한번 록히드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륙거리 요건을 2,000피트에서 3,000피트로 재조정했다. 그 외에도 초음속 비행에 따르는 항력을 줄이기 위한 설계변경을 몇 차례 허용해주었다.


기동성이 관건이다(1989년)

록히드의 설계안에서  주목할 점은  노스롭이 채용하지  않았던 추력편향 장치(ThrustVectoring System: 엔진 추력의 방향을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장치)를 채택했다는 것이다. 추력편향 장치를 채택하면 엔진당 무게는 30파운드~50파운드 정도 늘어나지만 고 받음각 기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고, 저속 및 초음속 비행을 할 때 피치각 속도(날개각 조정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 비록 초기에는 추력편향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만 가능했지만(두 개의 엔진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추력을 바꿀 수 있는 독립추력편향독립 추력편향은 양산형 F-22A가 나오면서 가능해짐), 추력편향 장치 덕분에 회전 반응성이 현저히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고 받음각 상태에서도 최대 회전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추력편향 장치를 사용하면 피치를 제어하는 수평 안정판이 에일러론(aileron: 비행기 날개 뒤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조종용 날개판)이나 플래퍼 론[flaperon: 플랩(flap)과 에일러론을 합한 조종용 날개판]과 함께 회전 제어까지 해줄 수 있었다. 요컨대 추력편향 장치를 사용하여 피치를 제어해주면 안정판은 회전 제어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록히드는 풍동시험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초음속 비행 상태에서의 높은 기동성이 ATF 사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관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록히드가 풍동시험에 할애한 시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저속 안정성 및 제어: 6,715시간 
추진 항공역학: 5,405시간 
고속 항력/안정성/제어: 4,000시간 
 무장 투발: 700시간 
 흐름 가시화: 695시간 
 대기자료: 240시간 
공력 하중: 95시간 
플러터(Flutter: 비행 시 날개에 일어나는 진동): 80시간

시연 평가 계약은 레이더 반사 면적(RCS)의 평가, 즉 스텔스 성능 평가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항공기 부품의 RCS 평가분석, 컴퓨터를 활용한 RCS 예측모델 분석, 그리고 축소/실물 항공기 실험을 실시했다. 특히 실물 크기의 RCS 테스트 모델은 실제 전투기에 사용할 레이더 흡수 소재를 모두 장착하고 실험해야 했다. 이 모델은 뉴멕시코주의 화이트 샌드에 위치한 공군 레이더 표적 산란(RATSCAT) 시설에서 70피트 길이의 RCS 폴(pole)에 매달린 채 일련의 실험평가과정을 거쳤다.



프로토타입들의 전쟁(1990년)

계약이 시행된 지 4년 만에 드디어 차세대 전술전투기의 프로토타입들이 시험비행을 시작했다. 각 후보 기종에 기체 제작사, 항전장비 제작사, 엔진 제작사, 그리고 공군의 관계자들로 구성된 통합 시험평가 팀이 배정되었다.

그때까지의 관행과는 달리 공군 시험비행센터(AFFTC)가 아니라 록히드와 노스롭 그러먼 양 사가 시험평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되었다. 주어진 요구조건을 6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검증하기 위해 각 기종은 일주일에 6일, 하루 평균 2회의 시험비행을 해야만 했다.

드디어 시험비행을 실시할 프로토타입 기체가 속속 출고되었다. 1990년 6월 22일, 노스롭의 YF-23A(기체 번호 N231YF)가 출고되었다. 같은 해 8월 29일, YF-22A (기체번호 N22YF, GE 엔진을 장착)도 팜데일(Palmdale)에서 첫 출고식을 치렀다.

YF-22의 출고식 행사 장면 <출처: 미 공군>


마침내 시험비행이 시작되었다. 첫 비행은 역시 먼저 출고된 N231YF가 하게 되었다. 7월 7일, 기체는 비행에 앞서 랜딩기어, 스티어링(Steering), 브레이크 등 기본 장치들을 점검하기 위해 저속 및 중속 활주를 실시했다. 그리고 1990년 8월 27일, 노스롭의 수석 시험 비행사 폴 메츠가 조종한 YF-23A는 첫 비행에 성공했다. 오전 7시 15분에 이륙한 기체는 에드워드 공군기지까지 약 50분간 비행하면서 최대 상승고도 2만 5,000피트, 최고속도 마하 0.70을 기록했다.

 

이후 노스롭의  시험비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87-800이라는 공군 기체 번호가 부여된 N231YF는 제4차 시험비행인 9월 14일의 비행에서 최초로 공중급유를 성공시켰다. 9월 18일에는 슈퍼크루즈 비행을 실시하여 마하 1.43을 기록했다. 그리고 11월 30일, 87-800기는 제34차 비행을 끝으로 총 43시간의 시험비행시간을 기록하며 모든 시험비행을 종료했다.

한편 GE 엔진을 장착한 두 번째 YF-23A(기체 번호 N232YF)인 87-801기는 10월 26일에 첫 비행을 했고 11월 29일에 슈퍼크루즈 비행을 실시하여 마하 1.6을 기록했다. 그리고 12월 18일, 87-801기는 제16차 비행을 끝으로 총 22시간의 비행시간을 기록하며 모든 시험비행을 종료했다. YF-23A의 최고속도는 마하 1.8, 최대 상승고도는 5만 피트(1만 5,240미터)였다. 


YF-23의 출고장면 <출처: 미 공군>

록히드가 시연 평가를 위해 세운 계획은 YF-22A를 통해 시범 양산 단계의 기체가 가질 수 있는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기동성과 조정성, 슈퍼크루즈 능력, 고 받음각 비행성, 그리고 AIM-9M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및 AIM-120 차세대 중거리 대공미사일(AMRAAM; 암람)의 실사격 능력이었다.

이런 시험 목표를 단기간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록히드는 소티율(일정 기간에 출격한 횟수)을 최대한 높이고, 공중급유를 최대한 활용하며, 특정한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한 테스트만 수행하고, 시험비행의 다양한 기술들을 활용하며, 공군 소속의 비행사들을 시험비행에 최대한 참여시킨다는 원칙을 세웠다.

YF-16, YF-17, 그리고 F-117의 시험비행 경험을 갖고 있던 록히드는 한 달에 10회의 비행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기상상황, 공휴일, 에어쇼 일정, 기체의 문제 등으로 주별 비행 횟수는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어쨌든 록히드는 일주일에 6일, 하루에 최소 2회의 비행을 할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을 준비해 놓았다.

하루 평균 비행시간은 1.2시간, 공중급유를 할 경우에는 2.8시간으로 예상되었다. 관건은 공중급유였다. 록히드가 예정된 시험비행 중 80퍼센트를 공중급유를 활용하여 비행하기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업체 주도의 시험비행(1990년)

통합 시험비행 팀의 규모는 엄청났다. 이 팀은 록히드 항공시스템의 기술직과 행정직 인원 90명, 록히드 차세대 개발사의 정비·품질관리·총무 담당자 및 시험 비행사 65명, 제너럴다이내믹스의 기술자와 시험 비행사 45명, 보잉 군용기 부서의 기술자 및 정비담당자 40명, 공군 시험비행센터의 20명, 엔진사인 제너럴일렉트릭과 프랫 & 휘트니의 기술자 및 정비담당자 각 20명, 도합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시험비행 계획 자체는 업체가 수립했으며 공군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프로토타입이 수행해야 할 비행의 가이드라인만 설정해놓았다. 심지어 비행계획의 허가를 내리는 것도 공군 시험비행센터(AFFTC)가 아니었다. AFFTC는 오직 안전기준만 설정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비행계획을 승인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ATF 사업국이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YF-22의 수석시험비행사 데이브 퍼거슨의 모습. <출처: 록히드 마틴>


드디어 YF-22A의 시험비행이 시작되었다. 1990년 9월 29일, 수석 시험비행사 데이브 퍼거슨(Dave Ferguson)이 조종하는 N22YF은 팜데일의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이륙하여 에드워드 공군기지까지 18분 동안 비행했다. 이렇게 비행시간이 짧았던 이유는 지상국에서의 준비 문제로 이륙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지연되는 동안 YF-22A는 계속 엔진을 켜 두고 있었고 그 때문에 연료를 상당히 소모해버렸던 것이다. 비행시간이나 거리가 모두 짧았기 때문에 최대 상승고도는 1만 2,500피트, 최고속도는 288마일에 불과했다.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도착하자 퍼거슨은 짧은 비행을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러나 N22YF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첫 비행에서 랜딩기어가 접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 이유는 배선에 있었다는 것이 제5차 비행에서야 밝혀졌다. 랜딩기어를 펴는 것은 배선 접속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접는 것은 IVSC(Integrated Vehicle Sub-system Controller: 통합 기체 시스템 제어기)에 의해 제어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IVSC를 거치지 않고 독립 배선으로 직접 랜딩기어를 접을 수 있게 하자 문제가 해결되었다. 

랜딩기어 문제를 해결하자 시험비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련의 감항성 시험으로 기체의 비행 능력과 엔진 및 시스템 작동에 대한 확신이 서자 이제 초음속 비행에 돌입하게 되었다. 10월  25일, N22YF는 제9차 비행에서 처음으로 음속을  돌파했고 다음날에는 KC-135 공중급유기에 의한 공중급유 시험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N22YF는 한동안 비행을 하지 않는 대신 고난도의 시험비행을 위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스핀 회복장치(Spin Recovery Chute: 회전 상태의 항공기를 정상 비행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항공기용 낙하산)를 장착했고, 대기자료 수집용 탐침(Air Data Probe)을 약 5도 낮추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직후 기체의 고 받음각 비행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비행이 속행되었다. 이때 N22YF는 겨우 1주일 만에 받음각 60도를 기록하며 록히드의 목표를 만족시켰다. 

그 사이 PW 엔진을 장착한 2호기인 N22YX가 톰 모건펠드(Tom Morgenfeld)의 조종 하에 에드워드 공군기지로 날아왔다. N22YX는 14분간의 비행에서 최대 상승고도 1만 피트, 최고속도 360마일을 기록했다. 


AIM-120 암람을 발사하는 YF-22 2호기 <출처: 록히드 마틴>


감항성 시험을 무사히 마친 N22YX는 11월 28일의 제11차 비행에서 AIM-9M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직전인 12월 20일에는 AIM-120 암람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후 초음속 비행성능 시험 등을 집중적으로 받은 YF-22A 2호기는 1990년 12월 28일부로 모든 시험을 종료했다. YF-22A 1호기와 2호기는 모두 합쳐 91.6시간 동안 74회의 비행을 실시했다. 


치열한 경쟁의 끝(1991년)

시연 평가 기간에 YF-22A가 보여준 비행 데이터들은 풍동시험 및 시뮬레이터 상의 결과 데이터들과 면밀하게 비교되었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대부분의 데이터가 일치했던 것이다. 

시험비행중인 YF-22와 YF-23


착륙 평가의 경우, 엔진 1개만 사용하여 실시한 착륙과 20노트 속도의 바람이 측면에서 부는 가운데 실시한 착륙이 모두 성공했다. 하중 평가의 경우, 자세한 사항은 아직도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설정된 기준을 만족시키거나 뛰어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전 성능의 결과는 예상보다는 나빴다. 3만 피트 상공에서 마하 0.90로 비행할 때 풀스 틱 편향 회전율(조종간을
최대한 기울였을 때 비행기가 회전하는 각도의 비율)은 초당 200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시험비행 결과 180도로 나왔다. 4만 피트 상공에서 마하 1.5로 비행할 때의 회전율은 시뮬레이션상으로는 초당 185도로 나왔지만 실제 비행 결과는 175도였다.

시험비행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YF-22의 회전 감쇄(roll damping: 항공기의 좌우 진동을 줄이는 것)가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왔다. 제어 법칙 수치를 바꿔주면 마하 0.90에서 회전율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마하 1.5에서는 회전 기동에 의한 역(逆) 사이드 슬립[사이드 슬립(side slip)은 회전 시 회전 중심축 쪽으로 미끄러지는 현상] 수치가 예상치보다 높게 나왔다. 이는 대기자료 장치가 받음각을 1.5도 낮게 계산한 탓이었으며, 부정확한 보조날개 러더 연동과 과도한 사이드 슬립을 초래했다. 이외에도 작은 문제들이 있었으나 이 모든 문제들은 수치 변환으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이후의 비행은 순조로웠고, 편대비행과 공중급유는 아주 쉽게 평가기준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이 계속된 지 8년 만인 1991년 4월 23일, 미 공군성 장관인 도날드 라이스(Donald Rice)는 YF-22의 록히드/보잉/제너럴 다이내믹스 팀이 ATF 경쟁에서 이기고 엔지니어링 및 제작 단계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PW의 YF-119-PW-100 엔진도 ATF의 공식 엔진으로 선정되었다.

이렇듯 제5세대 전투기의 장을 연 F-22 스텔스 전투기는 하루아침에 등장하지 않았다. F-22가 실전 배치된 것이 2006년이기에, 최초 개념연구부터 기산 하면 35년, 사업의 개념개발부터 기산하면 23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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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전파사용을 탐지, 이용, 감소 또는 방해하고, 아군 전자파의 사용을 보장하기 위한 전자에너지의 사용과 관련된 군사활동. 적의 지휘, 통제, 통신(C3) 및 전자무기체계의 기능을 마비 또는 무력화시키고, 적의 전자전 활동으로부터 아군의 지휘, 통제, 통신 및 전자무기체계를 보호하는 제반 군사활동. 수행 기능에는 전자 전지원(ES), 전자공격 전자공격(EA),

전자 보호 (EP)가 있음.



1, 개요

군대가 적의 네트워크, 레이더, 통신 등을 교란하거나 해킹해 피해를 주고 아군의 정보 및 전자적 면의 우위를 확보하는 군사 활동을 통칭하는 말.

전자전의 역사는 레이더, 유무선 전자 통신을 다루는 성격상 이 장비들이 등장한 이후에 시작한다. 군에서 전자 통신이 자리 잡은 이후 이를 감청하고 적군의 통신을 방해하는 작업은 제1 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적인 전자전이 시작한 것은 보통제 2차 세계대전으로 꼽힌다. 이때 레이더와 무선 통신이 발달하면서 적군의 레이더 및 무선 통신을 무력화하는 체프, 방해전파 등이 등장하고 기초적인 무선 항법 체계와 이를 방해하는 전파 발생기 기도 등장했다. 이후 군에서 사용하는 전자 장비들이 크게 발달하면서 이를 보완하거나 방해하는 전자전 장비 및 기술들도 함께 발달하게 되었다.

 

2.EA, ES, EP의 구분

대한민국 해군에서는 차례대로 ES(Electronic Support), EA(Electronic Attack), EP(Electronic Protection)라고 하며 각각 전자 전지원, 전자공격, 전자 보호라고 한다.

  • 전자 전지원(ES; Electronic Warfare Support): 적 무선통신 및 전자장비로부터 방사되는 전자파를 수집, 처리, 분석하여 정보를 생산하는 것
  • 전자공격(EA; Electronic Attack): 적 통신을 방해하거나,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자파를 직접 방사
  • 전자 보호(EP; Electronic Protection): 적 전자파 위협으로부터 아군의 전자파 사용을 보호하는 활동


한편, LIG넥스원에서는 지상전술 전자전 장비 TLQ-200K를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 차량 탑재용 전자전 장비가 나온 것은 2011년이 처음이고, 그 전에는  미국 샌더스 사, 프랑스 탈레스 사 등에서 수입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LIG넥스원 측에서 2005~2011년의 연구개발을 통해 완성했다. LIG넥스원 측에 따르면, 기술 통제 분석장비인 TCAE(Technical Control Analysis Equipment)에서 전자전 지원을 담당하는 ES(Electronic Support)와 전자공격을 담당하는 EA(Electronic Attack)로 임무를 할당하면 ES가 적 통신 탐지, 감청, 방탐 및 위치탐지를 수행하고 EA는 탐지, 감청과 더불어 유사시 전파방해로 적 통신망을 무력화한다.

 

각 장비는 무선 또는 유선통신으로 연동되며 궤도차량이나 차륜 차량에 탑재해 운용 가능하다. 전자 지원장비(ES)의 구성품은 적의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 수집된 전파에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수신기, 기구적으로 마스트와 안테나 구조물을 지지하며 수신되는 신호의 스위칭 역할을 하는 안테나 전환기 등이 있다.

 

육군용 통신 전자전 ES장비는 특성상 전략적 요충지의 산 정상에서 운용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동절기 ES안테나에는 비, 바람, 상고대 등의 외부요인에 항상 노출되어 운용되어 내구성 문제가 있다 한편, 국방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이 연구에 605억 원을 투자해 2006억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3. ESM, ECM, ECCM의 구분

1) ESM(Electronic Support Measure)

ES (Electronic Warfare Support)라고도 한다. 적의 네트워크, 통신을 감청해 정보를 획득하기, 적의 레이더 패턴을 획득, 해석, 저장하여 목표 식별하기 등이 있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RC-135 같은 전자정찰기들을 운용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은 데이터베이스화 되는데 이는 국가를 불문하고 군사 최고 기밀사항에 해당된다.  

 

전문용어로는 SIGNT(신호 정보 수집)/ELINT(전자 정보 수집)/COMINT(통신 정보 수집) 등이 있다. 해킹을 통한 정보수집도 포함될 수 있다. ESM의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 전파의 탐지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현대에는 주파수 도약 방식의 무전기나 레이더가 일반화되어 있다.

 

2) ECM(Electronic Counter Measure)

EA(Electronic Attack)라고도 한다. 강력한 전파 또는 같은 레이더 패턴의 전파를 방사하여 적의 레이더를 무력화(Jamming) 시키거나 레이더상에 허상을 만들어서 물리적인 공격을 방해하거나 통신을 교란시키는 등 적의 감시, 공격, 통신 활동을 방해하는 공격적인 역할을 한다.

 

해킹을 통해서 목표물을 파괴하거나 적군의 지휘 혹은 통신 시스템을 장악하는 것도 ECM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3) ECCM(Electronic Counter-Counter Measure)

EP(Electronic Protection)이라고도 한다.

위에 열거된 ESM과 ECM을 무력화해 아군의 정보와 자산을 방어할 수 있는 대책이다.

옛날에는 교란당하면 전파 강도를 세게 하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방어했고, 적으로부터 전파 정보를 은닉하기 위해 일부러 잡음을 섞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으나 오늘날엔 주파수를 수시로 변조하거나 송신 전파의 세기를 최대한 약하게 만들고 아군 수신 센서의 민감도를 높여 적에게 감지될 가능성을 회피하며, 적의 ESM, ECM 시도를 탐지해 아예 발산원의 위치까지 파악, 역공할 수 있도록 하는 첨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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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 한국형 전투기

한국형 전투기(KF-21: Next-Generation Fighter)는

한국 공군 전력 유지 및 미래 전장 운용 성능을 갖춘 항공기로 향상된 생존성과 연합/합동작전, 후속지원 시스템,

공중우세 확보 및 지상 정밀 타결 수행이 가는 한 다목적 전투기입니다. 

KF-21 사업은 대한민국 공군의 장기운영 전투기인 F-4, F-5를 대체하고 한국 공군의 미래 전장에 적합한 성능을 갖춘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개발기간은 10년 6개월이 소요될 예정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국책 연구개발 사업인 KF-21는 인도네시아와 국제 국제 공동개발로 진행하고 있으며, KAI는 KT-1 기본훈련기, T-50 고등훈련기, FA-50 경공격기 등 국산 항공기의 개발 경험과 인프라를 ㄱ반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형 전투기란?〉

한국형 전투기 사업 은전 투기 방위사업청 한국형 전투기사업단 관리 아래, 한국항공(KAI)이 주도해 이뤄진 한국·인도네시아 국제 공동 연구·개발사업이다. 최초의 국산 전투기 개발을 목적으로 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은 지난 2015년 12월 28일 계약을 체결한 이후 2019년 9월까지 상세 설계를 마쳤고, 지난 9일에는 시제 1호기를 출고했다. 2022년부터 2026년까지는 비행시험을 진행한다. 체계 개발을 마친 후에는 2026년 12월부터 2032년 12월까지 총 6년간 120대의 전투기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그 결과물로 등장한 것이 ‘KF-21 보라매’다. 해당 기종은 시제 1호기가 출고되기 전까지 ‘KF-X’로 불렸지만 지난 9일 공군에 의해 새 이름을 갖게 됐다.

KF-21은 미국 공군이 1970년대 개발한 ‘High-Low Mix 전투기 운용 개념’ 범주에서는 미디엄(Medium)급 전투기에 해당한다. 곧 퇴역할 미디엄급 전투기 ‘F-4/16’를 대할 계획이다. 본래 사업이 결정됐던 2002년 당시, KF-21은 2010년대 수명이 다하는 ‘F-4/5’급 전투기를 대체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지연돼 보급이 늦어졌고, 2020년대 중반 이후 도태 예정인 F-4/16급 전투기를 대체하게 됐다.

우선 한국형 전투기 개발 일정이 무사히 끝나길 바란다. 이번 시제기의 출고는 전체 개발 과정의 반환점 수준을 의미한다. 개발자들은 향후 있을 비행시험을 위해 정해진 점검 절차에 따라 지상시험을 시행해야 한다. 이후 4년간 2000여 회의 비행시험이 이뤄진다.

‘KF-2’은 앞서 공개된 ‘KT·KA-1’ 및 T·FA-50’ 항공기와는 사뭇 다르다. 둘보다 많은 무기장비가 KF-21에 탑재된다. 탑재된 무기장비에 대한 운용시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실제 상황에서 무장을 운용하며 발생할 수 있는 비대칭 형상에 대한 안전한 비행 절차 개발도 마쳐야 한다. 위험한 비행시험 상황이 너무 많다. 이런 훈련이 안전하게 끝났으면 한다.

다음으로 한국형 전투기 개발인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 가치 재 제고로 이뤄지길 기대한다. 한국은 한국형 전투기 개발 이후 세계에서 13번째 전투기 개발 국가이자, 4.5세대 전투기를 개발 가능한 항공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로 자리 잡게 된다. 이는 국가방위의 핵심 전력 자체 생산력을 보유하게 됨을 의미한다. 아울러 앞으로 나올 노후 도태 전투기를 대체할 전투기를 생산하는 계기로도 이어져야 한다.

한국형 전투기가 노스 아메리칸사 생산 ‘F-86 전투기’(9860대 제작), 맥도널 더글러스 사가 제작·생산한 ‘F-4 전폭기’(5195대), 제너럴 다이내믹스사가 제작·생산한 ‘F-16 다목적 전투기’(4604대)처럼 명품 전투기가 되길 바란다.

또 이번 전투기 개발로 개발을 통해 국가방위 핵심 전력을 스스로 생산하고, 한국 공군 전투기를 국산 전투기로 사용하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한다. 한국 공군이 사용하는 전투기가 국산 전투기로 대체될 때 국방예산의 절감으로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2021년도 한국의 국방예산 37조 5000억 원 중 3분의 1은 방위력 개선(무기 도입) 예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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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0 고등훈련기

Advanced Jet Trainer


세계 최고의 성능으로
고등훈련기·경공격기 시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T-50 고등훈련기는 대한민국에서 개발한 최초의 국산 초음속 항공기입니다.

T-50 고등훈련기와 T-50 기반의 FA-50 경전투기, TA-50 전술입문기,
T-50B 공중곡예 기는 대한민국 공군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실전 운용을 통해 우수한 기동성과 높은 훈련 효과가 입증된 T-50 시리즈는
동남아시아, 중동 등 4개국에 수출되어 세계 고등훈련기 및 경공격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 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자체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의 초음속 비행기로, 정식명칭은 'T-50 고등훈련기'이다. 골든이글(검독수리)은 별칭이다.

길이 13.4m, 너비 9.45m, 높이 4.91m, 최대속도 마하 1.5, 이륙중량 1만 3454㎏, 실용 상승고도는 1만 4783m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주)이 개발한 비행기로,

1990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1997년부터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하였다.

2001년 10월 기체()를 완성하고, 이듬해 8월 첫 공개 비행에 성공하고, 2003년 2월 19일 초음속 돌파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후 내구연한 25년을 검증하기 위하여 내구성 시험을 완료하고, 2005년 대량생산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자체 기술로 초음속 비행기를 개발한 12번째 국가가 되었다.

 

이 훈련기는 F-15A·F-16·F-22  전투기의 조종훈련을 목적으로 설계되었고, 고도의 기동성을 자랑하는 디지털 비행제어 시스템과 디지털 제어 방식의 엔진, 견고한 기체 및 착륙장치 등을 장착하고 있어 같은 급의 훈련기 가운데서는 최고의 성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3년 말 성능 평가를 거쳐 국방부의 최종 승인을 얻었으며 2005년 12월 1호기가 생산되었다. 2007년부터 정예 전투조종사 교육에 활용하였고 이후 2010년 50호기가 공군에 인도되었다.

 

2011년 5월 인도네시아와 총 16대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여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스웨덴에 이어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국에 진입하였다.


개발의 역사

미국의 군수 원조 장비에 크게 의존하던 대한민국 국군은 눈부신 산업·경제 발전 시기를 거치며 1960년대부터 주요 장비의 국산화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는 북한과의 첨예한 대립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안정적인 군수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핵심 국방 기술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장갑차 국산화 사업을 시작으로 한국형 전차 사업(KX), 한국형 구축함 사업(KDX), 한국형 잠수함 사업(KSX) 등이 순차적으로 추진되었다. 이 중 가장 야심 차게 실시된 계획은 한국 지형에 맞는 한국형 훈련기를 개발할 목적으로 1990년대에 추진된 한국형 훈련기 사업(KTX, Korea Trainer Experimental)이다.

이미 KTX-1 사업으로 KT-1 ‘웅비’를 개발하면서 훈련기 국산화에 자신감을 얻은 한국은 1992년 KTX-2 사업을 통해 기존에 사용 중이던 T-38 탤런(Talon) 대체용 고등훈련기 개발을 계획하게 되었으나, 1995년 피스 브리지(Peace Bridge) 사업이 병행 중이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산 문제를 들어 재정경제부에서 사업을 일시 중단시켰다. 하지만 사업을 맡은 삼성항공은 1997년 7월부터 계속 체계 개발을 진행하다가 1999년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항공부문, 현대 우주항공3사 통합으로 출범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Korea Aerospace Industries)에 사업을 승계했다.

 

T-50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가 끝난 직후인 2002년 8월에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2003년 3월에는 초음속 돌파에 성공해 ‘초음속 고등훈련기’의 타이틀을 얻었다. 이듬해에는 TA-50이 초도비행을 실시했고, 곧이어 4대의 T-50 시제기가 총 1,411 소티(sortie)를 무사히 소화하자 대한민국 공군은 초도 물량으로 T-50 50대와 TA-50 22대를 주문했다.

T-50을 개발하면서 대한민국은 열두 번째로 초음속 항공기를 제작한 국가가 되었으며, T-50의 개발 경험은 현재 진행 중인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사업, 통칭 KFX(Korea Fighter-Experimental) 사업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T/A-50과 F/A-50은 노후화가 심한 대한민국 공군의 F-4 팬텀(Phantom)과 F-5를 대체함으로써 군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징

T-50, TA-50, FA-50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한 기체로, 간단한 기계식 레이더(AN/APG-67)와 무장이 장착된 전술훈련 입문기인 TA-50에서 항전장비류와 무장을 제거하고 훈련용 가상 레이더를 탑재한 것을 T-50으로, TA-50에서 고급 멀티 모드 레이더(EL/M-2032)와 항전장비 및 무장을 탑재한 것을 F/A-50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T-50은 앞서 말했듯이 F-16을 베이스로 삼아 설계한 항공기로, 탑재 시스템과 항전장비, 무장에 따라 동일 플랫폼으로 훈련기부터 경공격기 용도까지 모두 커버가 가능한 것이 최대 장점이다. 조종간으로 사이드 스틱(side stick)이 채택되어 조종석 중앙 공간이 넓고, HOTAS(Hands-on Throttle-and-Stick)의 15개 스위치와 버튼으로 기체 컨트롤 외에 레이더나 무장 조작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T-50은 디지털 비행제어 시스템(DFCS, Digital Flight Control System), 통칭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가 설치되어 기체의 이착륙이나 비행 제어 등의 미묘한 통제를 도와주며, 기체가 실속(失速)하는 경우 등을 자동제어로 막기 때문에 조종 시의 위험을 크게 덜어준다. 

T-50 시리즈에는 두 채널의 FADEC(Full-Authority Engine Control)이 장착된 GE 사의 F-404-102 터보팬(Turbo Fan) 엔진이 채택되어 있고, 사출좌석으로는 영국 마틴 베이커(Martin Baker) 사의 Mk. 16 제로-제로(Zero-zero) 좌석이 설치되어 고도 0, 속도 0의 상태에서도 사출이 가능해 비상시 조종사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했다.

T-50 시리즈의 조종석은 3장의 풀 컬러 다목적 디스플레이(MFD, Multi-Function Display)를 비롯, 계식 계기가 하나도 없이 전면 디지털화되어 있으며, 내장식 훈련 시스템(EETS, Enhanced Embedded Training System)이 설치되어 데이터 링크를 통해 동일 시스템이 설치된 T-50 끼리 레이더를 묘사해 모의 공중전을 치를 수도 있다. 또한 EETS로 가상의 공중 표적 및 지상 표적을 묘사해 공대공 및 공대지 훈련도 가능하다. T-50은 동급 기종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성능의 기체이며, 비행 안정성과 효율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운용 현황

대한민국 공군은 훈련 파이프라인을 KT-100 스크리너(Screener), KT-1 기본훈련기, T-50 고등훈련기, TA-50 전술입문기, FA-50으로 이어지게 설계하면서 전 훈련 기종의 국산화를 달성했다.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스크리너 과정으로 KT-100 비행을 소화한 뒤 KT-1 ‘웅비로 기본 훈련 과정을 거치고, 다시 T-50으로 고등 훈련 과정을 이수한 뒤 TA-50으로 전술 입문 훈련 과정을 거친다. 그 후 4~5세대 전투기 적응 과정인 OCU(Operational Conversion Unit) 과정을 FA-50으로 이수하면서 훈련 과정을 마무리한다. 이와 별도로 대한민국 공군 곡예비행단 블랙 이글스(Black Eagles)’가 곡예비행용 형상인 T-50B를 운용한다.

T-50은 2009년 아랍 에리미트(UAE), 2010년 싱가포르, 2012년 이스라엘에서 수주에 실패했으나 2010년 8월 인도네시아에서 첫 수출이 터진 후 이라크,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수출이 성사되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일명 ‘인도네시아 특사단 사건’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최종 후보로 함께 올라간 러시아의 YAK-130(M-346의 러시아 기체 형상)이 선정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이륙 중 사고를 일으키면서 당시까지 4만 시간 이상 무사고 이력을 기록 중이던 T-50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1 5월 총 16대의 T-50i(인도네시아 공군 형상) 4억 달러에 계약했다.

T-50i는 경공격기 전환이 가능한 사양으로 수출되어 영국제 호크(Hawk) Mk. 53과 교체했다. 이미 2009년경부터 T-50에 관심을 갖던 신생 이라크 공군은 2010 4월 입찰을 개시해 2013 12월부로 TA-50 24대 계약을 체결하고 제식 번호를식 T-50IQ로 부여했다. T-50IQ는 2016년 4월부터 인도되기 시작하여 2017년 4월에 납품이 완료되었다.

현재 T-50은 미 공군 차세대 고등 훈련기 교체 사업, 통칭 T-X 사업에 참여 중이며, 미국 업체의 참여와 미국 내 생산비율을 중시하는 해당 사업의 성격 등으로 록히드 마틴이 주 계약자(prime contractor), KAI가 협력업체 형태로 컨소시엄을 짜 T-50A로 제식 번호를 부여했다.

해당 사업은 T-50 외에도 보잉(Boeing)-사브(Saab) 컨소시엄의 TX 훈련기, DRS-레오나르도(Leonardo)의 T-100(M-346의 미국 입찰 형상), 스타 바티(Stavatti) 항공의 스타바티 재블린(Stavatti Javelin), 미국 시에라 네바다(Sierra-Nevada)-터키 TAI 컨소시엄의 프리덤(Freedom), 그리고 텍스트론 에어랜드(Textron Airland) 사의 신형 기체가 참여 중이다.

 

이 중 사실상 치열한 경쟁을 벌일 최종 후보로 T-50과 보잉의 TX 훈련기가 꼽힌다. T-50은 ‘동급 최강’의 성능 외에 10년여에 걸쳐 다양한 국가에서 쌓인 기체 검증성과 안정성을, TX 훈련기는 첨단 소재와 3D 프린팅을 대량 사용하여 생산 단가를 낮춘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들고 있다. 미 공군의 차세대 훈련기 선정 사업은 2017년 가을경에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필리핀 정부는 2010년경부터 T-50에 관심을 보이다가 2012년 8월 FA-50 12대 계약을 체결했으며, 2014년 3월 4억 2,112만 달러로 최종 서명하고 2015년 11월부터 기체를 인도받았다. 한때 신임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이 FA-50PH의 용도가 “의전용”이라는 혹평까지 했으나, 정작 2017년 1월 민다나오 내전에서는 FA-50PH로 야간폭격을 실시했고, 2017년 6월 이슬람계 반군인 마우테(Maute)가 말라위(Marawi)를 점거하자 FA-50PH가 실전에 투입되어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 필리핀 공군은 FA-50PH 도입 이전까지 베트남 전쟁 시절의 유물인 OV-10 브롱코(Bronco) 정도를 주력 항공기로 보유하고 있었을 뿐 실질적인 전투기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FA-50의 도입을 통해 단번에 제트 전투기를 보유한 공군으로 탈바꿈했다.

향후 T-50 시리즈는 훈련기보다는 경공격기 성능에 집중할 예정이며, 공대지 및 공대공 능력을 단계적으로 향상해 나갈 예정이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올린 실전 경험은 경공격기로서 F/A-50에게 귀중한 경험으로 축적될 것이다. 현재 필리핀은 T-50PH의 추가 구매를 고려 중이며, 총 4대의 T-50TH를 구입한 태국 또한 추가 구매 계약이 진행 중이다.

크로아티아 공화국도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을 실시하면서 MiG-21BISMiG-21 BIS와 교체할 약 18대 규모의 전투기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국방부는 2017 7 1515일 자로 입찰제안서를 한국, 미국, 이스라엘, 그리스, 스웨덴에게 발행한 상태지만 이 중 미국, 이스라엘, 그리스에게는 중고 F-16 매를 타진했고 한국과 스웨덴에게만 FA-50  JAS-39 그리(Gripen) 매를 타진한 상태다. 이 사업은 10월부로 제안서를 마감한 후 2019년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2020년부터 선정 기체의 실전 배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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