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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중 전쟁의 반전이 시작되는 미드웨이 해전 2번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미드웨이 해전은 행운의 여신이 미군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드웨이 해전당시 와일드켓의 전투장면 이미지 

1. 미드웨이 1차 공습 

미드웨이 해전 1차 공습을 시가대 별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1. 05: 40분 

같은 침로로 아데아 디위의 PBY비행정을 후속하던 체이스 대위의 PBY 비행정은 수많은 일본 함재기들이 미드웨이 섬을 향하여 비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보고 하였습니다. 

 

1-2. 06: 00분

미드웨이 섬에서는 몰려오는 일본 공격대를 요격할 전투기 26기(F2A 버펄로 20기, F4F와일드 켓 6기)가 출격했습니다. 

이어서 TBF뇌격기 6기와 B-26 마 로더 폭격기 4기, SB2U 급강하 폭격기 6기로 혼성 편성된 공격대가 나구모 부대를 향하여 출격하였습니다. 

 

1-3. 06:07분

미드웨이를 경유하여 일본군 항모 부대 발견의 보고를 받은 미 17 기동부대 사령관 플레처 제독은 즉시 행동에 들어가 휘하 요크타운에게 공격 준비를 하도록 명령하고 16 기동부대 사령관 스플루언스 소장에게 일 기도 함대 공격대를 발진시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미 해군의 항모 3척은 즉시 출결 준비를 개시하였습니다. 

 

1-4. 07:00분

스플루언스 제독의 항모들,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이 먼저 공격대를 발진시켰습니다. 

 

1-5. 06:16분

도모나가 공격대 107기가 함상 공격기 (97식 공격기), 함상 폭격기 (99식 폭격기), 함상전투기 (제로 전투기) 순으로 미군 요격기들이 엄호하고 있던 미드웨이로 접근해 갔습니다. 전투는 고공에서 비행하던 미 해군 PBY 비행정이 조명탄을 투하하고 미군기들이 선재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군 요격기들은 선두의 도모나가 대장 기를 포함한 함상 공격 기대에 달려들어 불을 뿜었습니다. 

그러자 후속하던 제고기 편대가 이들을 역습하면서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습니다. 약 15분간의 공준 전에서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조종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본 제로 전투 기대의 슬리로 마감되었습니다. 성능이 제로 전투기에 비해 떨어지는 미 해군 F2A 버펄로 기 20기 중에 13개가 격추되었고 와일드 켓은 2개 격추되었습니다. 

 

도모나가 대장 기도 피격을 당해 무전기가 사용 불능이 되었고 그는 2분기를 가까이 불러 비상용 소형 흑판에 쓴 자기의 희망 교신 내용을 보여 주고 본부로 중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1-6. 07:00분

공격의 성과가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한 도모나가 대위는 나구모 기동부대에게 가우, 가우, 가우, 연속 신호를 보냈습니다. 

2차 공격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1-7.  7:49분

미드웨이 공격이 진행되던 중 순양함 지쿠 마에서 발진한 4호기가 날씨가 안 좋아 시계가 불량하여 정찰을 중지하고 돌아가겠다는 송신을 보내왔습니다. 

6분 뒤에 도네에서 발진한 1호 정찰기가 적 항공기 15기가 아군 함대를 향하여 이동 중이라는 급전을 발신하였습니다. 

공중에서 전투 초계 비행 중이던 제로기에 더해서 6기의 제로기가 더 발진하였습니다. 

이 미군 공격대는 미 항모에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10기의 정찰기였습니다. 

일본 기동함대는 각 항모에 잔류한 제로기 21기에게 출격을 명하여 함대의 항공 엄호를 강화하였습니다. 

 

일본군 공격대가 계속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동안 미군 해군과 육군 항공 대는 일본 기동함대를 공격하였습니다. 

일본 기동함대는 각 항모에 잔류한 제로기 21기에게 출격을 명하여 함대의 항공 엄호를 강화하였습니다. 일본군 공격대가 계속 미드웨이 공격하는 동한 미군 해군과 육군 항공대는 일본 기동함대를 공격하였습니다. 

 

1-8. 07:05분

중순양함 도네는 접근하는 미군 폭격기 10기를 발견했습니다.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TBF 어벤저 뇌격기 공격대 6기와 어뢰로 무장한 B-26 4기였습니다. 

미군 은 미드웨이를 공격하는 도모나가 공격대 요격에 미드웨이 기지의 모든 전투기를 투입하였기 때문에 이들 일본 함대 공격대에게는 전투기 호의를 붙이지 못했습니다. 

B-26 마로더 <출처 : wikipedia>

아카키와 도네에서 즉시 대공 사격을 하였고, 제로기 10기도 공격에 가세하였습니다. 

항모 아카키에게 저공으로 접근한 미 뇌격기 6기 중 3기가 먼전 격추되고 남은 3기 중 2기는 어뢰 투하 후에 격추되었습니다. 어네스트 중위가 지휘하는 한 기만 무사히 귀환하였습니다. 

 

아카키는 투하한 어뢰들을 몯 무사히 피했습니다. 일본 항모들이 입었던 유일한 피해는 뇌격기에서 발사한 기촐 소사에 아카키의 3번 대공포가 선회 불능으로 파괴된 것 분이었습니다. 아카키를 뇌격했었던 B-26 2기도 격추되었고 나머지 두기는 귀환했지만 너무 손상이 심해 폐기 처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B-2에서 발사한 어로 2~3발이 명중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아카키에 명주한 어뢰는 없었습니다. 

 

2. 미드웨이 2차 공습 결정

도모나가 대위의 보고를 접한 나구모 사령관은 미드웨이 2차 공습을 결정하였습니다. 

곤도 노부 다케 중장의 2함대 미드웨이 공략 부대가 6월 7일 실시할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군 기지 내 항공전력의 철저한 파괴가 필수적이었습니다. 1차 공습이 미흡한 결과로 끝났으나 제2차 공습은 당연히 실시하여야 했습니다. 

 

니구모 사령부는 적 함대 출현의 가능성에 대비해서 공격용 어뢰를 장착하고 대기하고 있었던 97식 함상 공격기들을 육상 공격을 위한 폭탄으로 무장 전환하라는 명력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의 유동성에 대비해서 아무 무장도 하지 않고 대기했었던 99식 함상 폭격기들에게도 신속한 폭장의 명력이 내렸습니다. 미드웨이 해전 전에 항모 히류에서 실험해본 바에 의하면 죄장의 어뢰를 풀고 폭탄을 장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반이라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데 함대 엄호의 제로기가 편대들이 미 공격대와 공중전을 치르고 연료 보급과 실탄 장전을 위해서 항모에 귀환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미드웨이에 공중 공격을 가한 도모나가 대위의 1차 공격대도 귀환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항모들은 무장 전환 작업이 있던 비행 갑판 아래 격 남고나 비행갑판은 극히 혼란한 상황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3. 미 기동함대 공격대 급속 발진 

미 해군 기동부대는 하와이에서 중계된 카타리나 비행정의 보고로 일본 기동부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공격 타이밍을 저울질하던 미 해군의 17 기동부대의 지휘관 플렛처 소장은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남서 변침 수색 공격하라 였습니다. 한 시간 뒤인 

 

3-1. 아침 7시

16 기동부대의 스풀루언스 소장은 휘하 항모 엔터프리이즈와 항모 호넷에 공격대 발진 명령을 내렸습니다. 

항모 엔터프라이즈에서 총 57기의 함재 기각 항모 호넷에서 총 60기의 함재기가 출결 채비에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정찰기가 함대의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언제 적 함재기 공습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발진 작업은 더욱 긴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스플루언스는 작전 실행단계에서 참모장 에리엇 브라우닝 대령의 진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행단계에서는 지위권을 이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일분을 다투는 위기의 순간에 아직 일본의 공격대가 발진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가하려고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각개 약진의 이 전범은 병력의 추가 투입이라는 안 좋은 방법일 수도 있었습니다. 결과 미 공격대들은 크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 기동함대에게 미 항모 부대 공격대를 발진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적 방공망을 약화시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기회를 만등었습니다. 

 

제17기동부대의 플랫처 사령관도 초계에 나섰던 정차기들이 모두 돌아온 뒤인 아침 8시 30분, 35기의 공격대를 발진시켰습니다. 

 

4. 나구모의 시간 낭비 

나구모 부대는 이전문에 즉각 대응하지 않고 야마구치 제독의 소류 항모에 배치된 두기의 신형 스이 세이 정찰기에게 추가 정찰을 명하였습니다. 

스에세이 정찰기들이 발진한 직후 소율의 공격대를 선두로 미드웨이 1차 공격대가 귀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미드웨이 2차 공격대가 폭탄을 장비하고 출격 준비를 완료하고 갑판에서 정렬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5. 야마구치 소장의 긴급 건의 

항모 히류와 소류 두척의 항모로 구성된 제2항공 전대 사령관이며 맹장인 야마구치 다몬 소장은 미 항모 발견 소식에 "지금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1차 출격했던 도모나가 대위의 100기의 회수를 포기하더라도 즉시 전 항모 공격대를 발진 준비가 급하다"라고 건의했지만 이런 파격적인 건의는 나구모 사령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갑판은 대 혼란을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1차 공격대를 수용하는 것이 먼저냐, 2차 공격대를 발진하는 것이 먼녀냐, 적 항모들을 부수기 위한 출격이 먼저냐 하는 결정을 놓고 참모들과 지휘관들 사이에 강들이 있었습니다. 

 

항모 함대 상공에 도착한 미드웨이 1차 공격대 함재기들은 연료가 거의 다 고강 되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차해서 상황이 나빠지면 100기 정도의 함재기들과 무려 200여 명의 탐승원들을 수장시켜야 하는 상황입니다. 

 

센다 미노루 항공 참모는 노련한 경험을 쌓은 탑승원들이 죽어가는 것을 눈을 뜨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1차 공격 대함 제기 회수가 금선 무라고 건의하고 이를 강행했습니다. 

 

새로 철현 한 항모 부대가 설사 공격대를 발진시키더라도 전투 초계 제로 전투기 부대가 완전하게 방어하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 항모 부대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귀환하는 미드웨이 공격대를 모두 수용하고 기동부대 공격대를 발진시키기로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때까지 함대 공격용 어뢰를 장착하고 비행갑판에서 대기 중인 공격기들이 있던 일본 항모는 한 척도 없었습니다. 

5-1. 08:37분

나구모 기동부대는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수용하기 시작했습니다. 

5-2. 08:55분

돌아온 함재기를 모두 회수 완료 후 비로소 북으로 변침하여 적 기동부대를 포착하여 격멸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함 편 적 함대 발견의 타전을 했던 도네의 4호 정찰기가 추가 정보를 보내온 것은 미드웨이 공격대를 한창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5-3. 08:55분

체공시간 10시간인 도네의 영식 수상 정찰기는 귀환 중이었습니다. 

일본은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모두 수용한 시각은 09:30분이었습니다. 

 

6. 미 항모 뇌 격대의 전멸과 수훈

엔터프라이즈 호의 뇌격기, 미드웨이 섬 (왼쪽부터)

수용 완료가 마무리될 무렵 일본 함대는 공격대의 발진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6-1. 09:20분

존 C왈드론 소령이 이끄는 항모 호넷의 뇌 격대 TBD기 14기가 기동부대의 상공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들 뇌 격대는 도중에 구름 때문에 호의기 들과 떨어졌습니다. 이뇌 격대는 아카키와 중 순양함 치쿠마의 견시들에게 최초로 목격되었고 엄호하던 제로기 8기가 요격하였습니다. 

 

뇌격기들은 제로기들을 무시하고 아카키에게 육박하였으나 일본 초계 전투기들의 요격 능력은 막강하였습니다. 

때문에 호넷의 뇌격기 전기가 격추되었습니다. 한기는 아카키의 ㅎ마교에 접근하다가 추락하였고 해면에 불시착한 나한 뇌격기에서 탈출하여 표류하던 죠지 게이 소위 외에 29명의 탐승원들이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게이 소의는 해전 후에 미 비행정에 발견되어 구조되었습니다. 전후 이들 뇌격 대원 전원은 모두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호텟의 뇌격기는 전멸하였고 폭격기들과 전투기들은 모두 일본 항모를 찾지 못하고 헤마다가 연료가 떨어지자 미드웨이 섬으로 향하였습니다. 

전투기 F4F와일드켓 기 전기와 폭격기 SBD3기는 연료 고갈로 바다에 불시착하였습니다. 나머지는 SBD20기는 모두 호넷으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6-2. 09:37분

콘신 린제이 소령이 이끄는 엔터프라이즈의 뇌 격대 14기가 나무고 부대의 상공에 도달했으나 이 부대도 역시 통신상의 문제로 와일드 켓 전투기 부대의 호의를 받지 못하고 일본 제로기 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뇌 격대는 항모 카카를 노렸으나 10기나 격추당하고 탑승원 29명이나 전사하는 참변을 겪었습니다. 

 

6-3. 10:00 분

일본 항모 소류에서 발진시킨 쾌속의 신형 스이 세이가 미 함대를 발견했습니다.

함대의 정확한 위치는 도네 4회 기각 보고한 위치와 100km 이상 차이가 있었습니다. 

 

6-4. 10:10 분

요크타운 제3의 뇌 격대 12기가 나구모 부대 상공에 도착하였습니다. 뇌 격대는 구름에 가려진 다른 3척의 항모보다 앞에서 노출된 항모 히류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뇌 격대는 전투기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으나 제로기의 공격에 TBD10기가 격추되어 2기는 연료 부족으로 해면에 불시착하는 참극을 되풀이하였습니다. 

요크타운의 뇌격 대원 24명 중 21명이 전사했습니다. 일본 항모 히류에게 어뢰 5발을 발사했지만 명중탄은 없었습니다. 

 

뇌 격대들은 모두 섬멸되었지만 간접적으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이 승리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1. 뇌 격대는 일본 기동부대를 연속으로 흔들어 이들로 하여금 신속한 반격에 나서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2. 미군기들은 대부분의 일본 전투 초계기들이 뇌 격대에 눈이 팔려 자기 위치를 이탈하게 만들었습니다. 
  3. 많은 제로기들의 실탄과 연료를 소모하게 만드어서 다음 미군 폭격대 요격에 대처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일본의 제로기들도 계속되는 이함-전투-착함-보급-이함을 되풀이하느라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습니다. 마지마 공격을 시도하다가 섬멸된 요크타운의 뇌 격대는 특히 승리를 위한 중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일본 기동부대 남동쪽에서 저공으로 공격해온 요크타운의 뇌 격대를 영격 하느라 일본 호의 전투기들은 모두 남동쪽 해역 저공에 몰려들어 일본 기동부대 상공의 고공을 비워 놨었기 때문입니다. 
  4. 요크타운의 요격 직후 발생한 일본 초계기들의 방심을 곧 일본 기동부대의 참변으로 결론이 나게 됐습니다. 

여러 번 되풀이하다가 실패로만 끝난 미 뇌격 대원중에 바다에 불시착하거나 낙하한 미 해군 조종사 2명과 한 명의 탑승 원을 표류하다가 일본군에 포로가 되었는데 일본 해군은 이들로부터 중요한 정보들을 뽑아내고 물을 넣은 석유통에 묶어 바닷속에 수장시키는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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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의 역사


 


영국 해군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전부터 초계·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상기를 군함에 탑재하여 운반하는 방법이 고안·사용되었다. 그 뒤 전함·순양함 등의 대형함에 가설갑판을 설치하여 비행기를 발착하게 하거나, 또는 전후갑판에서 직접 발착시키는 방법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대전 말기에는 대형 순양함 퓨리어스(Furious) 등을 이용하여, 그 앞뒤에 발함갑판과 착함갑판을 설치하고, 함교와 굴뚝의 바깥쪽에 통로를 만들어 전후갑판을 연결하고 그 밑에 격남고를 둔, 항공모함에 가까운 함종을 만들어 비행기탑재함(airplane carrier)이라고 하였다.

 

1918년 상선의 선체 위에 넓은 격납고를 시설하고, 그 위에 돌출물이 없는 평탄한 비행갑판을 설치한 본격적인 항공모함 아거스(Argus:1만 4000t, 20kn, 탑재기 20)를 완성시켰고, 1920∼1923년에는 전함을 개조한 2만 2000t, 23kn의 이글(Eagle)과 신조함인 1만 900t, 25kn의 허미즈(Hermes)를 완성시켰다.

이때를 전후해서 미국·일본에서도 항공모함을 가지게 되었다. 1922년 워싱턴 군축회담의 결과 미·일 양국은 미완성 단계에 있던 주력함 2척씩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렉싱턴(Lexington)과 새러토가(Saratoga:3만 3000t), 일본의 아카기[]와 가가[:2만 7000t]가 1927∼1928년에 완성되었다. 일본에서는 그보다 앞서 7,500t급의 소형 항공모함 호우쇼[]를 건조한 바 있다.

 

초기 항공모함은 크기와 관계없이 구조상으로 섬형[:island형]과 평갑판형(:flush deck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섬형은 비행갑판의 한쪽에 폭이 좁은 함교구조물·마스트·굴뚝 등을 설치하는 형식이며, 평갑판형은 비행갑판상에는 전혀 구조물을 두지 않는 형식으로서, 주로 소형함에 채택되었다. 영국의 이글·허미즈, 미국의 새러토가형은 모두 섬형이었으며, 일본의 아카기, 가가는 비행갑판의 앞부분이 3단, 격납고도 3층으로 되어 있는 평갑판형이었다.

 

영국은 워싱턴 군축회담 후 퓨리어스형(1만 9000t, 31kn) 3척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였는데, 퓨리어스는 평갑판형, 다른 2척은 섬형이었고, 비행갑판과 격납고는 모두 2층으로 되어 있었다. 1930년경 이후 모든 항공모함이 미국식인 1층으로 된 넓은 비행갑판형식으로 통일되고, 소형의 것도 함교는 갑판상에 두되, 굴뚝의 개구()는 현측 밖에 둔 준()섬형의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 무렵부터 캐터펄트식 발함장치가 채택되게 되었고, 착함제동장치와 활주제지장치가 개량되었으며, 승강기의 성능과 속도, 가솔린 탱크의 방어시설, 가솔린의 폭발방지장치 등이 개선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1만 4500t급의 레인저(Ranger), 1만 9900t급의 요크타운(Yorktown)형 3척을 건조, 1955년 건조된 6만 t급의 포레스탈(Forrestal)까지의 항공모함은 구조형식을 모두 새러토가형과 같이 만들었으며, 그것이 미국 항공모함의 전형이 되었다. 1938년 영국이 건조한 2만 2000t급의 아크로열(Ark Royal)은 격납고가 2층으로 되어 있고, 비행갑판은 함의 앞뒤보다 훨씬 나오게 설계된 특징 있는 항공모함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이 함의 개량형 수척과 1층 격납고로 된 저속 ·간이함 상당수를 건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는 요크타운형을 확대 개량한 2만 7000t급의 에식스(Essex)형 24척을 건조하였고, 이어 에식스형의 개량형인 4만 5000t급의 미드웨이(Midway)형 3척을 건조하여 대일전()의 주력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상선의 선체를 이용해서 만든 6,700∼1만 2000t, 속력 18kn 내외의 저속·간이함인 호위항공모함(escort carrier:CVE) 130여 척을 완성하였다.

 

현대의 항공모함


 


2차세계대전 때부터 성능과 형태에 따라 임무별 구분을 하게 되었다. 미국 해군에서는 항공모함을 공격항공모함(attack carrier:CVA)과 대잠지원 항공모함(antisubmarine warfare support carrier:CVS)으로 구분한다. 공격항공모함은 적의 함대·육상의 표적을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100기 내외의 공격기를 탑재하고, 해상병력의 주력이며, 배수량 6∼10만t의 대함이다.

 

대잠지원 항공모함은 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건조한 에식스형을 전후에 개량한 것으로, 적 잠수함의 발견과 공격에 사용되는 배수량 3∼4만 t급의 항공모함이다. 대전 중에 1만 t급의 순양함을 개조해서 다수 건조한 경항공모함(light carrier:CVL), 화물선·상선을 개조해서 만든 호위항공모함 등은, 전후 탑재비행기의 대형화·중량화·고속화에 따라 전투기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한 때 대잠용이나 비행기수송선, 헬리콥터모함 등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1960년경부터 대부분이 폐함처분되었고, 그 중 일부만이 비행기 및 화물수송선(aircraft ferry and cargo ship:AKV), 비행기 운반선(auxuliary aircraft transport: AVT), 상륙전용 헬리콥터모함(amphibious assault ship:LPH), 인공위성을 이용한 통신중계선(major communication relay ship)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 해군에서는 3만 t급 이상의 몇 척을 함대항공모함·공격항공모함이라 하여 미국의 공격항공모함과 동일한 목적에 사용하고, 2만 t급 이하의 몇 척을 헬리콥터용 상륙기습함으로 사용하며, 이것을 지휘항공모함(command carrier)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전후 새로운 계획에 의해 2만 t급의 항공모함 2척을 1960~1963년에 건조하여 이것을 대잠 및 초계, 전투기용으로 사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해상전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항공모함도 대전 후 핵무기·미사일 ·제트기 등의 출현과 발달에 따라 한때 공격용 무기로서의 가치가 의문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발착시설이 보강되고 최신형 공격기를 탑재하며, 온갖 현대식 장비와 지휘 ·정보시설 등이 구비됨에 따라 오늘날은 자국의 해상교통로 확보에 주역을 담당하는 해군력의 주력으로 재평가 받게 되었다.

 

현대의 항공모함은 탑재비행기의 중량이 10t을 넘게 되었으므로 종래의 유압식캐터펄트가 증기식 캐터펄트로 대체되었으며, 따라서 20~30t급의 비행기도 쉽게 사출할 수 있게 되었다. 비행갑판은 앵글데크 형식으로 되어 전반부의 발함갑판과 후반부의 착함갑판의 방향이 다르게 되었으므로, 비행기가 발함 중이라도 다른 비행기가 동시에 착함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형식은 신조함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기성함의 갑판도 모두 이 형식으로 개조되었다. 또한 제트화된함상기의 착함속도가 증가됨에 따라 이를 짧은 거리에서 제동시키기 위해 착함제동 장치와 활주제지 장치가 설치되었다.

 

함상기는 동체 후단 밑에 고리를 달고 있으며, 착함시에는 착함갑판상에 가로로 쳐 있는 30∼40mm 착함제동강삭(:arrester wire)에 고리가 걸리도록 되어 있는데 일단 강삭에 걸리면 강삭에 연결된 제동기가 작동해서 강삭을 잡아당겨 비행기의 전진을 막고 제동을 하게 된다. 비행기의 고리에 제동강삭이 걸리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착함갑판의 전방에는 수축성이 강한 비닐제의 망을 쳐서 활주를 제지시키도록 되어 있다.

 

전자무기가 발달됨에 따라 최근의 항공모함에는 원거리 ·근거리용 탐지 레이더를 비롯하여 비행기유도 레이더, 피아식별장치인 IFF(Identification, Friend of Foe) 등을 갖추고 비행기의 지휘와 임무완료 비행기의 모함 귀환이 쉽게 되어 있으며, 착함지휘장치 등도 무선장치나 광학적 방법을 이용해서 거의 완벽하게 착함시킬 수 있다.

 

미국은 에식스형과 미드웨이형에 이러한 신형 장비를 장치하고, 배수량도 3만 3000t과 5만 1000t으로 증가시켰으며, 1955~1959년에 포레스탈형을, 1968년에 그 개량함 키티호크형의 제4번함 존 에프 케네디(J.F.Kennedy)를 완성시켰다. 한편, 1961년 세계 최초의 원자력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를 건조하여 유례 없는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였고, 뒤이어 제2번함 니미츠(Nimitz)와 제3번함 아이젠하워(Eisenhower)를 건조 ·취역시켰다.

 

영국의 항공모함 건조 방침은 미국과 달리 주로 해상교통로의 제공권 확보와 대잠호위에 중점을 두어 함의 성능과 탑재기의 성능도 미국과는 다르다. 전시에 기공된 이글(신형, 3만 6800t)은 전후에 대폭적인 설계변경이 가해져서 1951년에 완성되었고, 앵글데크를 채택한 같은 형의 제2번함 아크로열(신조)은 1955년에 완성되었다.

 

이글은 6년간에 걸친 개장작업() 끝에 1964년에 완성되었으며, 성능도 일변해서 미국의 포레스탈형 다음가는 유력함이 되었다. 현대의 항공모함은 전략 및 전술용으로는 6∼10만 t, 대양에서의 방공과 대잠공격용으로는 3∼5만 t, 함대나 선단 호위용으로는 2∼3만 t급의 크기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기성의 1만 t급 소형 항공모함은 헬리콥터에 의한 대잠호위와 병력의 상륙용에 사용되고 있다.

현대적인 대형 공격항공모함은 막대한 유지경비가 소요되므로 미국만이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며, 다른 국가는 신함의 건조를 거의 단념하고 있다. 그러나 수직이착륙기(VTOL)·단거리이착륙기(STOL)가 발달하여 보편화되면 비교적 소형의 새로운 항공모함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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