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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G3개발사 전편에 이어 2번째 시간을 이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새로운 소총을 만들어버린 HK사.

어렵사리 만들어진 CETME/HK의 소총의 앞날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서독군은 1956년 벨기에제 FN FAL 벨기에제 G1 자동소총으로 제식 채용하게 되면서 BGS도 당연히 G1을 채용하게 되면서 CETME/HK 소총을 더 이상 채용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BGS에 납품하기로 한 시제 총기의 생산은 HK의 경험 부족으로 난항을 거듭했습니다.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HK는 CETME 소총의 독일 생산에 성고하고 시험용 총기 400 여정을 1956년 10월에 BGS에 납품하였으며, 이후 1957년 4월까지 시험평가가 실시되었습니다. 

 

 

 

 

CETME/HK의 소총이 개발되는 사이 서독 연방군과 BGS는 FN FAL을 G1 소총으로 제식채용했다. <출처: Public Domain>

한편 1958년이 되자 이제 서독 국방부 가 CETME/HK 소총에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독군도 이미 FN FAL소총을 G1 자동소총으로 제 식체 용하고 있었지만, 서동 정부가 FAL 소총의 라이선스 생산을 요구하자 FN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2차 대전 시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기억에 벨기에 정부는 직도입은 몰라도 면허 생산은 허용할 수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독군은 자국서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자동소총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마침 BGS에서 시험 평가하고 있던 CETME/HK 소총은 매우 시의 적절한 대안이었고, 결국 BMV는 1958년 4월 17일 시험 평가용 소총을 400 정이나 주문했습니다. 

 

이에 따라 HK7월 1일까지 400 정의 CETME/HK 소총과 함께 1,600개의 탄창과 기타 수리부속을 납품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사실상 CETME/HK 소총의 채용을 결심하고 매우 진지하게 시험평가에 나섰습니다. 

BWB(국방기술 조달청)는 꼼꼼한 시험평가 과정을 실시하면서 여러 가지 사항을 개산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BWB는 우선 본격적인 시험평가에 앞서서는 17가지의 개선사항을, 시험평가 종료 후에는 4가지 개선사항을, 그리고 양산 전에는 3가지 개선사항을 요구했습니다. 

 

2. 요구사항 내용

1. 시험평가 전 개선 요구사항

  1. 소여 기와 총류탄 발사기를 결합하여 설계할 것. 
  2. 가늠쇠 보호장치를 강화하여 제작할 것
  3. 가늠자는 플림 -업이나 다이얼 방식으로 제작할 것
  4. 운반 손잡이에 고정 장착을 장착할 것. 
  5. 조종간 고정장치의 위치를 변경할 것. 
  6. 탄피의 배출 시 발향을 바꾸는 기구를 부착할 것. 
  7. 개머리판 끝부분의 재질을 금속 대신 고무로 변경할 것. 
  8. 권총 손잡이의 양산 절차를 단순화할 것. 
  9. 멜빵의 장착 위시를 변경할 것. 
  10. 잔 전손 잡이을 길게 제작할 것. 
  11. 파이프의 위약을 변경할 것. 
  12. 반동 스프링 가이드를 변경할 것. 
  13. 권총 손잡이에 장착되는 핀을 변경할 것. 
  14. 버퍼링 장치를 변경할 것. 
  15. 개머리판의 형상을 변경할 것. 
  16. 방아쇠 안전장치의 모양을 변경할 것. 
  17. 장전 손잡이를 더울 인체공학적인 형상으로 변경할 것. 

2. 시험 평가 종료 후 개선 요구사항. 

  1. 양각대를 강화할 것. 
  2. 손 보호를 위한 대책을 강구할 것. 
  3. 권총 손잡이의 형상을 더욱 인체공학적으로 교체할 것. 
  4. 전체 중량을 감소할 것. 

3. 시험평가 종료 후 양산 전 개선사항

  1. 안전장치가 걸려있는 상태에서도 장전이 가능하도록 방아쇠 구조를 변경할 것. 
  2. 20발이 수납 가능한 탄창을 제작할 것. 
  3. 마지막 탄환 발사 이후 약실이 개방된 상태로 되도록 만들 것. 

 

 

G3소총 설명 동영상

독일군을 위한 개조 과정에서 HK가 만드는 소총은 점점 CETME 소총과는 다른 소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CETME소총의 총몸은 저탄소강, 즉 연철로 만들 졌습니다. 사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돌격소총들을 만들 때부터 총몸에 저탄소강을 썼는데, 돌격소총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CETME 소총도 단영히 이런 전철을 따랐던 것입니다. 

 

저탄소강을 사용하면 손쉽게 가공이 가능하여 부족한 설비로도 저가로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가공을 위한 저탄소강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CETME 소총은 독일의 돌격 소총처럼 상대적으로 저위력의 탄환을 발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로러로킹의 지염블로백 작동방식을 사용한 것도 처음에 채용했던 탄환의 위력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62mm NATO탄을 사용하면서 총기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극도로 증가하면서 더 이상 저탄소강을 쓸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HK는 저탄소강을 대신하여 더욱 강성이 높은 합금강을 채용하였습니다. 또한 노리쇠를 구성하는 노리쇠 앞쪽과 노리쇠 뭉치, 롤러 등도 모두 강성이 높은 다른 재질로 바뀌었습니다. 

 

HK는 원활한 작동을 위해 무려 20가지가 넘는 롤러들을 개발하여 원하는 것을 채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3. G3소총 드디어 채용되다. 

한편 HK가 소총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라인 메탈의 HK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사실 라인 메탈은 윈래부터 CETME 소총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독일 내 생산을 CETME에 제한했지만 HK를 이미 파트너로 선정했기에 좌절된 바 있습니다. 

 

이제 독일 내 양산을 놓고 1957년 CETME는 HK/라인 메탈 팀과 협상에 들어갔는데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CETME는 이제 독일 국방부와  직접 면허생산 계약을 맺고자 했습니다. 

독일 국방부도 CETME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기를 바랐지만, 해외수추권한까지도 확보하기 바랐는데, 이 부분에서 결국 CETME와 대립하면서 계약은 체결되지 못했습니다. 

 

계약이 이뤄지지 못하자 1958년 3월쯤에 이르러 CETME/HK 소총의 독일 생산을 위한 모든 준비작업이 중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페인이 채용한 CETME 모델 B 소총은 NATO표준탄을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과연 FN FAL을 대체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까지 더해졌습니다. 게다가 서독 연방군의 규모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애초에 50만 명 규모의 군대를 목표했지만 숫자는 계속 줄어갔습니다. 

이는 차기소총의 생산량과도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CETME는 새롭게 계약 협상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심지어는 그간 꺼려왔던 해외 수출 권리까지도 독일 측에 넘길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CETME 소총의 뿌리가 독일의 STG45(M)이며 그 개발의 주역이 루드비히 포 그림러를 포함한 독일 총기 설계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독일의 핏줄을 가진 총기가 독일인의 손에 들오온 셈이었습니다. 

 

CETME 측이 양보하자 계약은 이사천리로 잰 행 되었습니다. 

1959년 2월이 되자. CETME, HK, 라인 메탈은 물론이고 독일과 스페인 양국 국방부까지 서명한 계약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에 딸 대금이 지급되고 생상에 필요한 기술 문건들이 이전되면서 드디어 CETME/HK 소총의 독일 생산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1959년 소독 연방군은 CETME/HK 소총을 자동소총,으로 제식 채용하였습니다. 

 

한편 연방군을 위한 G3 양산에서 서독 국방부는 신생업체인 HK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HK 이외에도 라인 메탈에서도 G3가 생상 되었으며, 초도 주문량으로 HK와 라인 메탈은 각각 65,000정을 생산했습니다. 

 

HK와 별도로 라인 메탈도 독자적인 GE변형 모델들을 개발했으나, 커다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G3가 성공하면 할수록 CETME와 HK의 관계는 멀어졌습니다. 특히 이미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 CETME 소총의 개발자였던 포그럼러가 마우저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CETME는 마우저와 전략적 협력을 하기에 이렀는데, 포 그림러는 마우저에서 시험용 기관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5 정의 시제 기관총이 만들어져 서독 연방군의 제공되었지만, 이미 MG3라는 우수한 기관총을 보유하던 연방군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우저의 CETME소총 개발은 방향을 잃고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4. G3소총으로 미래를 HK 미래를 열다. 

실전 배치된 G3는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독일군의 G3실전배치와 만족스러운 운용은 다른 NATO 회원국 드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군대로부터 관심을 끌었습니다. 

독일 다음으로 채용한 것은 포르투갈로, 이들은 CETME 사양이 아니라 G3사양으로 자구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은 스칸디 나비아이 3개국으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자국에서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이외에도 터키, 파키스탄, 이란, 그리스와 프랑스에서도 G3면허 생산되었습니다. 한때 FN FAL로 나토 전역을 장악할 것 같았던 FN FAL 은 G3에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HK의 야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던 G3의 작동방식에 바탕하여 다양한 총기들을 개발했는데 5.56 × 45mm탄을 사용하는 HK33과9mm파라블러탄을 사용하는 MP5 기관단총을 만들면서 제품군을 다양화했습니다. 

 

물론 G3자체를 경기관총화여 만든 HK 11(탄창 급탄 방식)과 HK21(탄띠 급탄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G3는 기관총보다 저격총으로 만들어져 더욱 인기를 끌었습니다. G3SG/1에서 시작하여 MSG3이 등장했습니다. 

이후에는 프로 플로팅 배럴을 장착한 PSG1과 MSG90까지 등장했습니다. 

 

물론 HK의 주력 상품군은 G3만은 아니었습니다. 

HK4권충이나 P9, VP90등 다시 기준으로 획기적인 총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HK가 마우저나 라인 메탈, 발터 등의 거물들을 제치고 독일의 대표적인 총기업체로 성장할 수 있던 것은 G3소총의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1.12.22 - [육군무기체계] - G3 소총 개발사 - 스페인이 부린 제주에 대박친 독일의 소총 을 아시나요! (1부)

 

G3 소총 개발사 - 스페인이 부린 제주에 대박친 독일의 소총 을 아시나요! (1부)

G3소총 개발 배경과 소총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해 클러& 코흐의 등장하다. 2차 대전에 패전한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무기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습니

rokmc76.tistory.com

 

참고문헌:한국 국방 안보 포럼,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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