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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STEN) 기관단총

급하게 만들다 생긴 악명



굳이 영국이 아니더라도 섬나라는 당연히 해군에 군비를 주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방어 측면에서 본다면 침략을 받았을 때 바다에서부터 적을 막아내는 것이 유리하고, 반대로 대외 팽창에 돌입했을 때는 경쟁자보다 빨리 밖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군사적 이점을 최대한 살린 영국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5대양 6대주 곳곳을 지배하는 역사상 최대의 패권 국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급하게 만든 기관단총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의 육군이 약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세계 곳곳에 있는 엄청난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약할 수가 없었죠. 또한 전통적으로 영국은 유럽 대륙에 변고가 생길 때마다 힘의 균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개입을 마다하지 않았던 나라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제1, 2차 세계대전 모두가 그러한 예입니다. 그래서 소수지만 강력한 육군을 운용했고 품질 좋은 국산 무기로 충실히 무장시켰습니다.

지원병으로만 구성 되어 장기간 충실히 훈련시켰던 덕분에 1, 2차 대전 초기의 영국 육군은 징집된 독일군이나 프랑스군에 비해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소수였기에 부대 간 대결에서 열세였지만 적어도 사격술을 비롯한 병사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전통의 주변 육군 강국들에 비한다면 미흡한 측면이 많았고 정책상 오판으로 말미암아 무기 개발을 등한시하여 고전을 겪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본격 등장한 기관단총도 있었습니다. 영국은 참호전의 호된 경험에도 불구하고 기관단총을 효과가 없는 무기로 오판했습니다.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약한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작 기관단총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부랴부랴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둘러 탄생한 기관단총은 급하게 만든 만큼 문제점도 많았습니다. 바로 스텐(STEN) 기관단총입니다.

 



대륙에서 몰락한 정예 원정군

영국이 오랫동안 유지하여 온 기본 외교 전략은 여러 나라가 어깨를 접한 유럽 대륙에서 유일 강자의 등장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대륙에 군대를 파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여 경우에 따라 본토를 지키는 병력의 수배에 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1차 대전 당시에는 연 인원 700여 만 명(영연방 전체로는 880만)의 대규모 병력을 유럽 대륙으로 보내 독일과 싸우도록 조치했고 엄청난 피해도 감수하였습니다.

2차 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은 독일에 선전 포고하고 고트 경(Sir Gort)이 지휘하는 30만의 영국해외원정군(BEF)을 동맹국 프랑스에 파견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 전개한 영국 해외 원정군은 피아 통틀어 유일하게 모든 병력이 차량화된 정예부대로 당시 영국 육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연합군은 독일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1940년 5월 10일 독일이 침공을 개시하자, 연합군은 뛰어난 작전을 구사한 독일군에게 초반부터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 독일 기갑부대에 의해 배후가 차단당한 영국군은 북프랑스의 됭케르크(Dunkirk) 해변까지 밀려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바다를 건너 도망가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는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독일의 다음 목표는 영국 본토였기 때문입니다.

 

절실히 요구되었던 무기?

 



결론적으로 포위된 30만의 원정군이 기적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됭케르크 철수작전은 이후 영국이 반격에 나설 때 든든한 자원이 되었고 반면 눈앞의 먹이를 그대로 살려준 독일군은 이를 두고두고 원통해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국 해외 원정군은 모든 장비를 해안가에 내팽개치고 몸만 빠져나온 상태여서 본토 방어에 무기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당시 육군은 맨몸으로 바다를 방패 삼아 해군과 공군이 독일의 침략을 막아내야 했습니다.

만일 이 상태에서 강력한 독일 육군이 무사히 해협을 건너 영국 본토 상륙에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습니다.

 

영국은 모든 산업시설을 총동원하여 무기 생산에 나섰습니다. 바로 이때 대륙으로부터 허겁지겁 도망쳐 온 많은 장병들은 기관단총을 요구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독일군이 난사하는 기관단총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들은, 같은 장비가 있어야 적과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영국군도 일부 병력이 미국에서 도입한 톰슨(Thompson)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는 있었습니다만 그 동안 기관단총의 필요성을 너무 간과하다 보니 개발도 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도입한 수량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은 즉시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관단총을 만들라는 지시를 관계 기관에 내렸고, 그렇게 해서 ‘스텐’으로 명명된 새로운 기관단총이 1942년 등장했습니다.

 

너무 급하게 만든 총

 



‘스텐(STEN)’은 설계자인 셰퍼드(Reginald V. Shepherd)와 터핀(Harold Turpin), 그리고 엔필드(Enfield) 조병창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대강 지은 이름만큼 급박한 전황을 고려하여 생산성을 염두에 두다 보니 형태와 구조도 극히 단순했고, 그로 인해 가격이 극히 저렴하고 생산성도 뛰어나 단기간 동안 무려 약 400만 정이 생산되었습니다.

탄생한 지 8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작되는 톰슨의 생산량이 약 270만 정인 점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많은 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군의 MP38, MP40 같은 멋진 기관단총을 상상하던 병사들은 마치 쇠파이프를 잘라서 대강 만든 것 같은 스텐 기관단총을 처음 보고는 실망했습니다. 탄창을 옆에서 꽂는 형태부터 상당히 특이한데, 경우에 따라서는 ‘과연 이것이 총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만큼 조잡해 보였습니다. 처음 이를 들고 돌격하는 영국군을 본 독일군이 스텐을 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보았다는 이야기까지 전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무기가 굳이 외형이 멋있을 필요는 없으므로 이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작 커다란 문제는 너무 막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품질이 조악하다는 점이었습니다. Mk5와 최종형인 Mk6은 여타 기관단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지만 그 이전 모델들은 한마디로 ‘가지고 다니기 무서운 총’이라는 악평을 들었습니다.

 

오픈 볼트 방식 총들 대부분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스텐은 유독 충격에 약했습니다.

실수로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총알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연사 되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병사들이 도망 다니는 일이 흔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탭댄스를 추는 것에 비유해서 ‘죽음의 탭댄스’라는 말까지 탄생했습니다. 그만큼 초기 모델의 안정성은 최악이었습니다. 더불어 화상을 피하려 탄창을 잡고 쏘면 급탄 불량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처럼 스텐 기관단총에 대한 초기 평가는 ‘조악한 품질’이라는 한마디로 종합할 수 있었습니다.

 

간과하고 있던 사실은

하지만 사실 이러한 악평처럼 무조건 사용하기 어려운 기관단총이었다면 더 이상 생산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품질이 너무 나빠 아군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다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스텐을 상당히 튼튼한 걸작이라며 노획하여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독일군이 19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후 형성된 서부전선에서 주로 후기에 생산된 모델을 접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습니다.

 

스텐은 조악한 시설에서도 빨리 만들어 낼 수 있어서 폴란드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카피 생산했고 당장 한 정의 총도 아쉽던 전쟁 말기의 독일도 이를 카피한 포츠담 장비(Gerät Potsdam), MP3008 같은 총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모델들이 비록 엄청난 악평을 받았지만 분명한 것은 스텐은 이후 꾸준한 개량을 통해 성능을 개선하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여 거대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관단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25전쟁이나 수에즈 위기처럼 이후 영국군이 직접 참전한 전쟁에서도 꾸준히 사용되었고, 이후 등장한 스털링(Sterling) 기관단총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사실 품질이 나쁜데도 생산성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총기를 수백만 정 이상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적보다 아군에게 더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이미 무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스텐 기관단총을 이야기할 때 그동안 이런 당연한 점을 간과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원(Mk2 기준)
탄약 9×19mm 파라블럼 / 급탄 32발 막대 탄창 / 작동방식 블로우백, 오픈 볼트 / 전장 760mm / 중량 3.2kg / 발사속도 분당 500발 / 유효사거리 1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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