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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대(大) 전쟁 최장의 싸움터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스탈린과 레닌그라드 전투 이미지 

안녕하세요. 밀리터리 마니아입니다. 

오늘 레닌 그라드 전투의 5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차례

  1. 양날의 칼
  2. 티흐빈에서의 반전
  3. 지옥으로 변한 도시
  4. 생명의 길 

1. 양날의 칼

봉쇄당하기 이전에 많은 이들이 소개되었음에 여전히 레닌그라드에는 300여만의 시민과 병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 외부의 지원 없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시 동쪽의 라도가 호수를 통하여 물자가 보급되고는 있었지만 수량이 턱없이 부족하였고 독일 공군의 차단 작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통한 보급로도 압도적인 독일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어 활용이 불가능한 지경이었습니다. 

협궤 열차가 곧바로 진입할 수 있게 제작되어 운송 효율을 높인 라도가 호수 횡단 보급선. 운항 도중 독일 공군의 공습에 격침당하기도 하였다. <출처: (cc) RIA Novosti archive, image #310 / Boris Kudoyarov at Wikimedia.org> 

독일이 레닌그라드의 점령을 유보하고 모든 전력을 집중하여 모스크바 공량에 나서기로 한 이상, 상대를 최대한 춥고 배고프게 만들어 항복을 받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시켜 승리를 얻는 것은 상당히 바람직한 전술입니다. 

더구나 포 의도니 인구가 많을수록 저항 기간을 단축시킬 가능성이 컸습니다. 

 

70년 전 보불전쟁 당시에 독일은 파리를 포의 하여 느긋하게 굴복시킨 전례가 있었습니다. 

10월 들어 라스푸타차(Rasputitsa)가 시작되면서 모스크바 점령을 위한 독일의 태풍 작전이 난관에 부딪히는 시작 하였습니다.  진흙 장군은 결국 모스크바를 구했지만 레닌그라드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스스로 진격을 멈춘 상태였기에 라스푸티차가 독일 북부 집단군에게 끼친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반면, 고립된 레닌그라드로 향한 소련의 생명선이 오히려 장애물을 만났던 것입니다. 

 

라도가 호수를 건너 레닌그라드로 보급품이 가려면 일단 내지에서 호수 남측 연안의 볼호프(volkhov)까지 소송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스크바로 향하던 독일군을 막을 라스푸티차가 여기서는 소련의 보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됐던 것입니다. 

아무리 소련인들에게 익숙한 자연현상이라 해도 엄청난 진흙 구덩이를 빠져나오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1941년 가을의 라스푸티차는 모스크바를 구한 조력자인 동시에 레닌그라드를 고통스럽게 만든 양날의 칼입니다. 

 

 

2. 티흐빈에서의 반전

이처럼 레닌그라드 일대가 안 정화 되자. 스탈린은 10월 8일 주코프를 소환하여 모스크바 방어의 중책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는 독일과 소려 모두 레닌그라드를 차후의 문제로 보기 시작하였다는 뜻입니다. 양측 합쳐 800만에 가까운 대군이 쉽없이 충돌하여도 모든 곳에서 동시에 싸우기 힘들 만큼 소련은 넓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닌그라드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전투가 끈났다는 의는 물론 아니었습니다. 

레닌그라드 도심에 설치된 대공 감시장치인 청음기. 레닌그라드 일대의 전선은 정체되었지만 싸움이 그친 것은 아니었다.

독일은 연일 도심을 향한 포격을 계속하였고 그러 수록 소련군의 저항 의지는 커졌습니다. 1941년 겨울 이전까지 소련군이 보여준 모습은 모든 무능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 전선으로 달려 나오며 저항하는 놀라운 모습음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권력의 강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점령지에서 나치가 소련인들과 포로들에게 가한 잔학행위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항복할 것이라 예상했던 독일은 당황하였고 침공 4개월이 지나면서 이 전쟁에서 이기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볼호프 남부의 티흐빈에서 벌어진 전투는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독일일 볼호프와 이곳을 거쳐 오네가호 서안의 페트로자보츠크를 점령한다면 핀란드군와 직접 연결이 되면서 소련의 유일한 생명선인 라도가 호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라스푸티차가 끝난 직후인 11월 8일, 독일이 타흐빈을 점령하자 소련은 즉각 반격을 개시하였습니다. 

모스크바 방어에 혈안이었음에도 stavka(소련군 최고 사령부)가 반역죄 명목으로 수감 중인 메레츠코프에게 직할대인 제4군을 맡겨 투입하였을 만큼 중대한 위기로 인식할 것이었습니다. 한 달간의 격전 끝에 소련군은 12월 9일 티흐빈을 탕 환하였고 이를 계속 확보하려 제4군을 기반으로 볼호프 전선 군을 창설하여 독일 북부 집단군의 측면을 견제하였습니다. 

 

3. 지옥으로 변한 도시

하지만 포위망 외각에서 선전과 달리 도심의 모습은 비참하였습니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독일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말미암아 기반 시설은 파괴 도어 갔지만 이를 복구할 자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것은 식량난이었습니다. 

10월이 되었을 때 레닌 그라드에는 불과 20일분의 식량만이 남아 잇었습니다. 히틀러가 레닌그라드는 가만 놔두어도 몰락할 거라 자시 하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정치국원인 주다노프는 군인과 노동자들에게 1주당 빵 8온스,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4온스만 배급하였을 정도로 강력히 식량을 통제하였지만 50만 명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었습니다. 

도시에 널브러진 사체를 수습하는 모습. 독일의 공격에 의한 사상자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기아와 추위에 숨져간 이들이었다. <출처: (cc) RIA Novosti archive, image #216 / Boris Kudoyarov at Wikimedia.org> 

거기에다가 12월이 되어 북극으로부터 엄청난 한파가 몰려오면서 영하 4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고 난방용 에너지가 고갈되자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많은 이들이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루 사망자가 5천 명 선에 이르면서 시가지 곳곳에 시체가 쌓여 가는 모습이 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처절하게 도시를 사수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아사 직전의 수많은 시민들이 사체를 먹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기에 이르렀습니다. 

보안대에서 이를 단속하였지만 오로지 생존 본능에만 매달리 이들의 행위를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실 이런 참담한 상황을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극적인 치안 행위나 강력한 통제보다 식량과 연료를 즉시 공급하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주간의 폭격 위험을 피해 가며 라도가 호수 위로 보급품을 가득 실은 선박이 오갔지만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데 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때 많은 시민들에게 추워 떨다 죽게 만든 엄청난 겨울 한파가 역설적으로 레닌그라드를 구한 생명의 밧줄이 되었습니다. 

 

4. 생명의 길

우선 독일군의 공격이 멎었습니다. 그해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는 기상대의 장기 예보만 믿고 전쟁을 벌인 독일은 동계 전투용 장비와 소모품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더 이상 싸움을 벌일 여건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모스크바와 로스토프 앞에서 진격이 좌절돼 중부 집단군과 남부 집단군에 비해 9월부터 참호를 파고 포위전을 편 쳤던 북부 집단군의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았지만 얼어붙은 대포에서 포탄이 발사되지 않기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레닌그라드의 겨울 혹한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결빙된 라도가 호수가 그동안 볼호프 등에서 레닌그라드로 이어지는 뱃길을 막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좋은 수송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1941년 겨울은 40년 만의 혹한이었다. 동계 피복도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한 일선의 독일군들은 더 이상 전투를 벌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11월 20일 이후부터는 구호물자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꽁꽁 얼어붙은 라도가 호수 위를 달리기 시작하였고 돌아올 때는 50만의 시민들과 부상당한 4만여 명의 병사들을 싣고 지옥의 도시를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이러 수송이 마냥 쉬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야간에도 움직인다 하더라고 독일 공군의 집요한 공격이 계속되었고 얼음이 깨지면서 호수 아래로 차량이 가라앉은 경우도 비일비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배로 보급품을 수송할 때도 있었던 위험이었습니다. 이처럼 레닌그라드의 구언 행렬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고 도시는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던 수송차량의 기사들은 죽음의 길이라 불렀지만, 이듬해 4월 24일까지 152일간 열려 있던 라도가 호수의 에 고속도로는 '생명의 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생 명선을 통하여 배급량이 다시 늘리기 시작하였고 시 미들의 사기도 서서히 올라갔습니다. 당연히 소련군의 방어선도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반면 예상을 빗나간 레닌그라드의 회생에 히틀러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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