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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베레(Green Berets)

 



1952년 애론 뱅크(Aaron Bank) 대령에 의해 창설된 美 육군의 특수부대로, '10 공수특전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린베레는 요원들이 녹색 베레모를 쓴 데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이 부대는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공수부대, 레인저 부대 및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예비역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창설자인 뱅크 대령에 의하면 주 임무는 '육해공으로부터 적지에 침투하여 저항군이나 게릴라를 양성하여 유격전을 펼치는 것'이며, 또 다른 임무는 적지 깊숙이 침투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레인저는 강력한 기습 공격을 주로 하지만 그린베레는 적지에서 수개월간을 지내며 작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린베레 요원들은 제한된 물자로 생존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1952년 말 한국전쟁에 첫 번째 그린베레 요원들이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이후 1957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팀이 창설되었는데, 이 부대는 남베트남에 파견되어 군사자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린베레는 케네디 대통령 당시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성기를 맞았으며, 이에 훈련학교의 이름을 'John F. Kennedy Special Warfare Center'라고 바꾸기도 했습니다. 

1971년 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그린베레 요원의 수는 줄어들었으나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으며 부대 내에도 변화가 일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세계 각국에 파견되었으며 특히 중미의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서는 특수부대의 훈련을 돕기도 했습니다. 또 1989년 12월 파나마에서의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델타포스(Delta Force)


 


델타포스는 정규군이 투입되기 힘든 상황에 뛰어들어 요인 암살, 인질 구출, 적 기지 파괴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미 육군의 특수부대입니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며, 대사관 및 항공기 인질 구출 작전, 마약 및 핵물질밀매단 와해 공작 등을 수행합니다. 델타포스는 특수전 장교 출신이자, SAS(Special Air Services,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에서 근무한 바 있는 차알스 베크위드(Charles Beckwith)에 의해 1977년 11월 창설됐습니다.

본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랙(FortBragg)에  있습니다.

델타포스는 육·해·공군의 다른 특수부대와 달리 특수전사령부(USSOCOM)의 통제 체계에서 벗어나 '연합 특전사'(JSOC: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의 지휘 체계 하에 있습니다. JSOC 산하에 있는 부대는 특수부대 가운데서도 가장 비밀을 요하는 임무만을 수행하는 부대들로 해군의 연구개발단(DevGRU)과 육군의 160 항공단, 공군의 제2항 공사단 일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델타포스는 1981년 인도네시아 여객기 구출작전, 1984년 베네수엘라 여객기 인질 구출작전, 1989년 파나마 침공 시 미국인 인질 구출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 때 수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억류된 미국 인질 66명을 구하려다 실패하였습니다.

 


레인저(Ranger)



그린베레, 델타포스와 함께 미국 육군의 3대 특수부대로, 미 육군 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의 경보병 특공부대입니다. 전통적으로 착용해온 검은 베레모가 유명합니다. 레인저 부대의 임무는 일반적으로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적진에 맨먼저 침투, 신속한 공격을 통해 활주로와 기타 목표지점을 점령한 후 다른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사수하는 것입니다. 특히 공항 점령과 기습은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모두 자원병으로 이루어진 레인저는 공중, 지상, 해상 등 어떤 경로로도 침투하고 극지, 정글, 사막,산악 지형 등 어떤 상황에서도 싸울 수 있도록 지옥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지원자 200명 중 1명 정도가 최종 과정을 마칠 정도로 선발이 까다롭고 여성 대원은 없습니다.

레인저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특수부대로서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입니다. 당시 이 부대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절벽을 기어올라 대형 포대를 폭파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베트남전과 1983년 그레나다, 1989년 파나마에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1980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구출작전과 1993년 소말리아에서 모하메드 파라아이디드 체포작전에서 실패한 경험도 있습니다. 베트남전 이후에는 각 보병, 공수사단에 산재된 레인저 중대가 통합되어 '제75레인저 연대'라는 단일 지휘체계로 발족되었으며, 연대 본부는 조지아주 포트베닝에 있습니다. 

 

 


Navy SEAL(네이비실)



미국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로, 네이비실에서 SEAL은 해상(Sea), 항공(Air), 육상(Land)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것입니다. 육·해·공 어디서든지 전투가 가능한 전천후 부대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1962년 1월 1일 케네디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창설됐습니다. 미 해군의 특수전사령부(Special Operation Command) 산하에 속해 있는 SEAL은 태평양 지역에 위치한 제1 특수전단에 1·3·5 팀이, 대서양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제2 특수전단에 2·4·6·8 팀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특히 SEAL팀은 베트남전에 참가하여 군수기지(Logistics Base) 폭파 및 고급정보 수집에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도 투입되어 미국의 외교정책을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SEAL팀이 순수한 군사업무의 수행에서 대테러리즘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9년 12월 발생한 이란 테헤란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 이후부터입니다. 당시 444일간이나 계속된 대사관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SEAL 내에 100명 규모의 SEAL-6을 창설하여 대테러리즘 능력을 보강하게 되었습니다. 


SEAL TEAM-6

네이비실은 1979년 11월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 때 억류된 인질 100여 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대원 8명을 잃었습니다. 이에 해군 정보 인원 중에서도 정예요원을 선발, 100여 명으로 구성된 실 팀 6(SEAL Team 6)이 구성돼 대테러전문 부대로의 육성이 이뤄졌습니다. 

SEAL Team 6는 델타포스와 함께 합동특수전사령부(Joint Special Operations Command)에 소속되어 있으며, 데브그루(DEVGRU·Development Group)로도 불립니다. 대원 선발과 훈련이 혹독하기로 이름이 높으며, 적장(敵將) 참수 등 가장 까다로운 임무를 맡는 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린 레이더스(Marine Raiders)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 최전선에서 대테러전 및 침투 작전 등을 수행하는 미 해병대 특수전사령부(MARSOC)로, 2006년 2월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창설됐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때인 1942년 발족했다가 2년 만에 해체됐던 당시 특공대의 이름을 이어받은 부대입니다.

 

미 해병원정대(MEU)

미 해군당국은 MEU(Marine Expeditionary Unit)가 편제상 '특수부대'는 아니지만 '특수전이 가능한 부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해상으로부터의 작전을 지원하는 것이 주임무로, 장비와 병참 및 기술 지원·무기·군함 면에서 일반 부대보다 다양하고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막강한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MEU의 보병대대는 일반적으로 육해공 합동작전에 투입되며 경무장 운송수단을 사용하며 또 공군작전부대는 헬리콥터와 헤리어젯(Harrier jets) 같은 고정날개가 장착된 군항 기를 이용합니다.


공군 특수부대
(Air Force Special Operations Forces)

공군특수부대는 근접 항공 지원을 제공하는 부대로, 저격, 급유 및 지원 업무 등도 수행한다. 이 부대는 최첨단의 항법, 정찰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Marine Recon



Marine Recon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그 존재가 알려진 부대로, 1944년 이전에는 정찰·저격 부대였으나 1944년 4월 상륙 정찰 임무의 2개 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초기에는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 수중폭파팀)와 공동으로 해변 정찰 및 수위 측량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초에는 UDT와 함께 이오지마섬에 투입되어 작전에 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에서는 한국 동해에서 UDT와 함께 철도, 터널 및 교량 폭파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적 후방 200마일 지점에서 후방 교란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51년에는 미 해병대 역사상 최초의 헬리콥터 침투 공격을 시도하였습니다. 또 1965년 베트남 전쟁에서는 담당 부대를 지원하여 작전에 임했으며 적의 중심 깊은 곳에서 장거리 정찰 작전을 실시하였습니다. 

1976년부터는 인질 구출작전에도 투입되었으며, 1977년에는 저격병이 추가되어 전투력이 향상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1983년 10월에는 그레나다 침공에 투입되었으며 1989년에는 파나마에서의 'Just Cause' 작전에 투입되었다. 1990년에는 걸프전에 투입되어 이라크와의 최전선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여 미 해병대에게 적의 이동로를 알려기도 했으며 걸프전에서 238명의 이라크 군을 포로로 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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